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5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기시감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떠오르지 않는 답답한 상황.
그녀는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서서 눈앞의 상대를 빤히 응시하였다.
결국 참다못한 가젯이 소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나요?”
상대방은 그 물음에 여인을 잠시 바라보다 웃으면서 대답했다.
“조금 섭섭하네요. 저는 형사님 바로 알아봤는데.”
역시 착각이 아니라 진짜 아는 사이였다.
그런데 누구지? 머릿속에 얼굴은 희미하게 남아있는데 정확하게 떠오르질 않았다.
“얼마 전에 저희가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했었잖아요.”
“···아. 그때 그.”
마침내 흐릿하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려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 보니까 왜 진작 눈치채지 못한 걸까?
지금 소년이 입고 있는 복장이 다름 아닌 아카데미의 교복이란 사실을.
“괴도 레이븐 취재를 부탁했었지···.”
“네. 형사님 덕분에 조별 과제 잘 준비할 수 있었어요.”
참 아이러니한 상황에 가젯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삼키고 말았다.
분명 그때만 해도 한두 번 놓친 것일 뿐 언제든지 잡아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작 얼마 지나지도 않은 지금의 자신은 어떤가?
학생의 인터뷰 요청을 받던 수사 총책임자에서 이젠 아예 전혀 사건과 관련 없는 일반인이 되어버렸다.
전부 자신의 실적에 따른 업보란 점에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되기 전에 진작 녀석을 체포했더라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겠지.
그녀가 본인을 자책하며 한숨을 푹 내쉬자 소년은 뺨을 긁적이며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런데 죄송한데 형사님. 제가 지금 얼른 가봐야 하거든요. 잘못하다간 지각하게 생겨서요.”
“아 등교 중이었던 거니?”
“그렇죠. 아직 아침이잖아요.”
그 말대로다. 괴도의 예고장이 날아왔단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새벽부터 경찰서에 나와 서장에게 얘기를 들은 뒤 홈스의 사무소까지 찾아오게 된 일련의 과정이 지났음에도 시간은 아직도 화창한 아침에 불과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의도치 않게 가로막던 길을 비켜주었다. 그럼에도 어째선지 곧바로 떠나지 않고서 잠시 그녀를 바라보는 소년.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침부터 고생하시네요.”
“고생은 무슨.”
“힘내세요.”
특별한 수식어도 붙지 않는 담백한 격려. 그 한마디를 속으로 곱씹어 되새기던 가젯은 이날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피우고서 대답했다.
“고맙다.”
“뭘요. 그럼 안녕히!”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후다닥 달려가며 멀어지는 소년.
그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가젯은 이윽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안녕히?’
꽤 독특한 인사말인데도 어째서인지 낯익게 들린다.
어디서 들은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그녀.
뭐 그냥 인터뷰할 때 들었던 거겠지.
***
어우 식겁했네.
평소처럼 아카데미에 가던 도중에 갈림길에서 나오던 여자랑 부딪혔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는데 문제는 그 부딪힌 여자가 바로 형사였다는 것.
오랜만에 보는 여형사 누님의 얼굴을 보곤 깜짝 놀랐다.
심지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려 했더니 내 얼굴을 알아보는 게 아닌가?
설마 들키는 건가 싶어서 진짜 식은땀이 났을 정도다.
그나마 다행히 그녀와 학생의 신분으로 마주쳤던 적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응? 그런데 잠깐만···.’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위화감을 눈치챘다.
왜 저 사람이 여기 있대? 예고장을 보냈는데 당연히 궁전이나 경찰서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러고 보면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당연히 평소처럼 예고장의 내용으로 난리가 났으리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언론과 신문은 매우 조용했었지.
처음에는 그냥 신중하게 대응하느라 제보가 늦어지는 건가 싶었는데 방금 마주쳤던 여형사 누님과 겹쳐서 따져 보니까 상당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설마 이거···.’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가능성.
‘내 예고장이 제대로 안 보내졌나?’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범인은 한 명밖에 없다. 내가 예고장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니라 어젯밤에 별궁에서 만났던 빅토리아 공주님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 예고장을 왜 숨기겠어?
물론 공주가 뭘 생각하는지 알기 힘든 특이한 캐릭터긴 했지만 내 공연을 기대하며 관람하겠다고 말해놓고서 굳이 예고장을 숨겼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진짜 뭔지 모르겠네.
일단 수업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 보자.
