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 Re 203호, 저주의 방 – ‘새로운 시작’ (5)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68361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을 가진 후 모두가 헤어져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너무 많은 정보가 갑자기 쏟아진 상황이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녁 무렵 모두가 모였을 때 누나가 화이트보드에 큰 글씨로 적었다.
1. 왜 강제로 탈출 당했을까?
“각자 생각하는 중요한 문제를 말해봐. 참고로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사항은 이거야.”
확실히 중요한 문제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진철 형이 다가가서 2번을 적었다.
2. 죄수의 목적은?
“아까 송이랑 잠깐 이야기했는데 난 이 부분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방에서 나오자마자 했던 이야기다. 수상할 정도로 협조적인 아드라비타의 목적은 뭘까?
다음으로 아리가 3번을 적었다.
3. 신인과 원시인 그리고 우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미로랑 이야기하면서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느꼈어.”
내가 고민하던 문제기도 했다. 아리가 이미 적었기 때문에 내가 따로 다른 항목을 추가할 필요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순서대로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첫째 왜 강제로 탈출 당했는가?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해당 주제를 적은 은솔 누나였다.
“방이 소멸하는 해결과 달리 탈출은 보통 각자 판정이잖아? 진철이가 탈출 조건을 충족해서 방을 나갔다 한들 내가 같이 나가는 건 아니야.”
“탈출의 그런 메커니즘을 이용하려 한 게 104호의 죄수였죠.”
“가인이 네가 탈출 버튼으로 받아치기도 했고. 여하튼 왜 이번엔 다 같이 동시에 나온 걸까?”
비슷한 일이 예전에 한 번 있긴 했다.
“예전에 102호였나요? 공포의 저택에서 ‘이세현’이 갑자기 우리 앞에서 자살하니까 전원 탈출하지 않았었나요? 그때와 비슷한 상황 같네요.”
“그때와 비슷하다라···. 당시엔 대적자가 우리에게 위협을 느끼고 일을 벌이기도 전에 숨어버린 상황이었지? 그래서 우리가 탈출 조건을 동시에 충족했던 걸까?”
“그렇지 않을까요?”
“그러면 203호의 탈출 조건은 뭘까?”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미로와 아리에게 쏠렸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시간대여기로 소환한 존재가 사망하면 본체 또한 사망한다. 두 번째 시도에서 미로가 소환한 아리는 미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 시점에서 아리의 본체 또한 죽었을 텐데 203호에서 아리의 본체는 정황상 AI가 통제 중이다.
“산맥에 있는 아리의 죽음이 탈출 조건 아닐까요?”
“그렇겠지. 그것 말고 다른 가능성은 떠오르지 않아.”
시간대여기로 불러낸 아리가 죽으면 산맥의 아리 또한 죽으며 그 순간 전원 탈출이다.
이것 자체는 꽤 큰 성과다. 우리는 203호에서 언제든 탈출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알아낸 셈이니까.
누나는 커피 한잔을 비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탈출한 이유는 다들 짐작했을 거야. 나도 미로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직감했으니까. 그런데 왜 해결이 아니고 탈출일까?”
“뭔가 더 있으니까?”
“그래. 그 이야기하고 싶었어. 아직도 203호의 시나리오를 다 파악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아냈네. 산맥의 아리를 죽여도 203호는 끝이 아니야. 뭔가 더 있어.”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갔다.
203호의 죄수는 왜 우릴 돕고 있는가? 그의 목적은 무엇인가?
진철 형이 먼저 의견을 냈다.
“죄수가 협조적으로 구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03호의 선생님은 대놓고 송이를 도와서 아타나시아를 쓸어버리지 않았습니까?”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102호의 성운의 용도 극 후반에 가인이 녀석을 도왔다고 하지 않았냐? 202호의 해신도 좀 그런 느낌이었는데.”
누나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103호의 선생님이나 102호의 성운의 용은 그렇긴 한데 202호의 해신은 애매하지 않아요?”
202호의 해신은 우리 편을 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첫 시도 때는 해신이 부활하자마자 전원 몰살당할 뻔했으니까.
우리 편을 들었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얻기 위해 우리를 이용했다고 봐야겠지.
사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102호의 성운의 용도 조금 애매하다.
