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2
“정령도 목이 베이면 죽죠?”
“히으읏…!”
몸을 파르르 떨며 소리 죽여 신음을 흘리는 베니.
아니 귓속말로 간지러워하지 말라고. 몬가몬가잖아.
어이없어하는 시선으로 말없이 베니를 바라보자 그녀가 변명하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베니. 전투를 앞두고 꼭 그래야겠어요?”
“그냥 간지러워한 것뿐이거든?!”
“하아. 이러니까 여자란. 하루 종일 머리속에 야한 거밖에 안 들어있죠?”
“진짜 아니라니까! 난 그냥 간지러움이 많은 거야! 여 옆구리라도 만져볼래? 분명 똑같이 간지러워할 테니까!”
정령에게 들킬세라 소리 죽여 소리 지른다는 쓸데없이 굉장한 기예를 선보이는 베니.
그녀가 몸을 옆으로 틀어 자신의 옆구리를 이쪽을 향해 들이민다.
다만 너무 과하게 몸을 꺾은 탓일까. 몸에 딱 달라붙는 드레스를 따라 갈비뼈의 라인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오….”
예전부터 내게는 한가지 지론이 있었다. 빈유 히로인은 갈비뼈가 예뻐야 한다는 지론이…!
그런 의미에서 베니는 합격이었다.
합격 도장을 찍어주기 위해 베니의 옆구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윽.
“힛?!”
살짝 스쳤을 뿐인데 격렬하게 움찔거리는 베니. 그녀의 옆구리 선을 따라 조심스레 손끝을 위로 끌어 올렸다.
“흐으…아앗!”
어찌 보면 야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리를 내며 바들바들 떠는 베니. 그녀의 갈비뼈를 피아노 치듯 가볍게 두드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손을 떨어뜨렸다.
이 이상 했다가는 싸우기도 전에 위치를 들킬 것 같으니까.
“일단 베니가 간지러움이 많을 뿐이라는 건 알겠어요.”
“그 그치? 그럼 이제 전투나….”
“하지만 사실 이것도 해명하는 척 제게 옆구리를 만지게 하시려는 걸지도….”
“야 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 베니가 그럴 리 없죠. 아무튼 그래서 정령도 목이 베이면 죽나요?”
조금 더 베니를 놀리려다가 바로 선회했다. 여기서 더 괴롭히면 진짜로 화낼 것 같네.
혼자 씩씩대며 잇소리를 내던 베니가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다.
“하아…미궁에서 장난치지 말란 말이야. 놀러 온 게 아니니까. 그리고 정령의 경우에는 급소가 다른 생물체랑은 좀 달라. 목이 잘려서 죽는 개체도 없지는 않겠지만….”
“근본적인 급소는 다른 부분이라는 거죠?”
“응. 맞아.”
나는 소설을 구상할 때 설정은 최대한 러프하게 잡는 편이었다. 정령 또한 마찬가지.
탄생 방법이라든가 어느 정도의 강함인지 박을 수 있는지 없는지 정도만 생각할 뿐. 약점이 어디인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아 그래도 그건 있네. 불의 정령과 물의 정령은 서로에게 치명적이라든가 번개 정령의 힘은 대지의 정령에게 큰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다는 등.
속성별 상성 정도는 생각해 둔 게 있긴 하다. 이 상황에서는 전혀 쓸데없는 정보지만.
대지의 정령은 공격 능력은 떨어져도 내성이나 맷집은 탁월한 수준이라는 설정이 있으니까.
참고로 원소 계열 신들 중에서 대지의 신만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유도 그래서다.
눈을 반짝이며 베니의 말을 기다리고 있자니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목을 뒤로 뺀 베니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통 정령의 약점은 반대 속성이야. 하지만 대지의 정령은 딱히 반대되는 속성이 없으니 그냥 부서질 때까지 부수는 수밖에 없어.”
“그게 뭔….”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어이없어하는 내 모습에 베니가 키득이며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하는 건 평범한 정령이 아니라 타락한 정령이잖아? 그럼 아주 간단한 답이 있어.”
“오오! 그게 뭔가요?”
“핵.”
“???”
“마석말이야.”
“아.”
마석은 몬스터를 이 미궁에 붙들어 두는 닻이자 각자의 시간에 박제시키는 핀 같은 것이다.
마석에 묶여있기에 몬스터는 미궁 밖으로 나올 수 없고 죽어도 계속해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즉 모든 몬스터는 핵이 부서지거나 몸에서 분리되면 현재의 시간대에서 분리되어 시공의 폭풍 속으로 사라진다.
시체에서 마석을 뽑아내면 그대로 시체가 사라지는 것처럼.
뭐어. 완전히 소멸하는 건 아니고 다른 시간선의 미궁에서 다시 생성되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마석을 부수면 몬스터가 통째로 사라진다는 것. 이거 하나만 알면 된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제가 핵을 부숴 사냥한다 치면 남는 부산물은 뭐가 있죠?”
“없지? 굳이 말하자면 저 녀석이 애지중지 끌어안고 있는 광물 원석 정도려나.”
“….”
