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9
하늘로 올라가는 새하얀 담배 연기.
그 연기의 행적을 따라 어두운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단발의 여인.
뒤이어 그녀는 품속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가만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과연 수수께끼의 풀이가 맞을까?
글쎄. 그건 이제부터 확인하러 갈 시간이다.
또각또각 앞에서 들려오는 구둣발 소리에 가젯은 고개를 들었다.
몰라보게 달라진 소녀의 모습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새어 나온다.
“그렇게 입으니 훨씬 나은데요.”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자신의 낯선 모습이 부끄러운 건지 살짝 얼굴을 붉힌 채 몸을 배배 꼬는 소녀.
그야 그럴 수밖에.
저 아름다우면서 풋풋한 모습을 보고 어찌 평소의 셜록을 떠올리겠는가?
물론 소녀의 외모는 언제나 뛰어났지만 그 특이한 옷차림이 항상 발목을 붙잡았으니 말이다.
사냥 모자에다 인버네스케이프라니.
담배나 푹푹 피워대는 중년 아저씨나 할 법한 복장이지 않은가.
그에 반해 지금은 얼마나 예쁜가?
고급스러운 와인색 드레스에 풀어 헤친 긴 생머리 단아한 구두와 반짝이는 액세서리들까지.
누가 보더라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귀족 영애의 표본이었다.
“부끄러워도 조금만 참으세요. 수사를 위한 거잖아요.”
가젯은 짓궂게 키득키득 웃으면서 얘기했다.
다만 그녀의 말 자체는 사실이었다. 지금 셜록이 저렇게 꽃단장한 이유는 결국 괴도가 등장하리라 추측되는 카지노에 입장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러는 형사님은 평소랑 똑같은 차림이잖아요.”
“저는 경찰이니까요. 셜록 씨는 민간인이고 말이죠.”
국가에서 허락한 수사권이 존재하는 가젯과 어디까지나 민간인의 신분으로 움직이는 셜록. 당연히 여러모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배경이었다.
물론 정식으로 수사 협조를 부탁하면 셜록도 일정 부분의 권리를 행사할 수야 있다.
하지만 이론상 가능하다는 거지 그게 쉽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젯 역시 집행자 덕에 내팽개쳐질 위기이니 그럴 여유도 없었고.
아무튼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지금의 상황까지 온 것이다.
“슬슬 출발하죠.”
“네.”
두 사람이 카지노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평소와 다름없는 황금의 중심지였다.
일부러 괴도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눈에 띄지 않게 신경을 쓴 덕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녀석을 유일하게 위기로 몰아넣었을 때도 방심을 유도했을 때였다. 그때 하수도에서 체포했어야 하는데 하필 괴물 악어가 등장한 바람에 놓치고 말았었지.
아련한 옛 추억을 회상하던 가젯은 다시 니코틴이 부족해지는 것을 느꼈다.
카지노의 앞에서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섰다.
“그러면 건투를 빌죠.”
“네. 조금 이따 봬요.”
오늘 두 사람은 다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셜록이 손님으로 위장해 카지노 안에서 괴도 용의자를 찾는 동안 가젯이 바깥에 잠복한 경찰들을 통솔하며 보석을 지키는 것이다.
서로 건투를 빌며 갈라선 뒤 소녀는 어색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타고 입구까지 올라갔다.
‘구두 불편하네.’
거의 신어본 적 없는 굽 높은 구두는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거기에 더해 이곳저곳 잔뜩 조여오는 드레스 역시 어떤 실용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우 입구까지 도달하자 가드가 셜록의 행색을 슬쩍 훑은 뒤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오늘 괴도가 카지노를 턴다는 사실은 총지배인과 경매 관계자 몇몇만이 알고 있다. 즉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에겐 평소와 다름없는 카지노인 셈이다. 그것은 문 앞을 지키는 가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정말로 레이븐이 이 카지노를 목표로 삼은 것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니. 제일 유력해 보이는 이곳에 셜록과 가젯이 찾아오긴 했지만 다른 후보지 역시 마찬가지로 경찰들이 잠복하는 중이다.
‘그 예고장의 내용이 맞다면···.’
분명 괴도는 오늘 밤 이 카지노를 털 것이다.
적어도 셜록은 그렇게 확신했다.
“아가씨?”
“아 여기요.”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다 가드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셜록.
주섬주섬 품에 고이 모셔놓았던 VIP 입장권을 꺼내 가드에게 보여주었다.
수사의 목적으로 총지배인에게 받은 것이다. 사실 강제로 뜯어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실례했습니다! 부디 즐거운 밤 되십시오! 손님!”
VIP 입장권을 보자마자 즉시 태도를 돌변해 땅에 닿을 수준으로 머리를 숙이는 남자.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던 셜록은 뒤늦게 열린 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와···.’
평소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던 셜록도 잠시 감탄할 만큼 카지노 안의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소녀.
다른 사람이 보면 아무 의심 없이 넘길 만큼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건 아마도 셜록의 외모가 꽤 부티 나는 귀족 같아 보였기 때문이리라.
