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자 이걸 어쩐다?
일이 순탄하게 풀리나 했더니 하수도에서 악어 괴물을 만날 줄이야.
그것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악어 인간을!
먹을 것도 없을 텐데 어떻게 몸집을 키운 건지 크기가 못해도 3M 가까이 되어 보였다.
“싸우면 지겠죠?”
[그러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당연히 지겠지. 마술로 저런 괴물을 무슨 수로 잡아.
“어떻게 좀 해보세요! 여신이잖아요!”
[왜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느냐!?]
“목걸이 훔쳤잖아요! 보석 힘 흡수해서 파워업 안 돼요?!”
[완전히 흡수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하긴 그랬었다. 만약 손만 댄다고 바로 흡수가 됐다면 굳이 괴도가 되어 보석을 훔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맞대결은 승산이 아예 없었다. 방법은 오직 하나.
어떻게서든 도망치는 것뿐. 하지만 그것 역시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녀석은 지금 나를 노려보고 있다. 함부로 등을 보였다간 바로 저 흉악한 주둥이에 아그작 씹혀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일단 카드를 꺼내 들었다. 도망치기 위해선 먼저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게 과연 생각대로 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
슉!
녀석에게로 날아가는 카드 한 장.
그러나 이내 힘없이 나풀거리다 얼마 가지 않아서 툭 바닥에 떨어졌다.
“크흠!”
아직 끝이 아니다. 곧장 쉬지 않고 밀어붙여야 한다.
이번에는 모자를 벗어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모자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새 한 마리.
까악!
마술사의 상징인 비둘기가 아닌 까마귀였다.
녀석은 우렁차게 울고 나서 힘차게 날갯짓을 퍼덕였다. 나와 다르게 전혀 겁먹지 않은 채 당돌하게 돌진하는 까마귀.
악어는 잠깐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손을 휘둘러 까마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손이 있잖아?”
저걸 앞발이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팔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녀석은 분명 손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다행히 까마귀가 요리조리 잘 피하며 꽤 시선을 끌어주었다.
지금이 기회다! 악어 괴물이 까마귀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도주를 시도했다. 그러자 곧장 목표를 바꿔 나한테 달려오는 녀석.
“으악!”
역시 완전히 신경을 껐던 건 아니었구나!
나는 최대한 빨리 달리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악어와의 거리를 계산했다. 그리고 정확히 녀석이 범위에 들어온 순간 준비해두었던 마술을 발동했다.
펑!
땅에 떨어져 있던 카드에서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갑자기 자신의 발밑에서 일어난 기현상에 당황하는 악어 괴물. 사실 마술의 효과는 저게 끝이었다. 살상력이라곤 아예 없으면서 눈에 띄는 게 전부일 뿐인 연막용 마법. 그래도 지금은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힘내거라!]
악어의 속도가 굼떠진 사이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하수도의 입구까지 튀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
쿵! 쿵! 쿵!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렸다. 최대한 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문을 닫지 않으면 악어가 끝까지 추격해올지도 모른다.
“끄응···!”
점점 닫혀가는 문틈으로 전력으로 돌진해오는 악어 괴물이 보였다.
안 돼! 이대로는 늦는다!
그 순간 뒤따라 날아오던 까마귀가 녀석의 눈을 부리로 쪼았다.
“쿠에엑!!!”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다시 움직임이 느려진 악어.
그 틈을 노려 문을 마저 닫아버렸다. 완전히 닫히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온 까마귀와 함께.
쾅! 쾅! 쾅!
“와···.”
잠시 녀석이 입구를 두들기며 나는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다행히 문이 부서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로 쫄깃하다 못해 섬뜩한 순간이었다. 무사히 탈출했다는 것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에 휩싸인 상황에서 여신님이 말했다.
[그런데 다시 와야 하지 않느냐?]
“아.”
그랬다. 목걸이를 돌려놓기 위해선 결국 하수도를 다시 방문해야만 했다. 특히 훔친 방법을 들키기 전에 갖다 놓아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 하는데.
“하수도 따라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까요?”
[글쎄다. 방금 봤을 땐 단단히 열 받은 것 같던데.]
그래도 파충류 대가리잖아. 멍청해서 금방 잊지 않을까? 부디 제발 그러길 바라며 간절히 기도해보았다. 아무리 보석을 흡수해서 강해진다고 해도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으니까.
[만약 계속 남아있으면 어떡할 거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죠.”
지금은 무사히 일을 성공한 것을 자축하기로 하자. 생명의 은인인 까마귀를 쓰다듬어주며 다시 모자 안에 집어넣고 집으로 향했다.
내 손에는 푸르게 반짝이는 ‘천사가 머문 바다’가 들려 있었다.
***
“그러니까. 목걸이가 사라졌는데 어떻게 도둑맞았는지도 모른다?”
“···예.”
