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89
“···”
“···”
눈이 마주치고 잠시·
구희비는 눈앞에 광경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미효란은 그런 제 첫째 딸을 보며 숨소리만 내뱉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으응?”
미효란은 품에 있던 아이를 슥 들어 옆으로 앉히더니 앞에 놓인 다과와 차를 안 보이는 쪽으로 조심스레 치웠다·
그리고선·
“왔구나·”
“···”
“앉거라·”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보고 구희비는 자신이 순간 헛것을 본 게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였으나·
“어머니·”
“···”
“뭐예요···?”
당연히 통할 리 만무·
구희비가 찡그리며 묻는 말에 미효란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다·
안 통한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이게···이게 대체 뭐 하는···· 아니 저 애는 또 무슨····”
말도 제대로 못하고 버벅이던 구희비· 어지간히 놀란 듯 눈동자는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한 표정이랄까· 하물며·
“쟤는····”
움직이던 시선이 아이를 향하며 그대로 굳는다·
그리고 떠진 눈이 더 크게 떠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저 얼굴을 보자마자 어찌 놀라지 않을까·
“···어?”
잔뜩 굳은 구희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
순진한 표정을 짓는 아이의 얼굴은 보는 것만으로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거 봐! 꽃이야-! 누나 줄게·]
[누나-! 나랑 놀아줘!-!]
아직은 웃음이 많았을 시절·
꽃을 하나 꺾어와 자신에게 주려고 뛰어오던 그때의 모습과·
막내 손을 꼭 잡고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남동생·
“···어···어어····”
그때의 모습과 똑같다·
따지자면 좀 더 귀엽게 생긴 것같기는 하다만···· 분명 저 아이는 제 남동생과 한껏 닮아 있었다·
그걸 보며 구희비의 몸이 멋대로 움직인다·
미효란이 방금 보였던 모습· 자신이 여기까지 대뜸 불려 온 연유·
그런건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단 다가가자· 다가가서 머리부터 쓰다듬고 생각하자·
그리 떠올린 구희비가 아이에게 다가가려는데·
그 순간·
“양천····”
후우욱-!!
“···!?”
구희비 옆에서 돌풍이 몰아쳤다·
무언가 바람을 일으키며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간다·
주변에 있던 그 누구도 반응 못 할 가속· 이어 벌어진 상황에 구희비가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곳엔·
“연아···?”
자신이 동생으로서 데리고 있는 검은 머리칼의 여인이 제 남동생과 닮은 아이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인지조차 하지 못할 속도와 갑작스런 상황에 구희비가 당황을 머금었고·
옆에 있던 미효란도 보기 드물게 놀람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당황한 찰나·
덜컥-·
여기저기서 기척이 돋아난다·
이에 구희비가 즉시 몸을 움직이며 소리쳤다·
“잠깐-!”
투두두둑-!!
사방에서 칼날이 쏟아졌다·
******************
일장로에게 반쯤 끌려오듯 이동하길 한참·
눈치챘을 무렵에 나는 어딘가 익숙한 공간에 와 있었다·
깔끔히 관리된 길목· 그 위에 보이는 고급진 처소·
나와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나 익숙한 배경이기는 했다·
‘당정 어제 왔었으니 모를 수가 있나·’
어제·
그것도 밤에 잔뜩 눈치 보며 향했던 공간이 이곳이다·
바로 미 부인이 머무는 처소·
나는 일장로에게 이끌려 다시금 이곳을 도착했다·
용건은 누군가를 보기 위해서·
처소가 미 부인의 처소니 당연히 그녀를 보기 위해 온 건가 싶지만·
그건 아니었다·
‘음·’
알게 모르게 긴장된 표정 속 처소를 살핀다·
그래 나는 미 부인을 보기 위해 이곳을 온 게 아니다·
일장로가 말하기론 내 조부를 보러 온 것이라 했던가·
‘조부라기엔 정확히는····’
외조부·
구태여 표현하자면 그럴 것이었다·
‘피는 한 방울도 안 섞였지만 말이지·’
지금 내게 조부라 하면 저번에 만났던 그 노인네가 끝인 것 같지만 따지자면 한 명이 더 있기는 했다·
미 부인이 운영하는 백화상단· 그걸 최초로 탄생 시켰다는 초대 단주·
바로 미 부인의 아비 되는 인물이다·
‘···음·’
떠올리면서도 의문이 떠오른다·
그런 이를 과연 외조부라 말해도 될까?
