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69
탁탁–!!
짙은 밤의 숲길을 누군가 미친 듯이 달린다· 거친 숨소리와 찡그린 인상에서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 사내였다·
“허억···헉!”
절뚝이는 몸으로 계속해서 달려간다· 뛰는 와중에도 미친 듯이 고통스러웠다·
엉망이 된 몸은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멈출 수가 없었다·
‘제기랄···제기랄–!!’
사내 일청검은 이를 악물고 계속 뛰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몸부터 움직였다·
‘계천문주는? 그놈은 어떻게 된 거지·’
모든 일들이 어떻게 된 걸까·
도대체 어쩌다가 갑자기 이렇게 됐지?
‘그놈이···· 그놈이 왜·’
성왕· 구양천이 갑작스레 청룡대로 쳐들어온 순간· 그리고 녀석이 죄를 언급한 순간·
일청검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놈과의 전투 아니 일방적인 폭력으로 몸은 만신창이었고·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정신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녀석이 죄를 언급한 순간 그렇게 됐다·
놈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저번에도 그렇고 놈은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다·
더불어 확신과 증거까지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일청검은 처소를 두고 미친 듯이 뛰었다·
죄를 들켜 벌을 받게 될까봐서? 아니다· 그저 죄를 들키게 되는 게 두려워서다·
자신은 이미 신념과 가치관을 버려버렸으니까· 사파와 손을 잡고 맹의 명예를 바닥으로 끌고 내렸으니까·
그게 자괴감이 되어 있었다·
대항하는 것도 문제다· 일청검은 이미 구양천과의 싸움에서 현실을 파악했다·
‘놈은 괴물이다·’
녀석은 괴물이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이길 수 없다·
설마 약관을 간신히 넘은 녀석이 십대고수 수준이라는 말인가? 직접 겪어도 믿을 수 없었으나 그게 현실이었다·
일청검이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준다·
이대로 도망쳐서 어디로 가야 할까· 모르겠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협을 버린 맹의 무인이 갈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목적지를 잃은 채 그저 뛰어갈 뿐이었다·
돌아가서 억울하다 표명해볼까? 아니다· 그 살기는 무슨 말을 들어도 해결이 안 될 일이다·
‘제기랄·’
어쩌다 이렇게 됐지· 백 번을 생각해도 모르겠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자신이 구양천과 척을 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면·
‘그놈이 나타났을 때부터?’
뭐가 됐든 구양천이 문제다· 그런 괴물이 왜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의 앞길을 막느냔 말이다·
‘나는····’
자신은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야 했다· 고작 이런 곳에서 쓰러져선 안 됐다·
정신이 멍하다· 이렇게 뛰어도 될까?
대원들을 두고 도망쳐선 안 되지 않았을까?
아 자신은 대원들을 두고 도망친 것이구나·
조금씩 돌아오는 정신에 일청검의 표정이 계속 굳어진다·
암담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돌아갈 길이 없다·
‘제기랄····’
이대로 맹으로 갔다간 파멸이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단 사천을 벗어나야 하나·’
그 뒤에 자신의 세가에 몸을 숨기고···· 그 다음에 누명이라며 죄를 벗을 방법을-·
쉬이익—!!
“···!!”
일청검이 급히 고개를 숙인다· 그러자 머리 위로 무언가가 지나간다·
콰아아아아—!!!!
직후 뒤편에서 폭발음과 함께 돌풍이 불었다· 걸음을 멈춘 채 뒤를 돌아봤다·
방금까지 자신이 달려오던 길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일청검은 저것이 강기로 이루어진 폭발임을 인식했다·
확인한 즉시 행동한다·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에는 누군가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으이이–!! 못 죽였어·”
턱을 간신히 넘을 것 같은 짧은 머리의 여인이다·
제 키를 훌쩍 넘는 봉을 들고 있었고 언뜻언뜻 느껴지는 살기가 꺼림칙하다·
일청검은 그녀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누군지 알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을령검후의 핏줄이라던·’
맹이 극도로 언급을 꺼리는 여인의 딸이자·
‘그놈의 부하·’
구양천의 부하인 인물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 멍청아· 조금 더 기척을 숨겼어야지·”
이어서 들려온 목소리에 일청검이 마른침을 삼킨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푸른 빛 두 개가 일렁인다· 그것이 눈동자임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내가 분명 연습하라고 했는데 보아하니 안 했나보네?”
“아 아니야···· 해 했어···!”
“쯧·”
여인의 반응에 한껏 혀를 차며 나타난 청년·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인을 보며 일청검이 뿌드득 이를 갈았다·
“···네놈····”
일청검의 말에 청년이 시선을 보내며 웃었다·
“어 반갑다·”
손을 흔들며 일청검에게 말했다·
“우리 할 얘기가 좀 많지?”
