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
뒤쪽이 소란스럽다.
방을 나옴과 동시에 웅성대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파 속에 숨어들어 경매장을 빠져나왔다.
바로 근처에서 카지노 내부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경찰들.
만약 저 감시망에 걸린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지겠지.
하지만 괜찮다. 이 정도 상황은 진작에 전부 예상했었으니까.
내가 옆으로 살짝 빠져나오자 즉시 이쪽으로 다가오는 한 사람.
직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익숙한 얼굴. 아까 우리의 신분증을 검사하던 입구의 안내원이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그의 안내를 따라 관계자 외엔 출입할 수 없는 직원 전용 복도를 사용했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나요?”
“성공했다.”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목소리. 단순히 말투만 바뀐 게 아니라 훨씬 낮고 딱딱한 음성이었다.
뒤이어 그가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자 이내 살가죽이 기이하게 늘어나 뜯어졌다.
그러자 안쪽에서 드러나는 붕대로 덮여있는 이질적인 모습.
그렇다. 안내원은 사실 모방꾼이었다.
내 변장술은 마술이 아닌 본래의 특기. 따라서 굳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변장시키는 것 역시 간단한 일이었다. 그게 원래 내 직업이기도 했고.
“여기선 참아주세요. 괜히 사람을 맞닥뜨리면 곤란하니까요.”
“나도 안다. 하지만 이 가죽이 너무 답답해서 말이야. 아무래도 두 번은 못 하겠군.”
그렇겠지. 내 답답함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조금 감동했다.
아무튼 그는 다시 본래 위치로 돌아가야 했다. 안내원이 너무 자리를 오래 비웠다간 곧바로 의심 선상에 오르게 될 테니까.
모방꾼은 품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는 진주를 꺼내 들며 얘기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봐도 어떻게 한 건지 전혀 모르겠던데 대체 원리가 뭐였나?”
“업계 비밀이라 좀 그런데 살짝 힌트만 주자면 새장에 손을 써뒀달까요.”
“흠.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거군.”
이번 트릭에 마술은 사용하지 않았다.
특수 제작된 새장을 이용한 트릭. 사회자가 덮개로 새장을 가린 채 무대로 올라갈 때 타이밍에 맞춰 원격 스위치를 누르면 진주가 빠져나간다.
중요한 건 진주를 특수 새장에 바꿔 넣는 것과 무대로 올라가는 타이밍을 재는 것 그리고 진주를 회수하는 일까지.
나 혼자서는 동시에 수행할 수 없기에 모방꾼에게 도움을 요청해 공범을 저지른 셈이다.
굳이 이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방꾼에게 꼭 알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트릭은 최대한 모르면 모를수록 좋으니까.
“다 왔네요. 약속 기억하시죠?”
나는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모방꾼은 자신의 손에 들린 진주를 잠시 바라보다 미묘한 말투로 대답했다.
“어차피 내게 돌려줄 거면서 왜 굳이 며칠 동안 갖고 있겠다는 거지?”
그거야 당연히 보석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흡수가 만지자마자 바로 끝난다면 참 좋겠지만 애초에 그게 됐다면 굳이 보석을 훔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 역시 굳이 일일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제 개인적인 욕심이랄까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낭만이죠.”
“흠. 이해하긴 힘들지만 애초에 추잡한 괴도를 이해하는 게 더 이상하겠군.”
“···치졸한 괴도 아니었나요?”
“그게 그거 아닌가.”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둘은 상당히 다른 느낌인데.
아무튼 모방꾼은 내게 진주를 툭 던져 건네주었다. 그러다 내가 떨어트리면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참. 아까 자네와 함께 있던 귀빈 소녀 말인데.”
“아···. 그 친구요?”
“둘이 아는 사이인가?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애틋하더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숙명의 라이벌을 갑자기 운명의 연인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나는 뭐라 대답할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친구 같은 사이죠.”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그는 다시 변장 가면을 똑바로 정리하며 뒤돌았다.
“그렇군. 나름대로 괜찮은 유희였네. 그러면 며칠 뒤에 보자고. 치졸한 괴도여.”
“네. 나중에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
카지노를 나오며 손에 들린 진주를 가만히 감상했다.
“예쁘네요.”
[무릇 보석은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힘이 있지.]
어떤 세공도 되지 않은 진주 한 알에 불과한데도 웬만한 보석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
확실히 가치가 높을 만하다.
게다가 생긴 것만 예쁜 게 아니라 지닌 소유자의 활력을 회복시켜준다는 전설까지 존재하니 더더욱 사람들이 탐낼 수밖에 없는 보석이었다.
지금은 내 거지만 말이야.
