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7
가면의 사내는 임시 동맹을 맺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게 네 목표인가?”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똑같이 생긴 교복 차림의 소녀.
마치 도플갱어와 같은 모습에 동료의 등에 타 있던 베로니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
줄리엣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협력 관계를 표방하고 있으나 그녀는 드라칸에 호의적인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드라칸 역시 그런 줄리엣의 건방진 자세가 아니꼽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그만. 지금은 잡담이나 떠들 때가 아니다. 올라타라.”
일단 이곳에서 도망치는 것이 급선무. 당장은 건너편으로 넘어오긴 했으나 장막이 사라진 이상 추격이 따라붙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줄리엣까지 등에 타자 아무리 거대한 날짐승으로 변신했다 한들 공간이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디트리히의 육중한 체구가 자리를 상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윽. 이렇게 꼴사납게 이동해야 해···?”
“불만이라면 네가 다른 이동 수단을 마련하면 된다.”
지크프리트의 불만을 단박에 제압한 가면의 사내는 즉시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비행을 시작했다.
그때 뒤쪽을 바라보고 있던 프란체스카가 눈가를 가늘게 뜨며 말했다.
“뭔가 날아오는데요.”
허공을 가르며 그들의 뒤를 쫓아온 것은 다름 아닌 카드 한 장이었다.
그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눈치챈 베로니카가 경악하며 외쳤다.
“벌써 일어났다고!? 말도 안 돼!”
용부리미야 드래곤의 높은 마법 저항력 때문이라고 어찌어찌 납득하고 넘어갔었지만 그 옆에 있던 소년마저 자신의 정신 마법을 이렇게 간단히 깨트리다니. 아무리 거리가 벌어지며 마력이 약해졌다 한들 너무나 빠른 속도였다.
정신계 마법의 최강자라 자부하던 그녀로선 자존심에 제법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쯧. 역시 살려두는 게 아니었어.”
지크프리트 역시 혀를 차며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카드를 노려보았다.
저게 무슨 마법인진 몰라도 그냥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 즉시 대응하기 위해 손끝에서부터 푸른 냉기를 뿜어내던 찰나.
“당신 마법은 이런 좁은 공간에선 민폐니까 자제하세요. 제가 알아서 처리하죠.”
그보다 한발 앞서 프란체스카가 손가락을 내뻗은 다음 까딱거리자 순간적인 반짝거림과 함께 카드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디트리히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물었다.
“오! 이젠 자르는 것만 아니라 없앨 수도 있는 건가! 대체 어떻게 한 거냐?!”
“···자르려고 했어요. 그런데 닿자마자 없어진 것 같네요.”
흥미가 식었다는 듯 지크프리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뒤돌았다.
“충격을 받자마자 해제될 만큼 내구력이 형편없었나 보군. 하기야 컨디션이 멀쩡할 리 없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어?”
그러나 동료들과 달리 프란체스카는 카드와 맞닿았을 때의 기묘한 감각을 곱씹으며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았다.
***
“크로! 괜찮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옥상이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분명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온 것까진 기억나는데 갑자기 이질적인 마력이 정신을 잠식하는 것을 느낀 직후부턴 기억이 끊겨 있었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명씩 둘러보았다.
나와 함께 이동했던 레이첼 지나 외에도 레이어드 캐서린 그리고 율리아까지 어느새 옥상으로 올라와 있었다. 거기다 교수님들까지 우르르 달려온 모양이었다.
“···드라칸은?”
내 물음에 율리아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기억 안 나는 거야? 적들이 도망치니까 네가 갑자기 달려가면서 카드를 던졌는데···.”
“내가 카드를 던졌다고?”
전혀 기억에 없었다. 듣고 보니까 기억을 잃기 직전이랑 비교해 서 있는 위치가 달라져 있긴 했다.
아마도 나는 지나의 발을 묶었던 정신계 마법에 당했었던 거겠지.
중요한 건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할 수 있었냐는 거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건가?
그런 거라면 무엇을 노리고 카드를 던진 거지? 도망치는 적을 붙잡기 위해?
직접 확인하면 될 일이다.
내가 던진 마술 카드는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 상관없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어떤 트릭을 위한 용도인지도 마찬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이건···.”
내가 던진 카드의 상태를 확인한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투명화와 추적.
그야말로 적에게 들키지 않는 신호기로서 최적의 세팅.
찰나의 순간에 단순 공격이 아닌 추적을 선택한 것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의 카드에 이중 마술을 심어두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이중 마술은 성장한 현재의 나조차 극도의 마력과 집중력을 소모해야지만 겨우 가능할 만큼 고난도의 섬세한 작업이다. 심지어 캐스팅에 걸리는 시간조차 짧지 않다.
