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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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드를 뽑을 확률이다.
웅성대는 주위의 반응.
놀라서 커진 눈동자 딜러의 더듬거리는 진행.
반대편 남자의 꽉 쥔 주먹이 부들거리는 모습까지.
그 장면을 하나하나 여유롭게 눈에 담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재밌게 즐겼네요.’
[더 즐기지는 않는 것이냐?]
‘도박하러 온 것도 아니고 한번 즐겼으면 됐죠.’
용돈도 두둑이 벌었고 말이지.
미련 없이 손을 털고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맞은편 남자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씩씩거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어쩌겠어.
원래 승부의 세계란 냉혹한 법이다.
그렇게 입을 털어놓고 져버렸으니 쪽팔릴 만도 하지.
“다들 재밌게 즐기시길. 그럼 이만.”
자리를 떠나려 하자 황급히 나를 따라오는 여자.
이게 뭔가 싶어 잠시 생각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거절했다.
“돈 땄다고 안 빌려줍니다.”
“저도 빌릴 생각 없거든요!?”
“그러면 왜 자꾸 쫓아오시는지. 각자 갈 길이나 가죠.”
굉장히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정말로 갬블러예요?”
“그걸 물어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따라온 겁니까.”
이 여자도 참 특이한 캐릭터네. 초면인 사람한테 다짜고짜 돈을 빌리려 하더니 이제는 탐정에 빙의해 내 정체를 캐려는 건가?
“당연히 농담이었습니다. 카지노도 처음 와보는 거니까요.”
“정말로요?”
“운 좋게 손패가 잘 잡혀 끝까지 달렸을 뿐입니다. 당신이었어도 포카드면 끝까지 갔을 거 아닙니까?”
“그야 그렇긴 하지만···.”
아니면 내가 무슨 특별한 속임수를 이용해 패를 바꿨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든 딱히 상관은 없겠지만.
내가 이 여자한테 사실대로 말할 이유도 없고.
내가 카지노 내부를 배회하니 그녀도 일행처럼 쫄래쫄래 나를 따라다녔다.
멈추면 그녀도 멈추고 움직이면 그녀도 다시 움직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휘파람을 불면서 딴청까지 피운다.
대체 뭐야. 이 여자?
“아까부터 뭡니까.”
“네? 뭐가요?”
“시치미 떼지 마시고 왜 자꾸 따라오시는 겁니까.”
내 물음에 오히려 뻔뻔한 되물음이 돌아왔다.
“그야 제 마음이죠. 막말로 뤼팽 씨가 카지노 전세 낸 것도 아니잖아요?”
“···세상에.”
아예 사고방식부터 다른 존재로군.
어쩜 사람이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할 정도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 내 결심이 무색하게 그녀는 곧바로 조심스레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게임 안 하시고 어디 가세요?”
나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답변해주었다.
“그야 제 마음이죠. 막말로 당신이 카지노 전세 낸 것도 아니잖습니까.”
“······.”
기가 막혀서인지 할 말을 잃어버린 여자.
조용하니 훨씬 낫네. 그대로 걸음을 옮기면서 혼잣말하듯 얘기했다.
“모처럼 카지노에 왔으니 다양하게 즐기는 것도 좋겠지.”
“그러면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정중하게 사양하죠.”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정말 질척거리네.
솔직하게 말해서 외모에 비해 인기 없을 타입이다.
“그런데 카지노에 게임 말고 즐길 게 많지는 않은데. 호텔에 가시나? 아니면 식당?”
무시하고 본래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아. 알았다! 경매장에 가시는 거구나.”
그녀의 말대로 나는 지금 카지노 한쪽에 있는 경매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목표물이 경매장에 없을 것이다. 아직 매물로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오늘은 말하자면 사전 답사인 셈이다. 트릭을 설계하기 위해 경매장을 둘러보고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제가 또 매물 보는 눈은 기가 막히거든요. 원하신다면 경매에 따라가서 도와줄 수도 있어요. 조금 혹하시죠?”
“전혀요.”
“에이. 좋으면서 괜히 튕기시긴.”
그나저나 이 철면피 여인네를 어떻게 처리한담.
물론 오늘은 답사가 목적이니 방해꾼이 있더라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렇다고 자꾸 귀찮고 성가시게 달라붙는 게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혼자 여유롭게 경매장을 둘러보려 했더니 웬 거머리가 붙어버렸다.
상대하지 말자. 그러면 본인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지겠지.
애초에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달라붙는지도 모르겠지만.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경매장으로 향하는 카지노 길목을 외워두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만한 세세한 부분도 꼼꼼히 살피며 대략적인 밑그림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이렇게 활용하고 저기는 웬만하면 피하고.
그렇게 골똘히 생각에 잠기니 옆에서 쫑알대는 목소리도 서서히 귓가에서 멀어져갔다.
경매장은 카지노보다 약간 어두운 조명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찬란한 황금색보다는 차분하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와인색의 컬러 디자인.
총 3개의 작은 방으로 나뉘어 동시에 여러 경매가 진행되는 모양이다.
앞에는 보안을 위해서인지 입구마다 직원이 서 있었다.
