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8
“가짜라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렇게 목소리를 꾸며내면 목은 안 아픈가?”
대체 뭐야 이 사람.
태연하게 시치미를 떼봐도 전혀 넘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목소리가 일부러 꾸며낸 거란 사실도 단박에 들켜버렸다.
결국 나는 한숨을 쉬면서 본래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어떻게 아신 거죠?”
“음. 내가 감이 좀 좋은 편이라서.”
대답하기 싫다는 거군.
단순히 감으로 때려 맞출 정도로 변장이 어설펐다면 진작 경찰들에게 걸렸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셜록은 눈치챘겠지.
“옆자리에 앉아도 되겠나? 고맙네. 그럼 실례하지.”
아직 대답 안 했어. 그보다 애초에 이미 옆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왜 이제야 묻는 건데.
잠깐의 짧은 대화만으로 이 남자가 겉모습만큼이나 특이한 캐릭터란 사실을 금방 눈치챘다.
이런 사람과는 괜히 얽히지 않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과 별개로 가면을 쓴 사내는 자꾸 말을 걸어왔다.
“혹시 자네는 목적지가 어디인가?”
“···파리입니다.”
“오. 낭만의 도시로군. 아주 아름다운 곳이지.”
생긴 건 과묵하게 생긴 주제에 완전히 수다쟁이잖아.
“나는 프랑크푸르트로 가고 있다네. 유럽에서 손꼽히는 철의 도시이지.”
“그렇군요.”
그쪽이면 프로이센인가. 사실 같은 유럽이라고 해도 원작에선 등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지역이다.
“혹시 이 기차에 타는 건 처음인가?”
“네.”
“그렇군. 이 기차는 유럽 전역을 누비고 다니니 여행용으론 제격일세.”
글쎄다. 푯값을 생각하면 단순 여행용으로만 이용하기엔 너무 과하지 않나?
시간만 넉넉하다면 일반 기차나 배를 타도 여행은 가능하니까.
그 이후로도 사내의 잡담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내용은 전부 기억할 가치도 없을 만큼 시답잖은 수다거리에 불과했다.
슬슬 귀에서 피가 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와중 마침내 땅의 끝 너머로 펼쳐진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마침내 브리타니아의 국경 끝자락에 다다른 것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창밖의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 순간을 위해 여태 지루함을 견디며 쭉 기다려왔었다. 과연 이 기차는 어떻게 바다를 건너 유럽 대륙으로 이동할까?
“충고 하나 해주지.”
“충고요?”
“창문은 닫는 게 좋을 걸세. 꽤 쌀쌀해지거든.”
쌀쌀해진다고? 난데없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기차는 땅을 넘어 바다를 향해 쾌속 질주하였다.
어라. 그냥 이렇게 바다 위를 건너는 거야?
하지만 바다에는 선로는 물론 길이라 할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 이렇게 불도저처럼 달리다 바닷속으로 푹 꼬라박는 건 아니겠지?
약간의 의구심과 불안감이 가슴 속에 싹트려 할 때 기차는 맹렬히 앞으로 달려 나가더니 곧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기차의 머리에서 갑자기 푸른 마법진이 생기더니 차가운 냉기가 주변을 휘감았다. 그리고 바다가 얼어붙으면서 길을 만들어나갔다.
“와···.”
진심으로 감탄했다. 과연 이게 바로 마도공학이란 거구나.
말 그대로 마법과 공학을 동시에 활용하는 기술. 둘이 합쳐지지 않았다면 이런 절경은 절대 만들어내지 못했으리라.
[아름답구나.]
‘그러게요.’
얼어붙은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라니.
듣기만 해도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낭만이 물씬 풍겨왔다. 그런 장면 속에 하나가 되어 직접 체험하니 감동은 배가 되었다.
“마도공학. 참 매력적인 기술이지. 프랑켄 박사가 이룩한 최고의 업적이면서 말이야.”
“그렇네요.”
이 기술이 지닌 의미는 남달랐다. 단순히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충돌하는 마법과 과학의 영역을 하나로 합쳐줄 만한 유일한 가능성이었으니까.
그런 마도공학이 왜 상용화되지 못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을 개발한 빅터 프랑켄 박사가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그가 사라진 지 꽤 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마도공학의 원리를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기차를 포함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도공학 기술은 전부 그가 살아있던 시절 만들어진 것들이다. 즉 프랑켄 박사가 돌아오지 않는 한 마도공학은 로스트 테크놀로지에 불과하다.
제작도 수리도 불가능하다.
“······.”
품에서 승차권을 꺼내 뒷면을 바라보았다.
황금색 기계 태엽과 마법진이 합쳐진 문양.
사라진 기술 마도공학.
박사의 행방은 원작에서도 풀리지 않은 떡밥이었다.
애초에 완결이 나지 않은 상태였으니 나도 이 세상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사람들은 전부 프랑켄 박사가 죽었을 것이라 믿는 상태다. 돌아오면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데 굳이 잠적할 이유가 없으니까.
