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 휴식 – Hell’s Hotel Kitchen (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9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저녁 식사 후 2층을 돌아다니며 변화가 있는지 체크했다. 안타깝게도 2층 바깥 세계에서 발견했던 ‘소포’와 ‘신비의 장인’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다행히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능력이 회복되었다.
[조언 : 3 -> 2]
‘소포와 장인을 활성화하려면 별도의 퀘스트라도 해야 합니까?’
오랜만에 사용한 조언의 답은 딱 6글자였지만 충분했다.
[시간이 약이다.]
딱히 무언가 할 필요는 없고 그냥 기다리라는 답이 나왔다. 듣고 보니 짐작 가는 이유는 있었다. 소포와 장인은 둘 다 2층 탐색 과정에서 발견한 요소들이므로 2층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금될 요소라고 보아야 한다. 2층과 무관한 104호를 진행했기에 소포와 장인에 변화가 없는 게 아닐까?
다음으로는 페로에게 장기간 빙의하며 느낀 문제점에 대해 질문했다. 비행은 물론이고 그로테스크 변신 또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언 : 2 -> 1]
‘빙의 대상의 특별한 능력을 쓰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팁이 있습니까?’
[오랜 훈련이 필요하며 왕도가 없다.]
“오랜 연습이 필요하고 쉬운 방법은 없다?”
잠시 고민하던 차 근처에 있던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물어봐서 설명해줬다.
“흠. 왜 그런지 이유는 알겠군요. 혹시 이유가 궁금하십니까?”
“간단하게 설명해주시겠어요?”
“쉬운 이야깁니다. 생물이 하는 움직임 대부분은 행위자가 원리를 이해하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통 생후 1년 즈음이면 걷기 시작합니다만 그 두 발로 걷기라는 동작을 로봇으로 구현하는 일은 평생 로봇공학을 연구한 박사들 여럿이 달라붙어야 구현할 수 있는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아 그거 어렸을 때 TV에서 본 적 있어요! 일본 연구진이 두 발로 걷는 로봇을 개발했다 이런 거였는데.”
“두 발로 걷기조차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하늘을 나는 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리고 그 두 동작 모두 사람이나 새가 원리를 이해하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이 두 발로 어떻게 걷는지 잘 모르고 새도 자신이 어떻게 나는지 잘 모릅니다. 그냥 걷고 날기 위한 설명서가 날 때부터 머리에 입력되어있을 뿐이죠.”
“제가 페로 몸에 들어가도 날지 못하는 이유는 새가 타고나는 설명서가 없기 때문이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로테스크로 변신할 수 없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그 설명서가 당신의 머릿속에는 없기 때문이죠.”
“으음···.”
원리는 이해했다. 결국 비행이든 변신이든 기타 초능력이든 그걸 쓰기 위한 매뉴얼이 없다면 설령 그 힘을 가진 존재의 몸을 빌린다 해도 반쪽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쉬운 방법 말고 어려운 방법은 없을까? 단기에 해결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남은 조언 또한 마도서의 운용과 관련된 질문을 던졌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
– 이은솔
104호에서 나오고 하루의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아침 모두가 아침 식사를 위해 침실에서 나왔다. 방의 해결이 아니라 탈출이므로 파티 타임 같은 건 없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다들 별 말도 없이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선물이 우리를 기다렸다.
/오늘은 호텔의 휴무일입니다. 식사는 제공됩니다./
당연히 오늘부터 저주의 방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 중이던 동료들이 다들 환호성을 내질렀다! 굳이 어제 알려주지 않고 오늘 알려주는 건 이 순간의 기쁨을 위함인가? 마치 깜짝 선물을 받은 느낌이긴 하네.
송이와 가인이가 옆에서 말했다.
“파티타임은 아니고 그냥 휴식일인가 봐요.”
“파티 타임은 저주의 방을 해결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니까 그런가 봐. 예전에도 101호 102호를 연달아 탈출하니까 휴식일 하루 줬는데 그 비슷한 느낌인데.”