우리가 그쪽으로 다가가자 꾸벅 고개를 숙이며 얘기하는 여직원.
“죄송하지만 경매에는 도중에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 앞에 적힌 일정을 보시고 다음 타임에 참여해주세요.”
중간 참여는 불가능하다.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해둔 다음 자연스레 물었다.
“그러면 경매 참여 도중에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가?”
“나가는 건 가능합니다만 다시 들어오실 수는 없습니다.”
“그렇군. 알려줘서 고맙네.”
일단 직원이 알려준 대로 앞에 나와 있는 일정을 확인했다.
각 3개의 방에서 진행되는 경매 매물은 각기 다른 듯했다. 그중에는 일부러 경매에 직접 참여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비공개 매물도 존재했다.
특히 마지막에 진행되는 하이라이트 매물은 전부 비공개 처리되어 있었다.
내가 일정표를 유심히 보고 있자 옆에서 여인이 또 잡설을 떠들기 시작했다.
“비공개 매물이 궁금하시면 제가 알려드릴 수도 있는데.”
“비공개인데도 알고 있는 겁니까?”
“말이 비공개지 은근슬쩍 사람들에게 떡밥을 뿌리니까요. 그래야 소문이 퍼지면서 경매장에 관심을 주잖아요.”
단순하면서도 썩 괜찮은 수법이었다.
원래 인간은 ‘나만 아는 비밀’에 약한 법이니까.
“보통 열심히 게임을 하다 보면 카지노에서 심어둔 바람잡이들이 슬쩍 정보를 흘리는 거죠. 테이블에 오래 앉아있으면 자연스레 알게 된달까요.”
“카지노에 한두 번 방문한 게 아닌가 보군.”
그녀는 멋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스트레스 해소용이죠. 일하면서 쌓인 것들을 여기서 돈이나 펑펑 쓰면서 날린달까요. 사실 돈을 딸 수만 있다면 돈도 벌면서 스트레스도 푸니 최고겠지만.”
“돈을 잃으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나?”
“중요한 건 돈을 걸면서 승부를 즐긴다는 과정 자체인 거죠.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며 모든 걸 잊고 현재에 몰입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이 도박 중독에 빠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건가.
확실히 얘기를 들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딱히 공감이 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오늘의 일정표에는 내가 목표하는 매물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비공개 매물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목표물이 등장하는 날짜는 오늘이 아니라 이틀 뒤였다.
다만 일정표에는 오늘 하루의 일정만이 적혀있을 뿐 다른 날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조였다.
“혹시 오늘뿐 아니라 다른 날짜의 매물 정보도 나오나?”
“음. 웬만큼 거물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당일 정보만 유출되는 편이죠. 따로 찾는 매물이라도 있으세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내가 훔치려는 목표물은 웬만큼의 ‘거물’에 해당하는가?
그야 당연하다. 애초에 괴도의 목표로 설정됐다는 것 자체가 가치를 증명하는 셈이니.
심지어 나뿐만 아니라 모방꾼도 원한다면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바로 물어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괜히 그랬다가 매물이 훔쳐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의심할 수도 있으니까.
본인이 스스로 입을 열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어차피 그녀가 알려주지 않아도 훔치는 거야 어렵지 않다.
“바로 5분 뒤에 경매가 시작되는군.”
“참여하시려고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경매장 내부도 살펴볼 필요가 있으니.
해당 방 앞에 다가가니 직원이 한쪽에 놓인 종이와 펜을 가리키며 말했다.
“명단에 이름을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꽤 철저하다고 해야 할까. 그래봤자 가짜 이름을 적어놓으면 딱히 확인할 방법도 없겠지만.
멋들어지게 서명을 작성했다.
‘아르센 뤼팽.’
언제 봐도 새삼 참 멋있는 이름이다.
뒤이어 그녀도 자연스레 밑의 칸에 자신의 이름을 끄적였다.
‘조앤 왓슨.’
뭔가 낯익게 느껴지는 이름.
어디서 본 걸까 곰곰이 생각해도 막상 떠오르지는 않았다.
원작에서 지나가듯 등장하는 엑스트라인가?
아니면 그냥 지구에서 봤던 이름이랑 비슷해서 착각하는 걸까?
아무튼 이름을 기억만 해둔 채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는 적당한 거리로 놓인 열댓 개의 좌석. 많이 앉아봤자 20명 정도가 한계일 듯했다.
구석에 앉자 정확히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앉는 왓슨.
다시 한번 부담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해버렸다.
이번에 진행되는 경매는 비공개 매물이었다.
과연 어떤 물건이 등장할지 조금은 두근두근한 맛이 있네.
[엄청난 보석이 등장할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대박이겠네요.’
만약 진짜 그런 전개로 이어진다면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르겠지.
한 장소에서 2개의 보석을 찾는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잠시 뒤 속속들이 경매 참가자가 방에 입장하고 곧이어 작은 무대에 사회자가 등장했다.
“신사·숙녀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그러면 거두절미하고 바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이 빠른 건 참 좋네.
베일에 싸여있던 비공개 매물을 공개하는 사회자.
과연 뭐가 나올지 기대하던 나는 매물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건 분명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과연 비공개 경매 매물이 무엇일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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