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11
현으로 내려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신 노야에게 향했다·
확인해볼 게 있던 상황인데 지금은 그것보다 이게 더 급해져 어쩔 수 없었다·
“응?”
다시 나타난 날 보고 신 노야가 눈을 좁힌다·
“도망친 거 아니었더냐·”
신 노야는 아까 같이 있던 설영이란 고양이 인간과 함께 쓰러진 제자들을 치우고 있었다·
치운다고 하면 좀 이상하긴 한데· 보이기는 그랬다·
아 정확히는 신 노야는 가만히 있고 설영만 치우고 있었지만 말이다·
“도망친 게 아니라 작전상 후퇴였습니다·”
“변명할 생각이 없는 대답이로구나·”
노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다행인 건 그것뿐이지 더는 때리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기껏 후퇴하더니 왜 다시 온 게냐· 볼일이 있던 것 같은데·”
“···볼일이야 있기는 했지요· 있었는데·”
힐끔· 천마를 쳐다봤다· 본래 현에서 봐야 할 볼일을 보지 못한 게 저것 때문이었다·
“이상한 걸 들어서 확인부터 해보려고 왔습니다·”
“음?”
내 말에 신 노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걸 보며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 녀석이 어제 밖을 싸돌아다니다 이상한 걸 봤다고 해서요·”
말을 들은 신 노야가 천마를 쳐다본다·
“이상한 거라니?”
그 말은 천마 대신 내가 대답했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다 사라졌다고 하는데···· 상황이 좀 이상해서 말입니다·”
“쳐다보다가 사라졌다고?”
신 노야가 인상을 찌푸린다· 반응을 보니 확실히 정상적인 건 아닌 것 같았다·
“어디서 말이더냐·”
“말로는 이곳 밖이라고 하던데요·”
“···밖?”
“예·”
밖이란 얘길 듣고 신 노야와 설영이 눈을 마주친다· 무언가를 눈치챈 느낌이었다·
“생김새는 보았느냐·”
생김새를 물어본다· 저 말인즉슨·
‘대충 예상가는 인물이 있다는 뜻이네·’
그걸 예상하며 대충 말을 내뱉었다·
“갈색 머리칼에 검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
“음·”
말을 듣고 설영이 눈을 키우고 신 노야가 침음을 흘렸다·
“장문인····”
설영이 조심스레 신 노야를 부른다·
“그래·”
신 노야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야랑(夜狼)이로구나·”
‘야랑?’
노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노야는 그 존재가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것 같았다·
“노야· 야랑이 뭡니까?”
하여 이에 대해 묻자 노야가 몸을 일으키며 답한다·
“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어디든 나타나는 눈과 귀가 밝은 여인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압니까?”
“으음·”
노야가 잠시 제 수염을 슬쩍 쓸어내리고는 다른 말을 덧붙여준다·
“부르는 말은 여러 가지긴 하나 본인 입으로 내뱉은 이름은 야랑이라 그리 부른다만····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말하는 노야의 표정은·
“만계의 눈이라 불리는 존재다·”
상당히 귀찮다는 감정이 가득 느껴졌다·
*********
말을 들은 노야는 곧장 나와 같이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는 않았고 애당초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이기도 했다·
내부에 존재하는 가장 인파가 많은 곳·
화산파라 불린 이곳으로 가기 위해 지나쳤던 현이었다·
안 그래도 오려고 했던 곳으로 다시 온 건 좋다만·
‘···굳이 데리고 온 곳이 여기인가?’
노야가 날 갑자기 여기로 왜 데리고 왔는지는 의문이었다·
다만 군말 말고 따라오라 들었기에 그냥 걸어갈 뿐이었다·
그 뒤로도 대략 일다경 정도를 걸은 다음에서야 노야가 걸음을 멈췄다·
“···여긴?”
도착한 곳을 살피며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갑자기 데리고 움직이길래 어딜 가려나 했는데·
“찻집 아닙니까?”
대뜸 앞에 있는 건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찻집이었다·
허름해 보이는 듯 나름의 분위기를 갖춘 건물·
미적감각이 전무한 나조차도 나름 예쁘지 않나? 싶은 건물이었는데·
“맞다· 들어가자·”
“···진짜 여기인가요?”
