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28
콰아아아아아—!!!
바닥에 퍼진 밤이 들판을 모두 잡아먹었다· 영역의 범위는 족히 거대한 호수라 봐도 될 지경·
끝 없이 퍼진 어둠은 사방에 있는 나무와 수풀을 잡아 삼켰다·
그렇게 비로소 온전히 묵색으로 만들어진 영역이 생성됐다·
파삭·
파삭·
검은 땅에선 알 수 없는 재(滓)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불길했다·
그리고 불쾌했다·
“···”
가면을 쓴 여인은 그런 영역을 가면 너머로 가만히 지켜본다·
눈알을 굴렸다·
이 영역을 만든 존재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때·
질퍽-!
“–!”
발이 지면에 파고들며 중심이 무너진다·
그리고·
쉬이이익—!!!
바닥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나와 여인의 목을 향해 파고들었다·
손을 움직였다· 기운으로 이루어진 검이 가시를 잘라낸다·
힘을 줘서 발을 빼냈다· 그대로 도약해 거리를 벌린다·
하지만·
촤아아악–!!
바닥에서 무수한 손이 뻗어 나와 여인을 향해 달려든다·
그걸 보고 여인이 다시금 검을 휘두르려고 하지만·
콱-!
갑자기 등 뒤가 잡혔다·
“어디가?”
이미 영역의 주인은 등 뒤로 이동해 있었다·
목이 잡힌 채 시야가 뒤바뀐다· 속박을 풀기도 전에 잡아 바닥으로 내던졌다·
파아아아—!!
몸이 그대로 지면에 파고든다·
진흙 속에 파묻히듯 질척거리는 감촉이 여인을 감쌌다·
더불어 상대는 그걸 보고만 있을 리 없다·
꾸르르르르륵—!!!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 치듯 한곳에 모여든다·
보기만해도 어마어마한 압력이었다·
점차 영역이 범위를 줄여간다· 이는 단순히 줄어드는 게 아니라 압축이었다·
소용돌이에 따라 범이를 작게 만들고·
작아지지만 질량을 줄지 않는다·
그에 따라 압력은 올라가니 어마어마한 기운이 모여든다·
그걸 손으로 조절하다가····
검은 머리의 여인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짝-!
그러자·
쿠아아아아아아—!!!
모여든 기운이 일순 폭발을 일으켰다·
터지는 범위가 상상을 초월했다·
본디 어둠이 자리 잡았던 지면 전역이 터져나갔고·
남은 것은 거대한 흔적만이 남은 깊게 파인 구덩이였다·
사아아아····
아직 남은 검은 기운이 재처럼 흩날리고·
그걸 보는 천마의 자색 눈동자는 무덤덤했다·
처리해서? 아니다·
처리하지 못했다·
구덩이의 중심·
그곳을 보며 천마가 서서히 허공에 떠있던 몸을 아래로 내린다·
그곳에는 반짝이는 자홍색 빛이 작은 구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끼릭·
천마가 검을 움켜잡는다·
그대로 가볍게 내지른다·
더없이 간단한 동작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다·
검은색 반월이 묵직한 태세를 보이며 구체로 날아들었다·
콰아앙—!!
기운이 구체에 맞닿으며 폭발했다·
충격에 풍압이 터져나오지만 구체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음·”
천마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도 타격이 없다· 그 부분이 이상했다·
“뭐지·”
약했던 걸까?
천마가 손에 힘을 더 준다·
검격 한 번에 다소 얕아진 검이 다시금 두꺼워졌다·
아까보다 더 강하게 내질러보자·
그렇게 생각한 천마가 이번엔 제대로 자세를 잡고 힘을 주려는데·
픽-!
그때 갑자기 구체가 걷히며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온다·
여인이 검 끝으로 바닥을 긁으며 천마에게 파고들었고·
그대로 검을 올려친다·
깡-!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검이 속도를 받기 전에 천마가 막아냈기 때문이다·
천마가 천천히 손을 내뻗는다·
그대로 얼굴을 잡으려는데·
파삭-!
“응?”
무언가 부서졌다·
천마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검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쉬이이이익—!!!
여인의 검이 천마의 얼굴을 향한다·
급히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해냈다·
피하며 천마가 고개를 까딱였다·
“뭐야?”