정체는 당연하게도 구양천이었다·
****************
엉망이 된 일청검을 보며 웃었다·
정말 만신창이가 따로 없다·
물론 저건 내 탓이 크다· 뼈를 몇 군데 분질러 놨고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만들어 놓기도 했으니까·
그런 몸으로 전력을 다해 뛰었으니 더 엉망이 되는 건 당연했다·
오히려 저 상태로 뛰었다는 게 신기하다·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그걸 느끼면서도 참을 만큼 조급했다는 건가·’
우습다·
그토록 명예를 차리던 양반이 저리 처절하게 망가지다니 말이다·
웃음이 나온다· 경멸이 올라올 것 같아서 강제로 입꼬리를 내린다·
“그때 네놈이 말했었지·”
일청검을 보며 말했다·
“제 목을 걸고서 자신은 의와 협을 어긴 적 없다고·”
“···이놈····”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내가 좀 싫어하는 말이긴 한데· 당신은 어때?”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눈에는 원망이 맺혀 있었다·
“대답을 못 하네?”
“감히···· 감히 네놈이 나를···!”
“그건 대답이 아니야· 내가 방금 물었잖아· 목을 건 건 어떻게 됐냐고·”
“하···!”
비틀거리며 일청검이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이리 누명을 씌우려는 거지?”
“누명?”
하하하·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여기까지 와서도 날 실망 시키지를 않네· 여러 의미로 대단한 양반이야·”
“모두 모함이고 누명이다· 분명 네놈이 일을 꾸며 내게 뒤집어씌우는 것이겠지·”
오·
속으로 감탄을 뱉었다· 반은 맞았다· 눈치가 역시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증거까지 다 모아서 가져왔더니·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거야 뭐야· 미쳤어?”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무슨 증거를 구했다는 거지?”
“뭐긴· 네놈이 지금까지 했던 일의 관함이지·”
하나하나 말해줘야 하나? 그건 아까 해서 좀 귀찮은데· 그래도 보던 정이 있으니 해주기로 했다·
“첫 번째로는 날 독살하고자 의뢰를 넣었던 일이야· 그 부분은 당문의 도움과 직접 투약을 준비하던 놈의 자백으로 증거를 받아놨고····”
어떤 독을 썼는지는 당문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나· 확실한 입증을 위해 이름을 가져다 썼고·
투약이야 뭐 잡아내는 건 쉬웠다·
“네놈이 날 죽이려고 계천문주와 손을 쓰던 정황과 증거도 모아놨다·”
“헛소리를···!”
“헛소리는 새끼야· 이게 정말 헛소리로 보여?”
어깨를 살짝 풀며 말을 덧붙인다·
“사실은 말이야· 정말 네놈이 날 죽이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어·”
이 또한 반쯤은 진심이었다·
“사람이 좀 좆 같으면 죽이고 싶을 수 있고· 시도할 수도 있지·”
시도하는 건 문제지만 이건 그냥 내뱉었다· 중요한 건 다음 말이었으니까·
“근데 적어도 정파라는 놈이 사파 새끼랑 손을 섞진 말았어야지·”
“···”
“의와 협을 추구해? 누구보다 명예로워? 개소리하지 마· 봐봐· 지금 땅에 나자빠진 명예는 정녕 네 것이 아닌가?”
땅바닥을 발끝으로 툭툭 쳤다·
일청검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말이야· 정파를 극도로 싫어해· 그리고 그건 무림맹도 마찬가지야·”
전생도 그렇고 이번 생도 그렇고·
정파라 불리는 놈들을 혐오한다· 사파는 물론 더 혐오하고· 다만·
“근데 솔직히 정파가 싫은 게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눈으로 차오르는 감정을 짓눌렀다·
“너희 같은 새끼들이 증오스러운 거야·”
협의를 탈로 쓰고 속이 검게 그을린 놈들·
그게 미칠 듯이 가증스럽고 증오스러웠다·
“크윽····”
일청검이 침음을 흘린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상관없다·
나는 한 걸음을 물러서며 말했다·
“솔직히 누명이니 오명이니· 그런 게 있었으면 이렇게 추잡하게 도망치진 않았겠지· 그렇지 않아?”
정곡을 찔러 넣으니 일청검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런 놈을 보며 기회를 주려는 듯 말했다·
“엿 같아서 당장 죽여버릴까 싶지만 그래도 기회를 줄게·”
“뭐···?”
기회라는 말에 일청검의 눈이 내게 향한다·
그 시선을 마주하며 봉순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얘 이겨봐·”
“으응?”