“아니·”
노야는 내 물음을 무시한 채 건물로 들어갔고·
나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 노야를 따라 들어갔다·
끼이익·
문 열리는 특유의 소리를 들으며 내부로 들어서자·
‘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깨끗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공간이다· 놓여진 식탁이나 은은히 풍기는 차 냄새는 향기롭기 짝이 없다만·
‘왜 이렇게 넓어?’
밖에서 본 건물에 비해 내부가 비정상적으로 넓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 작은 건물에서 이런 내부가 있을 수가 없거늘·
뭐지 이 이질감은?
그걸 느끼며 천마를 쳐다봤다·
그녀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지 어딘가 신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노야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이냐· 그리 물으려던 찰나·
“거북이·”
노야가 잔뜩 구겨진 얼굴로 허공을 보며 말한다·
“일이 터졌으니 당장 나와라·”
“노야 누구한테 말하는 겁니까?”
말을 듣고 기감을 높이지만 느껴지는 인기척은 여기 셋 말고는 없었다·
그게 이상해 부르지만 노야는 내 말은 거들떠도 안 듣는지 계속 허공을 보며 외칠 뿐이었다·
“거북이-!”
점점 언성이 커진다· 그럼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급해 죽겠는데 장난이라도 치자는 겐가·”
노야가 눈을 좁히며 손을 뻗었다·
스르르륵–!!
“···!”
그러자 내 팔에 있던 귀정이 풀려 노야의 손에 잡히고·
저번처럼 검의 형태로 변했다·
‘저 새끼가·’
자꾸 전 주인이 부른다고 휘리릭 가는 게 상당히 열 받는다·
그런 내 열 받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귀정을 움켜잡은 노야가 순간 기세를 끌어 올렸다·
쿠구구구구구구구—!!!
“···!!”
실로 어마어마한 압력이었다·
느끼자마자 몸이 수축하는 건 물론이고 몸에 있던 기운이 제멋대로 흘러나와 강제로 몸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정말 본능에 의한 행동이었다·
‘미친····’
이게 무슨 기압이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수준이었다·
기 자체만으로도 몸이 붕괴할 것 같은 감각이다·
이게 신 노야의 기압이란 말인가·
실로 아득한 벽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셋을 샐 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여길 쑥대밭으로 만들겠다·”
노야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리 내뱉더니· 그걸 증명하겠다는 듯 힘을 점점 더 주기 시작했다·
살짝씩 흩날리는 매화가 어쩐지 거칠고 사납게만 느껴진다·
“셋····”
귀정이 움직였다·
“하나·”
그대로 노야가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이해할 수가 없구나·”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찌 셋을 세고 바로 하나가 되는 게지···? 네놈은 숫자를 배운 적이 없는 게냐?”
“나타났군·”
노야가 나타난 인물을 보며 씨익 웃는다· 그와 동시에 기세가 뚝 하고 사라졌다·
‘저자가 노야가 말한 거북이란 존재인가?’
왜 거북이라 부르는 걸까 싶어 쳐다보는데·
‘거북이네····’
이유를 즉시 알 수 있었다·
진짜 거북이었다· 아니 완전한 거북이라기보단 거북이 인간이라고 할까·
‘이제는 별····’
늑대에 고양이에 개에 온 갖게 다 나오고 있으니 뭘 더 놀라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왜 갑자기 나타나서 행패인 게냐·”
그렇게 거북이라 불린 노인은 노야를 보며 마른 목소리로 말해왔다·
“얌전히 불러도 모자랄 판에 안 나오면 뭐?”
“이렇게 해야 네놈이 나오지 않느냐·”
“안 그래도 문이 열린 시점에 나오고 있었다· 고얀 놈· 늙어서 무릎 아픈 것도 힘들거늘···끄으응····”
거북이가 주변 의자를 가져와 걸터 앉는다·
‘···뭐지?’
