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1
베니가 혼란에 빠져 자신의 기초 마법서에 무수히 많은 탐색 마법을 걸고는 ‘내가 눈치조차 챌 수 없는 고위 아티팩트라고…?’ 같은 헛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게 순조로운 미궁 탐사였다.
서걱.
유니콘 단검을 휘두르자 정신없이 땅을 파던 코볼트 하나가 그대로 절명했다.
“코 코볼?”
옆에 있던 녀석이 당황해 굽히고 있던 허리를 폈지만.
“…격렬한 불꽃!”
화르륵.
“코오오옥!”
몸을 일으키자마자 격렬한 화염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다 그대로 쓰려졌다.
“쓰읍. 위력이 생각보다 미묘한데요? 그리고 죽을 때 너무 소란스럽고요.”
“그 단검이 이상할 정도로 강한 거거든? 마법의 화력이 부족한 건 아니야. 당장 지금 쓰러진 코볼트도 너랑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잖아.”
샤도우의 위에 올라탄 채 멀리서 지켜보던 베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기야. 그렇게 생각하면 일종의 필살기긴 하네요.”
“뭐어. 상성이 안 좋았다고 생각해. 눈이 퇴화한 대신 청각과 후각이 발달한 놈들에게 이런 화려한 마법은 지양하는 게 맞으니까.”
코볼트의 비명소리. 옷에 묻은 그을음 냄새. 이 모든 것이 상대가 먼저 이쪽을 알아차리게 만들어 기습을 유발하는 요소다.
냄새마저 숨길 수 있는 내게는 별로 안 중요한 문제지만.
“그런 의미에서 요나 네 기존 스타일은 2층과 상성이 좋네.”
“기본적으로 은밀하니까 말이죠.”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으나 사실 은밀하다는 것만 보면 베니도 만만찮다.
샤도우는 베니의 그림자에 몸을 싣고 지면을 헤엄치듯 유영할 수 있다. 그런 샤도우의 등 위에 올라탄다면?
발소리를 줄이는 걸 넘어 완전히 없애는 것도 가능해진다.
갑옷 때문에 아무리 조심해도 걸을 때마다 철그럭 거리는 리디아에게는 불가능한 일.
피식 웃으며 코볼트의 사체를 샤도우에게 던져주었다. 알아서 집어삼키더니 부산물과 마석만 쏙쏙 발라서 뱉어주는 녀석.
주섬주섬 주워 든 전리품을 배낭에 챙기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죠. 코볼트가 쏠쏠하긴 하지만…코볼트만 잡을 수는 없잖아요.”
“맞아. 그래서야 실력이 안 느니까. 그거 알아? 똑같은 몬스터만 잡으면 던전의 성장 보상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는 거.”
“알죠. 똑같은 몬스터만 잡아서라기보다는…정해진 방법으로 손쉽게 사냥해서 그런 거겠지만요. 여신께서는 모험하는 모험가를 좋아하시니까요.”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조심해. 언제나 최우선은 네 목숨이니까. 나보다 강한 녀석도 재능있는 녀석도 많았지만….”
“결국 살아남은 건 베니라는 거죠? 고위 모험가가 된 것도 베니 뿐이고. 알고 있어요. 당연히 제 생존이 우선이죠. 애초에 여신께서도 제가 무리하다가 다치거나 죽는 걸 바라시진 않을 테니까요.”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분명 그럴 거다. 괜히 황혼을 삼키는 자와 가시나무 왕과의 결전 직전에 어떻게든 4성을 쥐여준 게 아니다.
만약 그 정도도 없었다면 내가 제법 위험했을 테니까 그리고 여신이 그런 걸 원치 않으니까 어떻게든 몸 비틀어 뽑게 한 거지.
…그 탓인지 이후로 죄다 1성 아니면 2성만 나오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더 깊숙이 들어간다 치면 루트를 다시 잡아야겠네요. 어디 보자…여기서는 일단 타락한 노움 쪽이 좋으려나요?”
“스파이더 퀸보다는 아무래도 그쪽이 좋겠지. 보아하니 요나 너는 일대 다수보다 일대일에 더 강한 것 같으니까.”
모든 몬스터는 광기에 타락한 존재들. 코볼트의 경우에는 광적으로 땅 파는 일에 열중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검 대신 곡괭이를 쥐고 땅을 파기 시작했을 뿐.
애초에 2층 미로 대부분을 코볼트가 만들었으니 말 다 했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존을 위해 땅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저 땅을 파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광기에 침식당한 것이다.
아무튼 땅을 판다. 계속해서 판다. 방해하는 녀석이 있으면 죽인다.
오직 그것만이 코볼트의 행동 원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코볼트를 이용해 먹는 것이 바로 타락한 노움이다.
철을 비롯한 온갖 광물을 가져다주면 땅을 파기 좋은 곡괭이와 삽을 만들어 준다.
코볼트는 땅 파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 노예처럼 묵묵히 땅만 파고 노움은 받아낸 광물을 통해 자신의 힘을 늘린다.
그것이 이곳 2층에서 일어나는 나름의 상생이다.
“다른 건 몰라도 철은 많이 챙겨가겠네요.”
“적당히 해. 너무 많이 가져가면 몸이 무거워지잖아.”