광물 원석은 분명 돈이 될 거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부산물이 없다는 건 너무 슬프잖아.
우울해진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덧붙이는 베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원래 정령은 정령석 말고는 이렇다 할 부산물이 없는 녀석이니까. 그리고 정령석은….”
“헐값이죠.”
“맞아. 그러니까 아까워하지 말고 샤샥 해치워 버리면 돼!”
이 세계에는 꽤 많은 정령이 존재한다. 멸신전쟁 때 대지의 신을 제외한 모든 원소 계열 신이 죽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만큼 격렬하게 싸웠다는 뜻이다. 당연히 흔적도 많이 남겼고 사체에서 무수히 많은 정령이 태어나기까지.
먼 옛날에는 희귀한 존재였던 정령이 요즘 시대에는 하나의 종족처럼 자리 잡아 국가를 이룰 정도.
하지만 개체 수가 많다고 하여 친숙한 종족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정령의 특성상 따로 계약을 맺지 않는 이상 자신의 영역에서 나오기 힘들기 때문.
그 외에도 가진 힘과 지능이 비례한다거나 힘을 키우려면 영역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개체 수가 너무 많아 남는 자리가 없다거나 수명이 너무 길어 엘프 같은 장생종이 아니면 잘 계약하려 들지 않는다거나 자연의 화신 같은 존재라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라는 등.
여러 문제가 있어 예나 지금이나 보기 힘든 종족이긴 하다.
“후우. 알겠어요. 그럼 이제 다녀올게요.”
“응. 위험해 보이면 그때 개입할게.”
-크응.
베니의 말에 호응하듯 눈동자만 빼꼼 내밀어 답하는 샤도우.
마지막으로 허리에 두른 랜턴을 끄고는 전신을 내 감각 하에 두었다.
순간 세계가 나를 빗겨가는 것 같은 느낌. 보이지 않는 벽으로 단절하듯 행동 하나하나를 컨트롤 하여 기척을 극단적으로 죽인다.
소리를 먹는 발걸음. 거기에 더불어 투명 망토까지 활성화했다.
코볼트와 달리 타락한 대지 정령은 시각이 퇴화하진 않았으니까.
조명이라고는 벽에서 자라나는 푸르스름한 이끼가 전부인 어두컴컴한 공동.
그 사이를 하나의 유령이 된 것처럼 조용히 가로질렀다. 분명 달리고 있을 텐데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움직임.
심지어 쌓여있는 원석 무더기 위를 오를 때도 작은 달그락거림 하나 없었다. 애초에 그리되도록 조심해서 움직이는 것이지만 놀라운 것은 매한가지.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멍하니 앉아있는 타락한 대지 정령의 등짝을 향해 유니콘 단검을 찔렀다. 그리고.
-이 인간.
머리만 180도 회전해 뒤를 돌아본 녀석이 어눌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뭣!”
당황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르는 바람에 은신이 풀렸지만…괜찮다. 손은 멈추지 않았으니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속의 찌르기. 내 눈으로도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른 일격이 타락한 대지 정령의 가슴팍을 향해 쏘아진다.
심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심장이 있을 법한 곳에 마석이 있으니 차이는 없을 터.
그렇게 희게 빛나는 단검이 타락한 대지 정령의 등에 닿는 순간.
-침입자…도둑!
돌연 등 부분의 흙이 불룩 솟아올랐다. 정확히 내 단검이 닿는 지점에서 말이다.
푸욱!
끝까지 박아 넣은 검신. 하지만 그 이상의 흙에 막혀 마석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쯧.”
어디서 들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기습은 실패다. 일단 거리를 벌리고 차근차근 돌려 깎다가 기회를 봐서 마석을 부수는 수밖에.
혀를 차며 박힌 단검을 거칠게 뽑았다. 내 무기를 붙잡으려는 듯 검신을 강하게 물어왔지만 그마저도 베어버리며 빠져나오는 단검.
그렇게 뒤로 크게 도약하는 순간.
-도 도도도! 도오오오…!
“???”
버그난 것처럼 혼자 버벅대며 몸을 꽈배기처럼 뒤트는 타락한 대지 정령.
푸스슥.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마석 하나만을 덩그러니 남기고서.
“어어?”
어이가 없지만 한편으로는 기시감이 느껴지는 광경.
“홉 고블린?”
단검에 스치기만 해도 비처녀 특공을 받아 독에 중독된 것처럼 괴로워하다 죽은 홉 고블린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세상에. 그럼 누가 저 짜리몽당한 인간 비슷한 무언가에게 박았단 말이야? 아니지 반대로 박혔을 수도 있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에 오들오들 떨며 마석조차 내팽개치고 베니에게 달려갔다.
“베니!!!”
“으응?! 뭐 뭐야!”
“베니! 베니베니! 베니니니닛!”
“조오금 귀엽긴 한데 이름 정도는 똑바로 불러!”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반응을 하는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유니콘 단검을 들이밀었다.
“얍!”
베니의 팔뚝에 닿은 검면. 단검이 순백색으로 밝게 빛났다.
“휴우.”
그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갈비뼈 피아노. 이거 중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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