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6
왜 괴도가 예고장을 썼으리라 확신하는가?
그에 대한 샤론의 대답은 맥이 빠질 정도로 간단명료했다.
“직감이야.”
“···그게 끝?”
“굳이 다른 이유가 필요해?”
그렇게 말하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내 얘기를 듣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을 뿐인 가벼운 잡담. 아카데미 학생에 불과한 그녀가 굳이 논리적인 근거를 뒷받침할 이유는 없다. 괴도를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경찰이나 탐정이 아닌 이상에는.
하지만 그와 별개로 맥이 축 빠져 실망한 티를 내자 그녀는 굳이 부연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원래 괴도는 꾸준히 활동을 해왔잖아.”
“응.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슬슬 다시 나타날 때라고 생각해.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
샤론의 추측은 정확했다.
실제로 내 생각을 완벽히 꿰뚫어 본 듯 깔끔한 예측이었다.
단순히 감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만큼 괴도에게 진심이란 뜻인지 좀 헷갈렸다. 만약 후자라면 그녀가 셜록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려나?
아무튼 괜히 단서를 흘리면 안 되니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그때 율리아가 이쪽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고개를 들이밀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역시 우리 반 최강의 인싸답게 그룹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수다를 떨고 다니는구나. 그러면서 최강 아싸인 우리에게도 자연스레 다가오는 게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그냥. 레이븐이 슬슬 움직이지 않을까 얘기하고 있었어.”
“아! 너희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나도 레이븐이 슬슬 지금쯤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하던 참이었거든!”
참. 그러고 보니까 이 녀석도 샤론에 만만치 않은 괴도 바라기였다.
다만 두 사람의 절댓값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차이라고 해야 할지.
말수가 적은 우리 둘과 달리 수다쟁이인 율리아가 추가되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훨씬 더 싱그럽고 활기를 띠게 되었으니 좋은 거겠지.
한편 그런 와중에도 꿋꿋하게 드러누워 자는 레이첼까지. 쟤는 이제 밤마다 어디 나가지도 않을 텐데 왜 반에만 오면 하루종일 잠만 자는 걸까. 사실 그런 뒷사정과 상관없이 그냥 공부에 관심이 없고 잠이 많아서일 뿐인 건가?
나는 율리아의 잡담에 적당히 맞장구쳐주면서도 힐끗 샤론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다.
물론 확률로만 따지면 이런 기막힌 우연이 일어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여러 정황이 하나 같이 그녀가 바로 셜록이라고 지목하였다.
지금 필요한 건 명백한 물증 한 가지뿐.
그것만 있다면 긴가민가할 필요 없이 확실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텐데.
만약 오늘 밤에도 셜록이 온다면 그때는 정말로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기로 결심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
금발의 소녀는 저녁의 런던 거리를 거닐었다.
그녀의 뒤로 내려앉는 노을빛이 금빛 머리칼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발길이 멈춘 곳은 항상 지금 같이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문을 여는 사무실.
하지만 그 앞의 계단에 철퍼덕 앉아있는 예상 밖의 손님의 모습에 셜록은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가젯 형사님.”
“아 드디어 오셨군요.”
부스스한 기색을 애써 감추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여형사.
하지만 아무리 숨기려 해도 처참한 몰골은 완전히 가릴 수가 없었다. 특히 눈 밑에 선명하게 드려진 다크서클과 피곤함에 쩔은 표정은 안쓰러울 정도.
셜록은 아주 간단한 난이도의 추리를 내놓았다.
“설마 아침부터 줄곧 앞에서 기다리셨던 거예요?”
“크흠···! 설마 이렇게 늦은 시간에나 문을 여는 줄 몰랐네요.”
“평일 낮에는 다른 본업이 있어서요. 탐정 사무소는 보통 저녁에 열어요. 일단 들어오세요.”
가젯은 과연 그 본업이 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 한가롭게 그런 얘기를 나누기엔 남은 시간이 상당히 촉박했다.
“일단 들어오시죠.”
“하하. 호의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몇 시간 만에 마침내 길거리에서 사무실 안으로 초대받게 된 가젯. 아침부터 다리가 부러지라 런던 시내를 정처 없이 배회하다 끝내 포기하고 계단에 주저앉았던 쓰라린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굳이 떠올려봤자 다리의 통증만 심해질 뿐이기에 가젯은 휘휘 고개를 내저으며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괴도가 예고장을 보냈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알고 계셨습니까?”