이곳 어딘가에 레이븐이 있을까?
어쩌면 아직 카지노 바깥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도.
셜록은 앞으로 걸으면서 조심스레 사방을 둘러보았다. 행여나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바로 경계선상에 올려둘 생각이었으나 아직 그런 요주의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굳이 급하게 경매장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얘기한 대로 경매장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전부 철저하게 신분을 확인하는 중이고 다른 쪽은 전부 경찰들이 철저하게 마크하고 있다.
만약 괴도가 정말로 이 카지노를 노리고 있다면 지금 이곳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어디에 있을까.
과연 누구일까.
셜록은 작은 요소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것이 있으면 괴도의 트릭은 아닐까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그때였다.
“반갑습니다. 아가씨.”
대뜸 앞에 나타나 느끼하게 인사를 건네는 중년 사내.
그 얼굴을 보자마자 셜록은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레이븐인가?’
꽤 질긴 악연으로 엮인 만큼 자신을 먼저 알아보고 접근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언뜻 보기엔 그냥 집적대는 변태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소녀는 방심하지 않고 사내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누구시죠?”
“혹시 혼자 이곳에 방문하신 건가요?”
“그렇다면요?”
“후후.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동행을 제안해도 될까요? 처음 오신 거라면 제가 친절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굳이 더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상대가 레이븐이든 아니든 자신이 동행해서 얻을 이득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차라리 살짝 떨어진 채로 뒤에서 감시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됐어요.”
차갑게 뿌리치고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남자는 생각보다 훨씬 질척한 스타일이었다.
“그러지 마시고 다시 생각해보시죠. 늦은 시간에 이런 곳을 아녀자 혼자 다니면 매우 위험합니다.”
그거야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위험한 게 아닐까?
셜록은 황당하단 눈빛으로 사내를 쳐다보다 입을 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누군가 둘의 사이에 끼어들어 난입하였다.
“저질 아저씨. 그쯤 하시고 그냥 가시죠?”
“···뭐? 저질?”
“그럼 이게 저질이 아니고 뭔데. 안 꺼지면 경비 부른다?”
“쳇. 웬 아줌마가 방해하고 있어!”
혀를 차며 자리를 떠나는 남자의 등 뒤로 여인이 버럭버럭 외쳤다.
“아줌마 아니거든!? 당신보다는 한참 어리거든!!”
이상한 사람이다.
그것이 셜록이 눈앞의 여인을 보고 처음으로 느낀 감상이었다.
‘레이븐은 아니겠지.’
아무리 그가 분장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성별까지 바꾸기란 힘들 것이다.
굳이 이렇게 소란을 일으키며 이목을 끌 이유도 전혀 없고.
한껏 성질을 부리던 여인이 겨우 진정을 되찾고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제대로 마주 보게 된 상대는 생각보다 말끔하게 생긴 20대 여인이었다.
밝은 갈색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그녀는 확실히 성숙한 느낌이 있긴 해도 아줌마 소리를 들을 만한 외모는 절대 아니었다. 키가 꽤 커서 그런 걸까?
셜록의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헛기침을 하는 여인.
“흠흠. 원래 여기가 저런 놈들이 좀 많아요. ···내가 겪어본 적은 거의 없지만.”
“감사합니다.”
사실 소녀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어쨌든 도와준 건 사실이니 고마운 일이었다.
“혼자 오신 거예요? 꽤 어려 보이는데.”
“네.”
“아 불편했다면 죄송해요. 제가 군대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말이 툭툭 나오더라고요.”
“괜찮아요.”
여인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성격 마음에 드네요. 저는 조앤 왓슨이에요.”
“셜록이라고 불러주세요.”
“샬럿?”
“셜록이에요.”
“이름 참 특이하시네.”
정반대의 성격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의외로 꽤 궁합이 잘 맞았다.
사실 깊게 파고들면 친화력 좋은 조앤이 셜록에게 잔뜩 말을 걸고 있을 뿐이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조앤이 셜록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리라.
“카지노는 처음이라고요?”
“네.”
“이야. 마침 잘됐네요! 제가 또 카지노의 여왕이거든요. 마치 제집처럼 편안하달까.”
그게 좋은 건가?
셜록은 속으로 의문을 품었으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까 며칠 전에도 그쪽처럼 특이한 캐릭터를 봤었는데.”
“그렇군요.”
셜록은 영혼 없이 대충 대답하며 넘겼지만 조앤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신나게 잡담을 떠들기 바빴다.
‘여기에 너무 붙잡혀 있으면 안 되는데.’
슬슬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아르센 뤼팽이라는 사람인데요.”
“···뤼팽?”
“네. 도박은 처음이라면서 게임을 얼마나 잘하던지···. 어! 저기 지금 들어오는 저 사람이에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확인한 셜록.
마침 안에서 들어오던 한 사내와 정확히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 상태로 둘은 한동안 서로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셜록과 왓슨과 뤼팽의 만남!
이건 귀하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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