EP.260
하루 전.
크로가 샤론 기관장 시간의 초월자를 차례대로 만나며 정보를 수집하던 중.
한 소녀는 부상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끈 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크윽···.”
그녀의 이름은 줄리엣.
아비규환이나 다름없던 백작의 저택에서 간신히 빠져나오는 데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부하들을 전부 잃고 본인 또한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국적인 수배령이 내려진 상황이기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백작이 쓰러지고 기존의 작전마저 백지장이 되어버린 지금으로선 자신이 움직여야만 했다.
‘포기할 수는 없어···!!’
레지스탕스라는 이름 아래 왕정을 타파한다는 표면적인 이유 따윈 사실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신권정치를 부활시키기 위해 혁명이란 허울 좋은 변명을 껍데기로 이용했듯 줄리엣 역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것뿐이었으니까.
그저 서로의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에 잠시 함께했을 뿐 그가 사라진 시점에서 레지스탕스라는 조직은 이제 아무 쓸모도 없어진 것이다.
물론 백작이 태양신으로부터 받은 지식은 큰 도움이 됐다. 자신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 몸담았던 재단의 이사가 괴도라는 사실도 알려준데다 지금 그녀가 향하는 목적지 역시 백작이 알려준 정보였으니.
그 덕분에 줄리엣은 포기하지 않고 추적을 피해 마침내 도달해내었다.
“여긴가···.”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를 벗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동굴 입구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을 노려보던 줄리엣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우뚝 멈춰 섰다.
어쩌면 이 이상 더 앞으로 향했다간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앞에 있을 존재는 자신을 그렇게 만들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동굴을 향해 나아갔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버지.”
***
“아 샤론.”
이쪽으로 다가오는 샤론을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엊그제 그녀를 만나 밤새 함께 있으면서 속에 담아두고만 있던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놓은 탓인지 왠지 전보다 훨씬 거리가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믿는다. 샤론이 이렇게 먼저 다가오는 것도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지 않나?
실제로 율리아와 레이첼 역시 평소와 다른 샤론의 이상 행동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
“웬일이냐? 너처럼 엉덩이 무거운 애가 먼저 올 줄이야.”
“레이첼. 엉덩이가 무겁다니 샤론한테 실례잖아.”
두 사람의 잡담을 무뚝뚝하게 지켜보던 샤론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크로.”
“으 응?”
“어제는 잘 들어갔니?”
의미를 알기 힘든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
“잠깐 이게 뭔 소리일까?”
그러자 내 답을 끊고 들어오는 레이첼의 오묘한 물음과 율리아의 당혹스러운 반응이 한데 뒤섞였다.
“주말에 단둘이 만난 거야···? 그보다 잘 들어갔냐니 설마 크로가 샤론의 집에 갔던 거야···!?”
두 사람의 격한 리액션에 그제야 방금 샤론이 꺼낸 말이 얼마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좋은 표현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니 애초에 오해라고 하기도 애매한가. 율리아가 말한 대로 주말에 그녀의 집에 찾아갔던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두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내 결백함을 입증하기 위해 서둘러 착각을 바로잡아주려 했으나 그보다 한발 앞서 샤론이 먼저 대답을 가로챘다.
“특별한 일은 아니야. 단둘이 할 얘기가 있었던 것뿐이니까. 그냥 크로가 그날 밤을 새우고 돌아가서 걱정됐을 뿐이야.”
“단둘이 밤을 새웠다고···?”
하하. 표정을 보아하니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어줄 것 같질 않네.
이미 율리아와 레이첼의 머릿속에선 나를 쓰레기 범죄자 취급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나. 누구를 탓하기에도 애매한 문제였기에 그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샤론은 원래 평소에도 남한테 무관심한 편이라 듣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이런 곤란한 상황을 일부러 의도했을 리는 없겠지.
그 뒤로 최대한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았지만 두 사람은 대충 고개만 끄덕일 뿐 진심으로 내 해명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기야 납득 갈 만한 해명을 위해선 밤새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전부 설명해줘야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란 거지?”
“아직이고 자시고 무조건 아니라니까.”
“흐음···.”
팔짱을 낀 채 묘한 침음성을 흘리던 레이첼은 내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글쎄. 그건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뭐?”
“됐다. 너 같은 멍청이한테 설명해준 내가 바보지.”