방금까지 저기 의자가 있었나? 없던 것 같은데·
“아이고 허리야····”
거북이는 연신 지친 기색을 보이며 노야에게 물었다·
“망할 놈아···· 그래서 왜 갑자기 찾아온 게냐·”
“오랜만에 보러 왔는데 차도 내오지 않는 겐가? 속이 너무 좁지 않으냐·”
“차는 손님에게만 내오는 것이다· 네놈 같은 양아치에게 주는 게 아니니라·”
“오····”
나도 모르게 감탄해버렸다· 실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특히 신 노야를 보고 양아치라고 하는 말은 심장이 뛸 만큼 감동적이더라·
“···”
“크흠·”
다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감탄했는지 노야가 째려보는 게 느껴져 애써 무시해야 했다·
“차는 됐다· 어차피 그런 걸 마시러 온 게 아니니 말이야·”
“···하면 뭣 하러 온 게냐·”
빨리 사라지라는 느낌이 가득히 느껴지지만 노야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왜 왔는지는 알고 있을 텐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늙어서 귀가 먹었는가 요즘 말이 잘 안 들리는····”
“셋-·”
“데···· 이번만큼은 잘 들리는구나·”
다시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들기 전 거북이가 다급히 노야에게 말했다·
“빌어먹을 녀석·”
욕은 덤이었다·
그 말에 노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할 시간이다 거북이· 쉴 만큼 쉬었으면 움직여라·”
그 말에 거북이의 주름이 더없이 깊어진다·
“장문인· 그때도 말했지만···· 기간은 석 달의 한 번이라 했을 터· 지금은 고작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네· 이건 계약 위반일 텐데?”
“말이야 그랬지· 근데 거북이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끼긱· 노야가 귀정을 지팡이 삼아 바닥에 꽂아넣었다·
“막 쪽에 문제가 생긴 이상 수리할 수 있는 건 자네뿐이고· 그대로 뒀다간 자네에게도 좋지 않을 상황일 텐데?”
‘막?’
무슨 막을 뜻하는 걸까· 의문이 스칠 즈음·
“야랑이 눈치챘다·”
신 노야가 말했고·
“흐으으응·”
거북이가 말을 듣고 고개를 느릿하게 기울였다·
“문제가 생긴 이상 늦기 전에 위치를 옮길 필요가 있다·”
“으으으음·”
거북이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조차 느려 쳐다보는데 속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거북이·”
“그래도 계약 위반인 건 다르지 않으니···· 조건이 있다·”
거북이의 말에 신 노야가 인상을 찌푸렸다·
“조건···?”
“장문인 말마따나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내게도 손해인 건 맞으나···실상 그건 또 아니란 걸 장문인도 알 터····”
“···”
노야는 반박하지 않았다 거북이의 말이 맞다는 뜻이었다·
“하니 내게도 조건이 있으면 하는데?”
“···일단 들어나 보지·”
“매실차를 가게에 일 년간 팔게 해줄 것·”
‘응?’
조건이라고 내뱉은 말에 잠깐 멈칫했다·
매실차···? 갑자기?
‘아 여기 찻집이었지·’
찻집이니 이상할 게 없는 말이긴 한데···저게 조건이라고?
그게 이상해서 눈을 좁히는데·
“큭! 역시···! 네놈 그걸 노리고 있었나?”
노야가 아차 싶었다는 듯 반응했다· 그게 더 이상했다· 뭔데 왜 충격을 받는데?
“이게 아니면 난 받아들일 수 없네·”
거북이는 단호한 태도였다· 신 노야는 일생일대의 고민을 거듭한다·
그리고는·
“···일 년은 과하구나· 석 달·”
이내 조건 조율에 나섰다·
“위반인 것 치고 우스운 조건이로다· 아홉 달·”
“물량적으로나 귀찮아서라도 그렇겐 못해· 내가 양보해줄 수 있는 건 반년인 최대일세·”
“음·”
거북이가 잠시 고민한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까딱까딱 거렸다·
“반년···· 반년인가· 반년이라····”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선·
“좋아· 그렇게 하지·”
“크윽···”
“장문인· 좋은 거래였네·”
만족했다는 듯 거북이가 몸을 일으켰다·
그걸 본 신 노야는 마치 패배했다는 듯 주먹을 말아쥐었다·
“제기랄····”
“···”
대체 저게 뭐 하는 꼴일까·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어 벙찐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때·
“아· 참·”
거북이가 움직이다 말고 이번엔 이쪽을 쳐다봤다·
“깜빡하고 있었는데·”
들고 있던 지팡이로 날 콕 짚는다· 그 직후·
“저 괴물은 뭔가?”
“···”
거북이 새끼가 날 보며 세상 예의 없는 말을 뱉어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