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5
모방꾼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범한 루트로 찾을 수 없는 음지의 인물이란 사실쯤은 곧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줄리엣이 음지의 정보를 얻을 만한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거라곤 왜곡이라는 능력 하나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전부 한순간의 꿈이었다고 생각하며 잊으려 했었다.
하지만 모방꾼을 만나면 모든 걸 깨닫게 될 거라던 오퍼레이터의 마지막 말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았다.
‘부디 당신의 아버지를 용서해주십시오. 아가씨.’
···그 말은 무슨 의미였던 걸까?
오퍼레이터는 자신의 아버지와 관련이 있었던 건가? 그래서 일부러 고아원까지 찾아와 내게 접근한 건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덮어놓고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줄리엣은 모방꾼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 스스로 음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원장님께는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고 적당히 둘러댄 다음 그녀는 매일 밖으로 나서 위험한 장소로 발을 디뎠다.
왜곡이라는 능력은 확실히 큰 도움이 되었다.
모두 그녀를 뛰어난 마법사로 취급해주어 안정적으로 신비라는 세계에 적응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 중 한 명이 스쳐 지나가듯 얘기를 꺼냈다.
“아가씨는 그 남자랑 꽤 비슷한 마법을 다루는구먼.”
“···그 남자요?”
“어 모르는가? 최근 활동하기 시작한 녀석인데 진짜랑 완전 똑같을 만큼 교묘한 위조품을 만들어준다던데.”
가짜를 만들어내는 능력. 그건 확실히 줄리엣이 지닌 왜곡과 일맥상통한 결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모방꾼이라는 이름에도 걸맞은 설명이었기에 그녀는 얘기를 듣자마자 드디어 찾아냈다고 확신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
수소문 끝에 찾아온 모방꾼의 지하.
겉으로만 봤을 땐 어디에서나 흔히 볼 법한 런던의 건물 중 하나였지만 그거야 이전의 지하 연구소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녀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천천히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문틈 속 그림자에 숨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소문으로는 대충 들었었지만 실제로 보자마자 순간 움찔할 만큼 인상적인 외형이었다.
온몸을 붕대로 감싸 매고 중절모에 코트를 입은 모습은 이집트의 미라와 런던의 신사라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리게 했다.
잠시 주눅이 들었던 줄리엣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가슴을 펴며 당당하게 물었다.
“여기가 모방꾼의 지하인가요?”
모방꾼은 잠시 그녀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군. 벌써 손님이 찾아올 때가 되었나.”
알 수 없는 혼잣말과 함께 그는 몸을 돌리며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들어오게.”
“에 잠시만요!”
뒤늦게 허둥지둥 지하 안으로 들어가 모방꾼을 뒤쫓던 줄리엣은 어두컴컴한 세상을 괜히 두리번거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희미한 조명만이 어슴푸레하게 빛을 밝히는 지하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마주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지?”
먼저 용건을 묻는 모방꾼의 태도는 여유로우면서도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의 주위에선 뭐라 표현하기 힘든 고독함이 짙게 배어 나오는 듯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서두를 뭐라고 던져야 할지 몰라 줄리엣은 한동안 입만 뻐끔거리며 쉽사리 목소리를 내뱉지 못했다.
“···혹시 오퍼레이터에 대해 아시나요?”
어렵사리 꺼낸 그 질문에 커피를 휘젓던 티스푼이 우뚝 멈춰 섰다.
“아 그렇군. 그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나. 확실히 그와는 꽤 오래전부터 친분을 맺었던 사이이지. 비록 최근에는 사정이 있어서 마주치지 못했지만.”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상대의 모습에선 오랜 벗을 향한 그리움 외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줄리엣은 더더욱 망설이게 되었다.
이다음 꺼내게 될 질문에 과연 모방꾼은 뭐라고 대답할까.
기대감보다도 두려움이 앞섰다. 그럼에도 묻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줄리엣은 힘겹게 말문을 떼었다.
“···오퍼레이터는 당신을 찾아가면 모든 걸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정말인가요? 저 저는 제 부모님···.”
“잠깐 멈춰주게.”
가장 중요한 본론을 얘기하려던 순간 모방꾼은 중간에 끼어들며 그녀의 말을 잘라내었다.
