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13
데구르르르-툭!
작은 구슬 하나가 굴러 속에 툭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미 부인은 우리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과연 그럴까?
미 부인은 나를 원망하고 미워한다· 그렇게 확신하며 살던 삶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좋아할 이유보다 싫어할 이유가 많다·
받아줄 이유보다 밀어낼 이유 또한 많다·
그래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미워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데?”
미 부인의 감정을 어떻게 구령화는 확신하는가· 그걸 모르겠어서 그녀에게 묻는데·
구령화가 다소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오빠· 진짜 몰라?”
“뭘·”
“어떻게 모르지···? 진짜 언니들 불쌍해····”
“자꾸 긁지 말고 말 좀 똑바로 해봐·”
“말이고 뭐고 오빠만 모르는 거 같은데·”
구령화가 잔뜩 인상을 찡그린다· 그래도 더 설명을 해주려는 듯 이어 말을 뱉으려 하지만·
“···아니다·”
“뭐?”
“안 알려줄 거야·”
“치사하게 무슨 말을 하다 말아·”
“오빠도 치사하게 온다고 해놓고 안 왔잖아· 영풍 사질한테는 찾아간다고 했다며? 말까지 하고 안 와놓고는···· 누가 누구보고 치사하다는 거야·”
“···”
할 말을 또 잃어버렸다·
나이를 먹더니 말싸움을 더 잘하게 됐네· 제기랄·
말문이 틀어막혀 아무말도 못하고 있으니 문득 구령화가 한숨을 살짝 내쉰다·
“됐어···· 아무튼· 오빠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산서로 돌아가긴 할 거야?”
“···”
“···또 어디 갈 거구나·”
시무룩한 표정이 떠오르기에 급히 말했다·
“일이 좀 있어서 그래· 딱히 가기 싫어서는 아니고···· 진짜 일이 좀-·”
“변명 안 해도 돼· 오빠 바쁜 거 아니까·”
말과 함께 구령화가 고개를 돌려 정면을 쳐다본다·
“천마인지 뭔지 잡으려는 거지?”
“···”
이어 들린 말에 순간 몸이 굳는다·
예상치 못한 단어가 구령화에게서 나온 탓이다·
“나도 알고 있어· 오빠가···· 지금 사람들에게 중요한 위치가 됐다는 것도· 마교라는 놈들을 잡기 위해서 바쁘다는 것도·”
꺼낼 말이 없기에 숨과 말을 참았다·
“영웅이라 불린다며? 솔직히 오빠 얼굴에 영웅이 가당키나 한가 싶은데 말이야·”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면서도 은은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자랑스러운 느낌이 있어·”
“···”
“차 착각하지 마· 진짜 쥐꼬리만큼 있는 거야· 하도 사람들이 오빠보고 대단하다고 하니까···· 그래서 조금 생긴 거야· 알았지?”
내 표정이 이상하니 혹 오해라도 했나 싶어 부정을 거듭한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길래 저런 반응일까·
뭐가 됐든 그건 오해일 것이다·
지금 짓는 표정은 쑥스럽거나 어이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괜찮아· 정말이야·”
이건 자기 자신에게 느끼는 부끄러움·
직접 발품 팔 듯 만들어 낸 상황 속 내게 오는 찬사는 내 것이 아니다·
한데·
“오빠?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속이 좀 안 좋아서·”
이를 듣고 구령화에게 저런 말을 듣고 좋아하고 있는 내 자신이·
정말 토할 만큼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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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다음 날 오전·
가벼운 착장을 하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구령화와 얘기를 끝내고 일장로와 좀 더 얘기한 다음 곧이어 미 부인에게 향했다·
정확히는 모용희아를 보러 갈 예정이었지만 아직 화가 안 풀렸는지 만나주질 않더라·
그래서 미 부인에게 대신 전달했다·
그녀는 내가 사천을 갔다 온다는 걸 듣고도 평온한 반응이었다·
다만·
‘아이는 이곳에 두고 갈 생각이더냐·’
‘예?’
