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8
억울하다.
파밍 좀 하다 보면 심장을 파헤칠 수도 있고 그러다 좋은 게 나오면 웃을 수도 있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헌데 내가 왜 광신도 내지는 그냥 미친놈으로 의심받아야 하는가.
“억울해욧!”
“정말 이유를 몰라서 그러는 거냐?”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그리 따지자 히폴리테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꼬마 요나야. 지금 네가 어떤 차림인지 한번 스스로 살펴보길 추천할게.”
“어떤 차림이냐니…흐음.”
히폴리테의 말대로 나 자신을 한번 훑어보았다.
피에 젖은 손 한껏 당겨진 입꼬리. 그리고 상하의 전부 챙겨 입었음에도 묘하게 야한 옷차림.
“아하?”
“드디어 알아챘나. 원래 자기 자신은 살펴보지 못하는 게 사람….”
“제가 좀 신성 모독적으로 매력적이긴 하죠.”
“….”
“캬! 피 좀 묻었더니 퇴폐미도 같이 묻어나올 줄이야. 진짜 저 자신이지만 감탄이 멈추질 않는다니까요?”
“….”
히폴리테가 말없이 리디아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리디아가 잠시 나와 히폴리테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요나는 원래 저랬어.”
“뭐어?”
“나랑 처음 만날 때도 비슷했거든. 자력으로 자신을 인질로 잡은 납치범을 죽이고 피칠갑이 된 채로 도와달라면서 히히 웃지 뭐야.”
“…과연. 사이비도 정신적 충격으로 조금 불안정해진 것도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나사가 빠져있는 타입이라는 건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히폴리테. 순식간에 내츄럴 본 싸이코 취급을 받을 줄이야.
입술을 삐죽이며 방금 심장에서 뽑아낸 반지를 방금 루팅한 로브 주머니에 넣었다.
흥. 아무튼 목숨 원 코인을 얻은 내 승리다. 승부도 뭣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거다.
속으로 투덜거리며 정신 승리를 하던 도중. 문득 손에 묻은 피에 시선이 갔다.
이게 그렇게 신경 쓰이는 건가? 아니면 심장을 파헤쳤다는 부분?
솔직히 말해서 잘 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시체의 내장을 헤집는 것보다 사람을 죽이는 쪽이 더 나쁜 일 아닌가?
“죽으면 사람 아닌데….”
한숨을 푸욱 내쉬며 손에 묻은 피를 한차례 털었다. 그리고는 모르가나의 겉옷을 수건 대용 삼아 닦으려 했으나.
“잉?”
그 과정에서 입가에 튄 피 한 방울에 문득 개쩌는 생각이 떠올랐길래 슬금슬금 베니에게 다가가 물었다.
“베니 베니.”
“응? 뭐야?”
자신의 과거를 벗어나야 할 족쇄로 보기 전에 우선 제대로 마주 보겠다는 말을 지키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샤도우를 노려보는 베니.
그녀가 시선을 샤도우에게 고정한 채로 무심하게 대답했다.
너무해라. 이제 샤도우랑 연결이 복구되며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거지?
이래도 반응 안 하고 버텨? 라는 마음을 그득 담아 조심스레 베니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사락.
“히읏?!”
얇은 옷 한 장 사이로 느껴지는 베니의 맨살. 파밍 하느라 강제로 만질 수밖에 없었던 모르가나의 피부와는 탄력의 수준이 다르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그제야 베니가 삐걱이는 움직임으로 이쪽을 돌아본다.
“뭐 뭐야?”
애써 간지러움인지 두근거림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를 참는 듯한 표정.
하지만 일부러 모른척하며 베니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베니.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겨서요?”
“으응? 말해봐.”
“마법사는 심장에 마나를 담잖아요? 그냥 쟁여두건 서클의 형태로 정제하건 말이에요.”
“그렇지?”
“그럼 마법사의 심장을 먹으면 영약 같은 효과가 있나요?”
“….”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린 베니. 거의 인간들 사이에 숨어서 인간인 척하던 오리너구리를 발견한 것 같은 표정이지만….
내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탐식의 위장.
무려 3성급 권능이며 먹을 수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됐건 온전히 흡수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주로 꽝으로 뽑힌 마력초를 먹어치우는데 쓰긴 하지만…그 활용성 자체는 무궁무진하다.
만약 모르가나의 심장에 담긴 마력을 조금이라도 흡수할 수 있다면 엄청난 성장을 이룰 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어보자 내 손을 꼬옥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마.”
“넹?”
“우선 심장에 담긴 마나는 목숨이 끊어지며 빠르게 흩어져. 하물며 모르가나처럼 심장이 부서진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아….”
“만약 심장이 멀쩡해도 더더욱 그런 짓은 하면 안 돼. 어찌됐건 좋은 그릇이잖아? 고통스럽게 죽은 마법사의 심장에서 마력이 빠져나간다면 거기에 담기는 건 뭐라고 생각해?”
“어…죽은 피?”
“그것도 있겠지만 내가 말하려던 건 저주야.”
그리 말하고는 샤도우를 가리키는 베니. 생각해 보면 샤도우도 죽은 이들이 남긴 악감정과 몬스터의 신체에 담긴 광기의 저주를 농축시킨 존재였지.
세세한 부분은 달라도 큰 틀에서 원리는 비슷하다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그런 편법은 생각하지도 마. 알겠어?”
“어 음. 알겠어요. …근데 만약 그 저주나 원망마저 완벽히 소화시킨다면….”
“소화란 녹여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거야. 더 위험하겠네. 까딱 잘못하면 나처럼 침식당할걸?”
“오케이. 포기할게요.”
“응. 뭔지는 몰라도 잘 생각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베니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조용히 수군거리는 히폴리테와 리디아가 있었다.
