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40
특무성의 역할과 업무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황실과 연관된 업무를 처리하는 궁내성 예산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재무성 외교를 담당하는 외무성 등· 다른 행정부서들은 이름에서부터 담당 업무를 알 수 있으나 특무성은 그 이름부터 난해한 부서다·
그나마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특무성이 황제의 수족이자 눈과 귀 그림자들이 모인 부서라는 것· 무력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투입되며 관료의 판단이 아닌 황제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침묵의 부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특무성의 업무 중에는 제국 곳곳에 퍼진 드래곤들의 관리가 있다·
‘관리라고 해봤자 불편한 점이 없나 살피는 거지만·’
에이만카 대제를 도와 제국 건국에 공을 세운 드래곤들· 그러한 드래곤들이 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대제의 뜻을 올바르게 받들지 못한 것이고 황실의 큰어른인 드래곤 로드께 무례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특무성은 드래곤이 서식하는 동굴이나 산 근처에 작은 거처를 만들었고 그곳에 특무성 소속 대원을 24시간 상주시킨다· 언제든 드래곤이 대화를 청하면 즉각 반응할 수 있게·
다행히 제국 건국부터 지금까지 드래곤이 불편함을 호소한 적은 없었다· 드래곤들은 인간이 귀찮게 굴지 않는 것에 만족하고 아주 간혹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요청하는 것이 전부였다·
‘갑자기 로드께서 대화를 청하실 줄이야·’
헌데 일반 드래곤도 아닌 로드가 대화를 청했다·
리브노만 황실의 직계가 처절하게 몰락하는 순간에도 제국의 눈앞에 망국이 아른거린 순간에도 침묵을 지킨 존재가 갑작스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지?’
불안하다· 대제의 자식인 분이라 리브노만 황실과 크펠로펜 제국에 깊은 애정을 가진 분이다· 그럼에도 드래곤이 함부로 인간의 일에 개입할 수 없다며 조용히 지내신 분이다·
그랬던 분이 침묵을 깨고 대화를 청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가벼운 일은 아니다· 설마 ‘심심한데 얼굴 좀 보자·’ 같은 용무는 아닐 테니·
“···바로 가도록 하지· 준비하게·”
허나 로드께서 대화를 청하는데 이 이상 망설일 수는 없는 노릇· 그분을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일단 가서 확인하자·
어차피 인간인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드래곤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다·
“예 폐하·”
내 지시에 특무성 장관은 고개를 숙인 뒤 빠르게 물러났다·
제발 부정적인 일만 아니기를·
특무성 장관을 비롯한 호위 인력을 밖에 대기시킨 후 홀로 동굴 안으로 들어가 로드께 인사를 드렸다·
“대제의 말예가 위대하신 대제의 자식께 인사드립니다·”
“어서 오거라·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오히려 로드를 뵐 수 있어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내 말에 로드께서는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셨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그러고는 동굴 천장에 닿을 정도로 드높았던 머리를 슬며시 숙여 나와 시선을 맞추고자 하셨다·
물론 저분 입장에서 숙인 것이지 내 입장에서는 여전히 드높았지만·
“내 긴히 너를 부른 것은 할 말이 있어서 그렇단다· 다른 아이들에게 말하기에는 제법 무거운 사안이니·”
‘무거운 사안·’
이어지는 말에 무심코 침을 삼키고 말았다·
예상은 했지만 로드께서 친히 무거운 일이라고 언급하셨다· 가벼운 일이라고 하셔도 긴장해야 하는 판국에 무려 황제를 직접 불러 말해야 할 만큼 거대한 일이 터진 것이다·
“아이야·”
“말씀하소서·”
“나의 친우 중 하나가 영면에 들고자 한다·”
“···예?”
순간 머리가 굳었다·
귀가 전달한 정보를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영면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와 제국 건국에 공을 세운 친우인데 얼마 전 나에게 영면을 말하더구나·”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재확인하였으나 애석하게도 로드의 말은 변하지 않았다·
“그 친우는 영면에 들기 전 자신의 육체를 인간들에게 넘길 생각이라고 했지만··· 나는 너희가 그 친우의 뜻을 말려주었으면 한다·”
생각도 못 한 부탁이라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드래곤의 영면 그것도 제국 건국에 공을 세운 개체의 영면· 제국 건국 이래로 이런 말을 들은 황제는 내가 처음일 거다·
“건국에 일조하신 분이라면 대제의 친우나 다름없습니다· 대제의 말예로서 최선을 다해 설득하겠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하지만 제법 고집이 센 친우이니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
겨우 정신을 다잡고 고개를 숙이자 로드께서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물론 황제인 네가 직접 갈 필요도 없다· 저번에 본 아이들 중 하나를 대신 보내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장인어른이나 장관 중 한 명을 보내라는 큰어른의 조언·
이건 어쩔 수 없이 장관을 보내야겠다· 안 그래도 바쁜 장인어른께 드래곤 설득이라는 기약 없는 업무를 드릴 수는 없지 않나·
‘유감이야·’
나는 장관을 굴릴 생각이 없었는데 황실의 큰어른께서 친히 장관을 언급하셨으니 방법이 있나·
장관도 이해해 줄 거라 믿는다·
***
황궁에 벼락 한 번 떨어졌으면 좋겠다·
정확히는 황제가 머무는 태양전에 딱 한 방만·
‘망할 놈·’
자기 딸한테 아빠 미워 라는 말이나 듣는 나약한 놈· 황태녀에게 상처를 입었다고 애꿎은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치졸한 놈·
