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4
레이어드는 검을 고쳐잡고서 눈앞의 상대를 노려보았다.
마치 온몸이 강철과도 같아 보이는 거한의 사내. 호기롭게 웃고 있는 그의 눈빛엔 감출 수 없는 전투의 광기가 가득 흘러넘쳤다.
이 녀석이 아카데미를 습격한 범인 중 한 명이란 건 확실해 보였다.
그와 싸우고 있던 여자는 새하얀 제복을 보아하니 집행자인 듯하고.
집행자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는 원치 않게 엮여본 적이 있기에 레이어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집행자가 고전하며 수세에 몰릴 정도라면 적은 얼마나 강한 걸까.
눈대중으로만 봐도 상대가 여태껏 만났던 그 어떤 상대보다 위험한 존재란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물러나세요. 아카데미 학생이 상대 가능한 적이 아닙니다.”
캐서린 역시 학생에 불과한 소년에게 모든 짐을 내맡기고 무책임하게 쓰러질 생각은 없었다.
“쫑알쫑알 언제까지 떠들고 있을 거냐. 둘 다 한꺼번에 덤벼라!!”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포효를 내지르며 주먹을 뻗는 디트리히.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향해오는 공격을 노려보던 레이어드가 검을 빼 들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미 그쪽들과는 한번 협업했던 적도 있으니까요.”
“···네?”
치이잉!
디트리히의 주먹과 레이어드의 검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파쇄음을 내뿜었다.
물론 힘의 격차가 상당했던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힘겨루기에서 밀려난 소년이 혀를 차며 검을 회수해야 했지만.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저 괴물의 일격을 정면에서 막아내다니···.
게다가 마법 아카데미 학생인데도 검을 사용하는 특이한 전투 스타일.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의 정체를 깨달은 캐서린이 작게 입을 벌렸다.
“검호···.”
얼마 전 저주받은 숲을 조사하던 집행자 라이너와 함께 중심부에 도달하여 트롤을 쓰러트렸다던 검을 다루던 소년.
그렇다. 레이어드는 이 세상의 원 주인공. 세기의 재능을 갖췄다는 그레인저와도 대등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던 존재.
설령 한 이레귤러의 행적으로 인해 세계선이 뒤틀릴지라도 그의 발자취는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소년의 정체를 깨달은 캐서린은 배를 움켜쥐면서도 자세를 다잡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어쩌면 저 괴물 같은 상대를 이길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서.
***
“다른 분들은 어쩌고 있으려나요.”
아카데미 습격이 시작된 지 얼마나 흘렀을까.
다른 동료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카데미 측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와중 한 여인만큼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신비로운 보라색의 풍성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여유롭게 복도를 서성이는 그녀의 이름은 프란체스카.
드라칸의 일원 중 한 명임과 동시에 광적일 만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였다.
그녀가 이 극악무도한 범죄 조직에 소속된 이유도 단 하나.
가장 완벽한 생명체라 불리는 드래곤의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일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악행 그로 인한 고통과 슬픔 등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원색적인 감정은 별로 아름답지 않으니까.
그런 유별난 성향 덕분에 프란체스카는 드라칸 내에서도 디트리히와 함께 가장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단원이었다. 디트리히가 오로지 전투만을 갈망한다면 그녀는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
지금 이렇게 복도를 거니는 목적 또한 이 아카데미 내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습격 사태로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아카데미의 전경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동료가 소환해낸 팬텀을 막아내고 학생들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쩔쩔매는 교수들의 발악도 궁상맞게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맞서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겁쟁이처럼 도망만 치는 학생들의 꼴사나운 추태였다.
‘아. 그냥 다 죽여버릴까요?’
이 광경을 만들어낸 원인 제공자가 자신들이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아름답지 못한 광경을 눈에 담는 것. 그 자체가 프란체스카에겐 무엇보다 불쾌하고 경멸스러운 일이었기에.
그녀는 진지하게 이 일대를 전부 쓸어버릴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들 사이에 용부리미가 섞여 있냐 없냐도 딱히 상관하지 않았다. 용부리미가 이렇게 못난 모습만 보이는 얼간이라면 그런 못난이가 소환해낸 드래곤 역시 아름답지 않을 게 뻔하니까.
‘하지만 그랬다간 리더가 실망하겠죠···.’
제아무리 프란체스카라도 리더의 미움을 사고 싶진 않았다.
리더는 그녀가 인정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존재였으니.
그렇게 복도에 잠시 멈추어 서서 한창 갈등하고 있던 와중 반대쪽에서 혼비백산하여 달려오던 한 여학생이 그대로 프란체스카의 어깨를 살짝 스쳐 부딪치며 지나갔다.