“정말 엘리 씨의 예비 남편이라고? 이거 완전….”
“쉿. 내가 보기엔 엘리 선배가 그런 취향인 것 같아. 너무 오랜 시간 남자를 못 만났더니 가치관이 삐뚤어진 거지.”
“…저런. 불쌍하게도.”
음해 아닌 음해가 들려왔지만 굳이 반박하는 대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슬슬 이 답답한 미로에 질리기 시작했으니까.
***
잔뜩 쫄아있는 길잡이를 회수해 지상으로 올라온 뒤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이미 한바탕 뒤집어진 마탑은 눈에 불을 켜고 리디아와 히폴리테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다만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았다. 내가 아직 주목받기엔 이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리디아가 적당히 각색해서 보고하더라.
베니가 필사적으로 버티는 사이 리디아와 히폴리테가 결계를 부수고 모르가나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나는 뒤에서 팝콘이나 씹으며 열심히 응원했다…라는 식으로 말이지.
대신 모르가나에게서 파밍 한 물건은 나와 베니가 나눠 갖고 리디아와 히폴리테는 자신이 쓰러뜨린 양 공적과 의뢰비를 챙겼으니 결과적으로는 윈윈이지 뭐.
“짜잔! 그렇게 다시 엘리의 곁에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아니 이게 뭔….”
오늘 있었던 일을 들은 엘리가 아연한 표정으로 닦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렸다.
“읏차.”
물론 내가 도중에 잡아서 깨지지는 않았지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엘리가 내 몸을 여기저기 더듬기 시작했다.
“괜찮은 거 맞지?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있어도 마지막에 성역 전개하면서 다 치료됐을걸요?”
“그럼 다행이긴 한데…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엘리가 내 볼을 쭈왑쭈왑 잡아 늘이며 힘 빠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미궁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곳이라지만 요나 너는 너무 심하잖아. 정말로 성자 맞아? 여신님은 뭐하시는 거야. 너무 운이 나쁜 거 아냐?”
“에이. 그게 여신님 마음대로 됐으면 미궁이 왜 있고 길드는 왜 있어요. 전부 기적으로 얍! 하고 해결했지.”
사랑의 여신은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신답게 모든 신앙을 독차지하고 있지만…그렇게 얻은 힘 대부분을 미궁에 쏟아붓고 있기도 하다.
즉 신이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적은 셈.
널리 알려진 사실을 되새긴 엘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내 볼을 놔주었다.
“그렇겠지…후으.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렇죠.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위험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응? 설마…드디어 모험가를 그만두고 평범한 일을 하며 살 생각이…!”
“그러니까 언제 죽어도 후회가 없도록 오늘 엘리한테 동정을 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스턴이라도 당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엘리. 하지만 정작 만져보면 말랑말랑한 엘리의 귀를 만지작대고 있자니 금세 정신을 차린 그녀가 미련이 뚝뚝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 아직 미성년자에게 손댈 정도로 굶주리지도 않았으니까.”
“에잉. 절 위해 인생을 걸 용기는 없는 건가요?! 엘리 이 쫄보!”
“그런 식으로 인생을 걸고 싶진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요나 네게 미련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중요해!”
“넹? 그게 왜요? 설마 애태우기 플레이 같은 건가요?”
“…그게 아냐. 지금껏 본 요나는 아무래도 과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타입이란 말이지. 나한테 이렇게 묶여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말이야.”
“그거야 당연히 엘리가 좋아서 그런 거죠. 엘리가 좋은 사람이라 그런 것도 있고요.”
“하지만 만약 정말로 해버린다면? 그렇게 요나가 나한테 흥미를 잃는다면? 그때는 나를 떠나가는 게 아닐까? 어쩌면 미궁에서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이젠 미련이 없다며 포기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단 말이야.”
“와….”
엘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무어라 답할지 한참을 고민하며 말을 고른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엘리는 정말 귀찮은 여자네요!”
“시끄러! 나도 알거든?!”
“하지만 전 그런 귀찮은 엘리도 좋아해요.”
“…읏!”
얼굴을 붉힌 엘리가 잠시 어버버거린 뒤에야 간신히 주제를 돌렸다.
“그 그래서? 내일은 뭐 할 거야? 설마 바로 미궁에 가려는 건 아니겠지? 만약 일정이 없으면 나랑….”
“설마요. 그런 일을 겪었으니 저도 좀 쉬어야죠. 무엇보다 이번 전리품이 얼마나 나올지 견적도 좀 내보고 팔아버릴 건 샤샥 팔아버리기도 해야 하잖아요. 이브 씨의 가게에 다녀올 생각이에요.”
“…앗 응.”
다른 여자랑 볼일이 있어 시간이 안 날 것 같다고 하자 엘리가 시무룩해졌다.
축 늘어진 그녀의 꼬리를 툭툭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제가 엘리의 것이라고 알 수 있도록 잔뜩 냄새를 묻혀주세요.”
“….”
언제 침울했냐는 듯 눈을 크게 뜬 엘리.
그녀가 조심스레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후 마구마구 쓰다듬당했다.
그루밍 당하는 걸 기대한 터라 조금 아쉽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니케 바니 소다 50연차에 뽑기 성공
리버스 곡랑 20연차에 뽑기 성공
붕스 부트힐 명함 전광 스택 쌓인거 있어서 각각 10연차 20연차에 뽑기 성공
블아 키쿄 인연 저금통 깨서 40연차에 뽑기 성공
페르소나 유스케 저렴한 패키지 몇개로 명함이랑 무기 뽑기 성공
쌓아둔 재화를 제법 소모하긴 했지만 가챠 비용 자체는 얼마 안 들었음.
운이 좋군….
\ㅇㅅㅇ/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