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1화
한편 트겐발리 공작은 누구의 예상대로 잔뜩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쾅!
콰직!
분노에 찬 그가 탁자를 내리치자 강력한 마나를 머금고 있던 그의 손이 그대로 탁자를 부숴 버렸다·
트겐발리 공작이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이곳에 모인 제2왕자파 귀족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세 영지가 루비어스 백작에게 넘어갔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브릴켄드 후작!”
“예, 공작님·”
트겐발리 공작의 호명에 브릴켄드 후작이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분노에 찬 눈으로 브릴켄드 후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해 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하게 말해 보라고!”
“예, 공작님· 일단 세 귀족은 명령대로 루비어스 백작가를 급습했습니다· 그리고 압도적인 전력으로 루비어스 백작가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고 합니다·”
트겐발리 공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멸문이 아니라 타격이란다·
그의 의문에 곧장 흘러나왔다·
“큰 타격? 멸문이 아니라 타격이란 말인가?”
“예, 그게 공격 도중 마탑의 기사들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미칸 백작과 아드보카 백작을 상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금탑주가 등장했고, 그들은 시체를 모두 회수하여 퇴각했다고 합니다·”
“그럼 일을 잘 처리한 것 아닌가· 왜 그들에게 들킨 거지?”
트겐발리 공작의 물음에 브릴켄드 후작이 약간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것이··· 금탑주가 영혼을 소환하는 서먼 소울을 익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마법으로 영혼을 소환하여 일을 벌인 이들이 누군지 알아내고, 곧장 증거를 포착, 영지전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탑주의 무력에 의해 세 백작들이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허허허!”
너무나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리는 트겐발리 공작·
그로서는 정말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렇게 운이 잘 맞아 떨어진단 말인가·
그 상황에 금탑의 인물이 있을 줄 몰랐고, 설마하니 금탑주가 비주류 마법인 서먼 소울을 익혔을 줄도 몰랐다· 운이 따라 주지 않으니 완벽해 보이던 일도 실패할 수밖에·
이번 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트겐발리 공작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흐음! 이번 일의 실패로 자네가 세운 계획은 모두 연달아 시행할 수 없게 되었군·”
브릴젠드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오랫동안 생각하여 세운 계획을 시행하지 못하는 게 무척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그렇습니다· 이번 일이 실패하였으니 다른 강구책을 찾아야 할 듯합니다·”
“다른 강구책이 있나?”
트겐발리 공작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브릴켄드 후작· 하지만 그는 비관적이지 않았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여도 그곳을 빠져나올 방법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자네만 믿겠네·”
상황이 많이 안 좋아졌다·
압도적인 힘으로 제1왕자파를 밀어붙이던 상황에서 3명의 소드 마스터를 잃은 지금 상황은 선뜻 제1왕자파를 압도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브릴켄드 후작의 머리뿐이다· 언제나 최고의 계획을 세워 온 그이니만큼 트겐발리 공작은 이번 일의 해결책도 브릴켄드 후작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런 기대를 알기라도 하듯, 브릴켄드 후작이 트겐발리 공작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무 낙담하지 마십시오, 공작님· 비록 계획이 실패하였다고 하지만 상황이 절망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실패도 훗날 승자가 되었을 때 모두 잊힐 것들입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십시오·”
브릴켄드 후작의 위로에 트겐발리 공작이 한결 나아진 표정을 지었다·
“알겠네· 그럼 회의는 이만 하도록 하지· 지금 이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비단 브릴켄드 후작뿐만이 아닌, 다른 귀족들도 모두 생각해야 할 것이네·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탄 이상 우리의 운명도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네· 모두 알겠나?”
장내의 귀족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예, 공작님·”
“그걸로 된 거네· 그럼 오늘 모임은 이만하도록 하지· 상황이 좋지 않지만 모두 포기하지 말고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게·”
그렇게 제2왕자파의 회의가 끝났다·
막상 회의에서 현 상황을 호전시킬 계획은 나오지 않았으며,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귀족들로서는 발걸음이 무척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귀족들을 보며 트겐발리 공작이 두 눈을 감았다·
“방법이 없는가····”
그렇게 루비어스 백작가의 영지전은 왕권 다툼의 구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제8장 지크릴의 음모
알카이드 황태자가 황제가 되면서 지크릴의 예상대로 상당한 잡음이 일어났다·
우선 오스칼 대제에게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치던 귀족들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으며, 제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신전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갑작스레 황제의 자리에 올라섰기에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이기에 알카이드 황제는 엘에 대한 원한을 접어 두고 제국의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제국을 안정시키는 데에는 지크릴의 능력이 딱히 필요치 않았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지크릴은 알카이드 황제를 찾아가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 제국을 안정시키는 동안 저는 잠시 다른 곳으로 가 있으려 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알카이드 황제는 그것을 쾌히 승낙했다·
지크릴의 힘은 무척 매력적이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흑마법사다· 그리고 받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 주는 것이 있어야 했기에 알카이드 황제는 지크릴이 도움이 내심 꺼려지는 면도 있었다·
쾌히 승낙해 주자 지크릴은 알카이드 황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때마침 생각난 계획이 있는데 알카이드 황제가 잘 놓아주어서 다행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스팟!