아무튼 내 필사적인 부정 덕분인지 그 이후로는 해당 주제가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샤론까지 추가되어 세 사람 전부 평소보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달까.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느낌이라 괜히 주눅 들고 말았다.
“하아···.”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하나 막막함에 한숨을 내쉬던 와중.
드르륵-!
뒷문이 열리며 누군가 반 안으로 들어왔다.
“크로 모리스 학생.”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이곳에서 만나리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인물.
다름 아닌 집행부 소속의 캐서린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카데미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자연스레 반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나와 캐서린 양쪽에 쏠렸다.
그 상황에서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정확히 응시하며 말했다.
“지난 수학여행과 관련해 당신께 물어볼 내용이 있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지금요?”
“네.”
방문의 목적 자체야 금방 이해했다. 지난번 시험 직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으니.
하지만 의아한 것은 타이밍이었다. 저번처럼 수업이 끝난 후 조용히 부르면 되는 걸 왜 불필요한 이목을 끌면서까지 지금 찾아온 거지?
혼란스럽긴 했으나 일단 얌전히 그녀를 따라 반을 나섰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이들에게도 눈빛을 보내 기다리라고 알려 진정시켜놓았다.
캐서린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걸어가며 계속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직접 물어보았다.
“지난번이랑 똑같이 지나와 관련된 일인 거죠···?”
“네. 정확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죠? 수업이 끝난 뒤에 조용히 진행하는 편이 훨씬 안전한 거 아닌가요?”
내 질문에 그녀는 걸음을 멈춰 세운 뒤 잠깐의 뜸을 들이고서 대답했다.
“그래선 늦기 때문입니다.”
“···네? 늦는다니 대체 뭘.”
“지난번 아카데미가 수학여행을 떠나 겪었던 일련의 사건. 그 중심이었던 프랑크 왕국의 레지스탕스 잔당을 현재 집행부에서 포획한 상태입니다.”
그거야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 그 잔당들이 바로 내 재단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에게서 심문해내 정보를 캐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인가 드라칸과 연결점이 있다는 것을요.”
“···드라칸?”
레지스탕스와 드라칸이 관련되어 있다고?
그럴 리가. 드라칸은 원작에서도 가장 흉악하고 위험한 빌런 조직. 하지만 목표를 위해서가 아닌 이상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소수 정예 조직이다.
애초에 그 둘이 연결될 접점은 어디에도···.
···아니 잘 생각해보니 한 가지가 있었다.
‘라파노.’
그는 괴도 추종자를 혁명군으로 세뇌시키려 했던 드레이크의 자금줄을 대주었다.
그리고 레아의 이전 직장 주인으로서 레이첼이 드라칸의 실험체가 될 뻔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째서 진작 떠올리지 못했던 거냐···!
예언의 마녀가 보여준 수정구슬을 통해 라파노가 드라칸의 수하가 되었다는 걸 뻔히 보아놓고서!
누가 먼저 손을 내밀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확실한 건 드라칸과 레지스탕스가 라파노를 통해 연결되어 협력하고 있었다는 것.
“저희는 그를 역이용해 드라칸의 거점을 밝혀내 먼저 공략하려 했습니다만 그들은 말단이다 보니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더군요. 하지만 그 정보를 알 만한 사람이 있죠.”
드라칸의 은신처를 알 만큼 레지스탕스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
‘줄리엣!’
상황이 더럽게도 배배 꼬여 있잖아.
행방불명된 그녀가 만에 하나 의식 중인 드라칸을 깨우기라도 한다면···.
“그러니 시간이 없습니다. 드라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그들이 최우선으로 노릴 대상은 진 그레인저. 당신의 친구일 테니까요.”
확실히 급한 상황인 건 알겠다. 그런데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어느샌가 도달한 빈 교실의 안에는 지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
“지금부터 저희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지부로 이동합니다.”
“자 잠깐!! 갑자기 스코틀랜드라니 지나는 그렇다 쳐도 저는 왜···.”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전 그저 부장님의 명령에 따를 뿐이니까요.”
너무나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이 일련의 과정 가운데서.
우리는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쿠오오–.
아카데미 전체에 울려 퍼지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세상은 돌연 어둠에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욤욤잉님 100코인 후원 넘무넘무 감사드립니당~~~!!!
항상 열심히 쓰려고 노력할 테니 언제든 돌아와서 재밌게 읽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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