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0
“으으윽…흐아아….”
유파랑 기상.
동해 탐험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탐험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으니 브라치움만 잡은 뒤 빠르게 방송을 종료할 생각이다.
‘음.’
파랑이 브라치움의 특성을 잠시 생각했다.
‘크라켄 없이 잡을 수 있나?’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애초에 브라치움이라는 괴어의 공략법 자체가 정형화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브라치움이라는 괴어 자체에 대한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수많은 팔들이 전부 하나의 개체라는 것 정도.
그마저도 계속 공격하다 보니 수많은 팔이 한 번에 사라지고 마석 하나가 나타난 것에 기반해 추론한 것이다.
그밖에는 힘이 세다 하얗다 게이트에서 나왔다 먹는 것에 가림이 없다 정도.
그리고 아마도 괴어 생태계 내에서 최상위 포식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분명 브라치움은 게이트에서 나온 괴어일텐데도 그 주변에서 지구산 괴어의 시체 더미가 발견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마 시력과 지능의 부재로 주위에 다가온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죽였을 거라는 추론이 우세했다.
땅 위에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주로 식물형 몬스터의 경우다.
그 괴어 시체 더미 속에서 당시 최상위 포식자라고 여겨지던 종들의 시체가 무더기로 발견되었기에 최상위 포식자일 것이다 라는 추론으로 이어진 것.
요약하자면 현재 브라치움에 관해 알려진 정보는 거의 전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 이렇게 연구자료가 부실하냐고 물으면 연구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워낙 희귀종이어야 말이지.
브라치움의 최초 발견 자체는 꽤나 오래된 일이다.
드레이크 해협에 위치한 하이브에서 앨리스 멜빌이 목격한 것이 처음.
카리브해 하이브에서 디에고 로페즈 마르틴이 목격한 것이 두 번째.
북해 하이브에서 베르테아 파브론이 목격한 것이 세 번째.
그리고 이번에 동해 하이브에서 목격된 것이 네 번째다.
첫 발견 시점에서는 오케아노스라는 조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연구가 성립되지 않았고 두 번째 발견 당시에는 괴어 연구에 딱히 관심이 없었던 디에고가 그냥 뭉개버리며 연구가 무산됐다.
그리고 세 번째 발견 시점은 음.
‘앨리스 사건’ 직후 광분한 오케아노스가 전 세계 바다를 들쑤시며 괴어란 괴어는 보이는 대로 모조리 찢어죽이던 시기라 딱히 연구가 이뤄질 겨를이 없었고.
그 베르테아조차 처음 보는 괴어고 뭐고 안중에도 없이 죽여버렸으니.
그러니 파랑으로서는 난감할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조차도 맨눈으로 브라치움을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오케아노스 동료들이 과거에 풀었던 브라치움 사냥 썰들을 파랑이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앨리스.
“까먹었는데. 어찌어찌 잡았겠지 뭐. 어렵진 않았어.”
디에고.
“밟았다.”
베르테아.
“공간채로 끓여버렸어.”
“하아….”
도움 되는 게 없다.
“아!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슬슬 방송 킬 시간이다. 그녀가 집에서 나와 재빨리 물로 뛰어들었다.
#
[ “이 게임을 끝내러 왔다.” ]
[ 작성자: 지가못해노코노코팀탓탓 ]
(파랑의 방송 화면 캡쳐. 심플하게 ‘동해 탐험 3일차’라고 쓰인 제목이 눈에 띈다.)
오늘도 믿고 보는 대 황 킹.
봐야겠지?
–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 오늘 한칸만 보는 거 아님? 좀 짧방일 듯
ㄴ 이새낀 보스전의 개념을 모름 ㅋㅋㅋ
ㄴ 보스전 ㅇㅈㄹㅋㅋ 뭔 게임인줄 아냐 걍 드가서 칸소개만 하다 끝나겠지
– 오늘 방송은 무조건 끝까지 볼거면 개추
ㄴ 개추 ㅋㅋㅋ
ㄴ 나 신유나인데 개추 눌렀다
ㄴ 나 신유나 아닌데 그냥 개추 눌렀다
#
다시 시점을 돌려 유파랑.
♬♪♩♬~
그녀가 물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시험 삼아 적당한 클래식을 틀어 보았는데 확실히 분위기가 괜찮다.
‘딱 10분만 이러고 있어야지.’