“전 성운의 용도 애매한 것 같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102호의 진행은 호텔에서 제법 혹평했잖아요? 여러 차례 실수하면서 사실상 실패한 시나리오를 ‘강림’의 힘으로 억지로 뚫어낸 것에 가깝죠.”
“아 기억난다!”
“호텔이 의도한 정상적인 진행대로면 성운의 용은 애초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누구 편이다 아니다 말하는 것 자체가 좀 애매해요.”
대화 내용이 점차 다른 방의 죄수에 관한 이야기로 빠진다 싶었는지 형이 헛기침으로 주의를 환기했다.
“크흠! 203호 이야기에 집중합시다. 203호의 아드라비타가 103호의 선생님 이후로 우리에게 가장 협조적인 죄수인 건 명백합니다.”
아드라비타는 시작하자마자 날 깨워서 203호의 시작이 ‘행성 개척 우주선’이라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또 시간대여기로 인해 산맥의 아리가 갑자기 사망하며 소득 없이 탈출하는 상황이 되자 미로에게 ‘정체불명의 기계장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왜 이렇게 우릴 돕고 있을까요? 방의 소멸은 본인의 소멸일 텐데 말이죠.”
송이가 말을 받았다.
“아까 진철 오빠랑 이야기하면서 내린 결론인데요 우리는 아드라비타가 죽음을 바란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방 내부에서 형과 했던 이야기다.
“저주의 방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서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한다?”
“저랑 진철 오빠는 그런 결론을 내렸어요.”
잠시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드라비타가 정말 무슨 우울증에라도 걸려서 죽음을 원한다면 이유는 짐작이 간다. 내 상태창에 그 이유가 나와 있지 않은가.
[683615일 차]
203호는 방이 시작할 때마다 187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간다. 우리가 냉동 수면 중이니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미 203호에 두 번 들어갔으니 아드라비타 입장에선 벌써 3750년 가까이 흘렀다.
이게 전부인가?
아니다. 우리 이전에도 호텔을 진행한 참가자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서 203호의 시나리오에 도전한 사람도 있었겠지.
그들 또한 한번 들어갈 때마다 1872년을 보냈다면 아드라비타가 저주의 방에서 보낸 시간이 몇 년인지는 생각하는 것조차 두렵다. 진정 억겁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관리국 사람들 생각은 어떨까 싶어 고개를 돌리자 할아버지는 다소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잘 모르겠구나. 신적인 존재 중에선 억 단위의 시간을 보내온 존재도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 존재라면 ‘고작’ 1872년을 연거푸 보냈다고 해서 죽고 싶어 할 것 같진 않구나.”
아리는 그냥 간단히 답했다.
“한번 물어봐. 나랑 할아버지보다야 네 올빼미가 잘 알겠지.”
죄수의 상태에 관해 물어도 대답해줄까? 일단 물어는 보자.
[조언 : 3 -> 2]
‘아드라비타는 정말 죽음을 바라고 있습니까?’
[위대한 자들 또한 그 내면엔 필멸자와 유사한 면모가 있기에 마음이 병들 수 있다.]
애매한 답변이다. 내용을 전하자 아리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수도 있다 수준의 답변이네. 올빼미도 잘 모르는 것 아니야?”
“그럴지도···.”
질문 내용이 신적인 존재의 정신상태라면 아무리 올빼미라 해도 잘 모를 수 있겠지.
그때 은솔 누나가 기대감 어린 반응을 보였다.
“마음이 병들 수 있다! 이거 뭔가 느낌 있는데?”
“느낌이요?”
“죄수가 마음이 병든 신이다? 내 피리가 활약할 상황이 오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누나의 유산 안식의 피리는 신적인 존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건이었지.
송이가 다소 냉정한 의견을 냈다.
“아드라비타가 203호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서 뭐 우울증이라도 걸렸다고 쳐봐요. 안식의 피리로 그걸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내 말이 그거야!”
“고칠 필요가 있어요?”
“어?”
“그가 우릴 돕는 이유가 죽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면 그 죽고 싶어 하는 마음을 우리가 없애줄 필요가 없잖아요.”
“… 그렇네.”
