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7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마법사가 죽으면 무엇을 남길까.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절로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숨기지 않으며 모르가나의 시체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스태프는 전투 도중에 슬쩍해 아공간 반지에 넣어둔 상태.
그 외에 가치 있을 만한 물건이라면…역시 마탑에서 훔쳤다는 신물이려나.
원래 어떻게 쓰는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가두고 베니의 마법을 막아 세운 사멸의 기운은 확실히 강력했다.
안 그래도 일전에 황혼을 삼키는 자를 족치고 얻은 야수 신의 신물은 증거품으로 신전 쪽에 넘겨야 해서 아쉬웠는데…이번에는 꼭 사리사욕에 써야지.
속으로 행복회로를 돌리며 모르가나의 시체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우선 손에 끼고 있는 반지 2개와 팔찌 하나.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마도구로 보인다.
일단 챙겨야지. 감정은 베니나 이브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에서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으나…이것도 그냥 챙겼다.
애초에 모르가나는 내 알량한 실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마법사 아닌가.
어쩌면 숨겨진 마도구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비싸 보이는 목걸이니 일단 쑤셔 넣어야지.
“흠.”
당장 눈에 띄는 건 이 정도인가. 이제 본격적으로 벗겨 먹을 시간이다.
“로브…는 쓸모 없겠네.”
스태프와 비슷하거나 맞먹을 정도로 고급스럽고 정교한 마법이 인챈트 된 로브였으나 지금은 심장에 구멍이 뚫리며 고장난 상태였다.
물론 인챈트의 힘을 잃었을 뿐 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는 점. 그리고 고위 공간 마법 지식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으리라. 이것도 챙기자.
모르가나의 시체에서 로브를 벗겨 돌돌 말았다.
그리고는 혹시 몰라 주머니를 뒤져보는 것은 물론 숨겨진 공간이라도 있나 싶어 안감을 손으로 마구 훑어보았다.
“오?”
아니나 다를까. 안감에서는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팔뚝까지 쑤욱 들어갔다.
내게 갑자기 괴력이 생겨서 옷을 찢은 것은 아니다. 무려 아공간 마법이 주머니에 걸려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 벗기며 느껴지던 무게는 약간 무거운 겨울옷 수준. 즉 내가 그토록 바라던 아공간 마법과 경량화가 동시에 걸린 아티팩트라는 소리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그러니까 이렇게 복이 오는 것 아닌가.
히히 웃으며 내용물을 전부 꺼냈다. 다행히도 심장 부분이 꿰뚫리며 방호 마법은 깨져도 다른 마법은 정상 작동 중인지 불안정한 기색은 없었다.
그렇게 탈탈 털어낸 아공간 주머니에서는 푸른 용액이 담긴 포션 몇 병과 묵직한 지갑. 그리고 두꺼운 책 두 권이 있었다.
포션은 모르겠으니 다시 집어넣고 지갑은 돈으로 가득 찬 것같으니 나중에 조용히 세어보기로 하고….
책은 슬쩍 훑어보니 연구일지인지 일기인지 모를 무언가와 공간 마법에 관한 마법서더라.
…대체 왜 악역은 항상 일기 비스무리한 걸 남기는 걸까.
나도 소설을 쓸 때는 자주 그런 설정을 넣었지만 이는 순전히 써먹기 편해서 그런 것뿐이다.
하지만 모르가나는 납득시킬 독자도 없는데 대체 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연구일지 쪽은 따로 빼놨다. 이건 따로 파는 대신 불태울 예정이다.
“격렬한 불꽃.”
짧은 영창 끝에 내뱉은 시동어. 망설임 없이 연구일지를 태워버리는 모습에 한발 물러서 있던 히폴리테가 눈을 반짝였다.
“어엉? 어찌 보면 그게 가장 귀해 보이는데 괜찮은 거냐?”
“지식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해요.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도도 이를 위한 위대한 마법도 좋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무고한 이의 생명을 대가로 가져간다면 아무리 엄청난 지식이라도 휴지 조각보다 못한 거예요.”
일부러 화력이 강한 2성 마법을 사용했기 때문일까. 순식간에 잿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잔해.
다시 주워 모을 수도 없게 후후 불고 있자니 문득 히폴리테와 시선이 마주쳤다.
“꼬마. 이름이 도나라고 했던가?”
“요나인데요.”
“그래 요나. 너 좀 마음에 드는데?”
“헉. 뭐 뭔가요. 지금 저 헌팅하는 건가요? 죄송해요. 얼굴이랑 패션은 조금 취향이지만 그 내가 이러면 반하겠지? 하는 자신만만함이 너무 재수 없어서 생리적으로 무리예요!”
“…그런 생각 한 적 없는데. 왜 방금 내가 차인 것처럼 된 거지?”
사자 가죽의 대가리 부분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뒤통수를 벅벅 긁던 히폴리테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베니를 살펴보던 리디아에게 물었다.
“어이 리디아. 이 꼬마 원래 이런 애야?”
“응? 무슨 일인지 못 봤지만 뭔가 이상한 일을 한 거라면 요나는 원래 이상한 애긴 해.”
고개를 끄덕이는 리디아. 여기에는 베니 또한 동의하는지 반 박자 늦게 따라 끄덕인다.
내게 변함없는 호의를 보내주는 것은 샤도우뿐이었다.
-끼이잉…헥!
하지만 뾰족한 이빨 사이로 드러난 혀에 눈을 수십 개씩 증식시키는 짓은 그만뒀으면 한다. 아무리 나라도 너무 징그럽잖아 그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잠시 멈췄던 모르가나 파밍을 이어갔다.