아리도 한 마디 덧붙였다.
“파티타임이 아니라면 축복의 성소도 갈 수 없고 뭘 탐색할 수도 없겠네.”
파티 타임마다 호텔에서 띄우는 알림의 마지막엔 이런 문구가 있다.
‘호텔에는 파티타임에만 정체를 드러내는 비밀도 있다고 하는데?’
즉 파티 타임이 아닐 때 호텔이 숨겨둔 비밀들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은 우리가 할 일이 딱히 없다는 의미인데? 휴식일이니 저주의 방에 들어갈 필요도 없고 파티 타임이 아니니까 축복의 성소에 들어갈 수도 없고 탐색해도 뭐 나올 게 없다.
이런 시기에 하면 딱 좋은 일이 마침 있지! 즉시 화이트보드를 끌고 모두의 앞에 섰다.
“모두 주목! 기쁜 일이야.”
모두의 의아한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내 탐욕의 손이 활성화됐어!”
“오! 때가 됐군요?”
“탐욕의 손은 일종의 ‘파밍용’ 스킬이야. 쿨타임이 찰 때마다 꾸준히 돌려줘야 해.”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들 아이디어 좀 내봐. 내가 무슨 소원을 비는 게 좋을까?”
“누나가 비는 소원이니 누나 뜻대로 해야죠.”
“가인이 네 말 마음에 드네. 사실 이미 대략적인 생각은 했거든. 요번에 빌고 싶은 소원은 그냥 적당히 유용한 물건을 달라고 해야겠어.”
“적당히요?”
“너무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비니까 좀 무서운 결말이 나오더라고.”
그 말과 함께 내 눈을 가리켰다.
“이 눈을 얻으면서 느꼈어. 호텔에서 말하는 ‘리스크’라는 게 생각보다 좁은 개념인가 봐. 예컨대 나는 이 눈을 얻으면서 진짜 눈은 사라진데다가 눈 자체도 좀···. 흉하게 생겼잖아?”
“그 정도는 호텔 기준으로는 리스크가 아닌가 보군요.”
“시각이 강화되었으니 진짜 눈의 소멸은 리스크가 아니라고 치는 것 같아. 실명은 호텔 탈출 후 겪을 일이고. 눈의 외형이 흉하게 변하는 일은 호텔 기준으론 별일 아니겠지.”
거기까지 들은 할아버지가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너무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비니까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커졌고 마침 호텔 특유의 인명 경시 풍조까지 더해지니 ‘손모가지 하나 정도는 별 손해 아니지?’ 느낌으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구나.”
“네.”
“좋은 생각 같다. 적당한 수준의 소원을 빌어봐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집중하자 허공에 알림이 나타났다.
[탐욕의 손]
“적당히 유용한 물건을 줘!”
…
“가능하면 신체적인 피해는 없었으면 해.”
…
“가능하면 내 마음도 다치지 않게 해줘!”
…
“동료들이 너무 고생하면 내 마음이 다치는 것 알지?”
“누님 그건 좀 꼼수 아닌 -”
“조용히 해!”
…
“진짜 마지막!”
‘좀 한 번에 빌어라!’
방금 어디선가 나에게 짜증 내는 환청이 들린 것 같다.
“혹시 물건을 하나 말고 두 개 줄 수는 없어?”
‘진심으로 탐욕스러운 존재로다. 오로지 날로 먹을 생각뿐이구나! 하지만 그 탐욕스러움 또한 마음에 든다. 그리고 – 날로 먹어? 먹어? 이거 느낌 괜찮은데?’
뭐라는 거야? 너무 생각의 흐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어딘가에서 동굴 전체를 울리는 듯한 거대하고 묵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마지막 요청은 후원자의 마음에 든 게 아닐까? 후원자의 웃음이 공간을 흔들기라도 하는 듯 호텔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흡사 알 수 없는 공사가 진행되는 듯한 이상한 소리! 모두의 표정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가인이가 이 와중에 내게 잔소리했다.