“형사님이 계단 앞에 쪼그려 계신 걸 보고서 어느 정도 예상했달까요.”
과연 괜히 탐정이 아니란 건가.
하긴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이 협력했을 땐 항상 괴도를 상대하면서였으니 자신이 찾아온 이유 역시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으리라.
가젯은 순순히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말대로 오늘 아침 괴도가 예고장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신문에서 그런 얘기를 전혀 못 봤는데 제 귀가 어두운 건가요?”
“아니요. 지금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은폐했으니까요.”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소식임에도 셜록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에 거의 근접한 답을 내놓았다.
“거듭된 실패로 인한 여론의 악화 때문이군요.”
“···정확합니다. 굳이 녀석을 체포하기 전에는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죠.”
가젯 본인은 전혀 인정할 수 없으나 높으신 분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단 사실 자체는 이해한다.
“하물며 괴도가 이번에 목표로 지목한 곳이 궁전이니까요.”
“그건···. 좀 놀랍네요.”
“참 간도 크죠. 다른 것도 아닌 왕의 검을 훔치겠다고 선언했으니까요.”
천하의 셜록도 설마 괴도가 벌써 이렇게까지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물론 어느 나라건 간에 왕족의 권위는 엄청나지만 특히 브리타니아에서 왕실이 지닌 의미는 남달랐다.
아서 왕의 전설부터 이어져 내린 정통성과 실질적인 영향력.
특히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솟아올라 군림하는 현시대에 왕은 그야말로 신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물론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과학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점차 왕권이 약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나 그럼에도 여전히 왕실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졌다.
그런 상황에서 일개 도둑이 왕실에 정면으로 호기롭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당연히 이런 사실이 세상에 퍼진다면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만에 하나 정말로 녀석이 궁전을 터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만으로 고고하던 왕권이 저 밑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형사님께선 여기 계신가요? 예고 일시까지 거의 얼마 남지 않은 거 아닌가요?”
“음···.”
가젯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쉽게 얘기할 수 있을 리 없다. 자신이 사실상 좌천됐다는 얘기가 남한테 들려주기에 좋은 소식도 아니니까.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선 결국 셜록에게 전후 맥락을 이해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자신의 현재 처지 역시도 사실대로 밝힐 수밖에 없었고.
얘기는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해 알려주었다. 다행히 셜록은 특별한 반응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이따금 고개만 끄덕이며 가젯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과연. 그런 뒷사정이 있었군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끙끙대다 셜록 씨에게 도움을 부탁하려 찾아온 겁니다.”
“그러면 형사님께선 지금 경찰의 직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인이라는 거네요.”
“네. 그런 셈이죠.”
정 급하다면 어떻게서든 사용할 수야 있겠지만 그 뒤에 몰려올 여파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못해도 일단 경찰 제복을 벗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지. 어쩌면 그보다 더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셜록은 고운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난감함을 드러냈다.
“우선 다른 것보다도 궁전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문제겠네요.”
“음···. 혹시 궁전에 아는 지인이라던가.”
“아쉽게도 없습니다.”
사실 지인이 있다고 해도 웬만큼 높은 신분이 아니라면 외부인을 출입시켜줄 정도의 권한은 없을 것이다. 궁전이 그리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라면 궁전이라고 불리지도 않았겠지.
가젯은 답답함에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가 괜찮은 방법이 없을까요···?”
“음.”
“아 그러고 보니 저번 카지노 때 뭔가를 발견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지금과는 다소 상관없는 주제였으나 방법이라고 하니 불쑥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자신들의 완패라고 불러도 무방했던 카지노 사태. 그때 당시 이 탐정은 마법을 이용해 무대 뒤편을 관찰하였고 그 결과 무언가를 찾아냈었다.
그게 아마도···.
“붕대 조각이었던가요?”
“네.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야 유일한 단서라고 했으니까 기억할 수밖에요.”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 이후로 무언가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붕대를 챙겨갔던 셜록이 이후에 무언가 추가로 발견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이후로 뭐 없었나요?”
가젯의 물음에 셜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뭐가 있었죠.”
“···네? 있었다고요?”
“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매우 피곤한 하루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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