로브 안쪽의 옷은 고급스럽긴 해도 이렇다 할 기능이 없는 평범한 옷이니 패스.
이후로도 신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돈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아니. 하아. 쓰으읍.”
그럼 대체 신물은 어디 있는 건데. 깊은 한숨을 내쉬며 혹시 몰라 입고 있는 겉옷까지 벗겨 보았다.
한때는 아름다웠을지 모르나 지금은 늙고 주름져 그 흔적만이 남은 몸뚱이.
“아잇!”
괜히 사서 눈만 버린 것 같은데.
욕지거리를 속으로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리디아의 앞에서 무릎 꿇고 손 들고 있는 베니가 있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나처럼 아직 속옷 한 장 입지 않은 자세인 터라 노골적으로 젊고 싱싱한 몸매가 드러난다.
…좋아. 다시 파밍 할 기력이 솟아났다.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금 모르가나의 시신을 이리저리 뒤집어 가며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신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황.
신물쯤 되면 해당 신의 기운을 주변으로 풀풀 풍기기 마련 아닌가. 당장 풀돌 조각상이 무드등마냥 항상 옅은 신성력을 발하는 것처럼.
공간이나 결과라는 추상적인 개념에마저 죽음을 부여하는 신물이라면 분명 보통 물건이 아닐 터.
분명 어딘가에서 기운이 느껴져야 하는데 말이지.
고개를 까딱이며 고민하는 것도 잠시. 주변의 ‘저거 뭐하는 녀석인데 시체를 홀딱 벗겨놓고 깊은 사색에 빠져있는 거지?’ 같은 시선을 받다 보니 문득 내 시선도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가슴팍의 상처. 정확히는 부서진 심장의 잔해가 있는 곳 말이다.
내가 모르가나의 숨통을 끊기 위해 유니콘 단검을 박아 넣은 곳이기도 하고 두터운 방어 마법이 성역에 당해 속절없이 꿰뚫린 부분이기도 하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모르가나의 상처를 헤집고 그 안쪽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찾았다.
조각난 심장이었던 살점과 차갑게 식은 핏물 속에서 반짝이는 은색의 무언가를 말이다.
죽음의 신의 신물답게 사기死氣를 뿜어내고 있었으나 이미 시체가 된 녀석 안에서 발견된 것이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빙고.”
절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그대로 손을 집어넣어 생명의 잔해 속에서 죽음의 성물을 뽑아 들었다.
꼬리를 물고 있는 잿빛 뱀 형태의 반지.
금속인지 유리인지 모를 특이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눈동자는 붉은빛을 띠고 있는 것이 요사스럽기 그지없다.
대체 왜 이걸 심장에 박아 넣은 것인지는 모르겠네. 애초에 이 신물에 무슨 능력이 있는지를 모르니까.
다만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권능이 담긴 물건을 신물이라 하고 권능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용법을 알게 되니까.
당연히 신물 또한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정확한 능력을 알 수 있으리라.
낄낄 웃으며 그대로 반지를 검지에 끼워 넣었다. 그것이 일종의 트리거였던 걸까.
순간 머릿속을 파고드는 내 것이 아닌 지식들. 이젠 가챠로 익숙해진 지식 주입의 느낌이다.
“끄응.”
느껴지는 고통은 짧았으나 그냥 흘려넘길 수는 없는 내용이었다.
“이게 뭔…?”
꼬리를 문 뱀. 이 신물은 놀랍게도 죽음을 배제하는 권능을 품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주변에 죽음의 기운을 흩뿌리고 실제로 죽는 이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게 흡수한 힘으로 사용자의 죽음을 저 멀리로 튕겨내는 것이 본래의 사용법이다.
모르가나가 신물의 힘을 마법으로 왜곡시켜 이상하게 사용하고 있을 뿐 본래는 착용자의 목숨을 하나 늘려주는 물건이라는 소리다.
만약 내가 모르가나의 시체를 그냥 넘겼다면 분명 그녀는 어느 순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리라.
그렇게 되살아난 모습이 정말 모르가나가 원하던 형태일지는 모르겠으나 불로불사에 집착하던 마법사답긴 하네.
“과연. 이래서 심장에 박은 건가.”
평범하게 손가락에 끼고 있으면 누군가 이를 가져갔을 테고 자연스레 모르가나의 몸에서 준비 중이던 기적도 흐지부지됐을 터.
그렇기에 온갖 공간 마법으로 보호받는 자신이 가장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심장 부근을 택한 것이리라.
이렇게 허무하게 심장부터 꿰뚫려 죽을 줄은 몰랐겠지만!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겉옷을 모르가나의 시체 위에 적당히 덮어두었다.
그리고는 내가 생각지 못한 것을 일깨워 주고 기꺼이 수익을 양보해 준 히폴리테를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해요 히폴리테님! 덕분에 원하던 걸 챙길 수 있었네요!”
“어? 아 응.”
잠시 머뭇거리던 히폴리테가 결국 잔뜩 경계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꼬마 요나야. 혹시 막 세상 모든 것을 여신께 바쳐야 한다거나 미궁에만 들어가면 들리는 목소리 같은 게 있냐?”
“….”
뭐야.
나 지금 황혼을 삼키는 자 내지는 미친놈으로 의심받는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그간 쌓인 피로가 쏟아지는 날인 건지 갑자기 엄청나게 피곤하더라구요…
흑흑. 여러분은 꼭 최소 6시간의 수면을 지켜주새오.
전…저는 틀렸어요…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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