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악-!
-끄으억!
팽저우가 걸레짝이 되도록 맞고 있을 즈음·
전각에선 그 광경을 보며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무슨 일이오·”
“아무리 그래도 저건···!”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꽂혀 있었다·
정확히는 피떡이 된 도왕이 아니라, 그를 아작내고 있는 청년을 향해서였다·
근래 하남에서 가장 유명한 청년이자, 무수한 무인이 주목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신룡이 지니고 있던 차기 천하제일인이라는 호칭을 단번에 쟁취하고· 숨기고 있던 전력을 드러내며 순식간에 가치가 치솟았다·
나이대에 맞지 않는 압도적인 무력과 성취·
그런 청년을 보며, 사람들은 괴물과 같다 평하며 의문을 싹트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언젠가 최연소 화경이라 불렸다·
신룡관 습격 사건 이후· 진룡이라 불리던 소년은 소염라가 되었고·
당시 화경에 올랐다는 얘기가 오갔으나·
맹이 신룡을 최연소 화경이라 인정하며 사그라진 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일대에선 실상 소염라가 당시 화경에 이르렀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
문제는, 만일 그렇다면 어찌 맹이 신룡을 최연소 화경이라 인정했느냐는 것·
그런 의문들이 떠다니고 있었으나, 지금 와선 상관없는 얘기였다·
중요한 건·
“저게 대체 무어란 말이오·”
지금 소염라라는 존재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도왕이 저렇게 처참하게 당한다고?”
전각·
상위 상단주는 물론, 명가의 가주와 명문의 수장들이 모여있는 위치다·
각기 한 지역을 담당하거나 정파에 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이거늘·
그들은 모두 소염라를 보며 제대로 된 표정 관리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소염라는 약관을 넘었다고 하지 않았나·”
“신룡과의 비무에서도 보긴 했으나···· 저건 너무하지 않소·”
해도 너무하다·
모두가 소염라를 향해 떠올린 감상이었다·
약관을 넘은 나이·
그 나이로 화경에 닿은 것도 신룡을 제외하면 전무한 일이거늘, 지금 소염라의 상태는 그보다 더 했다·
완성도가 다르다는 말이다·
신룡이 간신히 화경에 닿아 걸음마를 시작했다면, 저건 이미 날고 기고 있었다·
그 도왕을 상대로 조금의 물러섬도 없다·
쾅-!!
내기에 파동이 이른다·
폭발하듯 터진 기운은 전각에 까지 영향이 왔다·
도왕 팽저우·
무위가 명성에 비해 떨어진단 얘기를 듣고는 하나, 그는 엄연히 화경의 무인이다·
그런 팽저우가 소염라의 주먹에 맞아 피를 흘리며 휘청거린다·
반항 따윈 불가하다·
비무라기보단 일방적인 폭력일 뿐인 싸움이었다·
“···저걸···저걸 무어라 해야 하오?”
지켜보던 이들 중 누군가 내뱉은 말·
대답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다·
저걸 뭐라 표현해야 할까·
감히 천재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준인가·
괴물이라 칭하기에도 저걸 담기엔 좁아 보인다·
지금 소염라의 모습은 필히 그러했다·
“···말이 안 되잖소·”
실상 환영이나 꿈이 아닐까·
환영이라면 지독한 광경일 터였고· 꿈이라면 악몽이었다·
그래, 저건 수두룩한 무인의 악몽이다·
그렇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존재였다·
도왕을 저리 압도적으로 무너뜨리다니· 말이 되질 않는 일이 아닌가·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을 하듯, 침음만을 흘리고 있을 즈음·
“끌끌·”
한 쪽에서 누군가 웃음을 흘렸다· 백발이 무성한 노인·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십대고수 칠철삼권의 일인· 매화선이었다·
“저 아이는 볼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저번 신룡과의 비무에서도 충분히 놀랐다고 생각했거늘·
이번 도왕과의 싸움은 그보다 더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숨기고 있는 것이냐·’
저 아이는 과연 무얼 품은 것인가·
순전히 가능성과 찬란함이라 보기엔 그마저 부족하다·
‘그 아비의 그 자식이란 건가·’
혹은, 조부의 손자라 봐야 하는 걸까·
무엇을 담아도 의미가 애석한 느낌이었다·
다만, 매화선은 그저 지금을 마주한 걸로 족하다 생각했다·
‘새 시대를 보았구나·’
앞으로 나아갈 새 시대·
그 중심을 마주한 느낌이다·
맞다·
저 아이는 중심이다· 앞으로 무슨 시대가 펼쳐지든, 저 아이는 중심, 혹은 선두에 있겠지·
그런 과정을 마주한 걸로 충분하다·
매화선이 그리 이해하던 찰나·
“표정을 보아하니, 또 혼자 뭔가 궁상을 떨고 있는 게로군·”
“···”
트집 잡듯 나타난 목소리에 매화선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슬쩍 코를 가리며 말한다·
“어쩐지···· 냄새가 나더라니····”
“허? 뭐?”
