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59
[크아아아아–!!!]
얼굴을 침범한 불꽃에 계천문주가 비명을 내지른다·
갑작스런 고통에 비틀거리듯 거리를 벌린다· 더불어 얼굴에 붙은 불꽃을 어떻게든 떼내려 하지만·
[크으으으–!!]
불꽃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피부가 다 타버릴 것 같았다·
계천문주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바닥을 구른다·
그게 도움이 됐는지 불꽃은 점점 꺼져갔다·
[이런···이게···]
열기가 남아 연기가 뿜어지는 얼굴· 계천문주가 제 얼굴을 감싼 채 몸을 일으킨다·
그때·
“누워 있거라·”
목소리가 들렸다·
계천문주가 이에 고개를 든 순간·
“버러지들에겐 그게 어울리니·”
낮은 음성과 함께 얼굴에 뜨거운 어둠이 또 다시 쏟아진다·
화르르륵–!!
[끄아아아—!!!]
아까보다 큰 비명을 퍼트린다· 이번엔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예 안면을 붙잡고 불을 내뿜었기 때문이다·
[끄흐···!!]
몸을 버둥거리며 발버둥 쳤다· 어마어마한 화력이 피부를 뒤덮는다· 어떻게든 벗어나려 해보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벌레치고는 타는 게 느리구나·”
음율이 전혀 없는 나직한 음성· 그 목소리에 계천문주는 고통 속에서도 소름이 돋았다·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살기가 스며있다·
어찌 이리 모순적일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어떻게···· 불꽃을···!]
방금까지 화공을 쓰지 못하던 놈이 갑자기 불을 쏘아댄다· 그렇도 이리 지독한 흑염을 말이다·
힘을 더 숨기고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이유는 뭐지?
여기까지 와서 숨기고 있던 이유는 무엇이고· 갑자기 드러낸 이유는 또 무엇인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이해가 가질 않으나·
[끄으으으!!]
지금은 생각하고 말고 할 때가 아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런 계천문주를 보며 구양천이 말한다·
“괴롭나?”
정말 궁금해서 묻는 목소리였다·
“고작 이것으로 괴롭나?”
[···끄···흐으!!]
계천문주가 몸에 기운을 억지로 일으킨다· 힘을 담아 손끝을 까딱인다· 떨어져 있던 검이 움직이며 구양천에게 날아들었다·
쉬이이익—!!! 네 자루의 검이 순식간에 파고든다· 이에 구양천이 시선을 움직이고는·
검을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멈춰라·]
-!!!!
챙-! 챙챙-!
날아들던 검이 말 한마디에 중심을 잃고 땅으로 처박힌다·
[크윽–!!]
계천문주는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도 놀랄 틈이 없었다·
“같잖구나·”
얼굴을 뒤덮고 있던 불꽃이 일순 사라진다· 그리고는·
우드득–!!
[끄아아아–!!]
팔이 이상한 각도로 꺾였다·
어찌나 강하게 꺾였는지 피부를 뚫고 뼈가 튀어나올 지경이다·
[···이···이노옴-!!]
아득한 고통에도 계천문주는 밀리지 않겠다는 듯 구양천을 노려본다· 녹아내린 피부는 다행히 재생하고 있었다·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진다·
그걸 계천문주도 알고 있었다· 여의주에 담긴 힘이 몸에 재빨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하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버티면 된다· 그럼 자신은 완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를 판단하며 계천문주가 힘을 준다·
하지만·
“하찮은 것·”
그 모습을 보면서도 구양천의 눈은 여전했다· 마치 벌레를 보는 것 같은 낮은 시선이다·
직전과 미세한 차이가 있다면· 깊기만 하던 시선에 다른 감정이 조금 섞여 있다는 것·
그 감정을 계천문주는·
“눈이 마음에 안 드는군·”
경멸이라 판단했다·
구양천이 버둥거리는 계천문주의 왼쪽 눈알을 뽑았다·
****************
촤아아아아악—!!!
