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
“캐앵! 캥! 캐릉….”
서서히 질식으로 죽어가는 또 다른 아이언 울프. 그 처량한 울음소리에 작게 속삭여 주었다.
“걱정하지 마. 너는 죽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거야.”
가죽 팔아서 어디다 쓰겠는가. 죄다 가챠 하는데 지르고 말겠지. 당연히 가장 많이 나오는 건 마력초일 테고.
탐식의 위장 덕에 마력초도 전부 먹어 치워 마나통 성장에 쓰고 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즉 이 녀석은 아이언 울프가 아니라 하프 마력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 기분 더러워졌다.”
스스로 가챠 폭사를 예언한 것 같은 모양새 아닌가. 우울한 마음에 미약한 불꽃에 조금 더 정신을 집중했다.
가챠에서 나온 스킬은 본래라면 오랜 시간 들여야 할 노력을 스킵할 수 있게 해준다.
시전을 위한 스펙 보정은 물론 필요 최저한의 관련 지식까지 몸뚱이에 직접 새겨지니까.
스펙 보정이야 당연히 고맙게 잘 쓰고 있지만…어찌 됐든 ‘스킬’인 만큼 그 진가는 지식 쪽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미약한 불꽃.
이는 기초 마법으로 불릴 만큼 굉장히 간단한 마법이다. 그래서인지 마법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마탑도 여기저기 퍼지는 걸 막지 않을 정도.
하지만 그들이 익힌 미약한 불꽃이 내가 쓰는 것과 정말 같은 걸까?
가챠 시스템은 같다고 했는데 조금 의아한 점이 몇 가지 있어서 말이지.
판 대륙에서 미약한 불꽃는 그저 불을 피워 올렸다에 의의를 둔 마법이다. 화력도 보잘것없고 그 형태를 조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마력을 집어넣으면 어느 정도 출력을 높일 수는 있으나 일정 이상을 넘어가면 마법의 구조 자체가 무너져 버리니 전자의 말에는 동의한다.
마력이 그 정도로 많지 않아 직접 시험해 보진 못했으나 건네받은 지식에는 비슷한 내용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다음. 형태를 조작할 수 없다는 말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그런 내용은 없으니까. 심지어 조금만 노오오력해보면 어떻게든 될 것 같더라고.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으엉?”
아이언 울프의 코 전체를 지지는 대신 두 갈래로 갈라져 콧구멍만을 틀어막는 불꽃의 모습에 눈을 끔뻑였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딸깍하는 감각으로 스킬을 사용하는 게 아닌 터라 조금 긴장했는데….
다를 게 전혀 없었다. 그냥 하려고 하니까 되더라.
“이게 왜 되는데.”
아니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가. 소매치기 스킬도 지갑만 몰래 슬쩍하는 스킬이 아니라 정면에서 무기를 뺏는 게 가능하지 않았던가.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불꽃의 형태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변형은 가능한데 마력 소모가 좀 더 심해지는 것 같더라고.
뭣보다 아이언 울프가 고통스러워하긴 해도 힘 빠지는 속도는 더 느려졌다.
아마 열기가 더 안쪽까지 전해지긴 하지만 살 태우는 연기가 줄어들어 질식의 효율은 떨어진 탓이리라.
그렇게 안 그래도 얼마 없는 마나를 탈진 상태가 오기 직전까지 쥐어짠 뒤에야 아이언 울프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후우…부탁드릴게요. 리디아 님!”
“…이상해. 분명 요나를 짐꾼으로 삼은 건 나였는데.”
불만스러움을 나타내듯 입술을 삐죽 내민 리디아. 하지만 몸은 착실히 움직여 오러로 아이언 울프의 배를 가르고 있었다.
하기야. 중간에 엘리의 부탁도 있었고 리디아도 나를 키우는데 제법 맛 들리긴 했지만…이거 사실 짐꾼 연수 기간이었지.
적어도 2층으로 넘어갈 수준은 되어야 짐꾼 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처음에는 뭔 소린지 잘 몰랐는데…이렇게 직접 1층에서 굴러보니 알겠다.
적어도 쓸데없이 함정 건드렸다가 문제 일으키진 않아야 하고 전리품을 갈무리할 줄 알아야 하며 온갖 짐을 들고 다닐 체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즉 지금의 나는 리디아의 짐꾼으로 써먹기에도 너무 연약하다.
“응애.”
“응애는 아이언 울프 같은 거 못 잡아.”
리디아의 타박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반조리 된 아이언 울프를 마저 손질하기 시작했다.
가죽을 벗기는 과정은 힘들고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라서 상하는 부분도 많지만….
반값만 건져도 40쿠퍼다. 아니면 내 갑옷을 만드는 데 써도 괜찮겠지. 지금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은 초보 모험가 지원용으로 만든 저렴한 녀석이니까.
아이언 울프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 있다면 1층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싸워도 괜찮으리라.
좀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래도 문제없이 뜯어낸 가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가방 위쪽에 묶었다.
기존에 잡은 아이언 울프 가죽 2개가 있었으니 3단으로 쌓인 모양새. 이게 다 돈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흐뭇해졌다.
“흐흐. 오늘은 고기반찬이에요!”
“저녁은 매일 고기 먹지 않아? 엘리 선배가 끼니마다 고기 먹잖아.”
“제가 엘리에게 키잡 당하는 중이긴 하죠.”