“아무 말도 아니었소·”
“다 들었는데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아니 됐다·”
개방의 방주· 우봉취개가 매화선의 반응에 고개를 젓는다·
“하기야· 제자가 싹 다 탈락 했으니···· 모든 게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는 거지·”
“···”
비꼬듯 언급한 말에 매화선의 눈매가 살짝 찌부러진다·
우봉취개의 말마따나 앞서 무투제에 나갔던 화산의 문인들이 모두 탈락했다·
대진의 문제도 있었으나 일부러 아직 여물지 못한 아이들을 데려온 게 이유기도 했다·
그나마 끝까지 남아있던 영풍까지 탈락했으니, 이번 무투제에서 화산의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그걸 콕 집어 우봉취개가 언급한 것인데·
이를 잠시 불편해하던 매화선이 씨익 웃음을 머금는다·
“뭐지· 왜 웃는-·”
“그래도, 출전도 못 한 개방보다야 조금 낫지 않겠소?”
“···뭐라?”
매화선의 말에 이번엔 우봉취개가 인상을 찌푸렸다·
실제로 개방의 이들은 단 한 명도 무투제에 참석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인즉슨·
“맹에 속한 이상, 무투제에 참가는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게냐?”
개방은 무림맹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곳이고· 이에 따라 무투제 참가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흐음, 하나, 어차피 참가한들···· 좋은 결과가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거지들이 싸워봐야 뭐 얼마나 잘 싸우겠느냐·
매화선은 고운 말투로 속을 갉아냈고·
“이···!”
이에 우봉취개가 빠드득 이를 갈던 즈음·
쿵–!!
거친 소리와 함께 시선이 다시금 집중됐다·
“허허· 끝난 모양이구려·”
매화선이 웃으며 한 말에 우봉취개가 혀를 짧게 찬다·
“···나중에 따로 좀 보자고?”
“이런이런· 안타깝게도···· 오늘은 약속이 좀 많은지라···껄껄껄·”
“빠드득-!!”
그런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시선은 비무대 위에 있다·
거대한 육신을 지닌 중년인이 쓰러지는 게 보였다·
원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부어오른 상황·
잔뜩 망가진 도왕 팽저우가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결국· 일이····”
“정말 이겨 버린 것인가·”
펼쳐진 광경에 다들 침음을 흘렸다·
도왕이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청년에게 패한다·
그 사실을 끝내 확인한 이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팽가에 커다란 재앙이기도 하였고·
중원에 거대한 돌풍이 될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런 여파를 떠올리며 모두가 충격에 상념이 많아지고 있을 무렵·
-사, 산서구가 구양천···스, 승····
심판이 이내 소염라의 승리를 언급하려던 찰나·
“···!”
“···헛!”
철걱-! 철걱 철걱-!!
전각 내부에서 갑자기 무인들이 검을 움켜잡기 시작했다·
“···이건··”
극도로 날카로워진 기운이 사방을 맴돈다·
모두가 뛰어난 무인인지라 다들 같은 걸 느낀 것 같았다·
“우봉· 이건···?”
매화선 또한 다르지 않다·
그는 한껏 굳어진 상태로 개방 방주를 부르려던 순간·
우우우우웅—!!!!
쿠구구구궁—!!!
갑자기 주변에 진동이 터지기 시작했다·
“크윽!”
“이게 무슨-!!”
구구구구궁—!!!!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것인가·
다들 당황한 듯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을 때·
“···저건····”
그나마 중심을 잡은 몇몇 이들·
그중 매화선과 같은 칠철삼권의 일인·
수호대의 대주· 진령검제가 허공을 보며 눈을 키웠다·
맑디맑은 하늘 위로 무언가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주홍색에 커다란 선이다·
저런 게 어찌 하늘 위에 나타난 거지?
일대 하늘을 뒤덮을 만큼 길고 강렬한 선은 순식간에 서로 이어지기 시작하고·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 무언가·
이를 검제가 살피고 있었으나· 그때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화아아악-!!
“헉!”
“이, 이건 또 뭐야···!”
전각 주변으로 갑자기 막이 나타나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에 떠오른 선과 같은 주홍색의 막·
알 수 없는 막이 전각을 감싸기 시작한 것을 보며 내부에 있던 몇몇이 즉시 움직였다·
쉬리릭-!!
화산의 매화선과 검제·
그리고 맹주인 검선이 동시에 움직이더니 같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
십대 고수 셋이 뭉쳐 검강을 뿜어냈다·
엄청난 강기가 막을 향해 쏟아졌다· 원래였다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을 힘이었으나·
파앙-!!
검강은 막에 부딪히더니 조금의 흠도 내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이윽고·
우웅–!!