지크릴의 몸이 빛과 함께 사라졌고, 알카이드 황제는 사라진 지크릴의 모습을 쫓으며 중얼거렸다·
“분명 매력적인 힘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흑마법사에 불과하다· 너무 깊이 빠져서는 안 되지·”
제국을 다스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존재·
비록 실피르라는 여인에게 빠지고 엘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그였지만 그는 역시 제국을 다스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지배자였다·
황궁에서 벗어난 지크릴은 곧장 자신이 마탑주로 있는 흑탑을 향했다·
흑탑은 사람들의 눈에 전혀 미치지 않는 첩첩산중에 위치해 있으며, 흑탑의 흑마법사들은 근처에 사는 몬스터들을 사로잡아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흑마법을 연마, 발전시키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탑주님·”
지크릴이 등장하자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그를 반겼다· 흑마법사들의 환대를 받으며 지크릴은 흑마법사들에게 말했다·
“오랜만의 방문이군· 지금 당장 이십사 장로들을 모두 불러들여라·”
그 말을 끝으로 지크릴은 탑주의 집무실로 올라갔고 명령을 받은 흑마법사들은 허리를 깊게 숙였다·
흑탑에서는 상관이 곧 신이었다·
“예, 탑주님!”
흑마법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흑탑의 24장로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흑탑주의 집무실 그곳은 흑마법사의 집무실답게 어두컴컴하며 음침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넓은 집무실에는 스무 명이 넘는 마법사들이 긴 의자에 양옆으로 착석해 있었는데, 그들은 흑탑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흑탑 24장로다·
모두가 6클래스 이상의 마법사인 이들은 역사 깊은 흑탑의 힘을 상징하는 이들이며, 이들의 전투력은 동급 마법사보다 월등히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즉, 단일 세력으로 치면 대륙 최강의 마탑은 바로 흑탑인 것이다·
지크릴이 장로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이는 그가 어린 편에 속했지만 흑탑에서는 실력이 곧 서열이었다·
“모두 와 줘서 고맙군· 내가 이곳에 온 것은 금탑주의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해 레베탄 고원의 몬스터들을 움직이기 위함이다·”
“레베탄 고원의 몬스터를?”
한 장로가 묻자 지크릴이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레베탄 고원의 몬스터를 움직이려고 한다· 내가 블리어드 제국의 알카이드 황제와 손을 잡아 그가 도움을 주기로 했지만 아직 금탑의 자세한 힘을 모른다· 때문에 알카이드 황제가 제국을 안정시키기 전에 레베탄 고원의 몬스터들을 움직여 금탑의 힘을 시험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크릴의 설명에 7클래스 흑마법사이자 흑탑의 부탑 주인 게로마네가 질문을 던졌다·
“그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탑주님?”
그의 질문에 지크릴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명색이 성국의 공격을 막아 낸 곳이 아닌가? 몬스터를 보낼 거면 최소 일만이 넘는 몬스터는 보내야겠지· 그곳에는 그랜드 마스터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나이트 골렘이 있으니 말이야·”
게로마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렇군요· 과연 옳습니다· 그 정도는 보내야지요·”
지크릴이 24명의 장로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 정도를 움직이려면 나와 장로들 전체가 나서야 할 터· 그래서 그대들을 소집한 것이다· 내 계획에 궁금한 게 있나?”
그에 장로 중 한 사람이 일어나면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솔직히 탑주님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탑주님의 힘이라면 당장 금탑에 가서 금탑주를 잡아 올 수 있을 터· 일을 너무 어렵게 처리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 말에 지크릴이 실소를 지었다·
“아직 상황을 잘 모르나 보군· 현재 금탑에는 대륙 각지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그곳에 내가 가서 금탑주를 잡아라? 이건 대륙에 우리 흑탑이 있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제아무리 우리 흑탑의 힘이 강하다고 하나 그만큼 대륙의 힘도 강하다· 과거처럼 우리의 움직임에 따라 호락호락 당해 줄 대륙이 아니라는 것이다· 충분히 답이 되었나?”
질문한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입니다·”
“다른 질문 있나?”
지크릴이 둘러보았지만 질문을 하는 장로는 없었다· 방금 전 지크릴의 설명으로 모두가 한 번씩 가졌던 의문을 해소한 후였다·
“그럼 곧장 가도록 하지· 우리들의 성지, 레베탄 고원으로·”
지크릴의 명령으로 흑탑의 주 세력, 장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