‘따지면 진짜 조부도 아니잖아·’
어차피 나는 첩의 자식인지라 미 부인과는 피가 섞이지 않았으니 당연히 외조부랄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본 적도 없어·’
나는 미 부인의 아비· 백화상단의 초대 단주를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살아있다는 것도 방금 알았는데·’
직접 보긴커녕 들어 본 적도 없다·
살아있기는 했구나·
‘이걸 누님들은 알고 있었으려나·’
구희비나 구연서는 알지 모르겠다·
나야 쌩판 남이지만 그녀들은 진짜 손녀일 테니까·
물론 그러니 더 이상한 것이다·
‘도대체 왜지·’
그런 초대 단주라는 인물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모자라 구태여 일장로를 호위로 삼아 하남에 왔고·
그렇게 해서····
‘왜 나를?’
굳이 왜 나를 보겠다고 찾는 걸까·
이 또한 전생엔 없던 일이었다·
아마 언제나 그렇듯 내가 친 사고들이 문제인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무엇이 문제라 일이 이렇게 된 거지?
당장 머리를 굴려본들 떠오르는 건 없었다·
하여 고개를 들고 앞에 있는 커다란 등판을 보며 물었다·
“있잖습니까 일장로님·”
“음?”
내 부름에 팔척의 노인이 뒤를 돌아본다·
“대체 저를 왜 찾으신답니까?”
초대 백화단주가 나를 왜 찾는가· 이를 일장로에게 물어보지만·
“글쎄다·”
“···”
“그냥 뭐 손주놈 보고 싶어서 부르는 거 아니겠느냐·”
딱히 도움 되는 대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하기야 이 노인네한테 뭔가 바란 내가 잘못이지·
“···손주도 아닌데 뭘 보고 싶어서 부릅니까· 그리고 보고 싶었으면 진작 보러 왔겠지요·”
“으으으음 그런가?”
“애초에 일장로님께서 뭣 하러 호위 역을 맡은 겁니까? 나이도 있으신 양반이·”
명가의 장로씩이나 되는 인물·
그런 이가 호위를 맡고 하남까지 따라왔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내 말에 일장로가 슬쩍 손으로 제 뺨을 긁적인다·
“···그냥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잘 됐지· 어차피 네 녀석도 볼 겸 겸사겸사 산보나왔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
“산보요? 그런 건 보통 여행이라 하지 산보라고 하진 않습-·”
휘익-!
말하다 고개를 틀었다·
일장로가 냅다 정수리로 주먹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허공에 주먹이 스치자 일장로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어쭈· 피해?”
“말로 하세요 말로···· 폭력은 나쁜 겁니다·”
“흥 날이 갈수록 아주 말꼬리 잡는 게 능해지는 것 같구나·”
아쉽다는 듯 팔목을 움직이는 일장로·
그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하십쇼·”
“응?”
“또 뭐 내기 져서 오신 거 아닙니까?”
“···”
움찔-! 물음에 일장로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그···으게 무슨 말이지? 노부가 지긴 뭘 졌다는 게냐·”
“그런 거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지! 이 녀석이 노부를 무슨 내기에 미친 놈으로 보는구나!”
“아니라고 하기엔 전적이 화려하시지 않습니까·”
“···”
이건 할 말이 없다는 듯 일장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찌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술 내기에서 이겼다고 화산파의 귀물을 가져오는 인간이 어디 있냐고·’
그걸로 섬서에서 무슨 고생을 하고 왔는데·
저 양반이 뭔가 사고 쳤다 싶은 건 다 술이나 내기에 관련된 것이었고·
‘반응을 보니 또 그런 거구먼·’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뭔가 캥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뻔하지 뭘·’
애써 말을 돌리고 싶은지 일장로는 연신 휘파람만 불어 재끼고 있었다·
우스운 건 그걸 또 제대로 못 불어서 바람 소리만 후! 후! 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장로님·”
“어허 아니라고 하지 않느냐·”
아니긴 개뿔이·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노인네 또 뭔가 한 것 같다·
“진짜 솔직히 말씀하십시오·”
“무얼?”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치신 겁니까?”
캐묻듯 일장로를 향해 계속 말을 물었다·
일장로가 친 사고? 언뜻 보기엔 개인이 친 건 알아서 수습하면 되니까 별문제가 없어보이지만·
나는 아니었다·
‘무조건이야·’
이번 생을 살며 겪은 일들을 보아 확신했다·
‘이 노인네가 사고 친 건 나한테 영향이 온다·’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이상하게 엮인다·
일장로가 친 사고는 똥이 되어 내가 수습한 게 몇 개였을까·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았기에 어떻게든 일장로에게 자백을 받아내려고 하는데·
“아니 아니라니까 그러네· 노부를 못 믿는 게냐?”
“당연히 못 믿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일장로님을 제가 어떻게 믿-·”
우우우우웅—!!!
“!”
말을 묻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처소 내부에서 기운이 몰아친 탓이다·
“응? 왜 그러느냐?”
일장로는 내 반응에 의아하다는 듯한 모습· 아무래도 인지를 못한 것 같았다·
내 기감이 높아져서 느껴지는 걸까?
