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78
머리가 어지럽다·
내가 모르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릴 때마다 토악질이 올라왔다·
가슴을 움켜잡고 숨을 골라보지만 그마저 쉽지 않다·
뭐지? 이게 무슨 느낌이지?
앞이 흐릿하다·
소리만 들려오던 것이 점점 눈을 뿌옇게 만든다·
광경이 달라졌다·
밤 속에 마주 보던 당소열이 아닌 어딘가의 모습이 보였다·
흐릿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절대 밤은 아니다
오히려 환한 낮이다· 어렴풋이 단풍이 보이는 것이 지금의 계절과 같은 것 같았다·
어디지? 도대체 어디고 언제기에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지는 걸까·
그리고·
‘조금만 더·’
당황스러운 한 편 나는 그 광경을 더 보고 싶어 집중하고 있었다·
눈을 뗄 수 없다고 할까· 아니면 그저 그립다고 할까·
스스로 알 수 없는 감정이다·
다만 어떻게든 보고 싶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 본 곳에서 처음 본 오두막에 앞에 앉은 나와 누군가·
-그래 그렇게·
이름을 부른 것에 여인이 만족했는지 웃었다·
한데·
-앞으로도 쭉 그렇게· 그렇게 해줘·
웃고 있는 목소리에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왜 그러는 거지?
무엇이 그리 슬프냐고· 어째서 원하는 걸 들어줬음에도 슬퍼하느냐고·
그렇게 물어보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여인이 말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기억 속에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말 해·’
하지만 듣고 싶었다·
‘말하라고·’
어떻게든 붙잡고 묻고 싶지만 기억속의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것 같았다·
갑갑하다· 몸을 못 움직이는 이 순간이 더 그렇다·
왜 이렇게 조급하고 답답한 걸까·
이 또한 알 수 없었다·
‘움직이란 말이야·’
아득바득 이를 갈며 용을 써본다· 이런다고 기억 속에서 내가 움직일 리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별짓을 다 하고 있던 찰나·
스윽·
‘···!’
흐릿한 광경 속 내 몸이 움직인다·
내가 움직인 걸까? 확신은 안 드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건 맞았다·
손이 올라간다·
그걸 본 여인이 흠칫한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
놀란 듯한 음성이 들려오고·
그 순간·
“공자님···!”
“···!”
끼어든 목소리에 정신이 깨어났다·
“공자님···· 괜찮으세요?”
“···아····”
당소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내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왜···왜 울어요 공자님· 저 때문인가요···?”
운다고? 그 말에 다급히 손으로 눈가를 쓸었다·
정말이었다· 조금이라고 하나 눈물이 맺혀 있었다·
어이가 없다·
‘뭐야 이게·’
갑자기 왜 찌질하게 질질 짜고 있는 거지? 방금의 기억은 또 뭐고·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잠깐 벙쩌하고 있는데·
“죄 죄송해요····”
당소열의 말에 눈을 키워야 했다·
“뭐?”
“제가···· 제가 억지 부려서 그런 거죠? 죄송해요···· 그런 게 아니라 저는····”
“무슨 소리야· 아니야 그런 거·”
다급히 말을 덧붙이지만 이미 당소열의 반응은 너무나 흔들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아니 잠····”
“먼저 가볼게요· 편히 쉬세요·”
뭐라 말하며 붙잡기도 전에 당소열이 뛰쳐나가려 한다·
차라리 지금은 그냥 놓아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게 일순 생각하지만·
그때· 돌아서는 당소열의 눈을 확인했다·
붉어진 눈매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다·
그걸 확인하니 내 손이 먼저 나갔다·
당소열을 붙잡아 그대로 다시 품에 안았다·
“···미안하다·”
“···”
“그런 거 아니야· 진짜로·”
열심히 변명을 내뱉는다· 당소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내 등을 꾹 붙잡았다·
자신을 사랑하느냐 묻던 말이 머리에 맴돈다· 그때 내가 뱉으려 했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구태여 찾지 않아도 됐다· 얼마나 지났다고 까먹겠는가·
···문제는·
“지금은 대답을 못 해·”
나는 그 말의 대답을 꺼낼 수 없다는 것이다·
말을 들은 당소열이 품에서 꼼지락거린다·
“···왜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확신이 안 들어서요···? 아니면 그런게 아니라서요?”