“누나! 적당한 소원을 비시겠다면서요!”
“적당했어.”
“‘적당히 1000억만 주세요’라고 빌 때 앞에 ‘적당히’가 붙으면 그게 적당한 부탁이에요?”
“내가 그동안 별 도움 안 되는 축복으로 고통받은 걸 생각하면 적당해.”
그 말에는 가인이도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모두의 앞에 알림이 떴다.
/참가자의 요청으로 깜짝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
.
.
깜짝 이벤트 : Hell’s Hotel Kitchen/
???
“이건 대체 뭐지?”
“뭐라고 떴어요?”
“헬스 호텔 키친.”
“그게 대체 무슨 -”
/참가자 여러분! 2층 홀로 와주십시오!/
지시대로 2층 홀에 도착한 모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2층은 그 잠깐 사이에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변해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중앙엔 거대한 탁자가 있었다. 탁자 앞쪽엔 말 그대로 ‘요리’를 위한 가스레인지나 오븐 칼 등 말 그대로 주방이 설치되었고 비어있던 2층의 방들은 죄다 식자재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앞에 새하얀 요리사 복장을 한 ‘상인’이 웃으며 나타났다.
“…”
“…”
“으하하! 오늘은 정말이지 즐거운 날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호텔에 오신 후로 즐겁지 않은 날이 없지만요! 자~! 자~! 이은솔 셰프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 난 셰프 아닌데.”
“그냥 좀 오시죠.”
멍하니 시키는 대로 따라가서 탁자에 앉았다. 탁자 위엔 하얀색 모자도 있었다.
“보시다시피 이 장소엔 그간 여러분의 식사를 위한 재료로 쓰였던 훌륭한 식자재들과 조리 도구들이 가득합니다. 참가자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적절히 활용해서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 혹시 그 요리의 심사를 내가 하는 거야?”
“이은솔 참가자 정답입니다. 한 사람은 요리의 순위를 정해야 하죠. 공정한 심사 부탁드립니다.”
다들 혼이 나간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사이 상인이 설명을 이어갔다.
“이 답 없는 호텔이 또 무슨 병신 같은 짓을 벌이나 싶으실 겁니다.”
“…”
“호텔은 결코 보상 없는 노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요리대회의 우승자에겐 분명히 보상이 주어집니다. 물론 최악의 음식을 만드신 분에게는 적절한 벌칙이 기다립니다.”
“나는?”
“하하! 물론 심사를 담당해주실 이은솔 참가자에게도 만족하실만한 보상이 기다립니다.”
상인은 이 어처구니없는 요리대회의 진행 방식을 설명했다.
1라운드는 나를 제외한 8인이 각각 한 접시의 요리를 완성한다. 여기서 상위 2명과 하위 2명을 고른다. 다음으로 2라운드에서 상위 2명이 다시 붙어서 우승자를 가린다. 마지막으로 3라운드에서 하위 2명이 다시 붙어서 최하위를 가린다.
모두가 넋이 나간 와중 상황이 개판일수록 가장 빨리 정신 차리는 아리가 손을 들었다.
“언제 시작이에요? 요리 시간은 어느 정도?”
“10분 후 시작합니다. 요리 시간은 1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그 말대로 10분 후에 땡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료들은 아직도 이게 대체 뭔가 하는 표정으로 식자재가 있는 방으로 하나둘 달려갔다.
잠시 후 식자재 방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악! 물고기가 살아있어요! 물 밖에서 절 물려고 하잖아요!”
“아니 시이이발 왜 고구마에 손이 달렸어?”
“방금 내가 잘못 봤냐? 족발이 저절로 움직였는데?”
… 식자재 상태가 정상이 아니구나. 그리고 난 저 식자재로 만든 요리를 먹어야 하는구나.
“나 저 요리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지?”
상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은솔 셰프 ‘공정한 심사’를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한 접시씩 드셔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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