– ‘ㅇㅇ’님이 1000원 후원! –
[음성 녹음]
“이건 또 무슨 신종 고문입니까 선생님 얼른 방송 좀 시작하십시오.”
“헛.”
시계를 보니 30분이 흘러 있었다.
그녀가 재빨리 동해 하이브로 향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하이브로 향하는 길.
한 도네이션이 파랑에게 들어왔다.
– ‘음식뺏기면침울해함’ 님 1000원 후원! –
[ 방장 퍼스널 스킬 뭔지 물어봐도 됨? ]
“음….”
파랑이 잠깐 고민했다.
“안돼요. 방송하면서 한 번도 보여드린 적 없고 앞으로도 안 보여드릴 거예요.”
– 아니 대체 뭐길래
“궁금해하지 마세요.”
시청자들의 의문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그렇게 떠들떠들 시끌시끌 소통소통.
시간이 조금 지나니 어느새 동해 하이브에 도착했다.
“도착했네요.”
– 드디어
– 마참내
– 즐겁다
파랑이 1량의 입구에 섰다.
시청자들은 화면 속에서 1량 내부의 대략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아니 열차 칸 아니었음??
– 난 기관사실일줄
– ㅈㄴ 뜬금없네 뭔 동굴임
“하이브의 특정 장소들은 일반적인 사물과 달리 이런 동굴과 같은 내부를 갖고 있어요. 원인은 불명이고요.”
파랑이 말을 이었다.
“오늘은 미리 안에 있는 괴어를 설명한 뒤에 들어갈 거예요.”
파랑이 브라치움에 대한 정보를 적당히 시청자들에게 풀었다. 물론 오케아노스 얘기는 빼고.
– 와 ㅅㅂ ㅈㄴ 소름돋네
– 그런게 왜 존재하는 거임
– 근데 오늘은 왜 미리 설명하는거?
“한가하게 해설이나 하기에는 위험할 수 있어서 그래요.”
– 아니 왜요
“말씀드렸잖아요. 워낙에 연구가 안 된 괴어라서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 세보이긴 하는데 방장 정도면 충분히 잡는 거 아님? 하이브 솔로몰살도 된다며
“그건 퍼스널 스킬을 켰을 때 얘기예요. 없이는 어떻게 될지 저도 잘 몰라요.”
– 아니 그정도면 좀 켜
– 이건 대놓고 궁금해하라는 거 맞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그 말대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물론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방송도 즉시 종료할 거예요. 가끔 화면 너머로까지 정신공격을 펼치는 괴어가 있거든요.”
이미 사일로 사에게 방송 강제 정지 권한도 준 상태다.
사실 파랑이 그런 권한을 내어주지 않더라도 사일로는 언제든 방송을 중단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파랑의 스트리밍 계정을 차단해버린다거나 서버를 셧다운 시킨다거나 하는 방법.
파랑도 사일로도 그것을 안다. 그러니 파랑도 사일로도 서로서로 득 보는 거래를 한 것이다.
파랑은 사일로 쪽에 생색낼 수 있으니 좋고 사일로는 귀찮은 일이 줄어서 좋다.
브라치움이 그 정도의 정신공격을 가하는 괴어인지는 모르지만.
채팅창에 무수한 의문들이 떼를 지어 올라오지만 파랑은 채팅창을 무시하고 열차칸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한 후에는 방송화면을 1인칭으로 고정했다. 분위기는 잡아야 하니까.
부그르르르-
안쪽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볼 때와는 또 확 딴판이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좀 어두운 동굴이었다면 안으로 직접 들어오니 정말 숨이 텁텁 막히는 느낌이다.
– 분위기 ㅅㅂ;;
군청을 넘어 거의 남색에 가까운 주변. 검은 실루엣만으로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바위며 돌덩이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수많은 팔이 자라난 공간.
파랑이 망설임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천천히 충분히 거리를 두고.
어두운 해저 동굴 속 무수한 인간의 팔.
그 부자연스러움과 기괴함이 주는 공포감 괴리감 위화감.
수많은 흰 팔들은 넘실거리기도 하고 빳빳이 굳어있기도 하고 또 기괴하게 꺾인 채 부들대기도 한다.
게이트에서 나온 괴어니만큼 브라치움에게 파랑은 최상급의 먹잇감으로 여겨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감지되는 순간 즉시 행동을 시작하겠지.