‘그 아이 말이다·’
‘아·’
아무래도 똘똘이를 언급하는 거 같길래 잠시 고민을 해야 했다·
관리하기 귀찮으니 두고 가지 말고 데려가라는 건가?
그런 것 같아 미 부인에게 말했다·
‘계속 두고 다니기엔 미 부인께서 귀찮으실 테니· 제가 다시 데려갈-’
‘귀찮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단다·’
어쩐지 정색하는 느낌이 살짝 있었다· 착각이겠지?
‘···아 그러십니까? 그래도 데려가는 게 아무래도····’
‘무림맹의 일이 한창 바쁠 터인데· 아이까지 관리하기는 힘들겠지· 이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하마·’
‘···’
알아서 결정할 거면 왜 물어본 건데···?
진심으로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똘똘이를 데려가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구태여 필요 없는 임무기도 하고·
인원수가 많아서 어차피 써먹지도 못한다·
그러니 지금은 두고 가도 상관없는 상황이었다·
걱정되는 게 있다면 그놈을 그냥 두고 갔다간 뭔 짓을 할지 모른다는 점인데····
‘본인도 좀 즐기고 있는 것 같으니 괜찮으려나?’
똘똘이는 은근 순진한 척 아이 모습으로 잘 먹고 잘사는 모습이었다·
듣기로는 매일 미 부인과 어디를 돌아다닌다던 거 같았다·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대체 뭐 하는 걸까 싶다·
딱히 대단한 걸 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옷 입히고 뭐 좀 사 먹인다는 거 같다·
‘···흠·’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우선은 그냥 두기로 했다·
당장 잘 지낸다면 그걸로 됐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문제는 그런 게 아니라····’
미 부인의 아버지라던 전대 백화단주· 그를 떠올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 양반을 다시 만나 봤어야 하는데·’
선대 백화단주·
심지어 구가 태생의 직계 혈족이라던 인물·
그를 만나 물어볼 게 있었으나·
‘없었어·’
어젯밤 미 부인을 만날 겸 찾아보려 했거늘 노인네는 어디로 갔는지 없다고 했다·
과연 어디로 간 걸까? 정말 사라지긴 한 걸까?
어쩌면 미 부인이 나와 그가 만나는 걸 원치 않아 숨긴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일까·’
어째서 미 부인이 그토록 아비라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고 미움받는 노인네는 구가의 혈족인 걸까·
의문은 깊다·
일장로는 별문제 없는 일이니 괜찮다고 했지만·
‘궁금하잖아·’
아닌척해도 어쩔 수 없이 궁금한 부분이다·
가능한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빨리 끝내고 와야겠어·’
최대한 빨리 다녀온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계절이 끝나기 전에·’
가을로 막 넘어온 지금이 끝나기 전까지·
어떻게든 이쪽 일을 끝마칠 생각이었다·
그리 다짐하며 뒤를 돌았다·
내 뒤편엔 스물이 되지 않는 인원이 긴장한 채 서있었다·
“준비는?”
“···총 인원 준비 완료했습니다·”
짧게 묻는 말에 옆에 있던 당소열이 즉시 대답한다·
대답이 참 빠른 것이 미리 준비해 둔 것 같다·
그게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참아냈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래? 그럼 슬슬-·”
출발을 위해 묵연에게 보고하러 가려는데·
“음?”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진다·
눈을 돌리니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몇몇 인원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적은 인원이 아니다· 하물며 입은 옷은 어딘가 익숙하기만 했다·
그건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두 눈을 키웠다·
“이 일청검···?”
“청룡대주잖아?”
다가오는 이들의 선두·
그곳엔 멀끔하게 생긴 중년인이 있었다·
현 검제를 제외한 모든 대주 중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청룡대주 일청검이다·
그는 뒤편에 부하들을 끌고 직접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걸 본 다른 이들이 반응한다·
청룡대가 나타난 건 놀랄 일은 아니다·
이미 사전에 이번 작전은 청룡대와 협업한다고 전해두기도 했으니· 청룡대가 나타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나·
“왜 일청검이 직접?”