“흡수는 얼마쯤 걸릴까요?”
[넉넉하게 이틀은 걸리겠구나.]
“이틀이요? 생각보다 꽤 걸리네요.”
여태껏 훔쳤던 보석들은 웬만하면 하루 정도 안에 전부 흡수됐는데 이번에는 거의 2배 가까이 걸린다니.
[그만큼 보석에 담긴 힘이 상당하다는 뜻이란다.]
그렇다는 건 흡수가 끝났을 때 이전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군.
당연히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마술이 뛰어나질 수록 트릭 역시 더더욱 정교해지니.
사실 그런 의미에서 따졌을 때 오늘의 트릭은 꽤 아슬아슬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는 건 결국 그만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늘어난다는 뜻이니 말이다.
만약 모방꾼이 다른 마음을 먹고 나를 배신했다면?
혹은 실수를 저질러서 설계한 대로 움직이지 못했다면?
아마 웬만해선 오늘처럼 공범을 저지르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굳이 그럴 이유도 없어 보이고.
하지만 그런 리스크를 감수한 만큼 돌아온 리턴도 분명 존재했다.
무엇보다 ‘아르센 뤼팽’이란 사내가 완벽히 무고한 시민이 되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실제로 그걸 노리고서 일부러 가운데 방을 피했던 거니까.
덕분에 내가 없이 진행되도록 트릭을 설계하느라 머리가 터질 뻔했지만 결과가 성공적이었으니 전부 의미 있는 노력이 되었다.
그리고 샬럿이라는 여자.
마지막에 허겁지겁 뛰쳐나간 걸 보면 일단 그녀가 셜록인 건 확실하다.
중요한 건 샤론이 맞냐는 건데.
사실 이게 아직도 헷갈렸다.
풍기는 분위기 자체는 똑같다 싶을 정도로 비슷한데 막상 그렇다고 확정을 내리자니 완벽한 증거도 없는 데다 세세한 부분이 살짝 달라 보였다.
일부러 다르게 연출한 건지 아니면 실제로 다른 건지도 긴가민가했다.
[섣부르게 판단을 내리는 건 좋지 않지. 신중하게 고민해 보거라.]
이 여신은 뭘 알고 이렇게 말하는 걸까?
사실 전부 알면서 그냥 재밌다고 드라마 구경하는 것처럼 관망 중인 건가?
이게 무슨 로맨스 판타지도 아니고 서로의 정체를 알아가면서 사랑에 빠져야 하는 거냐고.
아무튼 오늘의 밤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또 내일이 되면 괴도의 범죄로 세상이 떠들썩해지겠지.
늘 짜릿해. 새로워.
괴도로 지내면서 날이 갈수록 관종으로 진화하는 느낌이다. 이게 과연 좋은 걸까?
답답한 변장을 집어던지고 복장도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부러 천천히 거리를 걸으면서 상쾌한 밤공기를 쐤다.
이제 집에 가서 진주 놔둬 놓고 푹 자면 되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가 저 앞에서 전혀 뜻밖의 인물을 발견하였다.
레이첼? 쟤가 왜 이 시간에 여기 있지?
녀석은 가로등에 기대서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기를 지나치면 귀찮게 말을 걸어올 것이 100%였다.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쟤는 저기서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어디를 가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다는 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뜻인가?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구를?
잠시 멈춰 서서 원작의 정보를 떠올려보았다. 레이첼이 이런 시간에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떤 일을 했었던가?
당장 뚜렷하게 떠오르는 무언가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은 아니란 뜻이겠지.
사실 밤중에 우연히 동급생을 만나는 거야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저 녀석도 나름의 사생활이 있을 테니까.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귀찮음을 감수하고 그냥 앞으로 가서 아는 척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곧바로 멈춰섰다.
갈림길에서 등장해 곧바로 레이첼에게 다가가는 한 남자.
두 사람은 뭐라 얘기를 나누더니 이내 나란히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제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서서 둘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중요한 건 옆에 있는 남자가 입고 있는 복장이었다.
검은색 바탕의 로브에 붉은 용이 아름다운 자수처럼 새겨져 있는 특징적인 옷차림.
틀림없다.
원작의 대표적인 빌런 조직인 ‘드라칸.’
뒷모습만 봐서는 저 남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복장만으로도 그가 드라칸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왜 레이첼이 드라칸과 만나는 거지?
주인공을 돕는 선역이 빌런 조직과 몰래 접선한다고?
이런 내용은 원작에 없었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면 내가 모를 리 없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확인해야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내기 위해.
나는 둘을 미행하기로 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뒤에 스토커가 따라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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