정신을 잃은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일을 해냈다니.
그냥 넘어가기엔 찜찜할 만큼 지나치게 완벽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일단 뭐가 됐든 절대 손해 볼 상황은 아니었다. 만약 이대로 놈들을 놓쳤다면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놈들에게 얻어맞았다는 결과만 남게 될 뻔했으니.
다행히 드라칸이 노리던 목표인 지나는 무사했지만···.
“···샤론. 샤론은!?”
뒤늦게 떠올린 그녀의 안위를 묻자 다른 아이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적들한테 잡힌 것 같아.”
“근데 이상한 게 하나 있어. 멀어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샤론이랑 똑같은 얼굴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거야.”
젠장. 역시 우려했던대로 줄리엣이 함께하고 있었구나.
샤론이 납치당하다니. 결국 최악의 상황이 그대로 벌어지고 말았다.
“그 여자 뤼팽 재단의 비서 맞지? 애초에 그 녀석이랑 똑같이 생긴 얼굴이 흔할 리가 없잖아.”
줄리엣의 얼굴을 알고 있던 레이첼과 율리아는 이미 상대의 정체를 확신하고 있었다.
“대체 왜 그분이 드라칸이랑 함께···. 설마 이사님도 한편인 걸까?”
터무니없는 의심을 하는 율리아. 마음 같아선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한가롭게 무용담을 펼쳐놓을 때가 아니었다.
“내가 던진 카드에 추적 마법을 걸어놨어. 다행히 상대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
“정말···!?”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심지어 샤론과는 별다른 친분이 없는 지나 역시 두 주먹을 맞대며 투지를 불태웠다.
“잘했어. 이대로 신호를 뒤쫓아 이번엔 우리가 놈들의 아지트를 습격해주는 거야!”
그때 누군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며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톤으로 얘기했다.
“여러분들은 안 됩니다.”
언뜻 봐도 부상이 상당해 보이는 캐서린.
그녀는 휘청거리면서도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왜 안 된다는 거죠!?”
“그야 위험하니까요. 이미 방금의 사태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정부 협회 하물며 아카데미 교수진조차 더 이상의 학생 피해는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확실히 부정할 수 없는 정론이었다.
테러리스트의 본거지를 소탕하는 위험한 작전에 미성년자인 학생들의 투입을 용인하는 어른이 있을 리가.
“하물며 그레인저 군은 상대의 최우선 목표. 제 발로 그런 위험한 곳에 걸어 들어가게 놔둘 수는 없어요.”
“칫···!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라고요!?”
“네. 나머지는 어른들이 해결할 테니 여러분은 나설 필요 없습니다.”
흥분을 삭히고 생각해보니 캐서린이 말한 대로 내 친구들을 그렇게 위험한 장소에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애초에 적들을 추격하는 이유도 어디까지나 납치당한 샤론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닌가.
친구를 구하려다 되려 다른 친구들을 잃는 우행을 저지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저는 가야 해요. 카드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건 주인인 저밖에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분하지만 지금으로선 모리스 군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군요.”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정리하였다.
“장막이 걷히며 통신이 가능해졌습니다. 당장 본부에 연락해 상황을 보고하고 추격조를 꾸리겠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최대한 서둘러 드라칸의 뒤를 쫓아야 해요.”
캐서린이 집행부와의 연락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아이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혼자서 괜찮겠어···?”
“집행자들이랑 함께 움직이는 거잖아. 분명 괜찮을 거야.”
“젠장. 내가 같이 가야 하는 건데.”
그때 또 다른 누군가가 내게로 다가왔다.
“크로. 나도 같이 가겠어.”
레이어드였다. 몰골을 보아하니 이 녀석도 엄청나게 고생한 모양이다.
확실히 주인공인 그가 도와준다면 구출 작전이 더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원작에서 지나와 라이벌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전투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위험해.”
“그러니까 내가···!!”
“넌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잖아.”
레이어드는 원작의 주인공. 아무리 기존의 이야기가 이미 뒤틀렸다 할지라도 그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훨씬 큰 혼란이 펼쳐질 것이다.
주인공은 주인공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거다.
여기에 나설 사람은 주인공이 아니라 괴도였다.
자신의 것을 벌써 2번이나 뺏겨버린 멍청하고 무능력한 괴도가.
도둑놈들에게 진정한 도둑질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괴도는 악당으로부터 탐정을 훔치는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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