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3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
브리타니아 경찰서로 익명의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내용은 간단명료했다.
며칠 전 있던 괴도 레이븐의 궁 습격 사건을 기사로 작성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매우 자세했다. 사건의 중심에 있던 가젯이 읽고선 경악할 정도로.
심지어 내밀로 부쳤던 공주 인질극마저 언급되어 있었다.
우연히 그 편지를 가장 먼저 받아든 가젯은 곧바로 청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당장 이 기사의 출처를 찾아내.”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해당 기사가 실제로 발행되지는 않았다는 것.
아마도 정식 발행 전의 초안일 확률이 높았다.
“···누구냐?”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용의자는 많지 않습니다.”
당장 공주의 인질극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단 현장에 있던 공주 탐정 집행자 형사 그리고 괴도까지.
총 5명에다 가젯이 보고를 올렸던 청장과 그 얘기를 전해 들었을 의원 정도.
결국 범인이 누구든 거슬러 올라가면 현장에 있던 5명 가운데 1명이 근원임은 확실했다.
“···가젯. 만에 하나 네가 퍼트린 거라면.”
“그럴 리 없다는 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 이런 치졸한 방법은 네 성격이랑은 안 맞지.”
만약 가젯이 사실을 알리려 했다면 굳이 익명의 편지를 받은 척 연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대놓고 기자와 공개 인터뷰를 진행한다면 몰라도.
“그럼 너를 제외하면 남는 용의자는 총 4명이군.”
청장은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을 집었다.
“그 탐정의 짓일 확률은?”
“···글쎄요. 뭐라 속단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겁니다.”
꽤 많은 일을 함께 겪은 동업자로서 변호해주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셜록이 범인일 확률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상식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특이함을 이미 바로 옆에서 몇 번이고 경험했지 않은가?
물론 그에 못지않게 의심되는 용의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레이븐의 자작극일 확률도 높습니다.”
“흠. 녀석이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관심이 쏠리지 않으면 놈으로선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일 텐데.”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대니까요. 여태까지 보였던 행동 패턴으로 봤을 땐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걸 더 좋아할 가능성이 큽니다.”
청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날카로운 점을 지적했다.
“그래. 하지만 그렇다면 인질극 내용까지 포함한 게 이상해. 자신에게 전혀 유리할 게 없는 내용이니 말이야.”
“그것도 그렇네요.”
괴도가 관심을 끌기 위해 본인의 활약상을 알리려는 거라면 공주 인질극 내용까지 굳이 포함할 이유가 없었다. 그 사실이 밝혀져봤자 사람들의 여론만 더 악화할 뿐일 테니까.
“공주나 집행자가 그랬을 확률은 상당히 낮겠지.”
“네. 아마 그 둘은 아닐 겁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을뿐더러 너무 잃을 게 많은 자들이었다.
한 나라의 공주와 집행부장.
그 정도 위치라면 그레이스가 괴도의 행적을 숨기려 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그의 뜻을 거슬러 척지려 한다? 딱히 없는 리턴은 없는데 반해 돌아올 리스크는 너무나 큰 선택이었다.
결국 돌고 돌아 남는 건 셜록뿐인 건가?
그게 아니면 누군가 무심코 흘린 정보가 우연히 풀린 거라면?
“일단 그 탐정 친구에겐 제가 직접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누가 이 정보를 제공했느냐가 아니야. 어디에 제공했느냐지.”
편지로 보내진 기사는 매우 정교했다. 이대로 신문에 실어 공개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즉 정말로 이게 언론사가 작성한 거라면 언제 신문이 세상에 퍼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것만은 어떻게서든 막아야 했다.
···아니지. 굳이 막아야 하나?
오히려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누가 꾸민 짓이건 결과적으로 그녀가 원하던 상황이 아닌가.
이대로 기사가 세상에 공개된다면 사람들은 모두 괴도의 행적을 알게 된다.
공주를 인질로 잡았다는 사실에 모두가 괴도를 악인으로 여기며 경각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상황이다.
그레이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막말로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타인인데다 그가 실질적인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냥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기분이 살짝 나쁜 걸로 끝나는 게 전부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청장이 딱딱하게 굳은 낯빛으로 경고했다.
“얼른 찾아내서 막지 않으면 위험하다.”
“위험하다니 그냥 알려지는 것뿐이잖습니까.”
“자네는 아무것도 모르는군. 그레이스 경이 어떤 사람인지.”
가젯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고? 그레이스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브리타니아를 전성기로 이끈 위대하며 고결한 영웅.
