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 103호, 저주의 방 – ‘동물농장’(3)
29화 – 103호 저주의 방 – ‘동물농장’(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2일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3호(저주의 방 – 동물농장)
현자의 조언 : 3]
농장에 도착한 이후 언제나 그렇듯이 풀이나 뜯고 멍하니 음머어어 하다가 활자낭비 하지 말라고 잔소리나 듣던 아침.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늑대소년(박승엽) : 비상! 늑대 위기
쥐대왕(김묵성) : 뭔소리? 길게 설명
늑대소년(박승엽) : 다른 늑대들도 농장을 주목 무리 전체가 농장 근처를 관찰 시작.
어제의 요란스런 소동이 늑대무리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사실 내가 늑대라도 바로 옆에 살찐 거위와 소로 가득 찬 농장이 있으면 군침이 돌겠지.
농장 주인이 알아서 하지 않을까?
하고 진짜 소처럼 생각하다가 생각해 보니 나야말로 위기임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농장 주인에게 무슨 위기가 있겠는가! 그냥 본인 재산이나 좀 줄어드는 문제일 뿐.
죽는 건 농장 주인이 아니라 그 안의 소와 거위다.
생각할 수록 상황은 안 좋다. 내가 이 덩치에 어디 숨을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기도 불편한 장소.
사실상 꼼짝없이 농장 주인이 알아서 잘 막기만을 바래야 하는 게 아닌가!
똑똑뱀(이은솔) : 늑대 무리 수?
늑대소년(박승엽) : 3그룹 총 40마리 넘는 듯
점점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간다. 40마리가 넘는 늑대.
반면 농장에는 4인가족. 그나마도 둘은 아내와 딸이니 사실상 농부와 그 아들 둘이서 늑대 40마리를 막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농장 안의 소나 거위들도 다치지 않는 게 가능할까?
103호에 들어선 이후로 처음으로 극심한 긴장이 들었다.
정신없이 건초를 뜯으며 안돌아가는 소머리를 굴려봤다.
정말 어떤 방법이 없는 건가?
돼지(차진철) : 내가 할게 있나?
쥐대왕(김묵성) : 돼지고기 추가 말고 도망이나 갈 것
똑똑뱀(이은솔) : 나도 가면 죽음
동료들이 다 어쩔 줄 모르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한 것.
늑대무리와 농부가 혈투를 벌이는데 그사이에 돼지 뱀 쥐 등이 끼어서 뭘 한단 말인가.
말마따나 돼지고기나 추가할 뿐이다. 눈 딱 감고 내 의견을 전했다.
흑우(한가인) : 공연히 나서지 말 것. 죽더라도 한 명만.
죽더라도 한 명만.
그것이 언젠가부터 우리가 암묵적으로 공유하게 된 호텔에서의 철칙.
누군가 위기에 처했다고 동료들이 다 같이 목숨 걸고 달려들어서 구해 내는 건 일견 감동적이지만
호텔에선 지극히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럴 필요 없이 그냥 동료가 도망가서 끝까지 살아남기만 해도 다 같이 살아나는 룰.
따라서 여차하면 동료를 버리는 게 곧 동료를 위하는 길.
호텔은 언제나 희생을 권장한다.
이번에는 어쩌면 내가 먼저 희생되겠구나.
어쩔 수 없음을 내심 받아들였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낮 시간이 지나갔다.
동료들은 별다른 해답을 찾지 못했고 엘레나도 최대한 농부 가족 주변에서 상황을 살폈지만 대단한 지원군이 온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로 어제 늑대(승엽) 소동이 있었던 데다가
오늘은 대놓고 10마리도 넘는 늑대가 근처를 어슬렁거리자 농장 사람들도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준비하는 게 느껴졌다.
농장 가족 모두가 정신없이 농장 전체에 덫을 설치하고 사냥용 총과 총알을 가지런히 준비하는 걸 보자 나도 안심되기 시작했다.
소 주제에 날 도축할 농장주인을 의지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결국 이런 상황에서 의지할 사람이 농장주인 뿐인 것도 사실 아닌가.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근 며칠간 우사에 앉아서 풀이나 씹던 시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긴장감.