그러고는 다소 뜬금없다고 생각되는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모방꾼.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은 결국 흉내 낸 가짜에 불과해. 심지어 나 자신마저 진짜를 위한 위조품일 뿐이지.”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내용에 줄리엣은 작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삼켰다.
“자네의 질문에 아마 나는 대답해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대답은 자네의 간절한 진심을 배반하는 거짓일지도 모른다네.”
“그게 무슨···. 일부러 거짓말로 대답하겠다는 건가요?”
순간 흥분을 참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외치자 모방꾼은 덤덤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야. 내 대답은 자네의 진실 어린 마음을 배반할 거란 뜻일세.”
“···설령 그렇다 해도 전 알고 싶어요.”
사실 줄리엣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부모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퍼레이터의 말에 더해 자신과 매우 흡사한 능력. 비록 저 붕대 너머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겉으로 보아 나이대도 얼추 들어맞는 듯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몸 전체를 붕대로 휘감은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지.
무엇이든 좋다. 그를 원망할 생각 따위는 없다.
단지 알고 싶을 뿐이다. 정말로 자신에게도 부모가 있는지를. 아직 이 세상에 살아있는지 왜 자신을 버려야만 했는지.
설령 그 대답이 자신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상처입힐지라도.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아무것도 모른 채 빈 걸음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소녀의 진심 어린 호소에 모방꾼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네의 아버지는 마도공학의 학회장 프랑켄 박사라네.”
“학회장···.”
오퍼레이터와의 첫 만남 때 그가 자신을 마도공학의 부학회장이라 소개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즉 두 사람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는 뜻이리라.
“그는 마도 공학이란 기술을 개발했지만 어느 날 돌연 실종되었어. 스스로 잠적한 건지 아니면 신변에 문제가 생긴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모방꾼은 본인과 프랑켄 박사를 분리해서 설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줄리엣은 그 얘기가 분명 자기 자신의 얘기라는 걸 확신하였다.
“···그분은 왜 저를 고아원에 맡기신 걸까요?”
“박사에겐 또 한 명의 아이가 있었어. 쌍둥이 자매였지.”
그 말을 듣자 줄리엣은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 쌍둥이 자매가 있다고?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야 쌍둥이가 있다면 같은 고아원에서 함께 지내야 정상일 테니까.
“한 아이는 박사가 맡을 수 있었지만 둘을 함께 돌보는 건 불가능했어. 그 아이들에겐 특별한 힘이 있어 완벽히 제어하기 전까지는 둘이 붙어있으면 서로가 위험해졌으니까.”
쾅!!
저도 모르게 테이블을 내려친 줄리엣은 충혈된 눈으로 모방꾼을 노려보았다.
어떤 말을 들어도 원망하지 않으려 했다.
덤덤히 받아들이고 전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왜 하필···. 자신만 버려지고 쌍둥이 자매만 거둬들이는 건데?
대체 어째서. 차라리 둘 다 고아원에 맡기던가 아니면 최소한 다른 더 좋은 방법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
“왜 나였어···. 왜 하필!! 다른 쌍둥이가 아니라 나였냐고···!!”
울분에 찬 외침에 모방꾼은 말없이 슬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참을 수 없이 원망스러워 줄리엣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너와 약속했으니까.”
이윽고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선 미세한 흔들림이 섞여 있었다.
“···뭐?”
“지금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미래의 너는 이 모든 시련을 자신이 짊어지겠다고 내게 먼저 얘기했다. 다시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네 강렬한 의지가 차원의 틈을 여는 미래를 만든다.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따위 그만두라고 외쳐야 했다.
하지만 줄리엣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존재할 리 없는 장면이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행동으로 동생을 아프게 만들었으니 이번에는 언니로서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며 너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
“무슨 무슨 소리야···.”
머릿속의 기억이 왜곡된다.
아니 왜곡되었던 진실이 마침내 드러나기 시작한다.
줄리엣은 손으로 눈가를 덮으며 이를 꽉 깨물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기억이 자꾸만 자신을 덮쳐왔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립게 느껴져서 도저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끝내 그녀는 나지막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이터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애오브킹님 후원 넘무 감사드립니당!!!
앞으로도 완결까지 계속 열심히 쓰겠슴미당!
10월이 되니까 날씨가 선선해지는 것 같네용
독짜님들 환절기 감기 조심하는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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