다른 이도 아닌 청룡대주가 직접 등판한 건 다른 사안이었다·
“배웅하러 온 거 아니겠소·”
“구태여 청룡대주가? 두 분이 그만큼 친하던가·”
“듣기로 친하긴커녕 마찰이 좀 있었다고 들었는데···?”
살짝 퍼진 소문탓에 점점 웅성거림이 커질 무렵·
나타난 일청검을 보며 나 또한 걸음을 내딛었다·
“일청검 선배님·”
“반갑소·”
말을 뱉으며 일청검이 손을 슬쩍 내민다·
망설임 없이 손을 맞잡았다·
잡은 손을 느끼며 웃으며 말했다·
“···감사하게도 도움을 주시겠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이리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성룡대가 처음 출전한다고 하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거늘· 이렇게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외다·”
꾸욱·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간다·
악력이 느껴질 수준은 아니고 적당히 힘을 주는 정도·
“다만 혹여 성룡대주께서 부담스럽지 않으셨을까· 그게 조금 걱정이오·”
“그럴 리가요· 선배님의 근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도움을 주신다니 든든하기만 하지요·”
“그것 참 다행이오·”
오가는 말은 한없이 따뜻하다·
그 탓에 뒤에 있던 이들이 이를 보며 놀람을 그대로 내뱉는다·
“역시 두 사람이 생각보다 친했던 모양이오·”
“하기야 천하의 일청검이 뭣 하러 마찰을····”
상황을 보며 제멋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귀가 참 간지럽지만 무시했다·
실제로는 그리 따뜻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끼가 오자마자 긁네·’
웃음 속 일청검의 말을 분석했다·
-성룡대가 처음 출전한다고 하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거늘-·
나가자마자 망할까 불안해서 왔다·
오합지졸이 따로 없는데 걱정이 돼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혹여 성룡대주께서 부담스럽지 않으셨을까· 그게 조금 걱정이오·
첫 출전에 내가 끼면 좀 낫지 않겠냐· 부담스러워도 성공하고 싶으면 참아라·
의도를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고 해도 뜻은 저러리라·
말 몇 마디에 숨겨놓은 비수가 몇 갠지 모르겠다·
시작부터 열받게 하기에 나도 한마디 했다·
-선배님의 근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도움을 주신다니 든든하기만 하지요·
여기서 말한 일청검의 명성·
일청검은 근래 임무 완수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이었고· 피해도 잘 알려진 바·
그런 상황에 이를 언급했으니· 당연히 좋은 의미일 리 만무했고·
“하하·”
“하하하·”
꾸우욱·
웃음을 머금고선 서로 잡은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압력을 넘어 내기의 영역까지 들어선다·
그걸 느끼며 몸을 살짝 조절했다·
스으으····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실수인 척 기운이 스며든다·
이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참으며 놀란 듯 손을 놓았다·
툭-!
잡고 있던 손이 풀리며 기운이 얕게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에 머릿결리 살짝 흔들린다·
동시에·
“성룡대주·”
“예·”
일청검이 내게 말했다·
“혹 걱정하는 게 있다면 놓아두시오·”
그는 웃고 있었다·
“우리 청룡대는 성룡대를 성심성의껏 지원할 것이며· 임무는 기필코 완수할 것이라는 걸 말이오·”
당당한 말 속 비릿함을 느꼈다·
평소라면 거슬릴 일이나· 이번엔 다행히 웃을 수 있었다·
“걱정이라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걱정 같은 거 안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일청검이란 이를 믿고 있었다·
우리는 분명 같은 목적을 지녔으니·
“저는 선배님을 믿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하니 저희 같이 힘내보죠·”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해 줄 인물이라고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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