“…뭔가 불온한 단어 같은데. 키잡이 뭐야?”
“키잡 모르세요? 키워서 잡아먹기의 줄임말인데.”
“신기한 말도 다 있네. …근데 내가 보기엔 엘리 선배가 잡아먹는 게 아니라 잡아 먹히는 쪽일 것 같아.”
“그럼 역키잡이 되는 거죠 뭐. 전 어느 쪽이건 좋아한답니다.”
키잡에는 로망이 있다…!
그 증거로 온갖 창작물을 긁어먹다 보면 종종 키잡향 폴폴 나는 것들이 나오더라고.
헬레네를 납치한 테세우스 키다리 아저씨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겐지모노가타리 프린세스 메이커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등….
여기서 중요한 건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를 거쳐 현대까지. 동서양 상관없이 수많은 이들이 키잡이라는 요소를 다뤄왔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이래저래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로망이라는 점에서는 부정의 여지가 없다는 소리.
“엘리는 어떤 쪽을 좋아할 것 같나요? 먼저 제 쪽에 손댈 용기는 없는 것 같으니 역시 역키잡?”
“엘리 선배의 취향 같은 거 알고 싶지 않은데. 거기에 상대가 눈앞에 있다면 더더욱.”
“음. 확실히 그건 뭐라 대답하건 뻘줌해질 수밖에 없네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그럼 리디아 님은 어느 쪽이 좋으세요?”
“…여기서 나를?”
당황한 리디아. 그런 그녀를 향해 씨익 웃으며 물었다.
“네. 리디아 님이요. 분명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짐꾼으로 써먹고 싶은데 지금은 너무 약하니 2층 수준까지 키워서 데리고 다니겠다고. 이거 키잡 아니에요?”
대충 정리해 둔 가방을 지나쳐 리디아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설마 아니라고 하실 건 아니죠 리디아 님?”
“나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아무것도 안 하긴요. 저를 계도한다는 명목으로 장비도 주고 싸우는 법도 가르쳐 주고 미궁에서 다치지 않도록 따라와 주기도 하고…리디아 님이 생각하는 평범한 삶을 제게 강요하시기도 하잖아요?”
“…강요라니. 난 그냥….”
“알아요. 그런 생각이 아니었다는 거. 저도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강요라고 했을 뿐이지 그게 싫다는 소리는 아니라구요? 전부 제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선의에서 비롯된 거잖아요.”
키득이며 그리 말하고는 리디아의 손 위에 내 손을 살짝 겹쳤다.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예요. 꼭 평범하게 살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아니라는 거죠. 아무리 뒤틀린 사람이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
갑자기 이렇게 들어올 줄은 몰랐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리디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네…물론 진심으로 말한 거긴 하지만 방금 건 어디까지나 빌드업에 불과한데 말이지.
살짝 가져다 대고 있던 리디아의 손을 꾸욱 붙잡았다.
“그러니까 책임져 주세요.”
“…뭐?”
“저를 리디아 님의 취향으로 만들 거라면 책임을 지셔야죠. 키워서 유기하지 말고 제대로 잡아먹으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엘리 선배가…애초에 나는 그럴 생각도 아니었는데….”
평소라면 ‘헛소리 곤란.’ 같은 말을 하며 딱 잘라버렸을 리디아였으나 어째 오늘따라 반응이 찰지다.
그래서일까. 장난기가 마구 솟아 평소라면 안 할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
“리디아 님. 그거 아세요?”
“…뭔데.”
“기사도 로망스에서 불륜은 로망이라는 거.”
“그 그건…!”
기사 문학. 우리가 흔히들 떠올리는 방랑 기사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악을 물리치고 레이디…여기서는 젠틀맨인가. 아무튼 이성과 맺어지는 이야기는 판 대륙에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의 특성상 유부남을 참 많이 건드린다….
“키잡도 로망. 불륜도 로망. 그렇다면 둘을 합친 키잡불륜은 로망 중의 로망이 아닐까요?”
“로망….”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빳빳하게 굳어버린 리디아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이루고 싶지 않으신가요? 로망.”
“…!”
눈을 크게 뜨는 리디아. 하지만 자극이 너무 강했던 걸까. 되려 제정신을 찾은 리디아가 도끼눈을 뜨고 꿀밤을 날렸다.
꽁!
“끄에엥!”
“그런 장난은 금지. 됐으니까 빨리 짐 챙겨서 일어나. 다음 지역으로 이동해야지.”
내 쪽에서 등을 돌리고 그리 말하는 리디아. 참 놀랍게도 분명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데도 옆으로 삐져나온 가슴이 보인다.
세상에….
얻어맞은 정수리를 쓰다듬는 척 뒤에서 보이는 가슴이라는 레어한 풍경에 시선을 집중한 채로 말했다.
“그러고 싶긴 한데…너무 무거워서 가방을 못 들겠어요.”
“응?”
“벌써 아이언 울프를 3마리나 잡았잖아요? 가죽 무게가 장난 아니더라구요.”
아이언 울프는 황소만 한 덩치를 자랑한다. 당연히 가죽 또한 그만큼 크고 무겁다.
“딱 절반만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리디아 님? 대신 더 사냥하진 않고 바로 복귀할게요.”
“…누가 짐꾼인지 모르겠어.”
리디아는 투덜대면서도 같이 들어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바질 파스타 마싯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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