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8
판단과 동시에 즉각 뒤로 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상대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어딜 가려고.”
그가 손을 내뻗자 즉시 벽이 허물어지며 강력한 마력이 나를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어떤 장애물도 없이 마주 대치하게 되어버린 상대와 나.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평소와 다르단 건 눈치챘지만 설마 집행자를 배치할 줄이야.
때가 잘 탈것만 같이 생긴 하얀색 코트는 집행자의 상징과도 같은 제복이었다.
집행자는 쉽게 말해 국가 공무원인 마법사들이다. 당연히 아무나 될 수는 없으며 아카데미에서도 손에 꼽히는 성적을 달성해야만 지원 자격이 주어진다. 즉 아카데미 성적이 좋은 것과 별개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보통 마법사 지망생들이 가장 흔히 꿈꾸는 미래이기도 했다. 사실상 가장 뛰어나고 강력한 마법사들만 모여 있는 집단이라고 표현해도 딱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급한 일이라도 있나? 아직 통성명도 못 끝냈는데.”
“하하 저는 수염 난 남자랑 오붓하게 수다를 떠들고 싶진 않거든요.”
“흠. 그건 나도 동감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업무 중이라서 말이야. 좀 어울려줘야겠어.”
참 여유롭기도 해라.
나처럼 억지로 꾸며낸 태연함이 아닌 절대 지지 않으리란 확신에 근거한 강자의 여유였다.
“그럼 먼저 소개하지. 나는 에반 레지널드. 제1 신비 집행부 소속의 부장이다.”
“제 이름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니 건너뛰도록 하죠.”
“그래. 괴도 레이븐. 브리타니아의 국민 중에 너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하하. 꽤 과찬이시네요.”
자신을 에반이라 소개한 남자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만큼 네가 유명해졌기에 우리 집행자가 나선 것이다. 이 이상 더 날뛰었다간 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까.”
그가 미소를 거두고 본래의 표정을 짓자 즉시 엄청난 압박감이 내 온몸을 옥죄어왔다.
미치겠네. 어떻게 만나는 상대마다 전부 미친 괴물들밖에 없는 거야?
아무리 못해도 드라칸의 지크프리트 앞에 섰을 때와 비등하거나 그 이상.
즉 눈앞의 집행자 역시 지금으로선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적이라는 뜻이었다.
여전히 상대는 긴장감 하나 느껴지지 않는 여유만만한 모습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마치 훈계하듯 이어지는 말들.
“차라리 적당히 분수에 맞게 놀지 그랬나. 보아하니 제법 잔재주를 부리는 모양인데 경찰들이랑 술래잡기 하면서 추종자들 이끌고 다니는 걸로 만족할 순 없었던 건가?”
적이랑 이런 주제로 얘기를 나누는 게 맞나 싶지만 그래도 일단 상대가 질문했으니 대답은 돌려주기로 했다.
“야망은 크게 가지는 법이 좋으니까요.”
“그거 알고 있나? 집행자는 과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신비적인 존재와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하는 비밀 조직이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집행자에게 즉결 심판권을 보장해주지.”
사내의 눈동자가 내 모든 것을 꿰뚫고 관통하는 듯했다.
“그 커다란 야망 때문에 네놈은 오늘 죽는 거다.”
얘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듯이 곧장 허공에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막강한 마력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결국 나를 죽이겠다는 소리잖아.
살벌한 협박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탈출구를 모색했다.
어차피 정면 승부로는 답이 없다는 것쯤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애초에 내 마법은 당당하게 싸우는 용도가 아니다. 최대한 마술이란 특징을 살려 어떻게서든 전투를 회피해야 한다.
초고속의 뇌전이 손끝에서 발사해 쏘아졌다. 피하기에는 너무나도 빠른 공격.
정확히 몸에 명중한 번개는 그대로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세포 하나하나를 파괴해갔다.
“고작 그건가? 인형 바꿔치기?”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마술로 탈출한 나는 짜릿함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의 번개에 직격당한 인형은 순식간에 펑 터져 흔적조차 남지 못하고 증발해버렸다.
집행자의 옆에 있는 커다란 마법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이번에는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피닉스의 형상으로 변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아까와 달리 속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날개를 활짝 펼친 피닉스의 크기가 너무나도 컸다. 방 안을 가득 채운 불꽃은 어디로 피할 수도 없을 만큼 압도적인 범위를 자랑했다.
나는 품에서 빨간 손수건을 꺼내 불꽃을 향해 날렸다. 휘리릭 날아간 손수건은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 내 주위를 감싸는 천막이 되어주었다.
펑!!
“공격은 하지 않는 건가?”
“저는 괴도지 강도가 아니거든요.”
“할 수 없는 건 아니고?”
하하. 바로 딱 걸리고 말았네.
