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6
“놈들이 한곳으로 모이고 있어.”
“아까 얘기를 들어보면 아마도 후퇴하려는 게 아닐까.”
“누가 순순히 놔줄 줄 알고? 무조건 쫓아서 본때를 보여줘야지.”
지나는 자신을 노리고 급습했다는 사실에 단단히 열 받은 건지 이를 갈며 맹렬하게 뒤쫓았다.
그 뒤를 따라가면서도 내 속은 갈수록 초조해져 갔다.
예상대로라면 이번 사태의 배후엔 분명 줄리엣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이 아카데미에서 노릴 목표라고 한다면 당연히 샤론밖에 없을 테고.
당장이라도 샤론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지만 지금 같은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누군가를 찾는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나의 탐색 능력도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적의를 품은 상대를 구별할 정도일 뿐 그 이상으로 신원을 확실히 특정 짓긴 힘들다고 하니 말이다.
결국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후퇴하려는 드라칸을 뒤쫓아 막아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나의 말에 따르면 아카데미를 습격한 6명 전원이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는 듯했다.
그 위치는 다름 아닌 본관의 옥상.
‘제발···. 아직 늦지 않았기를!’
***
후퇴 신호가 떨어진 후 드라칸 단원들은 하나둘씩 집결지인 옥상으로 모여들었다.
어둠 장막을 유지하고 있던 가면을 쓴 사내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에 용부리미를 마주쳤던 지크프리트와 베로니카가 무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좀 있었어.”
“두 사람이 같이 움직였는데도 실패라니. 실망스럽군.”
“어쩔 수 없었다니까? 용부리미는 둘째치고 이상한 마법을 쓰던 녀석이 있었단 말이야.”
본인들도 변명을 둘러대는 것이 궁색하다 느꼈는지 차마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지만 그들 나름대로 억울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애초에 지원 신호를 보냈는데 아무도 안 온 것부터가 문제잖아. 한 명만 더 이쪽에 붙어줬어도 무리 없이 확보할 수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남 탓으로 돌리기 무섭게 제때 맞춰 등장하는 프란체스카.
그녀는 허공을 부유하다 사뿐히 착지한 다음 머리를 배배 꼬며 태연스럽게 반문했다.
“그 말은 제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쯧.”
“한심하네요. 지크프리트.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혼자서도 가뿐히 정리했을 텐데 말이죠. 결국 당신의 나약한 무능력이 발목을 잡은 것뿐 아닌가요?”
대놓고 자신을 깔보는 듯한 시비조의 어투에 지크프리트도 살기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 그럼 누가 더 강한지 여기서 겨뤄볼까?”
“어머. 전 사양할 생각 없답니다. 어차피 제가 이길 테니까요.”
금방이라도 맞붙을 것처럼 대립각을 세우는 두 사람을 중재한 것은 가면의 사내였다.
“그만. 지금은 한가롭게 다툴 때가 아니다. 이번 작전은 흐트러졌으니 지금은 물러나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귀찮게 됐네. 그보다 아직 다 안 왔잖아.”
현재 옥상에 집결한 인원은 총 4명.
아직 2명이 도착하지 않았다.
“디트리히야 또 무식하게 싸워대고 있을 테고···.”
“그 여자는 뭐 하고 있는 거죠?”
“확보할 목표가 있다더군.”
그 말에 베로니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태평하네. 용부리미보다 중요하단 거야?”
“어디까지나 서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임시 동맹에 불과하니까.”
“그런 거면 굳이 기다려줄 필요도 없잖아. 그냥 디트리히만 챙겨서 빨리 떠나자.”
가면을 쓴 사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된다. 그 여자는 우리에게도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 옥상에서 멍하니 있을 수는 없는걸요. 봐요. 벌써 방해꾼이 등장했잖아요.”
프란체스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옥상 문이 벌컥 열어젖히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얼굴을 알아본 베로니카가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어 용부리미다.”
그녀의 한마디에 드라칸 전체의 고개가 순식간에 한곳으로 쏠렸다.
가면의 사내가 눈을 빛내며 새하얀 은발의 소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목표를 확보한다.”
주인의 의지에 반응하여 아카데미 전체에 흩어져있던 팬텀들이 순식간에 소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지나의 붉은 눈이 섬뜩한 빛을 내며 뒤에 있던 드래곤이 울부짖자 달려들던 팬텀들은 괴성을 지르며 뒤로 밀려나 버렸다.
“과연···. 단순한 레플리카 수준은 이미 벗어난 상태군.”
“우리가 괜히 애를 먹은 게 아니라니까?”
확실히 그 말대로다. 드래곤은 모든 마법의 주인. 드래곤의 격이 실제에 가까울수록 마법사에겐 항거할 수 없는 천적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럼에도 소녀의 소환수는 원본에 비하면 여전히 불완전하다.
따라서 용부리미 혼자였다면 아무리 격렬히 저항하더라도 충분히 제압하여 확보할 수 있었으리라.
문제는 그 옆에 전혀 상정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는 것.
“저 녀석이야. 무슨 마법인지 아예 감도 안 잡히니까 조심해야 해.”
