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9
오케아노스가 한 차례 시선을 주고받은 후 파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티탄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가지러 가려는 것이다.
“…가져올게. 잠깐만 기다려.”
파랑이 조용히 1층의 가장 구석진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지하로 향하는 길다란 계단이 계단의 끝에는 또다시 문이.
파랑이 아래로 내려가 문고리를 잡았다.
너머에서는 콸콸콸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문을 열자 어두운 지하의 방안에서 물비린내가 확 풍겨온다.
동시에 콸콸거리는 물소리는 더욱 커진다.
벽을 더듬어 달칵- 스위치를 켜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수조.
바닷물을 지속적으로 끌어와 순환시키는 구조다.
집안의 다른 모든 수조는 파랑이 직접 정화하지만 여기만큼은 아니다.
파랑은 이 공간을 싫어한다. 자신의 집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이 들어 평소에 절대 눈길을 줄 일이 없는 가장 구석지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처박아 두었다.
그녀가 수조 안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안쪽에는 머리 팔 다리를 깨트려 떼어내고 몸통만을 남긴 인간 크기의 조각상이 여덟 개 단단히 구속되어 있다.
파랑이 그중 하나를 어깨에 들쳐멘 뒤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다시 거실로 돌아가니 오케아노스 전원이 입수 준비를 마친 상태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파랑의 집 바로 앞에 있는 부둣가에 나란히 섰다.
“…가자.”
그들 여섯이 동시에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동일한 동작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물거품조차 몇 방울 올라오지 않는 완벽한 다이빙이었다.
오늘따라 유독 그들 곁에서 늘 같이 다이빙을 하던 소중한 동료 하나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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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슈아아아…
시원한 바닷물의 감촉이 파랑의 전신을 휘감았다.
공기 속을 거닐던 몸이 물속에 잠겨드는 이 느낌.
상쾌하고 시원한 청량감의 질주.
파랑이 다이빙을 좋아하는 이유다.
다만 그녀는 지금만큼은 이 감각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등에 사람만한 조각상을 메고 있어서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이유에서도 그랬고 지금 머릿속을 덮고 있는 복잡한 감정 때문에도 그랬다.
파랑이 멍하니 디에고의 전신이 감압 잠수복으로 덮여가는 걸 지켜보았다.
마치 영화에서 보던 나노 슈트처럼. 아무 것도 없는 수중에서부터 검은 덩어리가 생겨나 그의 전신을 뒤덮는 두꺼운 잠수복의 형상으로 변해 갔다.
약 30초가 지나자 평소에 물속에서 보던 디에고의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났다.
“…가자.”
“응.”
그들이 아래로 아래로 잠수했다.
목적지는 파랑이 티탄을 처음 목격했던 치약튜브 오브제.
사안이 사안인지라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아래로 헤엄만.
“아 저거다.”
얼마 안 가 치약튜브 오브제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수심 해저 2.1km.
안쪽에서 빛나는 안광이 형형하게 흘러나왔다.
아마 어중간한 괴어 하나가 둥지를 틀었겠지.
엘비라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오브젝트 안쪽에서 성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안쪽에서는 화약과 함께 괴어의 육편들이 사방에 철퍽철퍽 뿌려지고 있을 것이다.
오케아노스의 알 바는 아니다.
그들이 밑으로 더 밑으로 내려갔다.
아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은 정확히 밑을 바라보고 수직 하강하고 있다는 점 정도.
해저 2.7km.
이제까지 시야를 메우고 있던 짙푸른 공허가 옅어지며 검정색이 그것을 대체했다.
바닥이다. 동해의 바닥.
그곳에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바닥을 암반째로 으깨서 새겨 놓은 발자국.
가장 커다란 발자국을 중심에 두고 그보다 확연히 작은 발자국이 네 명 분.
위에서 보이는 것은 이 정도다.
아마 더 내려가 자세히 보면 더 작은 발자국과 그보다도 작은 인간 크기의 발자국이 다닥다닥 찍혀 있으리라.
그렇다.
스타투에들은 무리지어 다닌다.
보통 100m정도의 신장을 가진 ‘마그누스’가 우두머리 역할을 맡고 그 아래 10m 정도 신장의 ‘메디우스’와 인간 크기의 ‘파르붐’이 무리짓는다.
그리고 1km정도의 신장을 지닌 티탄이 마그누스를 서넛 거느린다.
그날 파랑이 보았던 티탄의 밑에는 작은 크기의 스타투에들이 수백 개체는 있었을 거란 소리다.
찍힌 방향을 보니 서쪽.
그곳에 티탄이 있다.
오케아노스가 다시 이동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서쪽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던 발자국이 끊겼다.
있어야 할 발자국은 없고 둥그렇고 기괴한 문양만이. 마치 미스테리 서클을 떠올리게 한다.
도착했다는 뜻이다.
파랑이 이제껏 등에 지고 있던 머리 없는 조각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꽈직.
바닥에 약간 금이 갔다.
예상했겠지만 무력화시킨 ‘파르붐’ 개체다.