확실히 여태껏 보석을 흡수하며 상당히 성장했으나 내 마법은 근본적으로 매우 큰 결함이 존재했다. 바로 상대에게 위협을 가할 마땅한 공격 기술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아무리 내가 상대의 공격을 잘 막아낸다고 하더라도 반격할 방법이 없었다. 정말 잘 싸워도 무승부가 한계라니. 이래서야 완전히 반쪽짜리 쭉정이 아닌가.
무엇보다 지금 집행자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와 놀아주듯 일부러 봐주면서 싸우고 있는 거다.
거참 사람의 자존심을 긁어버리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나도 숨겨뒀던 필살기를 쓰는 수밖에.
나는 마술용 지팡이를 들고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런 모습을 보면 공격해서 방해해야 할 상대이지만 그러긴커녕 오히려 팔짱을 끼고서 여유롭게 관망하듯 지켜보는 수염 사내.
그렇게 우습게 본단 말이지?
후회하게 해주겠어.
마법진이 전부 그려지자 마침내 최후의 필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땅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 그와 동시에 별궁의 지붕이 마치 돔처럼 열리며 반짝이는 밤하늘을 비추었다. 그 아름답게 수놓은 장막 위에서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
빛은 점차 크기를 키워가며 존재감을 뽐내더니 이윽고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마법에 응해서 지구로 쏘아 내리는 별똥별.
최고위 마법 메테오.
그 위력은 그야말로 종말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 이미 마법이 시전된 이상 돌이킬 수는 없다.
운석이 대기권에 진입하자 검은 하늘이 뜨거운 열기로 붉게 물들었다. 거기에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창공의 울림까지.
그 광경을 넋 놓고 가만히 올려다보던 집행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처음으로 내뱉은 인정의 말. 그는 정말로 순수하게 감탄한 듯했다.
“설마 이 정도로 정교한 환상을 보여줄 줄이야. 솔직히 놀랐다.”
사내는 또 한 번 손가락을 튕겨 마법을 시전했다. 그의 주변으로부터 시작된 찬란한 광채가 점차 크기를 키워가더니 곧 별궁 전체를 빛으로 물들게 하였다.
그러자 허공에 쩌적 금이 갈라지더니 이내 허무하게 내 필살기가 깨지고 말았다.
암막 커튼이 갈가리 찢어지며 내 마술로 만든 무대가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앗.”
상대가 당황한 틈을 타서 몰래 도망치려던 나는 그대로 석상처럼 굳고 말았다.
음···. 설마 이렇게 빨리 간파할 줄은 몰랐는데.
나름대로 내 비장의 수였단 말이야. 농담이 아니라 진짜 감쪽같다니까?
“차라리 이 재능을 살려나 볼 것이지. 왜 좀도둑 따위가 되어선.”
“지금 누구보다 재능을 잘 살리고 있거든요. 저는 좀도둑이 아니라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마술사니까요.”
“확실히 너의 개성은 상당하다. 여태껏 많은 마법사를 만났지만 좋은 의미로 너처럼 특별한 개성 마법은 거의 보지 못했으니까.”
갑자기 낯간지럽게 칭찬 타임이야?
상대한테 이렇게 대놓고 칭찬을 들으니까 조금 민망하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네놈은 기본이 결여되어 있어. 무릇 마법사는 개성에 의지할 게 아니라 기초를 다져야 한다.”
“음. 마법 수업 시간인가요?”
“딱 보아하니 네놈은 정식으로 마법을 배우지 않았거나 아직 배우는 학생인가 보군.”
와. 방금 나 진짜로 소름 돋았어.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추리에 성공해버린 집행자. 과연 이게 마법의 정점에 다다른 클래스라는 건가. 진심으로 감탄하고 말았다.
“너는 재능이 있다. 고작 이런 장난질에 사용하기엔 아까운 재질이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렇게 재능 넘치는 너를 압도적으로 처바른 나는 마법의 신이다.’ 뭐 이런 건가?
“괴도 레이븐. 너에게 기회를 주마. 내 밑으로 들어와라.”
···네?
[호오. 이건 또 재밌는 전개로군.]
여태껏 가만히 있던 여신님이 입을 열 정도로 충격적인 변화구였다.
아니 방금까지 그렇게 나를 죽일 기세로 몰아붙여 놓고서? 갑자기 이렇게 뜬금없이 스카우트 제안을 한단 말이야?
설마 내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인가.
그건 아니겠지. 상대는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그냥 진심만 내비쳐도 바로 나를 찌부러트릴 수 있으니까.
“너의 재능을 올바른 방향으로 써라. 내가 너를 집행자로 키워줄 테니.”
만약 마법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이 집행자에게 이런 제안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백이면 백 무조건 받아들이겠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대답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언젠가 주인공이 진짜 메테오 마법을 쓸날이 올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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