목소리에 담긴 떨림이 당소열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아니· 둘 다 아니야·”
확신이 안 든다? 그럴 리가· 그렇다면 그런 감정이 아니라서? 그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지금은 뱉을 수 없어서야·”
적어도 지금은· 지금은 안 됐다·
이제와서 말로 뱉어버리면 그대로 참고 있던 게 모조리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데·’
내가 아무리 등신 새끼라지만 날 바라보는 애들이 어떤 감정으로 보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고·
그런 감정을 담아 내게 들러붙는 건 나도 참기 벅찬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지금은 안 되니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지금은 안 된다·
적어도 앞에 있는 것들이 다 해결하고 난 다음·
그때가 되어서 하는 게 맞았다·
그러니까·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봐·”
“···”
등을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간다·
“조금이···얼마만큼인데요?”
다소 어린애 같은 물음이다·
며칠을 더 지내야 그날이 오냐 묻던 그때의 나처럼 말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길게 고민해서는 안 됐다·
이번만큼은 그냥 속에 있는 그대로 내뱉어야 했다·
“얼마 안 걸릴 거야·”
확실한 대답은 못 해도 최선을 다했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닐 것이다·
아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해도 내가 그렇지 않게 만들 생각이었다·
“···”
끝내 애매한 대답을 뱉어냈지만 당소열은 이에 관해 무엇도 따지지 않았다·
그저 품에 안긴 채로 가만히 내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있다·
그렇게 한참이 흐르고·
“···알겠어요·”
당소열이 여전히 가슴에 고개를 빼지 않은 채 말했다·
“기다릴게요···· 저는 그런 거 자신 있으니까요·”
묘하게 쓰라린 말이었다·
“대신에···대신에 말이에요·”
당소열의 고개가 들린다· 시선을 마주했다· 눈가는 여전히 붉었다·
“만약 공자님께서 그 말을 하게 될 때가 되면· 저한테 처음으로 말해주세요·”
“···어?”
“알고 있어요· 공자님이 한 사람한테 할 말이 아니라는 걸요·”
“···”
세상 쓰레기같이 느껴지는데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시선을 피할 수도 없기에 침음만 삼켰다·
“공자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또 무슨 일을 하든· 그 모습조차 사랑할 수 있는 게 저뿐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괜찮아요·”
“···”
“히히···· 지금 표정 되게 웃겨요 공자님·”
“···그····”
“약속해 주실래요?”
할 거라면 제일 처음 자신에게 해달라·
그리 말하는 당소열을 보다 볼을 긁적이다 말했다·
“···노력해 볼게·”
“네·”
이 하찮은 대답으로 됐는지 당소열이 표정을 바꾼다·
“꼭· 노력해주세요·”
당소열이 배시시 웃었고·
나도 그 미소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얘기가 끝나려나 싶을 즈음·
“근데요· 공자님·”
“응?”
당소열이 물었다·
“예화가 누구예요?”
“···”
어 시발·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당소열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가 말도 안 되게 무서웠다·
‘들었구나·’
나도 모르게 뱉은 말인데 그걸 또 들은 모양이다·
한마디로 좆 됐다는 뜻이었다·
“여자예요? 누구?”
“···내가 그런 말을 했나? 잘 모르겠-·”
“표정 보니까 말 뱉은 거 알고 계시네요·”
“···”
제기랄·
도망칠까 진심으로 고민했지만 당소열이 날 안고 있는 팔에 힘을 힘껏 주고 있었다·
이러다 몸이 바스러질까 걱정될 수준으로 말이다·
우드득·
“아···아픈데?”
