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엘리가 나를 가르치기 위해 리디아에게 의뢰를 냈다.
리디아는 이명이 붙을 정도의 베테랑 모험가. 당연히 공짜로 받아주진 않았으리라.
얼마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상당한 금액이었을 터.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야만적인 시대에서 전생에서도 받아본 적 없을 정도의 호의를 받을 줄이야.
심장 안쪽이 간질간질하고 입가에서는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흫 흐흐흫….”
“으엑.”
어째서인지 리디아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이 끓어오르는 의욕을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리디아 님! 빨리 가죠! 지금이라면 1층의 몬스터를 하나도 남김없이 도륙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진정해. 무기도 없이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잖아.”
“할 수 있어요! 저라면!”
“…요나니까 안 된다는 건데.”
한숨을 푸욱 내쉰 리디아가 방방 뛰던 내 어깨를 잡아 눌렀다.
가녀린 손가락. 하지만 내 몸을 지면에 고정시키는 강렬한 근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나는 약해. 과감하고 재빠르지만 그 외에는 절망적.”
“큿….”
평소에도 자각하고 있던 문제를 직접 언급할 줄이야. 맞는 말이기에 아픈 말도 있는 법이다.
판 대륙은 미궁의 존재 덕에 남자건 여자건 얼마든 강해질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예외다. 이는 지구와 다름없는 사실.
육체는 덜 자랐으며 마력이나 오러는 개화하지 못했거나 했더라도 그 양과 질이 미약하다.
성직자 계열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성자 성녀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신도는 오랜 시간 바친 신앙이 그대로 신성력이 되니까.
이쪽은 성별 같은 것보다 경력이 훨씬 더 중요한 직업군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렇기에 어린아이는 약하다. 약하지만…내겐 가챠로 뽑은 3성 스킬이 존재한다.
소매치기 기술이라 전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유연함과 민첩성을 얻은 것은 사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게 느껴졌나 보다. 리디아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모자란 스펙은 다른 걸로 보충하면 돼.”
“영약 같은 걸로요?”
“…그건 비싸. 효과는 확실하지만 가격 대비 비효율적. 내가 말한 건 무기야.”
그리 말하고는 벨트에서 작은 단검 하나를 꺼내는 리디아.
“빌려줄게.”
“이건…?”
“내 예비 무기.”
리디아에게서 받아 든 단검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 내 팔 길이로 다루기 적당한 사이즈.
은색으로 빛나는 검신의 중앙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양옆으로 세운 날의 예기는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팔면 비쌀 것 같네요.”
“…빌려주는 거라고 했다?”
단검보다도 서슬 퍼런 리디아의 눈빛에 슬쩍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런 거 빌려주셔도 상관없나요? 좋아 보이는데.”
“응. 별거 아냐.”
“…이런 무기가 별거 아니라고요?”
리디아가 어버버거리는 나를 향해 우쭐한 미소를 지었다.
“나. 잘나가는 모험가.”
“예 뭐.”
“돈도 많아.”
“…!”
과연. 나한테나 비싼 물건이지 리디아에게는 그럭저럭 쓸만한 물건이라는 건가.
“어라? 제가 저번에 본 리디아 님의 지갑은 그 정도로 풍족하진 않았는데요?”
“새 장비를 샀으니까.”
과연. 고위 모험가는 돈을 많이 버는 만큼 빠져나가는 돈도 많다는 건가.
그 자리에 안주할 거라면 상관없지만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더 좋은 장비가 필요한 법이니까. 물론 실력은 기본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아예 벨트에서 검집을 꺼내 이쪽의 허리춤에 고정시켜주는 리디아.
묘하게 조심스러운 손놀림이네. 내 몸에 닿는 걸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는 느낌이다.
마치 나는 흑심이 없어요. 위험하지 않은 여자에요라고 어필이라고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없는데….”
“요나. 엘리 선배랑 그렇고 그런 사이잖아.”
“하아…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제대로 검집을 달아준 리디아. 단검을 검집으로 되돌리자 허리춤이 확 묵직해진다. 그 무게감이 안심감과 자신감으로 화한다.
“이제 무기도 생겼으니 어서 가보죠!”
“응.”
짧게 끄덕이는 리디아와 함께 발걸음을 서둘렀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미궁도시의 중앙. 내가 들렀던 길드 산하 대장간이 아닌 모험가 길드 본부가 있는 곳이다.
“여긴 언제 와도 시끄럽네요 리디아 님.”
“사람 많으니까.”
다양한 종족이 살벌한 무장을 한 채 나 모험가요 티를 내며 돌아다녔고 그런 모험가들 상대로 장사를 하는 노점상이 시끄럽게 호객행위를 한다.
이런 복잡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지만….
묘하게 붕 뜬 분위기인 걸 보아 미궁도시 외부의 사람인 거겠지. 아마 의뢰를 맡기러 온 게 아닐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리디아의 손끝을 잡았다.
“….”
흠칫 놀라며 이쪽을 돌아보는 리디아.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잘못한 것도 없건만 허둥지둥 둘러대기 시작했다.
“인 인파가 복잡하니까요! 떨어지지 않게 하려던 건데…다른데 잡을까요?”