만약 그 뒤로도 계속 반응이 전혀 없다면 그때는 뭔가 방법을 강구해야 할지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아카데미의 교문을 통과하는 길. 아슬아슬하게 조례 전에 들어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복도 맞은편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아. 쟤가 왜 여기서 나오냐.
새하얀 백발과 붉은 눈동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중성적인 곱상한 외모.
“음? 너는 저번에 화장실에서 봤던 그 추종자잖아.”
“오해라고 말했잖아.”
“됐어. 굳이 내 앞에선 억지로 숨기려 할 필요 없으니까.”
진짜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올 만큼 제멋대로네. 아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남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타입이구나.
이런 녀석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무시하고 처음부터 말을 섞지 않는 거다.
괜히 엮이면 엮일수록 피곤해질 뿐인 놈이니까.
“어이. 얘기도 안 끝났는데 어딜 휙 가는 거냐.”
“바쁜 일이 있어서.”
“하.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아니 내가 뭘 했다고 그런 반응인 건데.
애초에 같은 반도 아닌데다 접점도 아예 없으면서 왜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튼 녀석을 피해 얼른 우리 반으로 들어갔다.
뒷문을 통해 반으로 들어갈 때는 항상 샤론을 먼저 보게 된다. 창가 뒷자리에 앉은 나와 정 반대편인 뒷문 쪽 끝자리인 샤론은 언제나 곧은 자세로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안녕?”
“응. 안녕.”
평소와 다름없는 인사. 언제나 그렇듯 차분하면서도 무뚝뚝한 대답.
다소 친해졌다고 생각하는데도 율리아나 레이첼과 비교하면 참 서먹한 분위기였다.
샤론이 내게 유독 쌀쌀맞은 건 아니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전부 그런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오히려 나랑 그나마 가까운 사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지.
아마 천성적인 성격 자체가 상당히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타입인 것 같다. 하지만 그녀를 알고 지낸 시간도 꽤 쌓이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매사에 시큰둥하며 딱히 얘기도 없는 샤론이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주제가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오늘 아침에 등교하면서 형사님이랑 마주쳤어.”
“형사?”
“응. 우리 조별 과제 할 때 인터뷰했던 레이븐 수사 담당 여형사님. 이름이 가젯 씨였던가?”
“···아.”
무언가 많은 의미가 함축된 듯한 짧은 감탄사.
확실히 아까와는 반응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단번에 느껴졌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왜 샤론이 이렇게까지 괴도 레이븐의 주제에만 관심을 보이는지.
어쩌면 정말로 그녀가 탐정 셜록인 걸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어 아직은 의심만 하는 단계였다.
“어디에서 마주쳤는데?”
“음. 베이커가 근처였었나.”
“베이커가···.”
“응?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것치곤 뭔가 되게 고민하는 눈치인데.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사실 지금 대화는 딱히 괴도 레이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냥 가볍게 툭 던져본 것이었기에 딱히 기대도 안 했지만.
슬슬 자리로 갈까? 보니까 옆자리의 레이첼은 또 평소처럼 엎드려서 쿨쿨 자는 중인 거 같고.
“왜 형사님이 거기 계셨을까?”
“응? 어···. 글쎄? 무슨 일이 있으니까 계셨겠지.”
정확한 이유를 어떻게 알겠나. 담당 형사님이라고 해도 24시간 내내 괴도만 보지는 않고 다른 사건도 맡고 하는 거겠지.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샤론이 조심스레 추측을 던졌다.
“레이븐이 움직인 걸지도 몰라. 예고장을 보냈다던가.”
순간 움찔할 뻔했다. 갑자기 거기서 그렇게 나온다고?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면 내 생각처럼 그냥 다른 용무가 있다고 예측하지 않나?
샤론의 말은 거의 그럴 것이라 확신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설마 뭔가를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형사님과 따로 친분이 있다거나.
“혹시 신문이나 라디오로 얘기가 나왔어? 괴도가 예고장을 썼다고?”
“아니. 매일 확인하는데 오늘은 조용했어.”
그걸 매일 꼼꼼히 확인하는구나. 얘도 가만 보면 여러모로 참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한 가지 가능성이 더 존재하긴 했다.
그녀가 셜록이라면 지금까지 보여준 다소 의문스러운 행동도 전부 납득이 된다.
[아주 흥미진진하구나.]
쓸데없는 여신님의 관람평을 무시하며 샤론을 빤히 응시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고 대답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르게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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