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12화
“제가 위험에 처했을 때 주인님은 자신을 부르라고 하셨어요· 이걸로 연락하면 돼요·”
“····”
카이나의 말에 로웰린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녀가 어찌 도움을 거절하고 싶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누구의 도움이라도 빌리고 싶은 게 지금의 심정이었다·
소드 마스터! 그 이름은 아직 로웰린에게 높고 견고한 벽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로웰린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누구의 도움도 거절할 형편이 아니었다·
로웰린이 카이나에게 말했다·
“고마워, 카이나· 그럼 내가 먼저 나가 볼 테니 네가 연락을 해서 지원군을 요청해 줘·”
카이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연락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언니· 부디 몸조심하세요·”
“물론이야·”
그 말과 함께 로웰린이 연무장을 벗어났고, 카이나는 목걸이에 내장된 통신 마법을 전개하였다·
“통신 온!”
파아앗!
목걸이에 조각된 보석이 빛을 발하며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 시각 금탑 갑자기 통신이 걸려오자 마법 수련을 하던 실피르가 엘 대신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걸려 온 통신을 수락하며 상대의 정체를 알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여기는 금탑· 통신을 건 분은 누구시죠?”
그러자 통신을 건 쪽에서 고운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이나의 목소리였다·
– 들리시나요, 어머님? 카이나예요·
무척 다급함이 서린 카이나의 목소리· 실피르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음을 느끼고는 되물었다·
“그래, 잘 들려· 근데 무슨 일 있니?”
-네, 무척 급한 일이에요· 지금 루비어스 백작령에 괴한이 침입했대요· 침입자들 중 소드 마스터도 있다고 해요· 주인님의 힘이 필요해요!
실피르가 잔뜩 놀란 목소리로 카이나에게 되물었다·
“뭐, 침입자라고? 그게 정말이니, 카이나!”
-네· 지금 로웰린 언니와 기사들이 막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적들 중 소드 마스터도 있다고 하니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어서 도움을!
“알겠어· 엘리에게 전할 테니 조심하렴· 금방 갈게, 알겠지?”
그와 함께 통신이 끊겼다·
실피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어쩌지·’
현재 엘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두문분출하고 있는 상태다· 몇 달 전부터 그래 왔기에 지금 당장 찾아가 루비어스 백작령으로 달려가라고 말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게다가 현재 엘의 연구는 거의 극에 달한 상태여서, 자칫 방해를 했다가는 그간 해 온 연구가 송두리째 무너져 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때문에 실피르는 일단 응급 처방으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보통 때 같으면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을 테지만 이번 일은 로웰린의 안전이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로웰린은 실피르의 남편, 레이언 루비어스의 조카다·
때문에 실피르와 로웰린의 관계는 이미 가족과 같았으며, 사실상 실피르는 로웰린을 이미 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실피르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발걸음을 연구실이 아닌,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녀가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10여 명의 기사가 수련을 하고 있었다·
한창 검을 수련하고 있던 모스가 실피르를 보고 반색했다·
“아니, 대모님께서 이곳엔 무슨 일이십니까?”
실피르는 그들이 모시는 엘의 어머니였기에 모스가 실피르를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공손했다·
모스의 말에 실피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다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큰일 났어요! 현재 루비어스 백작령에 위험에 처했다고 해요· 그리고 그곳에 있는 카이나 또한 위험에 처했어요· 여러분이 가서 카이나를 구해 주세요·”
그에 기사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모스가 실피르에게 물었다·
“카이나 주모님이 위기를? 루비어스 백작령으로 떠나시면서 매직 아머(Magic Amor)를 착용하지 않고 가신 겁니까?”
“그래서 문제라는 거예요· 게다가 현재 루비어스 백작령을 침입한 이들 중 소드 마스터도 있다는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여러분의 힘을 필요로 하는 거예요·”
“음!”
실피르의 말에 모스가 생각에 잠겼다·
엘의 말이었다면 그들은 두말하지 않고 루비어스 백작령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실피르는 그들의 주군이 아니었고, 그것 때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 것이다·
하지만 답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엘은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당장 나서기 힘들었고 그렇다면 다른 이들이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일 이들이 자신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모스가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그러자 곧장 대답이 나왔다· 대답을 한 이는 마이더였다·
“생각하고 말 것이 있습니까? 당연히 가야지요! 가지 않았다가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책임질 자신 있으십니까?”