하지만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업무를 떠넘기는 흉악하고 잔인한 놈···
‘살다 살다 드래곤을 다 만나러 가네·’
황제를 따라 드래곤 로드를 보러 간 적은 있었으나 그건 새로운 황제가 즉위한 특이 케이스 때문이다· 일반적인 일이라면 내가 드래곤을 볼 일은 평생이 지나도 없어야 한다·
그렇기에 내가 다시 드래곤을 볼 일이 생긴다면 황태녀가 즉위했을 때라고 생각했는데·
– 영면을 원하는 드래곤이 있다고 하더군· 로드께서는 그 이야기가 널리 퍼지는 것을 염려하셔서 짐과 장인어른 장관 중 한 명이 그 드래곤을 설득하기를 바라신다네·
설마 황태녀 즉위는커녕 내 나이 서른이 되기도 전에 다른 드래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 아무래도 셋 중에는 장관이 여유롭지 않은가· 대제를 도와 제국 건국에 공을 세운 분이기도 하니 잘 부탁하네·
“···예 폐하· 성심을 다하여 제국의 은인을 설득하겠습니다·”
황제의 통보 아닌 통보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드래곤의 영면이라·’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다· 물리적인 충격을 받아 토벌되거나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대륙의 역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
허나 지금 만나러 갈 드래곤은 아펠스의 흉악한 드래곤 토벌을 피했음에도 죽음을 택했다· 영면이라는 단어로 포장했지만 삶을 내던지려 하고 있다·
골치 아픈 문제다· 건국 과정에서 드래곤의 도움을 짙게 받은 것이 제국이고 전대 드래곤 로드와 깊은 관계를 맺은 대제의 후예가 리브노만이다· 그런 만큼 드래곤이 삶을 포기한다면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영면을 입에 담았다면 이미 마음이 확고할 텐데·’
그러나 드래곤 당사자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자신이 영면을 언급하면 드래곤 로드와 제국이 즉각 반응하리라는 걸 모를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 드래곤은 영면을 논했다· 사실상 마음을 확고히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설득은 해야지·’
머리를 긁적이다 동굴로 발을 들였다·
아무리 마음이 확고해도 상대는 나름 개국공신이다· 심지어 친우의 마음을 돌려달라는 드래곤 로드의 부탁도 있었다·
사람으로서도 제국 공무원으로서도 더 사는 게 어떻겠냐는 시도라도 하는 것이 도리다·
동굴에 들어가자 검은색 거체가 반겨주었다·
“인간 아이로군· 생각보다 빨리 왔어·”
바닥에 축 늘어진 검은색 드래곤은 권태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덩치 때문인지 중얼거림으로도 동굴 전체가 울렸지만·
“뭐어··· 빨리 와서 다행이군· 어서 끝내고 눈을 감을 수 있을 테니까·”
눈을 깜빡인 드래곤은 스르륵 몸을 일으키더니 손톱을 입에 물었다·
“어 어르신! 잠시만 멈춰주십시오!”
손톱을 물어뜯을 것 같은 기세길래 황급히 만류했다· 나름 드래곤의 영면을 막으려고 왔는데 오자마자 드래곤의 자해쇼를 보는 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왜 그러지? 미리 충격을 줘야 마법으로 털어낼 때 편하다·”
내 제지에 손톱을 물었던 드래곤은 다시 손을 내렸다·
다행이다· ‘난 나보다 작은 놈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라며 다짜고짜 물어뜯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전 어르신의 육체를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뭐라?”
그 말에 드래곤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 손톱과 비늘을 가져가려면 한 명으로는 힘들지· 다른 용무로 왔나 보군·”
“예· 실례지만 어르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 찾아뵈었습니다·”
한참이나 나를 내려다보던 드래곤은 다시 몸을 엎드렸다·
“로드께는 네가 며칠이나 설득했다고 전해주마· 그러니 그냥 돌아가라·”
그러고는 내가 온 이유를 먼저 언급하며 덤덤히 축객령을 내렸다·
순간 진짜 돌아갈까 싶었지만 참았다· 여기서 돌아가면 이 드래곤은 무조건 영면을 맞이할 테니까·
“어르신· 제국과 황실은 어르신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은혜를 티끌만큼도 갚지 못했는데 어르신께서 떠나신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내가 리브노만과 함께 싸운 것은 은혜를 입히기 위함이 아닌 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나를 위해 싸운 것이니 슬퍼할 필요 없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어르신은 제국과 황실에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으셨기에 더욱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이 드래곤은 제국 건국 이후로 죽은 듯이 지냈다· 가끔 특무성이 찾아오면 피를 내어주고 가끔 산짐승이 동굴에 흘러 들어오면 그대로 돌려보내거나 애완동물처럼 돌보며 지냈다·
지금도 산토끼 여러 마리가 드래곤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다· 이제는 산토끼가 아니라 동굴 토끼라 불러야겠지만·
“인간 아이야·”
“예 어르신·”
아무튼 내 설득에 드래곤은 여전히 권태감이 깃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건 더 이상 나에게 무엇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한 드래곤은 잠시 눈을 감더니 아까와 달리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모든 걸 두고 갈 몸· 네가 여기까지 온 노력을 생각하여 말해주마·”
다시 눈을 뜬 드래곤의 눈동자가 빤히 나를 바라봤다·
“아내도 아이도 잃은 자가 홀로 살아가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내 삶을 지탱하던 기둥은 무너졌고 뜨겁게 타오르던 혼은 식은 지 오래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가 나를 덮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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