갑자기 왜 부서진 걸까·
천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
생각을 하기엔 계속해서 공격이 들어온다· 고민할 틈이 없었다·
빠르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공격이 터진 이후에 들려왔다·
그만큼 여인의 검이 빠르다는 뜻이었으나·
천마는 그런 공격도 무표정하게 피해냈다·
뭔가 익숙했다·
왜 익숙한지 몰라도 이상하게 익숙했다·
본 적이 있는 걸까? 모르겠다·
천마는 이런 부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원래도 그렇다·
어딘가 익숙해 보여도 세상은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했다·
이번에도 그럴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것보다·
탕-!
천마는 저 여인의 가면 너머가 궁금했다·
검을 기운으로 밀어내며 천마가 여인에게 다가간다·
거리를 좁힌다·
동시에 천마의 몸에서 기운이 뿜어진다·
태생부터 지니고 있던 방대한 어둠이었다·
그 모든 어둠이 여인에게 파고든다·
천마는 구태여 조절하지 않았다·
애초에 조절하는 법조차 모른다·
기운을 보며 여인이 멈칫한다·
그리고·
휘익-!
살짝 한 걸음 뒤로 빠졌다·
딱 한 걸음이었다·
그러더니 검을 움켜잡고 허리를 튼다·
곧이어 검이 휘둘린다·
그때 천마는 분명히 봤다·
‘하얀색?’
검에 자홍빛 기운과 함께 백색의 무언가가 검에 휘감겨 있다·
천마는 그걸 뚫어져라 쳐다봤다·
시선이 뺏겼다·
카드드득—!!
촤아악-!
덕분에 기운이 찢겨지며 제 몸에 생채기가 나도 그걸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아프다·
천마가 가슴을 움켜잡고 뒤로 물러났다·
“으으응····”
입술을 깨물었다·
아팠다· 그것도 심하게·
치이이익····
상처에선 알 수 없는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들리고· 그럴수록 천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파····”
가슴에서 손을 뗐다·
손에는 피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게다가 옷이 더럽혀졌다·
제 피로 더러워진 옷을 보며 천마가 울상을 짓는다·
‘혼날 것 같아·’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처박혀 있으라고 했다·
꼴도 보기 싫다느니 어디 가서 문제 만들지 말라고 했는데·
“으음····”
이러면 또 뭐라고 듣는 건가?
더 싫어하면 싫은데·
그가 꺼지라고 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천마가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이 아프다·
상처가 나서 그런가? 아까는 그래도 그냥 견딜만했는데 지금은 너무 아팠다·
“···아·”
그래서 깜빡했다·
천마가 고개를 들어 정면을 쳐다봤다·
“큰일 났네·”
앞에 방금까지 있던 여인이 보이지 않았다·
잡생각을 하다 놓쳐버린 것이었다·
“···음····”
천마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이나 놓쳤으니 알 것 같았다·
“다음엔·”
세 번째 볼 때는 망설이지 않고 죽이기로·
그리 다짐했다·
************
‘뭐지·’
고개를 들어 왼쪽을 쳐다봤다·
뭔가 저쪽에서 기운이 느껴졌다·
착각인가?
어디선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는데· 살짝 집중하니 별로 느껴지는 건 없었다·
“피곤해서 그런가?”
그럴 수도 있다·
지금 며칠째 잠을 안 자고 있었으니 말이다·
원래도 잘 안 자는 편이긴 한데· 이쪽으로 와선 잠을 잔 적이 전무했다·
알아볼 것이 워낙 많고 파악할 게 한두 개가 아닌지라 잘 시간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잘까···?”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그냥 냅다 자버릴까 싶다가도·
“아무리 그래도 여긴 아니지·”
주변을 둘러보다 한숨을 푹 내쉬어야 했다·
축축하고 차가운 바닥·
습한 듯 묘하게 불편한 공기·
그리고 앞에 보이는 철창까지도·
뭐랄까 이상하게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래 나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손에는 수갑까지 찬 채로 말이다·
“허허허·”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얼마 만에 옥에 갇혀보는 걸까·
내 기억으로 전생에 죽기 전 이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이걸 반갑다 해야 하나···?
철겅·
손을 묶은 수갑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아 이건 진짜 예상 못 했는데·”
설마 옥에 갇힐 줄은 몰랐다·
사슬을 가만히 살펴보다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살짝 큰 소리에 철창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조용히 해라·”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나타나 경고를 준다· 그를 보며 웃으며 물었다·
“나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합니까? 아니 그래도 손님인데 이건 좀 아니지·”
“손님?”