늑대의 위협에 대한 이야기를 아침에 들었던 것 같은데 다들 정신없이 날 구할 방법을 떠들고 주변을 탐색했다.
열심히 농장 가족을 관찰하다 보니 순식간에 해가 서편으로 지기 시작했다.
하울링이 들려온다.
늑대 무리의 공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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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정신없이 뛰었다.
거대한 농장 주변을 따라다니는 대략 40여 마리의 늑대 무리.
딱히 전부가 뭉쳐있는 게 아니라 대략 3 그룹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그래서 더 피곤하다.
계속 3그룹을 돌아다니면서 언제쯤 들이닥치려는 건지 감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해 있는 – 더 정확히는 속해 있다고 리더는 생각중인 – 늑대 그룹에서는 내가 계속 정신없이 돌아다니자 뭐 하냐는 듯이 쳐다봤지만 굳이 터치하진 않았다.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가인형의 멘탈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송이 누나야 거위가 있는 사육장은 위치와 구조상 늑대가 들어가기 힘들다니까 침묵하는 게 이해가 가지만
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외부에 노출된 상태다.
결국 가인 형을 비롯한 소들의 위기인 셈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인데 쓸 때없이 위험한 일 하지 말고 탈출 방법이나 생각해 보라니…
물론 한 명 구하려다 단체로 죽으면 그거야말로 최악이니 이해한다.
하지만 이후의 부활은 부활이고 그 고통은?
늑대가 설마 하니 소를 마취라도 하고 잡아먹겠는가!
그 고통을 생각하면 상상만으로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 없다.
나는 도저히 형이 그런 고통을 겪게 내버려둘 수 없다.
정말로 답이 없을 때는 도망가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살려 봐야지
문득 호텔에 오기 전에도 이렇게 열심히 살았으면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면 그렇게 살아야지
사방에서 하울링 소리가 들린다. 늑대무리의 공격이 시작됐다.
농장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늑대 소리 동물들의 비명 소리 흥분한 남자들의 고함
그리고 그 모든 소음을 주기적으로 관통하는 얼어붙은 총소리.
총소리가 이렇게 크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걸 느끼면서 천천히 소 우리 쪽으로 다가 갔다.
이미 나보다 먼저 여러 마리의 늑대들이 도착해 있었고 소들 쪽을 쳐다 보면서 군침을 다시고 있었다.
내 계획은 간단하다.
현실적으로 내가 저 많은 늑대를 막을 방법은 없다.
늑대를 막는 건 농장 주인의 역할.
따라서 나는 말하자면 트롤 늑대가 돼서 농장 주인을 소 우리 쪽으로 끌고 오는 것이 계획이다.
그걸 위해선…
역시 농장주인의 가장 소중한 상대를 공략하는 게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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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지금 돌아버린 걸까.
철책 구석에서 농장 상황을 지켜보며 이은솔은 생각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분명 농장 외곽을 돌아다니다 한두 번 마주쳐서 특징을 기억해 뒀다.
머리 위쪽에 살짝 솟아 있는 하얀 털 뭉치. 저건 다른 늑대가 아니고 승엽이다.
지금 눈앞에서 승엽이가 농장 주인의 딸 즉 메이가 있는 거주구역 근처까지 가서 하울링을 시작했다!
진짜 미쳤나? 농장 주인보고 제발 죽여달라고 기도라도 하는 걸까?
어제 가인이가 하는 말은 못 들었나?
호텔에서 누구 살리자고 내가 죽는 건 감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임을 여러 번 모두에게 주지시켰는데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걸까.
당연히 저 상황에서 반응하지 않을 ‘아버지’란 세상에 없다.
최대한 많은 늑대를 견제하는 위치에서 고함을 지르던 농부는 딸의 찢어지는 비명을 듣자마자 기함한 채로 뒤로 돌아서서 정신없이 달려갔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은솔은 머리가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관망할 생각이었다.
가인이가 죽어도 어쩔 수 없는 것. 내가 공포의 저택에서 죽음을 받아들였듯이 가인이도 그럴 수 있으리라.
