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1
“······.”
할 말을 잃고서 멍하니 엘디나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챈 건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엘디나.
“음? 왜 그러지? 혹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느냐?”
아니 엘디나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있던 현실에서의 엘디나와 다른 존재라고 하는 편이 올바르겠지.
그녀는 인간의 육신으로 부활한 뒤부터 평범하고 친근한 말투로 바꿨었다.
지금처럼 도도하면서 품위 넘치는 어투는 여신으로서 나와 함께 하던 시절 즉 지금과는 다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서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풋. 갑자기 왜 어색하게 존대하고 그러느냐?”
“···아니야.”
어색하다. 아무래도 이 이상한 세계에서 나와 엘디나는 같은 반 친구에 불과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끔 지금 같은 광경 엘디나와 내가 동등한 친구로서 관계를 시작해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던 때도 있었으니까.
“언니. 설마 또 크로를 괴롭히고 있던 건가요?”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너무나도 그리운 목소리에 순간 헛숨을 들이켰다.
“괴롭힌다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구나.”
“오해는 무슨. 정말 크로가 불쌍하지도 않나요?”
새하얀 머리와 눈동자. 어두운 이미지를 지닌 엘디나와는 정반대의 인상을 주는 소녀.
몇천 년 동안이나 보지 못했던 늘 머릿속에 남아있는 모습으로만 추억하며 그리워했던 또 한 명의 여신.
이터나가 하양이와 함께 뒷문에 걸쳐선 채 엘디나에게 딴지를 걸고 있었다.
나란히 선 은발의 소녀들은 동일 인물이라고 착각할 만큼 무척이나 닮았었으나 머리 하나 정도의 키 차이가 나서 사이좋은 언니와 동생으로 보였다.
···이곳에는 모두가 다 있었다.
억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누구도 버림받거나 잊혀지지 않고 전부 동등한 관계로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한 반에 모여있었다.
물론 그 광경을 목격하고 나니 이곳이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임을 더더욱 절절히 실감했다.
이곳은 말하자면 이상향과도 같았다.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또 다른 세상.
운명의 여신이 말한 대로라면 이 비현실적인 공간은 꿈이나 환상 따위가 아니었다.
분명히 존재하는 가능성의 세계.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인 또 하나의 현실.
내가 만약 이 세상을 고르기만 한다면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환상에 빠진 채 현실을 망각한다는 비참한 결말이 아니다.
두 세계 중 어느 쪽이 진짜냐를 구분 짓는 건 오로지 내 의지뿐.
만약 이곳을 선택할 경우 내가 여태껏 살아오던 세상이야말로 환상이나 다름없는 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딴 거 납득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역시 이건 아니다.
이론적으론 운명의 여신이 한 말이 사실일지 몰라도 내 마음은 도저히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현실의 상황을 뒤로 저버린 채 이런 이상적인 세계에 눌러앉으라니.
그럼 반대편 세상에서 나를 기다리는 엘디나나 이터나 그 밖의 모두는 어떻게 되는 건데?
아무리 고민해도 내가 선택할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일 자정 결정의 순간이 오는 즉시 망설이지 말고 현실로 돌아가겠다.
이곳은 달콤한 꿈에 불과하다.
내가 돌아갈 장소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운명의 여신이 준비한 얄팍한 유혹 따위에 절대 말려들지 않겠다.
“또 또. 왜 자꾸 아까부터 그런 멍청한 표정이냐? 진짜 오늘따라 이상하네.”
레이첼이 눈가를 가늘게 뜨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어색한 웃음으로 적당히 얼버무린 뒤 그녀들과 최대한 거리를 벌리기로 했다.
가까워질 필요 없어. 어차피 내일 자정이면 이별할 사람들이야.
현실에는 있지도 않은 가짜···. 라고 자신을 최대한 속이려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녀들을 가짜 취급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말이지. 어제 TV에서 괴도 레이븐 최신화 봤어!?”
“넌 고등학생이나 돼서 아직도 그런 유치한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냐.”
“유치하다니! 얼마나 재밌는데!”
한 가지 알게 된 점이 있었다.
이 세계는 현실과 달리 산업혁명 시대가 아니라 현대에 가까웠다.
또한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이었다.
내 기억 속의 지구와 매우 비슷하면서도 원래 세계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무대.
이곳에서 나는 괴도 레이븐이 아니었다.