내 말에 앞에 있는 사내가 말했다·
“네놈이 어째서 손님이지?”
“손님이지 그럼 내가 구봉이 놈 데려오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고생한 걸 생각하면 충분히 대접 좀 해줘도 될····”
“닥쳐라!”
말을 들은 사내가 격하게 반응했다·
아니 씨발 깜짝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그분이 누군 줄 알고 입에 담는 거냐·”
아무래도 구봉을 언급한 게 문젠 것 같았다·
그래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누구긴 누구야· 대충 보니까 이집 아들내미겠지·”
“···”
“첫째야 둘째야? 아니면 외동인가?”
“···이놈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엔 진짜 짐승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별로 안 중요한 거니까· 이건 됐고···· 아니 그래서 나 진짜 언제까지 여기 있냐니까?”
툭툭 바닥을 치며 말을 덧붙였다·
“내가 생각보다 귀한 집 자식이라 이런 곳에선 못 자는 편인데?”
사실 진흙밭에 누워도 잘 자긴 하긴 한다만· 이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뿌드득·
주먹을 말아쥔 사내가 잠깐 손을 떨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을 머금는다·
“글쎄·”
“음?”
“언제 내보내도 되는지는 연락받은 게 없다· 어쩌면 영영 내보지 않을 수도 있지·”
“어 그건 좀 곤란한데·”
대충 앉은 채 턱을 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일이 좀 바빠서 영영은 안돼· 조금 더 빨리 내보내 주면 안 되나?”
“하·”
어처구니없다는 듯 녀석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수장 님께서 법을 정하셨다면 이곳에선 그게 진리다· 네놈의 의견 따위가 중요할 것 같은가? 화산에 잡것 따위가 바라는 게 많군·”
“···음·”
볼을 긁적였다·
조금 많이 놀렸는지 사내에게 제대로 악감정이 맺힌 모양이다·
“그럼 나 진짜 안 내보내 준다고?”
“그래· 그러니 입 닥치고 얌전히 앉아 있으란 말이다·”
“아니 진짜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가·”
“아···이런·”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사내가 만족스럽다는 듯 끄덕인다·
“이제야 제 주제를 깨달은····”
“적어도 손님 취급은 해줄 줄 알았는데· 짜증 나게· 이러면 귀찮게 움직여야 하잖아·”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콰직-!
손을 묶고 있던 수갑을 그대로 뜯어버렸다·
“뭣–!”
사내가 놀라며 움직이지만· 나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철창까지 움켜잡았다·
이후는 직전과 똑같았다
콰지지직-!
철창을 잡아서 뜯어버렸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사내의 눈이 커진다·
그걸 보며 나는 손목을 살짝 풀며 말했다·
“손님 취급을 안 해주고 이렇게 죄인 취급을 하면···· 난 취급 받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는데 말이야·”
“이놈이 지금–!!”
사내가 내게 달려든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꽈악-!
“끄웁!”
나는 달려드는 놈에게 손을 뻗어 그대로 볼을 움켜잡았다·
입이 강제로 벌어진다·
이빨이 아주 잘 보였다·
그래서 일단 송곳니를 하나 잡아 뽑았다·
픽-!
“···!!!”
송곳니를 뽑자마자 녀석이 몸을 바르르 떤다·
버둥거리는 게 느껴지지만 그래봐야 내 손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래도 꼴에 자존심은 있는지 비명은 안 지르더라·
“잘 들어·”
콰득!
녀석의 눈앞에서 송곳니를 부수며 말했다·
“내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꾸···꾸으읍····”
“대답이 좀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이빨을 하나씩 뽑을 거야· 다음은 손톱이고· 그 다음은 눈알이야· 그리고 마지막엔 뼈가 되겠지· 아프고 싶으면 그냥 입 다물고 있어도 괜찮아· 솔직히 그래주면 좋고·”
대답하기 쉽도록 잡은 손에 힘을 살짝 풀었다·
“자 첫 번째·”
그리고 겁에 질린 놈을 보며 물었다·
“구봉은 뭐 하는 놈이지?”
말을 묻는 내 얼굴은 오랜만에 설레하고 있었다·
고문은 또 오랜만이었거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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