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
띠링!
[2성: 손목 석궁]을 합성하시겠습니까?
“에.”
이거 돌파 시스템도 있었어?
가챠겜에는 흔히 있는 시스템이다. 중복 뽑기 된 캐릭터나 무기를 강화하는 건 더 많은 현질을 유도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니까.
그런데 이 가챠 시스템에 돌파 기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특정한 물건이 뽑힐 확률을 높여주는 픽업도 없고 뭐가 뽑힐지 알려주지도 않고 각 등급별 확률도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함의 끝판왕이 내 가챠 시스템 아닌가.
확실하진 않지만 사랑의 여신이 선물해 준 것으로 유력해 보이는 가챠 시스템이다.
이미 전 세계의 신앙을 독점하며 어마무시한 헌금을 벌어들이는 여신이니 굳이 내 과금을 유도할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그러니 자연스레 시스템이 애미 없…아니 친절함이 부족해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천장도 없고 확률도 창렬한 가챠는 돈을 내다 버리는 일이라는 걸 잘 알기에 쉽게 손대지 않겠지만….
이미 첫 무료 가챠 때 3성 사료를 먹고 뇌가 녹아버린 나 같은 놈이나 가챠에 돈을 꼬라박는 거지.
지금껏 지른 돈을 나를 위해 투자했다면…아니 애초에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면 모험가 같은 건 안 했겠지.
내겐 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러니 가장 빠르게 강해지는 길인 가챠를 돌리는 거다.
절대도파민에뇌가절여지고파블로프의개처럼돈만보면가챠굴리고싶어지는도박중독이아니란말이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다 보니 돌파 시스템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어딜 어떻게 봐도 돈 벌 생각이 없는 시스템에 돌파라니.
심지어 아이템 스킬 권능 같은 것들이 따로 나뉜 것도 아니고 다 같이 나오잖는가.
뒤지게 넓은 가챠 풀에 천장도 없고 확정 가챠도 없는 주제에 확률까지 쓰레기인데 돌파 시스템이 있다?
“개똥겜이잖아….”
뭐 게임은 아니지만.
한숨을 푸욱 내쉬며 아직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마력초와 회복초를 바라보았다.
진짜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많이 나왔는데 그때는 아무런 알림도 없었지.
“2성부터 가능한 건가.”
1성은 워낙 잘 나오니 따로 합성이 불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확신은 못 한다. 2성 중복 뜬 게 이번이 처음 아닌가. 이 부분은 앞으로도 2성 이상 중복이 뜨는 경우를 몇 번 더 봐야 확실해지리라.
일단은 아까부터 시야에서 반짝거리는 알림부터 어떻게 하기로 했다.
속으로 긍정의 의사를 보내자 조용히 사라지는 알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석궁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화아악-
순식간에 빛의 입자로 화해 흩어진 석궁이 기존의 석궁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다만 이번에는 흩어지는 대신 빛나는 채로 석궁의 실루엣이 변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늘어난 금속의 비중. 여기저기에 붙은 도르래 장치. 마지막으로 시위 윗부분에 생겨난 손잡이 달린 기어.
석궁을 뒤덮던 빛이 사라지자 그제야 새로운 알림이 떠오른다.
띠링!
[2성: 손목 석궁]을 합성하여 [2성: 손목 석궁+1]이 되었습니다.
“과연. 이런 느낌인 건가.”
고개를 끄덕이며 합성 완료된 석궁을 살펴보았다.
척 봐도 전체적으로 더 세련된 디자인. 그야말로 기계식 활이라는 느낌이다.
활대가 금속으로 변한 것은 물론 활대 끝에 붙은 도르래 장치 덕에 위력은 훨씬 강해졌겠지.
그만큼 장력이 강해져 장전이 힘들겠지만…시위 위에 붙은 손잡이 달린 톱니바퀴가 이를 보조하기 위한 장치인가보다.
시계방향으로 돌리니까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시위가 당겨지더라.
“아니 근데 예전의 흔적은 거의 안 남았잖아.”
기껏해야 팔에 고정시키는 가죽 토시 정도? 그 외의 부분은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다.
마치 기존 석궁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석궁으로 교환해 준 것처럼.
그렇게 요리조리 살펴보며 직접 손목에 착용해 보며 달라진 조작감을 가늠해 보았다.
놀랍게도 착용감 면에는 큰 차이가 없더라. 단순히 토시가 그대로라서는 아니다.
소리를 먹는 발걸음을 얻으며 한껏 예민해진 감각이 속삭인다. 무게중심이 예전과 똑같다고.
금속의 비중이 높아진 만큼 무게 자체는 상당히 늘었지만 나 또한 그사이에 꾸준히 던전을 공략하며 성장했으니 사용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즉 손에 익은 무기가 그대로 강해진 셈.
“이건 좋네.”
자세한 건 실전에서 써먹어 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는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이 불친절한 시스템에 돌파까지 집어넣은 광기 탓에 기대치가 낮아져 있기 때문에 쉽게 만족한 것도 같지만….
어쨌든 이 정도면 어중간한 새 2성이나 강철 방패처럼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장비보다는 훨씬 괜찮은 결과다.
속된 말로 돌파 효율이 좋은 셈.
“그럼 이제 나머지나 정리할까.”
수북이 쌓인 마력초와 회복초를 한 움큼 입 안에 쑤셔 넣었다.