박물관의 소장은 눈썹을 매만졌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노인은 매우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그런 분노를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인 여형사는 뻣뻣하게 몸이 굳은 상태였다.
“천장에 녀석이 출몰했다던 보고는 뭐지?”
“확인한 결과 풍선이었습니다.”
“풍선? 지금 풍선 쪼가리에 속았다는 건가?”
“···아무래도 괴도의 마법이었던 걸로 추측됩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황당해질 뿐이었다.
“그래. 그건 일단 넘어가고. 그래서 조사하면 찾을 수 있겠나?”
“우선 어떻게 훔쳤는지를 파악해야 조사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걸 모른다는 거군.”
“예. 그렇습니다.”
쾅!
소장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강하게 내려쳤다.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목걸이가 하늘로 솟았나 아니면 땅으로 꺼졌나! 대체 잘 있던 목걸이가 아무 영문도 없이 허공으로 증발했다는 건가!?”
“마법을 이용한 것 같습니다.”
여형사의 사무적인 대답에도 소장은 화를 풀긴커녕 더욱 길길이 날뛰었다.
“마법!? 그 목걸이를 지키던 유리 덮개의 성능은 들었을 텐데! 정말로 마법을 이용한 거라면 거기에 걸렸겠지!”
“그러면 소장님은 무슨 방법을 사용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기죽긴커녕 당당하게 역으로 질문하는 그녀의 태도에 소장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지었다.
“하! 무슨 방법이냐고? 그래. 내 생각엔 너희 경찰 중에 범인이 있다고 본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그야 모르는 일이지. 우리 박물관 경비들을 빼면 결국 목걸이에 손댈만한 사람은 너희 잘나신 경찰들 뿐이니까.”
소장의 노골적인 의심에 여형사는 여태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경고했다.
“그 말은 브리타니아 제국의 공권력을 의심한다는 뜻입니까?”
“윽···! 누가 그렇다 했나! 만약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자는 거지.”
미묘한 대치의 흐름이 이어졌다.
두 사람의 직급만 따지자면 경찰 팀장과 국립 박물관 소장으로서 노인의 측이 더 높지만 그것이 소속 집단으로 넘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브리타니아의 경찰은 군대와 함께 제국의 힘을 상징함으로 다른 공권보다 특별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이미 전시품이 도난당한 이상 앞으로의 수사권은 박물관이 아닌 경찰 측에서 가져가겠습니다. 브리튼의 명예를 걸고 목걸이를 다시 회수해드리죠.”
“크윽···. 알겠네.”
소장실에서 나온 여형사는 한숨을 쉬며 모자를 벗었다.
박물관 바깥은 이미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경찰과 박물관 경비들을 총동원해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고 있으나 뚜렷한 성과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 중이었다.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서 태우기 시작했다.
검은 단발이 선선한 밤바람에 휘날렸다. 약간 찡그린 표정이 아름다운 외모와 합쳐져 특유의 퇴폐적인 매력을 뽐냈다.
“팀장님!”
그녀에게 허겁지겁 달려오는 부하 형사.
“왜? 증거 발견했어?”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러면 뭐길래 그리 허겁지겁 달려와?”
지금은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뭐라도 있어야만 했다. 정보든 증거든 너무 부족하다 보니 조사는 몇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지부진.
뛰어난 실적으로 똘똘 뭉친 자존심이 박살 나버릴 지경이었다. 특히 위의 직속상관이나 박물관 소장의 닦달까지 생각하면. 더는 설명하기도 싫을 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니 뭐라도. 부디 이 신입 녀석이 쓸만한 것을 가져왔길.
“괴도 레이븐의 범행 수법을 알 것 같다고···.”
“그 사람이 누군데.”
“탐정이요.”
담배꽁초를 버린 다음 그녀는 부하에게 말했다.
“안내해. 그 탐정인지 하는 놈한테.”
“네!”
그렇게 박물관 입구 쪽으로 이동한 두 형사.
그곳에서 벽을 기댄 채 기다리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브레이디드 번 헤어 위에 쓴 베이지색 사냥모자와 짧은 기장의 인버네스 코트.
평범한 사람은 소화하기 힘든 개성적인 옷차림이었으나 아름다운 금발과 선명한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조합되니 제법 잘 어울려 보이기도 했다.
저 소녀가 탐정이란 것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여형사는 거침없이 그쪽으로 다가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괴도 레이븐의 범행 수법을 알고 계신다고요.”
“네.”
“그걸 어떻게 아신 거죠? 박물관 내부에는 현재 관계자 외에는 출입 금지 상태인데 말입니다.”
“그게 제 능력이거든요.”
소녀의 대답에 여형사는 살짝 눈가를 좁혔다.
“마법사시군요.”
“맞아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인사도 안 나눴군요. 저는 가젯입니다.”
그러자 녹안의 소녀가 자신을 소개했다.
“셜록이라고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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