“아프라고 하는 거예요·”
“아 응·”
그렇구나· 아프라고 하는 거구나· 그래 그럼 당해야겠지·
“누구예요?”
“···아니 그게 그·”
“공자님·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긴 그렇지만· 더 늘리는 건 조금 싫기는 해요·”
“늘리긴 누가 뭘 늘린다고 그래·”
“공자님도 양심이란 게 있으시잖아요· 그렇죠?”
“···”
그런 게 있던가· 그걸 따지기엔 너무 멀리 온 것 같았다·
“···그렇죠?”
“그럼· 있지···· 당연히·”
목소리에 살기가 담기기에 다급히 대답했다· 지금은 없던 양심도 만들어야 할 때였다·
“누구예요?”
이것만큼은 죽어도 그냥 안 넘어가겠다는 태도였다· 아까 천마 관련 된 것도 이만큼은 아니었는데 눈빛이 너무 진심이다·
문제는·
“···그러게·”
“네?”
내가 뱉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누굴까·”
“···그게 무슨···?”
“진짜 모르겠어· 누굴까 그게·”
나도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다·
내 대답에 당소열의 미간이 찌푸려지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예화라는 여인이 누군지는 내가 더 알고 싶었다·
미칠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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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아–!
밤바람에 풀잎이 흔들린다· 떠 있는 달은 반월에 가까웠다·
가을의 끝을 알려주듯 겨울 냄새가 바람결에 스미고 있을 즈음·
“···”
누군가 바위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하늘· 그게 신기한 걸까 여인은 어딘가 멍한 눈으로 그곳만을 바라본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조금도 짐작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음·”
가만히 하늘만 보던 여인이 문득 낮게 목소리를 흘리며 손을 움직인다·
손을 피고 제 가슴을 몇 번 쓸어내렸다·
“···으으음····”
뭔가 이상하다는 듯한 반응· 동시에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까지·
여인은 예쁜 자색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뭐지?”
오늘따라 무언가 이상했다·
“뭐지·”
설명하기엔 어렵다·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더 어렵다·
알 수 없는 감각에 그저 머리만 이리저리 갸웃거려야 했다·
“음· 음· 음·”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낸다·
성숙한 외형에 비해 다소 아이 같은 행동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던 여인이 그대로 멈추고는·
“모르겠어· 음 모르겠는데·”
결론을 내렸다·
“보고싶네·”
누구를 향한 보고 싶음일까? 그건 여인 스스로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본능에 따라 내뱉는 말이다·
“보고싶네?”
그래서 바로 물음으로 바꾼다·
“음·”
여인의 다리가 허공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그때·
-연아! 연아야! 얘는 또 어디 간 거야?
멀찍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여인이 곧장 동작을 멈춘다·
그 순간 여인의 그림자에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주변을 감쌌다·
-연···!
그제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기에 택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내 이름은 그게 아니야·’
자신은 연이 아니다·
언니가 부르는 말이기에 가만히 있는 것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본능이 알려줬다· 자신의 이름은 저것이 아니라고·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그럼 내 이름은 뭐지?’
자신의 이름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는 여인이 지금까지 해왔던 고민 중 가장 깊은 것이었다·
언니가 그리 부리는 게 싫다면 아니라고· 자신은 그런 이름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될 터인데·
‘모르겠어·’
여인은 싫다고 말하면서 정작 제 이름이 뭔지 알지 못했다·
‘···모르겠어·’
이름이 무엇인가·
아니 사실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누가 불러주느냐· 여인인 그게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여인은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음····”
먹먹해진 가슴을 움켜잡는다· 갑갑하고 아프다·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졌다·
스으으으–!
기척을 숨기고자 만들어 낸 공간을 더 좁히며 여인은 눈을 감았다·
그녀는 홀로인 밤이 싫었고·
그저 빛이 찾아와 낮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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