죄수가 미쳐서 우릴 돕고 있다면 그 미친 상태를 굳이 치료할 필요는 없어. 냉소적인 태도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누나가 다소 실망하는 사이 아리가 세 번째 주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신인과 원시인 그리고 우리의 정체! 다들 고민해봤어? 나는 가인이가 우주선에서 얻은 정보와 미로가 부화장에서 얻은 정보를 합치니까 나름대로 느껴지는 게 있었어.”
그 말과 함께 아리는 긴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신인의 정체. 가인이가 우주선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우주선엔 승무원들이 있어. 이들의 역할이 뭘까? 적어도 우주선 통제는 아니지.”
우주선이 날아가는 동안 승무원들은 죄다 냉동 수면 중이니 그들의 역할이 우주선 통제일 리는 없다. 그 일은 AI의 역할이다.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의견을 냈다.
“아마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깨어나서 행성을 개척하는 존재들이겠지. 그들 전원이 강화 인간인 까닭은 개척을 쉽게 하기 위해서일 테고.”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신인’이 바로 승무원처럼 강화 인간이라고 봐.”
“강화 인간이라···. 신인들이 가진 초능력은 설정상 강화 인간이기에 가진 능력인가?”
“그렇겠지. 또 이렇게 보면 미로가 발견한 고치와 부화장의 정체도 딱 보여.”
할아버지가 무릎을 ‘탁’ 쳤다.
“인간 배양 키트!”
“그거야. 강화 인간을 제작하는 인공 자궁이었을 거야.”
본격적으로 알아듣기 힘든 SF적인 이야기가 나올 때쯤 엘레나가 질문했다.
“우리도 신인이잖아? 그···. 배양 키트에서 만들어진 거야?”
“좋은 질문인데 나는 그 부분에 대한 정답을 아드라비타가 줬다고 봐.”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승무원 그 자체인 건가?”
“그거야. 그게 203호에서의 우리 정체야. 우리는 1872년 전에 우주선을 타고 이 행성에 도착한 승무원 본인들이야.”
그 말을 끝으로 아리는 자신의 의견을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신인 : 인간 배양 키트로 만들어낸 강화 인간.
우리의 정체 : 1872년 전 외계 행성에 도착한 승무원 본인들.
진짜인지 아닌지는 더 봐야겠지만 그럴듯한 가설로 보이긴 했다. 그러나 중요한 점 하나가 빠져있었다.
“그러면 원시인들은 대체 뭐야?”
“잘 모르겠어.”
“어?”
“모르겠어. 애초에 인간 맞아? 원시인이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정황은 이미 꽤 나온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신체 구조가 인간과 좀 다르다는 사실을 전해왔다.
엘레나 또한 광기에 차 원시인을 변이시키던 당시의 ‘미친 엘레나’는 원시인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인지했다고 말했다.
이것 외에도 송이의 축복에 반응해 송이에게 과도한 친근함을 보여줬다는 점 원시인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인지하던 산맥의 AI까지 고려하자 답이 나왔다.
그들은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원시인들은 애초에 우주선을 타고 온 인간과 별개의 집단인 건가?”
아무도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다만 의사 선생님은 회의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그렇게 보기엔 외견이 너무 닮지 않았습니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진화한 외계 생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럼 뭘까요?”
“모르겠군요.”
더 알아봐야 할 모양이다. 혹시나 해 두 번째 조언을 썼는데 역시나 애매한 답변이 돌아왔다.
[조언 : 2 -> 1]
‘203호의 원시인들은 인간이야? 아니라면 그 정체는?’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냐의 문제다.]
대답을 전하자 다들 머리를 감싸 쥐었고 일부는 불평했다.
“그냥 쉽게 쉽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가인이 후원자는 왜 이렇게 불친절해?”
미로의 의문은 내가 3000번 정도 품은 의문이다.
“아마 본인도 일종의 제약이 있을 거야. 그래도 좀 짜증이 나긴 해.”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제 생각엔 나름대로 의미 있는 답변을 준 것 같습니다. 아예 사람 거죽만 둘러쓴 수준으로 인간을 흉내 낸 존재라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을 것 같거든요.”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을 아주 ‘넓게’ 정의하면 원시인들 또한 인간으로 볼만한 무언가는 있는 모양인데?”