씁쓸한 민트 맛이었다.
***
“요나. 그건 또 어디서 훔쳤어?”
“…왜 제가 훔쳤다는 전제로 이야기하시는 거죠?”
“….”
함께 미궁에 들어가기 위해 요정과 은화에 찾아온 리디아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참고로 엘리는 뒤에서 낄낄대는 중이었고.
반짝이는 메-탈 석궁을 들어 올리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건 제가 지금껏 모은 돈으로 산 거예요! 훔치다니. 절 대체 뭘로 보는 거죠?!”
“발랑 까진 꼬맹이.”
“물건은 물론 목숨까지도 훔치는 소매치기.”
“그 발랑 까진 꼬맹이의 방을 부수고 들어오려 했던 엘리는 조용히 하세욧! 그리고 리디아 님! 우린 그걸 소매치기가 아니라 암살자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악의적인 편집에 순간 엘리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리디아가 돌연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잠깐. 요나 뭔가 이상해.”
“아침의 엘리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리디아 님도 좋은 냄새가 난다면서 제 정수리에 코를 파묻으실 건가요?”
슬쩍 머리를 내밀자 리디아가 정색하며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 선배?”
“아니. 그. 나는 수인이잖아. 냄새에 민감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수인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이제와서? 충동을 못 이긴 범죄자의 변명이야.”
“아니라니까?! 리디아 너도 가까이 다가가면 확 차이가 느껴질걸?!”
“이 거리에서도 느껴져. 요나도 그럴 나이고 이번에 아이언 울프 가죽으로 돈 좀 벌었으니 향수라도 산 거겠지. 하지만 그게 코박죽 할 이유는 아님.”
“아잇…! 이건 향수 냄새 같은 게 아니래도!”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답답해하는 엘리. 투닥이는 둘 사이에서 슬쩍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멈춰요! 둘 다 저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아 그건 아니지.”
“응. 그건 아님.”
“….”
내가 끼어들자마자 단결해서 고개를 젓는 둘. 조금 서운해졌다.
“흥! 요나 비질게.”
“농담 그만하고. 그래서? 사실은 어떻게 된 건데? 리디아가 올 때까지 일부러 말 안 하고 있었던 건데 요나 너 어제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 거 알아?”
“응. 석궁이야 지금도 쏠쏠하게 써먹으니 큰맘 먹고 강화한 거겠지. 훔치지만 않았으면 됐어. …하지만 엘리 선배 말대로 냄새 말고도 완전 다른 사람이 됐어.”
“…대체 어디가요?”
“몸놀림.”
“발걸음이 달라.”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엘리와 리디아. 세상에. 지금 설마 소리를 먹는 발걸음을 알아챈 건가? 아직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물론 당사자인 나는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짐작이 간다.
본격적으로 기척을 죽이며 은신 상태에 들어가는 게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감각이 예민해지지 않았나.
당연히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 달라질 수밖에.
예전에는 신경 쓰이지 않던 발소리가 거슬린다거나 살짝 틀어진 균형이 불편하다거나 쓸데없이 힘이 들어간 어깨가 어색하고 그러더라고.
하여 조금씩 편하게 자세와 행동거지를 교정했다. 아니지. 교정이라는 말도 좀 그렇네.
그냥 몸이 알아서 덜 불편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런 이유로 어제와는 세세한 부분이 달라진 건 사실인데…이걸 바로 알아챌 줄은 몰랐단 말이지.
“리디아 님은 그렇다 쳐도 엘리가 정말 대단한 모험가였다는 소리가 사실이었군요?”
“…내가 팔만 멀쩡했어도 리디아보다는 강할걸.”
“하지만 팔 없잖아. 엘리 선배 허접.”
“뭐라고 이 년아?!”
자연스레 투닥이기 시작한 둘. 다만 그 과정이 평소와 달리 어색한 데다가 계속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감각이 달라져서 더 잘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네.
지금 저 둘은 내게 선택지를 넘긴 거다. 갑자기 변한 이유를 말해줄지. 아니면 이대로 넘기고 평소처럼 지낼지.
어찌됐건 가챠만 숨기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비밀은 아닌 터라 그냥 말해주기로 했다.
“코흠코흠. 어제 뭐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구요…그냥 갑자기 사랑의 여신께서 가호를 내리셨어요. 향기는 그래서 나는 거예요.”
“?”
“?”
자고 일어났더니 가호를 받았다는 말에 멍하니 눈만 끔뻑이는 둘. 다 큰 어른임에도 조금 귀여워 보여서 장난기가 돌았다.
“그리고 제 몸놀림이 바뀌고 조용조용하게 걷는 이유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부끄럽다는 듯 엘리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제 제가 딸치다 실수로 큰 소리를 냈더니 엘리가 찾아왔거든요. 그때 깨달음을 얻었어요.”
“뭐?”
어이없어하는 엘리를 향해 배시시 웃어보였다.
“이 정도로 조용히 움직이면 엘리 귀에 안 들리겠죠?”
“아 아니 그게 무슨….”
엘리의 귀가 쫑긋 섰다.
“그리고 이 정도로 좋은 향기가 나면 밤꽃 냄새도 숨길 수 있겠고요.”
“…!”
엘리가 코를 살짝 찡그렸다.
하여간 참 알기 쉬운 사람이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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