“그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했다간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지 모른다는 뜻이다.”
너무나 어색한 말이었다.
마치 그가 무시무시한 악의 축이라도 된다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으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전국의 모든 신문사를 뒤져서라도 반드시 찾아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레이스 경에게 보고할 생각입니까?”
“아니. 최대한 우리 선에서 막는다.”
***
그녀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던 집배원은 골목길로 들어가 자전거에서 내렸다.
“후우.”
작은 한숨과 함께 변장 가면을 뜯어낸 사람은 크로 모리스.
바로 나였다.
일단 첫 번째 단계는 무사히 성공했다.
이제 편지의 내용을 읽은 경찰 측은 난리가 나겠지. 누가 이 정보를 유출한 건지 골머리가 꽤 아플 거다.
전부 의도한 거다. 일부러 공주 인질극 내용을 넣어두어 내가 한 짓이 아닌 것처럼 헷갈리도록 유도했다.
아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조바심을 느끼지 않을까. 어떻게서든 최대한 빨리 이 편지의 출처 더 정확히는 기사를 작성한 신문사를 찾으려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신문사는 없다. 전부 내가 직접 그럴듯하게 혼자서 끄적인 내용에 불과하니까.
[상당히 감쪽같더구나.]
‘저번에 수수께끼를 연구하면서 글솜씨가 올랐달까요.’
경찰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신문사를 찾는다고 진땀을 빼겠지.
그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그레이스의 함정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제아무리 녀석이라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도록.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간이다.
최대한 빨리 끝낼 생각이다. 중간시험도 준비해야 하니까 말이지.
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위조자의 지하실이었다.
꽤 오랜만의 방문임에도 저번과 똑같은 모습의 풍경.
붕대를 칭칭 둘러싼 미라와 같은 특이한 차림의 위조자가 나를 반겨주었다.
“오랜만이로군.”
“그러게요. 잘 지내셨나요?”
“물론. 그대의 활약상을 들으면서 즐기고 있었다네. 최근에 또 거하게 터뜨려줬더군.”
이미 내가 궁을 털었다는 정보를 습득했던 모양이다.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그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딱히 놀랍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인가?”
“의뢰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요.”
“좋지. 뭐든지 말만 하게. 무엇이든 그게 가짜라면 나를 따라올 자가 없으니.”
당연히 알고 있다. 실제로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그래서 이렇게 망설임 없이 찾아온 거기도 하고.
이번에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레이스입니다.”
“···호오.”
***
한적한 오후 어느 병원.
정기 검진을 끝마친 조앤이 환자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바로 만난다고요?”
“그래. 아무래도 상당히 열정이 넘치는 친구로더군.”
“음. 확실히 둘이 친구로 지내도 괜찮겠네요. 나이대도 비슷해 보이고.”
우람한 체격의 길버트 그레이스와 신사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아르센 뤼팽.
약간 결은 다르더라도 두 사람 다 미중년의 표본으로 삼기 적당하지 않을까.
아 물론 길버트는 먼저 튀어나온 배를 어떻게 처리해야겠지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음. 뭐를 말이에요?”
“그 친구 말이야. 정말로 세계 평화를 위하는 느낌이었나?”
그 질문에 조앤은 잠시 어젯밤의 간담을 떠올렸다.
확실히 특이한 대답이긴 했다.
세계 평화라니. 그야말로 아이들이나 생각할 비현실적인 소망 아닌가.
하지만 왠지 뤼팽이 그렇게 말하니 꽤 그럴듯하게 들리는 건 어째서일까?
“신기한 남자잖아요. 묘한 매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하하. 우리 주치의 양께서 남자한테 완전히 홀려버렸군.”
“저야 환영이죠. 그 사람 포커 실력 보셨잖아요?”
“···흠. 거기에 꽂힌 건가?”
이거 생각보다 더 도박에 빠진 상태로군.
길버트는 다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뒷말을 삼켰다.
“그럼 오늘 저녁에 만나서 어떻게 할 건가요?”
“마침 그 친구랑 비슷한 꿈을 가진 이들을 몇 명 알고 있어서 말이지. 가볍게 소개나 해주고 친목을 다지자는 거지.”
조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길버트 씨야말로 뤼팽 씨가 상당히 마음에 드신 거 아니에요?”
“음. 확실히 그런 걸지도 모르겠군.”
“괜찮아요. 저는 그런 취향도 전부 존중한답니다.”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네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앤은 오픈 마인드라고 하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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