세 가지 주제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가 끝날 때쯤 평소엔 회의에 거의 참여하지 않던 승엽이가 오랜만에 적극적인 의견을 냈다.
“그냥 좀 쉽게 쉽게 생각해봐요.”
“쉽게 쉽게? 203호 시나리오 자체가 머리가 터질 만큼 어려운데?”
“아니 아리누나. 제 말은 너무 시나리오를 파고들지 말자는 거죠. 그냥 약간 게임처럼 생각하는 게 어때요?”
“게임처럼?”
“전 게임 할 때 스토리는 전부 스킵해요.”
“…”
순간 다들 말문을 잃고 대체 얘가 뭔 소리를 하나 싶은 마음으로 승엽이를 바라보았다.
“자! 우리 최종적으로 가야 하는 장소 어디죠? 산맥 맞죠? 거기 봉인 당한 아리 누나가 있으니깐!”
평소와 달리 미묘하게 박력 있는 태도에 아리가 움찔거렸다.
“그 그런가?”
“지금은 왜 산맥에 갈 수 없죠? 산맥에 로봇이 엄청 많고 강하니깐! 그쵸?”
이번엔 날 바라보면서 로봇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게 큰 문제긴 하다.
첫 시도 때와 달리 축복이 돌아오고 동료도 늘었지만 여전히 산맥에 가득한 로봇은 큰 장벽이다. 우리의 유산과 능력 상당수가 로봇에겐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내 화신의 서나 송이의 다양한 관점은 로봇 앞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긴 해.”
“죄수가 마지막에 미로에게 보여줬다는 기계장치! 그거 아마 우주선 부품 비슷한 것 아닐까요?”
부품에 ‘인류의 긍지’라고 적혀있었다니 우주선과 관련이 있긴 하겠지.
“자! 결론 났다!”
“결론 났어?”
“결론이 났다고?”
승엽이는 단호하게 외쳤다.
“그 부품 챙겨서 산맥으로 돌격하죠.”
“왜?”
“에잇! 아리 누나 그 부품이 왜 있겠어요? 게임으로 치면 최종 보스가 있는 구역으로 안전하게 진입하는 열쇠 같은 거잖아요!”
“에엑? 왜?”
“아니~ 참 답답하다! 중요한 물건이니까 죄수가 보여준 것 아니에요!”
“뭔 소리래!”
…
잠시 다들 어안이 벙벙해질 때쯤 한참 생각하던 은솔 누나가 픽 웃었다.
“승엽이가 떠올린 생각을 고민해봤는데 나름대로 그럴듯하긴 해. 이렇게 생각해봐. 어쩌면 그 부품은 우주선의 핵심적인 부품이고 산맥의 AI는 그 부품의 파괴를 원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제야 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걸 들고 산맥에 가면 산맥의 로봇들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다짜고짜 로봇이 공격하다간 부품이 파괴될 테니까.”
누나의 ‘해석본’을 들으니까 좀 이해가 갔다. 확실히 설득력 있는 진행이다 싶어 질문했다.
[조언 : 1 -> 0]
‘부품을 챙겨서 산맥으로 가자는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장소까지 어떻게 갈지 고민해보라.]
이후로도 모두가 다양한 의견을 내며 세 번째 시도는 어떻게 진행할지 계획을 짰다.
*
회의가 끝나고 다 함께 내일 힘내자며 헤어질 때쯤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체 어디에서 온 불안감인지 나 자신도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
늦은 밤 침대에 누울 때가 되어서야 불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우리가 203호의 시나리오를 이해하고 계획을 세우는 판단의 근거가 된 핵심 정보의 상당수의 출처는 어디인가?
아드라비타다.
우리가 직접 발로 뛰며 203호를 뒤져서 알아낸 것보다 아드라비타가 우리 입에 쑤셔 넣어준 정보가 훨씬 많다.
어쩌면 우린 부처님 위의 손오공이 된 꼴이 아닐까?
물론 아드라비타가 죽음을 바라는 존재라면 우릴 도울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아드라비타가 죽음을 바란다는 우리의 가설부터가 그의 의도대로 만들어졌다면?
답답함을 느꼈다. 설령 그렇다고 한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