“…짐은 샤도우한테 맡기면 안 될까요?”
“안 돼! 리디아에게 듣기로는 요나 네가 빠르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거랬어. 무게 관리 또한 모험가의 덕목이야. 그게 싫으면 경량화 마법이 걸린 배낭을 사던가.”
“경량화 배낭은 비싼 주제에 크기도 작잖아요.”
“그럼 아공간 마법까지 달린 걸로 사던가.”
“…그건 고위 모험가쯤 되어야 하나 장만할 정도로 비싸잖아요.”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모험가란 그런 거잖아?”
“몸으로 때우라니…여태까지 절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던 건가요 베니?”
잔뜩 실망한 눈초리로 베니를 노려보자 흠칫 놀란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냐!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아냐!”
“그래요. 끝까지 자기는 나쁜 사람이 되기 싫다는 거죠? 알았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가 멋대로 하는 일로 치죠.”
체념한 듯 그리 말하며 메고 있던 배낭을 툭 떨궜다.
뒤이어 상의 단추에 손을 가져다 대자 베니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눈을 가린다.
“이 이 바보! 미궁에서 갑자기 무슨 짓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손가락 틈새로 은근슬쩍 이쪽을 바라보는 베니. 부끄러워하면서도 흥미진진해하는 그 모습에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기습적으로 배낭을 집어 던졌다.
“에잇!”
“어…?”
멍한 표정을 짓는 베니. 반면 그녀의 아래서 꾸물거리던 샤도우는 잽싸게 촉수를 뻗어 배낭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이빨을 벌려 한입에 꿀꺽 삼키기까지.
“잘했어! 나중에 내가 뱉어달라고 할 때만 뱉어줘야 한다? 베니가 뱉으라고 해도 들으면 안 된다?”
-크르릉.
즐거운 듯이 으르렁대며 눈을 깜빡이는 샤도우.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걸 눈치챈 베니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야! 그러는 게 어딨어!”
“여깄죠. 그리고 노움을 잡으러 간다면 금속은 최대한 몸에서 떨어뜨리는 게 좋잖아요?”
어깨를 으쓱이며 베니의 분노를 흘려넘겼다.
반쯤은 샤도우에게 짬 때리려는 의도였지만…나머지 절반은 진심이다.
노움은 땅속에 파묻힌 광물에서 지기地氣를 흡수해 자신의 힘을 키운다.
애초에 대지의 신의 힘이 짙게 남은 흔적에서 태어난 존재니 자신의 근원을 강화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행위겠지.
하지만 노움 또한 몬스터화 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온갖 광물을 쌓아두고 그 힘을 흡수하는 건 좋다. 하지만 몬스터화 된 노움은 광물을 쌓아두는 것 자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노움의 광기는 탐욕.
쌓아둔 광물에서 지기를 흡수하면 크게 성장할 게 분명하지만 그저 쌓아두기만 한다. 지기를 흡수하면 광물이 흙으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뭐어. 모험가 입장에서는 광물을 끌어안고 약한 채로 살겠다는 태도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일종의 보물 고블린 아닌가.
그래도 얕보면 안 된다. 정령은 평범한 동식물과는 그 태생부터가 다른 존재. 가진 힘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그 궤가 다르다.
더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질적이다.
예를 들자면…노움이 가진 광물 감지 능력이 그러하다.
노움에겐 평범한 오감도 존재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지기 그 자체를 느낄 수도 있다.
당연히 지기가 뭉쳐있는 금속제 장비는 무슨 짓을 해도 노움에게 들킬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 소리를 먹는 발걸음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으나….
애초에 노움의 광물 감지는 탐색 능력 같은 게 아니라 자기 몸의 일부를 인식하는 지극히 당연한 감각. 재수 없으면 안 먹힐 수도 있잖은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렇게 억울해하는 베니를 놀리고 도중에 마주치는 코볼트는 전부 코/볼트로 만들어 버리며 도중에 얻은 전리품은 샤도우의 뱃속에 저장하며 나아가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어느새 좁고 폐쇄적이던 통로가 끝나고 큼직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이 안전지대에 도착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벽에서 자라나는 특이한 이끼가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조명을 대신하는 공간.
그 중앙에는 작은 비석 대신 무더기로 쌓여있는 광물 원석이 있었다.
아무리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고 이 중에서 모험가가 쓸만한 광물은 얼마 없다지만….
그래도 이만한 양이면 거르고 걸러도 상당한 수율이 나올 터.
하지만 이를 솔직하게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재화에는 이를 지키고 있는 수문장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이는 미궁의 규칙과도 같은 것이다.
원석 무더기 위에서 오도카니 앉아있는 작은 난쟁이.
피와 살이 아닌 흙으로 이루어진 몸. 인간 비스무리한 형태를 띠고 있으나 묘하게 디테일이 조잡하다.
마치 어린애가 휙휙 그린 그림을 현실로 구현한 것 같은 형상.
하염없이 끌어안은 원석을 쓰다듬는 녀석을 확인하고는 잽싸게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는 베니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정령도 목이 베이면 죽죠?”
“히으읏…!”
“???”
아니 이 타이밍에 귓속말로 간지러워하지 말라고.
몬가몬가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놈ㅋㅋㅋ vs 노움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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