애초에 레이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에 불과했다.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의 조직도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초월자도 세상을 만들고 하늘에 거하는 신도 없다.
당연히 목숨을 건 전투 따위도 허무맹랑한 판타지에 불과한 너무나 평화로운 세계.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누군가를 잃는다는 슬픔을 경험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항상 나를 얽매었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운명 또한 아무 의미 없게 된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아무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정말 옳은 걸까?
이 세상에선 그렇다 쳐도 반대편의 현실에서는?
내가 사라진다면 불확정성이 발생할 수도 없게 된다. 남겨진 그녀들은 운명에 저항하지도 못한 채 내가 여태껏 쌓아 올린 업보를 대신 짊어지게 되리라.
생각할 필요도 없어. 난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해.
“응? 어디 가?”
율리아의 물음에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난 자세로 어색하게 대답했다.
“아···. 자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오려고.”
“빨리 갔다 와! 다 같이 점심 먹으러 갈 거니까!”
“하하 먼저 가도 괜찮아. 천천히 뒤따라갈게.”
그러자 줄리엣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튀어나와선 나를 놀려댔다.
“아하. 작은 게 아니라 큰 볼일인가 봐?”
“주 줄리엣···! 그런 건 말 안 해도 돼···!”
아가씨인 율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줄리엣을 타박했다.
저 두 사람이 친근하게 붙어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굉장히 신선했다.
그보다도 줄리엣은 평범하게 자라면 저런 성격이 되는 모양이다.
하긴 내 비서로 일하던 시절에도 은근히 남 놀려대는 걸 좋아하는 악질적인 면이 있었지.
아무튼 자리를 피하기 위해 먼저 반을 나서려던 도중 누군가 내 옷깃을 슬며시 붙잡았다.
이터나··· 가 아니라 그보다 조그마한 소녀. 하양이였다.
“빨리 와야 해.”
“···응. 금방 갈게.”
나도 모르는 사이 쓴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손길을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눈을 감고서 잔뜩 즐기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하양이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레 뒤섞여 어울리는 모습은 신선했다.
그녀는 언제나 달이 걸쳐진 시계탑에 홀로 고독하게 지냈었으니까.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 세계에서. 언젠가 찾아올 나를 기다리며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줄곧.
물론 현실에서도 모든 것이 끝날 때 하양이 역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거라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한 발자국만 더 걸으면 모두 끝난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최후의 순간에 실패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모순적인 역설이다.
나는 줄리엣이 힘든 과거를 보냈다는 얘기를 듣고 내 계획이 처음부터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행복한 미래를 위한다는 핑계로 현재를 희생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그렇게 확신했기에 난 모든 계획을 백지로 되돌리고 최대한 빨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게 온몸을 내던져 지금까지 간신히 다다랐다.
하지만 그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오히려 이 세계를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야 지금의 세상에선 이미 모두가 행복한데.
왜 굳이 아직 모두가 고통받고 있는 세상으로 되돌아가려 하는 거지?
이곳이 가짜이고 내가 원래 있던 세계가 진짜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억지일 뿐 운명의 여신이 한 말대로라면 양쪽 세계 모두 진실한 세상임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복도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하다 간신히 벽에 기대 몸을 지탱했다.
이래선 안 돼. 깊게 생각할수록 고민만 늘어날 뿐이야.
그렇지만 이대로 지금 세상을 외면한 채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게 정말 정답인 걸까?
‘이 시험에 정답 따위는 없다. 그저 선택만이 있을 뿐.’
기억 속에서 다시 한번 되풀이되는 운명의 여신이 남긴 마지막 한마디.
대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정신을 깨우기 위해 화장실 세면대에서 억지로 찬물로 세수하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인정하자. 이곳 또한 현실이란 것을.
이토록 선명한 감각은 꿈이나 환상 따위가 아니다.
운명의 여신이 말한 대로 이곳은 내가 원래 있던 곳과 또 다른 하나의 세상.
그렇다 해도 이곳에는 내가 쌓아온 추억이 존재하지 않아.
결국 정답은 존재해.
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간신히 나 자신을 납득시킨 뒤 화장실을 나오자 누군가 복도에 기대서서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샤론이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 직시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에피소드의 내용은 뮹뮹이 다른 작품에서도 항상 쓰고 싶었던 주제인 거에용..!!
그러니까 독짜님들도 진지하게 고민해주시는 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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