해일이 몰아친다· 지면을 휩쓸며 넓은 범위를 장악한다·
그걸 보며 다리에 힘을 줬다· 쿵-!! 속력을 높여 해일에서 멀어진다· 저 덩치 큰 놈은 심지어 속도도 빨랐다·
어지간한 속력으로는 도망칠 수 없다· 최대한으로 뛰어야 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었다·
저 해일은 단순한 해일이 아니었으니까·
‘개 뜨겁네 진짜·’
전부 열기로 이루어진 흑염· 어마어마한 덩치로 모든 걸 녹여버리겠다는 듯 날 쫓아오고 있었다·
“미친 새끼·”
어처구니가 없다· 피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무슨 저런 걸 쏘아댄단 말인가·
“저러니까 씨발 실력이 안 늘지·”
내기를 저렇게 무식하게 쏘아대니 실력은 안 늘고 화력만 늘지· 지금 보니 문제인 부분이 확연하게 보인다·
“···졸라 무섭네····”
직접 당해보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산만한 화염이 파도의 형태로 내게 몰려든다·
이게 어찌 안 무서울 수 있을까·
이제야 사람들이 날 두렵게 보던 눈을 이해했다·
저런 걸 아무렇지 않게 쏘아대서 마을을 지워버리거나 전장에서 수두룩한 이들을 한 번에 태워버렸으니· 날 괴물같이 보는 게 당연했다·
저건 순 미친 새끼다·
‘쓰벌·’
뒤를 돌아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여전히 따라오는 해일 위로 누군가 서 있다·
바로 흑염병신이다·
저걸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치지도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지친 건 나만 지쳐보인다·
내기도 실력도 저때보다 높아졌을 텐데 왜 지치는 건 나뿐일까·
이건 저번에도 그랬지만 순전히 화공의 문제였다·
‘가성비가 너무 떨어져·’
투아파천무를 익히긴 했지만 내 몸의 기본은 구염화륜공이다·
동작 전부는 아니어도 근본은 그것이고·
이는 보법까지 포함이다·
화력을 중심으로 폭발시켜 몸의 속도를 높인다· 그걸 기준으로 보법을 사용하는데· 화공이 막힌 이상 문제가 생겼다·
‘속도가 부족해·’
정확히는 원래 속도를 내기 위해 보다 많은 기운을 써야 했다·
‘썩을·’
무공 하나를 못 쓴다고 이 지경이 되는 건가? 짜증이 올라왔다·
‘아니지· 원래 무공 하나가 막히면 그냥 뒤지는 거잖아·’
내 몸뚱이가 이상해서 이만큼이라도 하는 거지· 원래라면 진작 당했어도 이상할 게 아니긴 했다·
문제는·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움도 전혀 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어쩔건가· 당장 써먹을 수가 없는데·
화르륵-!
“쯧·”
열기가 당장 뒤에서 느껴진다· 거리가 상당히 좁혀진 것 같았다·
더 도망쳐봐야 의미 없다· 그건 진즉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저놈· 일부러 최대치로 하지 않고 있어·’
저 개 같은 놈도 일부러 날 골리고 있었다· 내가 나였기에 알고 있었다·
원한다면 또한 바란다면· 지금의 해일보다 배는 빠르고 더 크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엿 같은 새끼가·’
그게 열이 받았다·
쿵-! 뛰던 다리를 멈추고 허리를 틀었다·
기운이 뿜어지며 몸에· 특히 주먹에 집중적으로 담긴다·
투아파천무·
이식(二式) 투비의천권(鬪意備天拳)
투기로 이루어진 폭풍이 해일에 맞닿는다·
콰아아아—!!! 다가오던 해일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다·
막은 건 아니다· 저건 온전히 막기에는 사용하는 내기의 차이가 있었다·
‘투아파천무는 화력으로 담기엔 한계가 있어·’
아무리 내가 화력이 높아진들 투아파천무 자체는 압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힘을 더 넣어봐야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하니 이게 최선이다·
‘그리고· 애당초 막을 생각도 아니었고·’
막을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해선 안 됐다·
이는 그저 틈을 만들기 위함·
잠깐 해일을 멈추고 놈의 행동을 다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대로 녀석이 움직인다·
멈춘 해일 위에서 살짝 떠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손을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화아아아아악—!!!