막의 진행을 막아내지 못한 채 주홍빛이 전각 전부를 뒤덮어 버렸다·
정말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상황·
이를 확인한 검제가 미간을 깊게 일그러뜨렸다·
검제뿐만이 아니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이곳· 하남에 무언가 일이 터지기 시작했음을 말이다·
*****************************
하남·
그 중심에 있을 무림맹 위로 펼쳐진 괴이한 광경·
널찍하게 펼쳐진 현상을 확인하고· 이를 본 노인이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광경·
저 하늘은 아득한 주술의 영역·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낸 술식이었다·
수십 년을 칼을 갈고 닦아 간신히 만들어 낸 모습이다·
저걸 보고 어찌 환희하지 않을까·
“허어!! 드디어···· 드디어 이루어지는 건가·”
노인이 열망에 찬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수두룩이 모인 사람들,
이들은 모두 언젠가 제갈 성씨를 가졌던 이들이자·
지금은 이름을 감춘 채 복수만을 꿈꾸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사이, 거대한 바위가 빛을 뿜어내고 있다·
주술의 기반이 되는 재료이자 이 하남 땅에 숨어있을 존재를 봉인하고 있는 원석·
이런 바위는 하남 곳곳에 총 여섯 개가 숨어있었고· 노인은 이를 모두 찾아내 해제 술식을 취하는 데 성공했다·
“조금만,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오랜 세월 자신들을 어둠에 빠트린 저 무림맹에 지옥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점차 짙어지는 허공의 주술진·
이를 보던 노인이 주먹을 말아쥐며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 듣거라·”
“예! 대주!”
노인의 말에 수십의 인원이 무릎을 꿇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때가 되었다· 모두 이름을 잃고 놈들의 손에 의해 죄인으로 살아가던 시절을 기억하라·”
쿵-!
어느새 움켜쥔 둔기가 바닥을 찍었다·
“비로소 오늘· 우린 지난날의 치욕을 씻고 놈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우우웅-!
노인의 어깨를 타고 깊은 투기가 흘러나온다·
원망과 분노· 감정들이 가득 쌓인 기운이 사방에 퍼져 나오고· 이에 감화된 듯 다른 이들의 표정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펄럭-!
와중 노인이 도포를 하나 걸친다·
묵색을 지녀 뒤편엔 자색 자수로 마(魔)라 적혀있는 도포였다·
노인이 이를 입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같은 옷을 걸치기 시작한다·
모두가 같은 옷이었다·
단지 조금의 차이가 있다면, 노인의 도포에는 좀 더 짙은 자수와 완장이 걸쳐 있었다는 것뿐·
다소 눈에 띌 법한 무복이지만, 이를 구태여 걸친 이유가 있었다·
“약속대로 입었소· 이제, 일을 실행해도 되는 게요?”
노인이 뒤편을 보며 말한다·
그곳엔 여인, 나히가 서 있었다·
그녀는 노인과 인원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예·”
“···교주께선 언제쯤 나타나시는 거요·”
이런 옷을 입게 만든 장본인, 천마라는 이는 언제 나타나는 거냐· 그리 묻는 말에 나히가 답하길·
“현재 일이 있어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나 늦지 않게 도착하겠다 하셨습니다· 또한·”
스륵·
나히가 노인과 같은 도포를 꺼내 몸에 걸쳤다·
“약속은 잊지 않을 터이니···· 원하는 바를 필히 이루라는 말씀도 전하셨습니다·”
그녀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가 모습을 아직 드러내지 않은 건 의아한 일이나 그의 정신은 전부 저 하늘에 꽂혀 있었다·
앞으로 길어봐야 반의반 시진·
그 시간이 지나면, 하남 땅 아래로부터 위대한 존재가 강림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파의 뿌리라는 무림맹이 무너지고 피의 개혁이 시작되겠지·
꾸욱-!
노인은 짙은 다짐을 표정에 올리듯, 굳어진 얼굴로 애병을 움켜잡는다·
“···가자· 개혁을 위하여·”
“위하여-!”
수십의 인원이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듯, 하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복수· 혹은 되찾음·
무언가를 꿈꾸며 많은 이들이 걸음을 나아갔고·
“···”
그런 이들의 뒷모습을 보던 나히는 이내 그들의 기척이 사라지고서야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투두둑-!!
기다렸다는 듯 나히의 주변으로 인원들이 착지한다·
모두가 무인이었으며 황색의 무복을 입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선두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황보세가의 가주 맹호구권 황보열위다·
갑작스레 나타난 그는 품에 있던 옷을 들어 나히에게 건넸고·
슥·
나히는 기다렸다는 듯 옷을 받아 들고는 곧장 갈아입기 시작했다·
투둑·
걸쳐져 있던 검은 무복이 땅에 떨어지고·
그 위로 황보세가의 무인임을 보여주는 황색의 옷이 입혀진다·
얼굴을 가리듯 두건까지 쓴 다음, 나히가 천천히 몸을 풀며 말했다·
“···모든 것은· 교주님의 뜻대로·”
말을 끝으로 사람들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천마의 명령에 따라·
하남을 습격한 악(惡)을 처단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