베로니카가 가리킨 방향의 끝엔 깔끔한 인상의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언뜻 봤을 땐 그저 나이대에 걸맞은 앳된 인상이었지만 확실히 그 눈빛 너머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베로니카. 용부리미를 세뇌해라.”
“불가능해. 드래곤을 소환한 상태에선 마법 저항력이 너무 높아. 그 대신 옆에 남자애는 어떻게 가능할지도.”
그녀는 즉시 눈을 감고 소년에게 세뇌 마법을 시도했다.
이미 아까의 전투로 인해 더 싸울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던 크로는 마법에 저항하지 못하고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잘 됐어. 저놈은 살려두면 위험하다. 여기서 제거해야 해!”
소년에게 자존심을 제대로 구김 당했던 지크프리트는 평정심을 잃고 앞으로 나서며 공격을 시도했다.
좁은 복도와 달리 탁 트인 옥상에선 빙결 마법의 공간 장악 능력이 완벽하게 발휘되었다.
그가 전력을 다한 냉기의 서늘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쩌저적-!!!
단 일격에 일대 전체를 발 하나 꼼짝하기 힘든 빙결 지옥으로 만들어버리는 위력.
갑작스럽게 찾아온 서늘한 한기엔 그의 동료들조차 입김을 내쉬며 오들오들 떨 정도였다.
“좀 적당히 해···!!”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죽지 않게 힘 조절은 했다고.”
해당 범위의 중심에 있던 크로는 가까스로 무사하였다. 옆에 있던 레이첼이 재빨리 나서서 불길을 최대한 피워 올린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잠깐의 시간 끌기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일방적인 상성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위력의 차이로 뒤덮어버려졌다.
“불태워버려!!”
이어진 지나의 가세로 상황은 뒤바뀌었다. 드래곤이 내뿜은 화염 브레스가 단번에 얼음들을 녹이며 적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지크프리트가 황급히 얼음의 벽을 세워 브레스를 막아내긴 했으나 순식간에 전세가 뒤바뀐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화력은 압도적이지만 정교한 컨트롤은 아직 미숙해 보이네요. 겉만 화려할 뿐 진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아요.”
여유로운 말투와 함께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는 프란체스카.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제가 손가락을 구부리는 순간 당신의 목이 날아갈 테니.”
단순한 허세로 치부하려던 지나는 목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어느 틈에···.”
“후후. 실전 경험이 부족하시죠? 방심은 금물이랍니다.”
눈 깜짝할 새에 목숨줄을 상대가 쥐게 되자 어찌할 수도 없이 이만 아득 가는 지나.
그때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옥상의 바닥이 무너지며 누군가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 짧은 찰나 목을 압박하던 존재가 사라짐을 깨달은 지나는 곧바로 거리를 벌리며 경계 태세를 끌어올렸다.
옥상을 부수고 난입한 존재는 바로 디트리히였다.
“뭐 하는 짓이냐! 너 때문에 다 잡은 용부리미를 놓쳐버렸잖아!”
베로니카의 성화에 그는 가뿐하게 착지하며 대답했다.
“그거 미안하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나도 급했거든.”
그제야 뒤늦게 눈에 들어오는 디트리히의 상처투성이 몸. 파괴 전차와도 같은 녀석이 이렇게나 상처를 입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동료들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를 상대했길래 그 모양이야? 교수들은 거의 다 팬텀한테 붙잡혀 있었을 텐데.”
“학생이다.”
“학생···?”
뒤이어 그가 무너뜨린 구멍으로 훌쩍 뛰어올라 나타난 한 명의 소년.
상대보다도 더 처참한 몰골의 레이어드가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적들을 훑어보았다.
“이런 곳에 다 모여있었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집행자인 캐서린 역시 뒤이어 함께 올라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둘의 모습에 디트리히가 호기롭게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좋아! 여기서 마지막 승부를 보자!!”
하지만 그를 막아 세우는 이가 있었으니.
“그만. 여기까지다. 팬텀을 불러들인 탓에 교수들까지 전부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어. 장막의 유지 시간도 끝나간다. 이 이상 여기에 머무르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지.”
가면의 사내는 그동안 계속 뻗고 있던 양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즉시 아카데미 전체를 덮고 있던 장막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뒤이어 그의 어깻죽지에서 검은빛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돋아나더니 이내 새까만 날짐승 괴물의 형체로 변신하였다.
“귀환한다.”
“잠깐. 그 여자는?”
“저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반대편 별관의 옥상에 서 있는 한 소녀.
그녀의 품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소녀가 고이 잠들어 있었다.
“가자.”
교수들이 옥상으로 들이닥치기 직전 드라칸은 새까만 날짐승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건너편까지 도달해 줄리엣과 샤론을 태운 뒤 아카데미를 달아나려던 순간.
카드 한 장이 허공을 가르며 적을 향해 날아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제 여름도 얼마 남지 않은 거에용..!
에어컨도 없이 글을 쓰려니 너무 힘든 거에용..
빨리 더위가 끝났으면 좋겠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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