아래 깔려있던 해일이 요동친다· 그러더니 점차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많은 화염이 전부 하늘에 떠오르는 광경이라니·
‘직접 보니까 참 대단하네·’
저러니 뭣 같은 별호가 붙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장관이 따로 없다·
떠오른 불꽃은 점차 하늘을 점령해 갔고 그것의 중심지는 놈의 손끝이다·
무얼 하려는 걸까? 정답은 진즉 알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아—!!!
그 많던 불이 전부 놈의 손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는 점차 모양을 구축하고 있었다·
커다랗고 검은색의 구슬·
모이고 또 모여 완성된 형태를 보며 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대염옥(大炎玉)·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내기 덩어리의 형상이다·
하지만 내가 찌푸린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었다·
‘저걸 저렇게 쓰다니· 머저리 같은 놈·’
어찌 저렇게 압축도가 낮을까·
저 많은 내기를 뭉쳐놨음에도 고작 저 정도· 하물며 회전력은 어떠한가·
내가 보는 저것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
본디 염옥에 필요한 압축· 그걸 유지하기 위한 회전력·
놈의 염옥에는 그 어떠한 뜻도 없이 그저 형상만 있을 뿐이다·
‘쪽팔리네·’
진심으로 창피했다·
‘저것도 무공이라고 쓰고 있었다니·’
패존· 아니 그 이전에 노야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어떤 신념도 담지 않은 무공은 그저 멋만 든 휘적임일 뿐이다· 애송아· 네 무공에는 무엇이 담겼더냐·
그때의 나는 뭐라고 대답했었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해봤자 별 볼 일 없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저 때의 나도 그렇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 그 끝의 가면 결국엔 저놈이다·
꾸욱· 주먹을 말아쥐었다·
화공을 쓰지 못한다· 상관없었다·
저 때와 다르게 나는 할 줄 아는 게 많아졌거든·
쿠구구구—!!! 집채만 한 흑염옥이 타오른다· 끝내 완성했는지 녀석이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저걸 그대로 내게 떨굴 생각인 모양·
이에 짧게 허리를 튕겼다·
미세한 반동이 어깨에 스민다·
동작은 크지 않았다·
근래 깨달은 바가 좀 있는데····
‘크지 않아도 할 것만 하면 되더라고·’
육체의 효율적인 사용법· 나는 요즘 그 부분을 깨닫고 있었다·
퉁·
짧게 내보낸 주먹이 허공에 맞닿았다· 그 순간·
우드드득—!!!
[···!!]
놈의 가슴에 뼈가 부서지며 움푹 들어갔다·
심권이 명중한 것이다·
입에서 핏물이 튀는 게 보였다· 제대로 들어간 건가?
눈을 좁히고 있으니 허공에 있던 놈의 육신이 지면으로 향하고
쿵-! 끝내 놈의 육체가 바닥을 뒹굴었다·
재빨리 놈에게 다가갔다·
[쿨럭·]
가까기 다가가니 녀석은 피를 흘리며 공허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 얼굴이 바닥에서 저러고 있으니 참 미묘했다·
점점 죽어가는 걸까· 흐릿한 시야와 불안정한 호흡이 느껴진다·
“···어우 쓰벌 힘들다·”
내 쪽도 기운을 적잖이 쓴 상태인지라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나는 놈의 멱살을 움켜잡고 말했다·
“너 진짜 뭐야·”
[···]
“대체 의도가 뭐냐고 이 새끼야·”
도대체 뭐길래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자꾸 나한테 지랄을····”
[···대답은 가져 왔나?]
“뭐?”
놈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뭐 인마?”
[그때의 대답은···· 가져 왔냐고 물었다·]
“대답?”
그 말에 좁힌 눈으로 떠올린다·
-왜 살아있는 거지?
날 볼때마다 물어오던 놈의 말· 그걸 떠올렸다·
“하·”
헛숨이 절로 나온다·
“그걸 왜 자꾸 궁금해하는데? 내가 살아있든 말든 뭐가 그렇게 중요해· 그냥 뒤져 있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야?”