아닐 것이다·
지금은 익숙지 않았기에 기감을 대부분 봉인해둔 상태· 평소보다 훨씬 범위가 좁았다·
그럼 이 기운을 뭘까·
‘···이거·’
곧장 파고들어 내 심장을 급습한다·
뒤이어 공명하듯 심장이 거세게 반동했다·
두근-!
후우우웅-!
동시에 처소에서 한 번 더 기운이 느껴지고·
“···”
“양천아?”
일장로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날 부르지만·
화르르륵-!!!
이미 내 발끝은 불꽃 터트리며 앞으로 터져나갔다·
쿵-!
내기가 맞물려 가속도가 높아진다·
두어번의 내딛음으로 순식간에 주변 광경이 뒤바뀌었다·
속력을 조절하지 못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농후하나·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그만큼 급했다·
화르륵–!!!
한 줌의 불꽃이 되어 처소를 파고든다·
입구를 스쳤다·
문 앞을 지키던 호위가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내 몸은 처소에 들어와 있었다·
그럼에도 속력은 줄지 않는다·
목적지는 기운이 느껴지는 곳·
내 착각이 아니라면·
‘이 기운은 분명····’
이를 까득 깨문 호흡을 고른다·
그리 멀지 않았기에 몇 초 사이 목적지에 도달했다·
기운은 처소 안쪽 미 부인의 방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곧장 방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안쪽에 벌어진 광경을 급히 확인하는데·
“···음?”
그걸 보자마자 눈을 좁혀야 했다·
‘이게 무슨·’
방 안에 무수한 인원이 가득했다·
처소의 크기가 커서 그런지 방 또한 작진 않았으나 이만큼의 인원을 수용하니 다소 좁아 보이는 방·
그 안에 보인 것은·
‘구희비·’
검을 움켜잡은 채 무언가를 노려보는 구희비· 그리고 놀란 눈의 미 부인·
거기에·
‘천마(天魔)?’
익숙한 뒷모습의 여인·
천마가 똘똘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 주변으로 묵색 옷을 입은 무인들이 둘러 싸고 있었는데·
상태를 보니 주변에서 미 부인을 지키던 암호(暗護)들인 모양·
그들이 모두 천마에게 살기 어린 검을 겨누고 있다·
‘···무슨 상황이지 이게·’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왜 천마가 저 방에서 똘똘이를 끌어안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기운을 스멀스멀 내뿜고 있는 걸까·
“···”
알 수 없는 상황을 파악하려 눈을 굴렸다·
그때·
“당장 떨어지시오·”
암호중 한 명이 천마에게 말한다·
“지금 떨어지지 않으면 베겠소·”
미친·
천마를 공격한다·
그 미친 소리에 침음을 삼켰다·
동시에 구희비와 미 부인을 쳐다봤다·
방 하나에 모여 있는 천마와의 만큼 거리는 가깝다·
여기서 천마의 신경이 거슬려 폭주라도 하게 된다면 저 둘을 데리고 피하기 버거우리라·
거기까지 판단하고 즉시 움직였다·
화르륵-!
“헛!?”
“무슨-!”
깊게 파고들어 칼날의 틈새로 진입했다·
암호들이 갑작스런 내 등장에 곧장 반응하려 하지만 다행히 내 얼굴을 확인하고 몸을 굳혔다·
“도련님···?”
“칼 치워요·”
“예?”
“그거 일단 치우고 단주 님부터 챙기라구요·”
“하나····”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요·”
“···”
단호한 말에 암호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지만 다행히 우선 움직여 미 부인부터 챙겼다·
간신히 거리가 살짝 벌어지고·
그제야 내가 천마에게 다가갔다·
아직도 똘똘이를 안고 있는 천마·
“야·”
“···”
“너 뭐야·”
부르는 소리에도 미동이 없다·
천마는 똘똘이 녀석을 안고 연신 호흡만을 반복하고 있다·
이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뭔데 여기서 지랄이야·”
다소 공격적인 어투·
천마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말과 달리 속마음은 떨리기 그지없다·
진짜 무슨 연유로 이러는 걸까·
뭔가 의도가 있는 건가?
이번 생에 들어 뭔가 변한 건 아닐까 싶었건만 실상은 역시 천마였던 걸까?
온갖 불안이 스민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묻잖아·”
말을 꺼내면서 심장에 힘을 줬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탐을 발동시켜야 한다·
그걸 위한 힘이었다·
천천히 뻗은 손이 그녀의 어깨에 닿고 그대로 힘을 줘 살짝 풀어내는데·
슥·
그때 천마의 고개가 들리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검은 머리칼 속 천마의 얼굴이 드러난다·
멈칫·
그걸 확인하고선 내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뭐야 너·”
똘똘이를 껴안고 있던 천마가·
“울어?”
울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서글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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