말이 무력화지 그냥 사지와 대가리를 잘라낸 뒤 무식하게 묶어놓은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어찌나 몸부림을 쳐댔는지 파랑의 어깨가 다 아플 정도였다.
오케아노스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알아낸 바 스타투에는 파괴될 때 주변의 다른 스타투에들을 불러모은다.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을 찾자면 ‘깨운다’라고 해야 할까.
“…시작할게.”
“…응.”
파랑은 어느새 퍼스널을 발동하여 변신한 상태였다.
크라켄은 불러 보았자 소용이 없지만 다른 스킬의 위력도 대폭 올라가니까.
그녀가 손에 물을 휘감아 방울 폭탄을 만들고는 파르붐의 명치에 가져다대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이윽고 1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약 열 번의 폭발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파르붐의 육체가 순식간에 비산하며 이곳저곳으로 흩어진다.
육편 아니 도편이라고 해야 맞겠지.
날카로운 조각들이 사방팔방 퍼져나가며 오케아노스에게 흩뿌려지지만 그들은 눈조차 깜빡하지 않고 파랑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텅- 퉁- 탕-
인간의 살점 따위는 순식간에 자르고 꿰뚫어 고깃조각으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았던 도편들은 그들의 몸을 해하기는커녕 탄력 있고 단단한 고무에 부딪힌 것처럼 맥없이 튕겨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콰앙.
마지막 폭발과 함께 파르붐에게서 붉은 기파가 터져나왔다.
파랑의 손에는 어느새 핏빛의 마석이 들려 있었다.
주변의 조각들은 이미 슈르르르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파랑이 마석을 대충 땅에다가 툭 던지자 땅속에서 해골 인형이 하나 기어나와 그것을 챙겨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이 마석을 챙겨 사라지기 무섭게 지면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드드드드.
물론 지진 따위는 아니다.
그것들이 기어올라오는 소리다.
저 밑에서부터.
심해의 지하에서부터.
파랑의 표정이 굳었다.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부터 부숴 버릴 티탄은 그들이 사냥하는 아홉 번째 티탄이다.
허무하다는 것은 이전에 여덟 번이나 타이탄을 부수어 가며 이미 온몸으로 느꼈다.
깨트려도 보았고 으깨도 보았으며 녹여도 보았다.
그러나 티탄의 손에 붙들려 바다 밑으로 끌려간 소중한 동료의 그림자조차도 그들은 찾을 수 없었다.
하나 또 하나.
티탄이 스러져 갈 때마다 그들에게 끔찍한 고통이 엄습해 왔다.
공허감 실망감 허무 허탈 슬픔.
그리고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
그들도 기대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안다.
그래서 분노로 기대를 잘 포장했다.
‘이 티탄을 부숴도 앨리스는 돌아오지 않아.’
‘나는 복수를 하러 내려온 거야.’
‘지금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감정은 분노와 투지야.’
그러나 아무리 감정을 포장하려고 해도 아무리 마음 깊숙한 곳에 처박아 단단히 봉하려고 해도.
이렇게 떨리는 땅바닥 위에 서 있노라면 의식의 기저에서부터 꾸득꾸득 기어 올라와 끝끝내 자신을 내보이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
‘이번에는 어쩌면.’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이번에도 그들은 티탄을 쓰러트릴 것이다.
또다시 찾아오는 공허감과 그리움에 몸부림치겠지.
그리고 다음 티탄이 나타난다면 그것을 쫓아 바다로 뛰어들 것이다.
이것이 무의미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보상은 존재하지 않고 고통만이 뒤따를 행위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하지만 ‘그만둔다.’는 선택지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다.
앨리스가 그들의 곁에서 그런 식으로 떠나간 순간부터 애시당초 그들에게는 하나의 선택지만이 남은 것이다.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이 빌어먹게도 넓은 바다를 헤집는 것.
이것이 그들 중 누구도 이 위험천만한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유이며
또한 오케아노스의 모두가 그토록 끈끈하게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또다시 그 괴물을 부수면 이번에야말로.
그리운 동료의 흔적이 나타나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지울 수가 없어서.
꾸드득- 꾸득-
파악!!
파랑의 뒤에서 흰색의 팔이 땅을 뚫고 솟았다.
매끄럽고 단단하며 무거운 하얀 암석.
그것이 마치 좀비 영화의 프롤로그에서처럼 땅을 짚고 기어올라왔다.
그런 살벌한 동작을 동반하여 올라오는 것이 무표정의 석고상이니 참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파랑이 상체만을 땅 위로 내밀고 하체를 꺼내려는 파르붐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콰과과과과과과광!!!
그것이 똑같이 폭발하며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땅이 이전보다도 훨씬 더 맹렬한 기세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푸삭 파사삭 꾸득 꾸드득.
땅속에서 무수히 많은 조각상들이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았으며 어떤 것은 차마 한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컸다.
오케아노스가 조용히 그 저주받을 것들을 노려보았다.
각자의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동료의 눈빛은 자신의 것과 정확히 똑같으리라.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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