“뭐라···?”
“그러면 그냥 보내줄게· 네놈이 어디를 가든 무얼 하려고 하든· 지금은 봐주겠다고·”
표정을 보니 봉순이를 이겨봐라· 그 말을 이해 못 하는 것 같았다·
“왜? 싫어? 이거 꽤 괜찮은 기회인데? 나랑 싸우고 싶지는 않잖아·”
“···정녕 미치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가· 아 혹시 못 믿겠으면 내 가문과 이름 원하면 부모님까지 걸고 맹세하지·”
“···”
“이기기만 해· 그럼 얌전히 보내준다니까?”
“하····”
절뚝이던 일청검의 눈에 묘한 감정이 들끓는다·
“···날 정말 어디까지 무시할 생각이지? 아무리 내 상태가 안 좋다고 한들···· 나는····”
“말이 길어·”
개소리가 늘어나길래 잘라냈다·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
일청검은 대답을 말 대신 허리춤에 손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말로 하지 않는 건 남은 쥐똥만 한 자존심이라는 걸까·
저렇게까지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는 걸까· 신기했다·
“···후회할 거다·”
“옘병·”
와중에도 뭣 같은 소리네·
그래도 괜찮다· 저렇게 나와야 이 미친년을 데려온 이유가 있으니까·
“응? 나 싸워도 돼?”
대화를 많이 늦게 이해한 봉순이가 내게 물었고·
“어· 싸워·”
내 허락이 떨어지자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진짜?”
“어·”
“얼마나 해도 되는데?”
“마음껏·”
“어어?”
대화가 진행될수록 봉순이의 상태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점점 피부의 털이 저릿저릿하게 올라온다· 소름이었다·
“그러면 그러면·”
봉순이가 입꼬리를 잔뜩 올린다· 그 순간·
“죽여도 돼?”
사아아아아아—!!!
그녀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졌다·
“···!”
살기를 몸으로 받은 일청검이 흠칫한다·
지독하고 또 지독하다· 이렇게 순수한 살기는 아마 처음이겠지·
다른 원망이나 여타 불필요한 감정 없이· 정말 순수한 살의·
봉순이의 살기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살기를 받아내며 내가 마지막 대답을 내놓았다·
“어 죽여·”
“히히히히히히—!!!”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봉순이가 미친 듯이 웃었고·
끄그극–!!
들고 있던 봉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끝 쪽이 뭉툭하던 것이 점점 날카롭게 변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창의 형태로 변환됐다·
휘리리릭–!!
창을 거칠게 몇 번 돌리던 봉순이가 태세를 준비한다· 살기에 투기가 스미기 시작했다·
자세도 특이했다· 창술의 기본자세가 아니다·
한 손은 창을 들고· 남은 한 손을 땅에 짚고 낮게 엎드린다· 얼핏 보면 짐승이 자세를 한껏 구부린 것 같았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자세에 일청검이 당황한다· 그걸 보고 내가 말했다·
“검 뽑아· 방심하다 처맞지 말고· 얘 좀 무섭다?”
“···저게 무슨·”
내 경고에도 일청검은 혼란스러운 반응을 내보였고· 상대의 불안을 확인한 봉순이는·
“캬아아아하하하하하—!!”
울음소리와 닮은 웃음을 터트리며 그대로 도약했다·
창이 일청검을 향해 파고든다· 녀석이 급히 검을 뽑아 방어를 취하지만·
콰직-!
창끝이 놈의 검면을 타격하고·
쿠우우웅-!
“컥!”
그대로 충격이 터지면서 숲의 나무를 전부 부수며 멀리 날아간다·
콰드드득–!!
“하하하하하하하—!!!”
봉순이는 놓칠 생각이 없다는 듯 웃으며 놈을 따라 빠르게 몸을 날린다·
“···허 참·”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주변 바위에 걸터앉았다·
솔직히 조금 걱정됐다· 봉순이가 저 상태가 되면 나중에 말리기도 조금 버거워지지만 아무리 다친 상태라고 해도 일청검을 상대하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했다·
맨정신으로는 조금 위험하다·
하면 과연 얼마나 걸릴까·
‘내가 보기엔 그리 오래는 안 걸릴 것 같은데·’
일청검이 패배하든 봉순이가 지쳐 쓰러지든·
뭐가 됐든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 판단하며 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매만졌다·
매끈한 단면을 지닌 물건· 금이 간 가면이었다·
‘자 그럼····’
저쪽이 끝나는 대로·
‘이것도 쓸 준비를 해볼까·’
먹잇감을 이용해 더 큰 먹잇감을 노릴 준비를 해야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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