“····”
없었다· 마이더의 말이 정답이었다·
다른 기사들도 모두 같은 의견인 듯했다·
모스가 결정을 내렸다·
“좋아, 그럼 결정 났군·”
그러고는 실피르를 향해 말했다·
“저희는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모님께서는 워프 게이트 활성화를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실피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무장을 벗어났다·
아직 7클래스 마법사가 아닌 그녀로서는 워프 게이트롤 전개하기 위해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스가 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준비하도록 하지· 이번에 우리들의 힘이 소드 마스터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는 걸 보여 주도록 하자·”
“그러자고!”
그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편, 괴한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나선 로웰린은 무척 고전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받아들인 견습 기사 100여 명 중 50여 명이 돌연 배신을 하고 아군을 공격하고 있던 것이다·
침입자의 숫자는 약 80여 명· 그런 차에 50여 명이 배신까지 하고 나서니 적의 숫자는 물경 100을 헤아렸다· 루비어스 백작가 정식 기사 10여 명과 견습 기사 80여 명, 도합 90명보다 더 많은 숫자였다·
“이런····”
얼추 숫자에서 자신들이 부족함을 느낀 로웰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질에서 뒤지는 상황에서 숫자까지 불리하니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견습 기사들 중 90여 명이 이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게다가 30여 명에 이르는 견습 기사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도망갈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도망치는 기사야 어찌 됐든 상관없지만 루비어스 백작가를 위해 죽어 간 기사를 보자 로웰린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녀의 검에서 푸르스름한 오러가 짙게 뿜어졌다·
“너희들 같은 놈들이 감히!”
분노한 로웰린이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른 그녀는 소드 마스터를 빼고 그 적수가 없었다·
빠르고 강력하게 쏘아진 그녀의 검이 거침없이 적 기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루비어스 백작가에 들어왔다가 돌연 배신을 한 견습 기사였다·
“커헉!”
실력을 숨긴 소드 익스퍼트에 달한 기사였지만 로웰린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털썩·
생명이 떠나간 기사의 몸이 허물어지자 로웰린이 곧장 다른 적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폭풍과 같은 속도로 적 3명을 베어 버리자 주변에 서 있던 기사들이 물러나고 검은색 복장으로 일색의 침입자들이 나섰다·
오러를 머금은 로웰린의 검이 침입자 중 한 사람의 가슴에 빠르게 쏘아졌다·
그러나 이번 전개는 방금 전과 달랐다·
침입자의 검에 푸르스름한 오러가 맺히더니 로웰린의 공격을 그대로 튕겨 낸 것이다·
쩡!
“아니?”
자신의 검이 이렇게 쉽게 막히자 놀란 로웰린·
하지만 지금 상황은 잠시의 놀라움도 허락되지 않는 생사의 순간· 재빨리 정신을 수습한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
침입자도 만만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며 그녀의 검에 맞서 나갔다·
챙챙챙!
대여섯 번의 공방이 오간 뒤 드러난 침입자의 빈틈·
로웰린이 눈을 빛내며 그 틈을 비집어 나갔다·
“죽어라! 악적!”
쐐액!
엄청난 속도를 내며 쏘아지는 로웰린의 검!
그녀의 검이 침입자의 가슴에 꽂히기 직전, 그녀는 뒤에서 엄습해 오는 예기를 느끼고는 재빨리 검을 회수하여 뒤로 휘둘렀다·
그러자 소리 없이 다가와 그녀에게 검을 휘두르던 침입자의 검과 로웰린의 검이 부딪쳤다·
쩡!
오러와 오러가 부딪치면서 그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등 뒤로 다가온 침입자를 밀어낸 로웰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칫!”
하나하나 상대하면 자신이 이길 수 있었으나 여럿이 힘을 합치니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지금도 적 하나를 처리할 수 있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이가 개입해 오는 바람에 끝을 보지 못한 것이다·
로웰린은 신중한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2명으로 늘어난 적을 상대하기 위해 바짝 긴장하였다·
그때 로웰린에게 접근하는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