[그래·]
“···이 새끼가?”
[너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
“말을 계속 심하게 하네· 미친 거야?”
그걸 왜 네가 정하느냐·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거기까진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 놈이 흐릿해져 가는 눈으로 말한다·
[여전히 대답을 정하지 못 했나 보군· 그럼 다른 걸 묻겠다·]
“내 말엔 대답을 안 하고 왜 너만 처묻는····”
[어째서 죽이지 않았지?]
“···”
눈꼬리가 제멋대로 살짝 떨렸다·
[방금 너는 나를 죽일 수 있었다· 한데 어째서 죽이지 않았지?]
맞는 말이었다· 직전에 명중한 심권· 그걸 가슴이 아닌 정확히 심장이나 머리를 노렸다면 아마 쉽게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한데 그걸 알면서도 그러지 않은 이유는····
“그거야· 물어볼 게 있으니····”
[변명이 우습구나·]
녀석이 웃었다· 처음이었다·
[나가야 할 이유가 있다며 처절히 굴 때는 언제고· 지금에 이르러선 무엇이 너를 흔들었지?]
큭큭큭· 웃을 때마다 놈의 입가에 핏물이 흘렀다·
[너는 두려운 거다·]
놈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든다·
[지금의 나를 지우기 두려운 거다· 하니 직전의 싸움에서도 끝내 패배한 것이지·]
“···”
그런 거 아니라고 부정을 뱉어야 했다· 하나 이번에도 내 입은 열리지 않는다·
[나를 잊고 싶다 청하면서도 너는 여전히 내가 있는 곳에 있다·]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지 않나?]
“···거 새끼 더럽게 말 많네·”
[무뎌졌다· 너는 너무도 무뎌졌다·]
짜증을 참으며 놈에게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뒤질 놈이 뭘 그렇게 따지는 건-·”
말을 뱉다 말고 눈을 키웠다· 뭔가 이상했다·
점점 흐려지고 생기를 잃어가던 눈에 힘이 보인다·
거칠던 호흡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고· 핏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이를 눈치챈 찰나·
화르르륵—!
“···옘병·”
느껴지는 열기에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것이 너의 패착이다·]
아까 만든 염옥·
그게 사라지지 않고 내게 떨어지고 있었다·
피하기엔 늦었다· 급히 강기를 둘렀다·
콰아아아아아—!!!!!
폭발에 휩쓸린다·
“큭!”
풍압에 몸이 날아간다·
바닥을 몇 번이나 구르고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커억····”
폭발의 여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강기로 간신히 몸을 유지했지만 반동은 입었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핏물을 흘려야 했다·
“···우와· 이 치사한 새끼·”
고통을 참으며 녀석을 바라봤다·
대체 언제부터 노린 걸까·
내 공격에 맞고서 떨어지는 걸로 시선을 끌고 그 틈에 염옥을 명중시킨다·
그렇다는 건 염옥을 만들 때부터 준비한 것일까?
뭐가 됐든 약아빠진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내가 잘 쓰는 방법이었다·
“후우···”
비틀 거리듯 몸을 일으켰다· 피해는 적지 않으나 그렇다고 많지도 않았다·
정통으로 맞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이건 내가 잘 피해서라기보단····
“이 새끼가· 자꾸 봐주려고 하네?”
놈이 의도적으로 빗겨 맞췄음이 맞았다·
후우우·
아까처럼 허공에 떠오른 놈은 하늘 위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혹여나 말하지만 착각하지 말거라·]
화르르르륵—!! 몸에서 뿜어지는 흑염이 점점 주변을 둘러싼다· 그건 얼핏 보기에 날개의 형태 같기도 했다·
[이번에도 저번과 같다면· 네놈은 죽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날개는 곧이어 허공에 빠르게 찢어지더니·
[그 빈 자리는 내가 가져갈 것이다·]
화아아아—!!!!
찢어진 무수한 조각들은 전부 염옥으로 변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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