하지만 파랑은 브라치움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천천히.
아쉽게도 파랑에게는 기척을 지우는 기술이 딱히 없다.
그러니 들키면 찌를 각오로.
당연히 움직임도 신중해지고 조용조용하다.
그녀가 브라치움에게 다가가며 그것을 면밀히 살폈다.
일견 보기에는 다른 이로부터 전해들은 외형과 일치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구체.’
수많은 팔들의 중심에 구체를 떠받든 팔들이 있었다.
저게 대체 무엇인지 브라치움의 일부이기는 한지 파랑은 몰랐다.
어쩌면 이 괴어는 브라치움과 매우 유사한 별개의 종일 수도 있다.
툭-.
마침내 파랑이 브라치움의 공간 가장 바깥에 위치한 팔에까지 도착했다.
팔꿈치를 ㄱ자로 꺾은 채 미동조차 없이 정지해 있는 팔. 길이는 약 10m.
바위틈으로 뻗어나온 모양새가 마치 땅을 뚫고 나온 것만 같다.
팔이라서 조금 물렁할 것 같았는데 손으로 살짝 건드려 보니 굉장히 단단했다.
그것을 보고 파랑이 제일 먼저 한 것은
투욱- 툭.
주변에 있는 바위를 치워내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바위 밑에는 브라치움의 본체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어쨌든 핵심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 아닌가.
그것을 보려는 목적이다.
아무리 파괴가 불가능한 오브제라고 해도 이미 분리되어 있는 것을 옮기는 것은 가능하니.
파랑이 제 몸만한 바위를 툭툭툭 들어 옮겨냈다.
그녀의 힘이 강한 것도 있지만 바위라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이 돌덩이의 무게도 한몫했다.
그렇게 하나 하나. 바위를 들어내자 아래에 묻혀 있던 브라치움의 형상이 드러났다.
하지만 파랑이 그 형상을 관찰하는 일은 없었다.
“■■ ■.”
뒤에서 들리는 소리. 말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파도 소리인지 바위가 부딪히는 소리인지 팔이 휘둘러지는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다.
파랑이 뒤를 돌자 어느새 그녀는 브라치움의 공간 한가운데에 있었다.
떠받들어진 구체가 파랑의 얼굴 바로 앞에.
어느새 그녀의 몸은 수많은 팔들에 잡혀 있다.
큰 팔에서 뻗어나온 손가락에서 자라난 작은 팔들에서 돋아난 작은 손가락들이 파랑의 전신을 옭아맸다.
‘이런…!’
환각 따위는 아니다. 파랑에게 그것이 통할 리가 없으니.
브라치움이 이동한 것이다. 방법은 알 수 없다.
소리도 없이 움직임도 없이. 그녀를 향해 곧바로. 정확히.
심지어는 파랑에 몸에 닿는다는 감각조차 없이.
‘이런…!’
낭패였다.
그리고 브라치움이 눈을 떴다.
거대한 백색 구체에서 눈동자가 자라났다.
푸른색. 짙은 우주. 고향의 색.
[ 스킬 ‘워터프루프 새니티’가 발동 중입니다. ]
파랑이 순식간에 판단을 마치고 행동에 돌입했다.
[ 스킬 ‘아쿠아 펄스’를 발동합니다. ]
순간 파랑의 몸에서 기파가 터져나오며 주변에 있던 팔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마비에 걸린 것이다.
그녀가 작살을 던져 브라치움의 눈을 꿰뚫었다.
“■■ ■….”
슈르르르.
아마 저곳이 급소였던 모양. 순식간에 브라치움이 허물어져 마석으로 변했다.
허무하리만치 맥없는 최후였다.
파랑이 급히 핸드폰을 켜 방송 상황을 확인했다.
[ 이 방송은 종료되었습니다. ]
이미 사일로에서 강제종료한 모양.
제발 그냥 자신의 추태로만 마무리되는 종류의 일이기를.
모니터 너머의 사람들이 별 일 없기를 파랑은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방송 종료 직전 시청자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채팅들에 그녀의 눈이 멎었다.
– 눈을 떠.
– 눈을 떠.
– 눈을 떠.
– 눈을 떠.
– 눈을 떠.
– 눈을 떠.
‘아.’
일 났네.
파랑이 즉시 위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똑똑한머저리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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