그 소녀는 디트리히가 잔뜩 날뛰며 무너지던 잔해에 휩쓸려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부상 당한 팔을 부여잡은 채 눈물을 흘리며 도망치던 소녀는 그대로 우뚝 정지하고 말았다.
“아.”
프란체스카는 잠시 가만히 제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여학생이 부딪치고 간 부위에는 새빨간 핏자국이 살짝 묻어 있었다.
그 자국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그녀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뒤돌아서 있던 여학생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니 강제로 돌려졌다.
소녀의 눈에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일렁였다. 작게 열린 입에선 아무 의미도 없는 신음이 이따금 흘러나왔다.
프란체스카가 한 걸음씩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려움에 지배당한 몸이 마구 떨리며 다리의 힘이 스르르 풀렸다. 그럼에도 어떠한 강제적인 힘에 묶여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상대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소녀는 모든 걸 포기한 채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고마워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귓가로 들려오는 상냥한 목소리에 슬쩍 눈을 뜨자 상대방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덕분에 결정을 내렸거든요.”
그게 무슨 말인지 깨닫기도 전에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압박감이 목을 졸라왔다.
“그만해!!”
그때 둘의 사이에 누군가 난입하며 소녀의 목을 조르던 압박감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갑작스러운 방해에 살짝 눈을 찌푸리던 프란체스카는 이내 방해꾼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살짝 눈을 크게 뜨더니 오묘한 미소를 띠었다.
“아슬아슬했네요. 1초만 더 늦었으면 목이 뎅겅 잘려 나갔을 텐데 말이죠.”
그 능청스러운 말에 땅에 주저앉았던 소녀는 기겁하며 제 목을 매만졌다.
“빨리 도망가!!”
“친한 친구인가요? 위험을 감수하고 끼어든 이유가 뭐죠?”
소녀를 구한 방해꾼 율리아는 상대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데 이유가 필요한가요?”
그 대답을 들은 프란체스카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율리아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입가의 미소를 더더욱 선명하게 필 뿐. 그 눈동자에는 기묘할 만큼 반짝거리는 광기가 담겨 있었다.
“아름다워···.”
이해할 수 없는 중얼거림에 율리아가 움찔거리자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다는 듯 프란체스카는 수줍게 얘기했다.
“그 고결한 정신을 담은 눈동자.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이군요.”
“대체 무슨 소리를···.”
“마음 같아선 당신을 데려가 매일매일 함께 있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그 눈을 파내 제 장신구로 쓰고 싶다고요. 하지만 그래선 그 아름다운 눈동자도 금방 빛바래고 말겠죠.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를 순 없는 법이니까요.”
정상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섬뜩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리는 프란체스카.
깊고도 질척한 그녀의 광기에 압도당한 율리아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상대를 계속 노려보았다.
‘지지 않아···! 그날처럼 괴도님한테 도움만 받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으니까···!!’
그렇게 살 떨리는 대치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프란체스카는 갑자기 귓가에 손을 올리더니 이내 아쉽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철수 신호네요.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작별이에요. 그래도 분명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녀는 뺨에 홍조를 붉힌 채 천천히 뒤돌았다.
“궁금하네요. 과연 당신의 그 아름다운 눈동자가 언제까지 빛날 수 있을지.”
그 말을 끝으로 상대는 허공을 부유하더니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복도에 혼자 남게 된 율리아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럴 게 아니라 애들을 찾아야 해.”
방금 같은 위험한 놈들이 아카데미를 습격했다면 분명 다른 친구들도 위험에 처해있을 것이다. 얼른 도우러 가지 않으면.
***
한편 지크프리트와 베로니카를 물리친 크로 일행은 남아있는 드라칸 잔당을 찾아 나섰다.
“캐서린 씨는 어떻게 됐지?”
“아직 싸우고 있는 것 같아.”
지나는 드래곤의 힘을 점점 능숙하게 다루게 되며 이젠 마력을 지닌 존재들을 탐색하는 것까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전체적인 상황은 어때?”
“소환체 같은 놈들이 우글대고 그 외의 실제 적들은 여섯 명이야.”
“···여섯 명이라고?”
그럴 리가. 이 시점에 드라칸은 리더를 제외하고 다섯 명밖에 없다.
리더는 지금 활동 가능한 상태가 아닐 테니 그녀일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대체 누가···.
“드디어 다시 만났네.”
“······.”
그 순간 아카데미의 반대편에선 두 소녀가 서로 마주 본 채 대치하고 있었다.
마치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듯 쌍둥이처럼 서로를 똑 닮은 두 금발의 소녀가.
“안녕. 내 동생.”
줄리엣이 샤론에게 인사를 건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들 태풍 피해는 없으신가용?
집 밖은 위험하니까 항상 조심해야 하는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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