“바다도 전부 건넜군. 지금부턴 프랑크 왕국이라네.”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말대로 어느새 푸른 바다 대신 녹색으로 우거진 자연이 창밖 풍경을 대신 채웠다.
***
이곳이 바로 프랑크 왕국.
항구 마을을 지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계속 휙휙 바뀌는 풍경들.
이 나라는 프랑스를 모티브로 했으나 다른 점도 꽤 많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곳이 ‘왕국’이란 점이다.
19세기 산업 시대면 이미 한참 전에 혁명을 끝냈어야 정상인 자유의 나라 프랑스.
하지만 이 나라는 왕정을 비롯해 귀족 체계라던지 여러 중세 시대의 모습들이 남아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원작의 주 무대인 브리타니아는 스팀펑크에 가까우며.
반대로 이곳 프랑크 왕국은 정통 판타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무대인 셈이다.
다만 그렇다고 이 나라가 시대의 흐름에 뒤처졌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브리타니아와 가장 치열한 경쟁국인 동시에 마법 강국으로 유명한 나라였으니.
나는 창밖으로 우뚝 솟아있는 에펠탑을 올려다보았다.
‘에펠탑은 19세기 말에 지어질 텐데.’
만화 세계관에서 그런 걸 따져 무엇하겠냐마는.
왕국의 수도인 파리에 세워진 에펠탑은 미묘한 부조화의 감성을 자극했다.
“어느새 파리에 도착했군.”
“그렇네요.”
바다를 가로지른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여기서 얼른 용건만 해결한 다음 곧장 런던으로 돌아가야겠지.
당장 내일 아침에 등교해야 하니 오늘 새벽 안에 일을 전부 끝내야만 했다.
윽. 며칠 전 예고장을 만들면서 밤을 새웠던 기억이···.
아무래도 그날 겪은 창작의 고통이 피곤함과 합쳐져 트라우마로 남아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기차 안에서 조금이라도 자려고 했던 건데 옆에 있는 이 수다스러운 카우보이 덕분에 계획은 완전히 일그러지고 말았다.
“짧게나마 즐거운 시간이었네.”
“음. 일단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네요.”
나는 빈말로라도 좋았다고 하긴 힘들 거 같아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사실 좀 시끄러운 것만 빼면 생각 외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처음에 내 정체를 바로 간파했던 것 때문에 경계하게 됐던 것뿐.
“왠지 자네와는 또 만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구만. 조심히 가게나.”
그런 불길한 말을 굳이 꺼냈어야 했을까.
아무튼 나도 대충 작별 인사를 건넨 다음 기차에서 내렸다.
승강장에 내리니 잠시 후 다시 움직이는 마도공학 기차. 떠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승강장을 휙휙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네. 참 썰렁하기도 해라.
가격에서 이미 짐작했었지만 이 기차는 이용객이 정말로 적은 모양이다.
다른 칸에 과연 손님이 있긴 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나랑 카우보이 단둘만 있던 거 아니야?
아 하긴 생각해 보니까 지금 시간대에 손님이 많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네.
애초에 일반 기차였으면 운행할 리도 없는 야밤이니까.
“여기는 벽기둥을 뚫고 가는 게 아니네.”
이것도 나라마다 숨겨진 비밀 입구가 다른 거였구나.
파리 승강장은 놀랍게도 창문을 통해 나가야 했다. 창문 밑에 계단이 있길래 뭔 요상한 인테리어인가 했더니 창문인 척하는 입구였던 거라니.
승강장 밖으로 나가니 은은한 보름달이 파리의 밤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초행길이라 길은 전혀 모르지만 어차피 파리 어디서든 보이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을 향해 걸어가면 그만이었으니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에펠탑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높은 빌딩과 마천루에 익숙해진 내 눈에도 이렇게 크게 보일 정도면 당시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나저나 에펠탑에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정확히 어디쯤이지?
설마 저 위에 있다는 소리는 아닐 테고.
애초에 이런 한밤에 잠도 안 자고 에펠탑에 있기나 할까? 정확한 주소는 듣지 못했던 탓에 그저 에펠탑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시간을 죽이던 와중.
뒤쪽 광장 정원에서 발랄한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마치 산뜻한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는 듯 테이블에 앉아 차를 홀짝이는 한 여인.
챙이 넓은 하얀 모자와 화려한 드레스 등 누가 보더라도 귀족이란 단어가 찰떡인 여자였다.
심지어 헤어스타일도 금발 롤빵 머리다.
하늘에 달 대신 해만 떠 있었어도 완벽한 파리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일단 평범한 여자는 아니다.
애초에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처음부터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대가 예언의 마녀인가?”
“얘기는 들었어요. 브리튼의 괴도님.”
그녀는 보라색 눈동자를 요사스럽게 빛내며 미소를 지었다.
“저한테 볼일이 있으시다던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PIA653005248999님 100코인 후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당!
직접 닉네임을 쳐주고 싶었는데 너무 길어서 그냥 복붙해버렸어용..!
프랑크 하니까 후랑크 소시지가 먹고 싶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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