“…이것도 엘리 선배에게는 비밀.”
그리 말하고는 내게 새끼손가락 하나를 내어주는 리디아. 이를 잡고 쫄래쫄래 따라가다 보니 느껴지는 주변의 시선.
경악. 비웃음. 부러움. 그리고 성욕이 담긴 눈이다.
뭐 마지막의 발정이야 남역 세계에서 이런 몸으로 빙의한 이후 자주 받던 시선이니 그러려니 하는데…나머지는 뭐지?
의아함에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와 비슷한 조합을 발견했다.
척 봐도 미궁 초행으로 보이는 허접한 차림새의 남자 궁수와. 그의 엉덩이를 주물거리며 걷는 베테랑 여자 모험가.
남자 쪽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파르르 떠는 것이 꽤나 수치스러운 모양이다.
“아하?”
이제보니 저렇게 노골적으로 주무를 정도는 아니지만 척 봐도 밸런스가 맞지 않는 파티가 몇몇 보인다.
앞선 파티처럼 여자 쪽이 남자 뉴비를 음흉하게 바라보거나 반대로 남자 쪽이 괜찮아 보이는 모험가에게 달라붙는 경우가 대부분.
건전하게 뉴비 키워주는 고참 모험가 파티도 있긴 한데…놀랍게도 이들이 가장 적은 케이스다. 그나마도 파티원 전원이 같은 클랜인 경우에만 볼 수 있고.
모험가들 사이에 ‘청탁’이 오고 가는 일은 흔하다는 설정을 넣은 건 분명 나지만 그게 이런 종류도 해당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제야 나를 짐꾼으로 써주겠다며 여기저기 더듬던 녀석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년이 이상한 게 아니라 애초부터 이런 종류의 거래가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거였구만.
덕분에 조금 전의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처럼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놈의 자식이 벌써부터 여자한테 아양 떨며 뭐라도 얻어먹으려는 것처럼 보였겠지.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리디아라는 점에서 놀란 거고.
이쪽을 힐끔거리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리디아의 새끼손가락을 잡고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왜.”
“저한테 엘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를 생각이신가요?”
“절대 아냐.”
“그럼 좀 더 당당하게 걸으세요. 뭔가 켕기는 게 있다는 표정 짓지 마시고.”
“읏….”
잠시 고민하던 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걸로 불편함은 좀 덜어졌으리라.
원만히 잘 해결됐다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였다.
“뭐! 저는 아직 엘리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싶긴 하지만요!”
“….”
그 말에 희대의 악녀라도 보는 것처럼 눈썹을 찌푸린 리디아.
왜지. 어째서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지. 아직 아무런 일도 없었으니 아무 사이 아닌 거 맞잖아! 꼬우면 엘리가 날 덮쳤어야지!
억울함에 흥흥거리며 모퉁이 몇 개를 더 돌았다. 그러자 모험가 길드 본부의 건물 너머로 드러나는 큼직한 회색 석판.
얼핏 보면 묘비처럼 보이는 석판 위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신격을 지닌 자들만 읽고 사용할 수 있다는 언어. 신언문자神言文字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조차 신언문자는 읽을 수 없다.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저것도 내가 설정한 거라 그냥 통째로 외우고 있거든.
“여기가….”
“응. 미궁의 입구.”
처음 본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지. 누가 내 머릿속을 그대로 재현해 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참고로 입구가 자리 잡은 이 넓은 공터를 판그레이브 광장이라고 부른다.
본래 미궁은 혼돈 그 자체였다. 하지만 사랑의 여신이 만들었다는 저 문을 통과해 입장하면 밸런스 패치가 완료된 미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던져져 자기 수준과 동떨어진 몬스터를 상대하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무조건 정문을 통해 입장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사람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미궁에 들어가려는 모험가가 워낙 많아 줄 자체는 길었지만 빠른 속도로 줄어든 덕에 금새 우리 차례가 되었다.
석판을 앞에 둔 리디아가 거친 표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사용법은 간단해.”
“석판에 손을 얹고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죠? 자신이 가본 최대 깊이까지는 한 번에 순간 이동할 수도 있고요.”
“…잘 아네?”
“저는 원래 모험가 지망생이니까요. 이것저것 미리 알아뒀을 뿐이에요.”
기본적인 설정이야 내가 짰지만 이를 발전시켜 어떻게 써먹는지는 이곳 사람들이 정한다.
그러니 무언가 달라진 점이 있을까 확인했던 건데…아무래도 이만한 물건을 다른 식으로 활용하긴 힘들었던 걸까. 따로 유의할 점은 없더라.
대신 비슷한 일을 마법으로 재현하겠다며 텔레포트 게이트라는 걸 연구한다는 소문은 들었다.
아직까지는 전부 실패했다지만…뭐 언젠가는 성공하지 않을까? 판타지답고 좋네.
피식 웃으며 나 또한 석판에 한쪽 손을 댔다.
“출발할까요?”
“그래.”
전생에 그토록 열심히 고민했던 미궁의 설정.
이를 직접 경험해볼 기회가 다가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랜만에 연재하니 오랜만에 달리는 댓글들…짜릿해…늘 새로워…나한데 더 관심을 줘!!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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