적어도 지금까지 느끼기로 나와 그 녀석의 생각은 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승엽이까지 문제가 생긴다면?
감성의 문제가 아니다. 파티의 구성원은 개 고양이 소 거위 멧돼지 뱀 쥐 늑대.
이 중 여러모로 볼 때 ‘가장 유능한 동물’은 늑대가 아닌가?
신체 능력도 뛰어나고 먹이사슬 측면로도 상위에 있으니 행동이 자유롭다.
그런데 여기서 허무하게 당하기라도 하면…
은솔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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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또 달렸다. 너무 상쾌하다.
살면서 이렇게 뛰어난 ‘몸’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땅을 한번 박차자 하늘을 나는 것처럼 날아올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운동하는걸까?
물론 지금 나는 늑대니까! 사실 우사인 볼트도 나보다는 훨씬 느릴 거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신체를 가진 인간도 평범한 늑대보다 약할 테니까!
게다가 지금 나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달리는 중.
아~ 나 자신에게 취할 것 같다.
—–탕!
총소리. 취할 것 같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다행히 피했지만 끝까지 피할 수 있을까.
예상대로 그 메이라는 애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한번 짖자마자 농장가족은 난리가 났고
농장주인은 날 따라오기 시작했다.
괜찮아. 총을 들었다고 해서 농장주인이 나보다 빠른 게 아니니까.
우사 쪽으로 와보자 그 잠깐 사이에 상황은 꽤 심각해졌다.
여러 마리의 늑대가 우사 외곽을 넘나들었고 소들은 그야말로 비명을 지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사실 소가 늑대보다 훨씬 크니까 싸운다면 이렇게까지 밀리진 않을 텐데…
그러나 사람에게 길러진 소가 그런 싸움을 할 줄 알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그 와중에도 큼직한 검은 소 한 마리는 대놓고 뿔을 들이밀며 늑대들을 위협했다.
아하 보자마자 알았다. ‘흑우’ 가인이 형이구나.
그런데 내가 도착하자 상황이 좀 달라졌다.
내가 합류하니까 이제 동료가 와서 안심이 된다는 생각이라도 한 걸까?
갑자기 늑대 3마리 정도가 자신감 있게 흑우를 공격했다.
정면의 늑대가 주의를 끄는 사이 다른 두 마리가 후방을 돌자 형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게 느꼈다. 내가 바로 가서 도와야겠구나.
늑대무리에겐 미안 하지만 사실 난 늑대가 아니니 어쩔 수 없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탕!—————-탕!
두 발의 총성.
어느샌가 나타난 농부가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하자 늑대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젠 나도 진짜 위험하네.
최대한 우사의 기둥이나 여기저기 쌓인 포대기들을 일종의 장애물처럼 써서 움직였다.
—————탕!
아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소년. 아 얘가 그 피터던가. 농장 주인의 아들이라 했지…
농장 주인 말고는 신경도 안썼는데 얘도 어디서 총을 가져 왔구나.
불꽃.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불꽃이 내 몸을 지지는 듯한 감각.
몸이 허물어진다.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 103호에선 이렇게 끝이구나.
형누나들이 해주겠지. 끝이 아님을 알기에 그렇게까지 무섭진 않았다.
그냥 너무 아플 뿐.
?
시야가 반전된다.
새하얀 풍경. 이해할 수 없이 거대한 거인.
뭐지? 이거 무슨 늑대의 사후세계라도 되는 건가?
대체 무슨… 의식이 흐려진다……
벌써 수확할 생각은 없었는데 성질이 급한 놈이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모전 예선도 슬슬 끝나갑니다. 나름대로는 미친 주기로 글을 올리면서 달려오다보니 최근엔 진짜 정신이 띵 하네요.
뒤늦게 참여하기도 해서 벽보고 쓸 각오로 시작한 일인데 다행히 몇몇 분들이 같이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주절주절 적으니 연중공지 같아서 기분 이상한데 아닙니다.
본선은 어렵겠지만 구상한 에피소드들도 많고 그 구상한게 아까워서라도 다 풀어놓을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