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3화
“이, 이건···!”
오랜만에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던 엘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청난 숫자의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제9장 그레이 오크들의 침입
골든 벨리 전체에 광범위한 탐색 마법을 펼쳐 놓았기에 엘은 침입자의 등장을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좋은 의도가 아닌 것 같군·”
엘의 표정이 굳었다· 좋은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이 이곳에 족히 수만에 해당하는 이들을 데려올 리 없기 때문이다·
“누가 침입한 것인지 살펴보아야겠군·”
성국의 침입은 아닐 것이다· 엘이 교황청을 습격하여 톡톡히 혼이 난 성국이 뚜렷한 계책을 세우지 않은 채 이곳에 올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벨 상단의 정보망을 피해서 성국이 움직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이들이 침입했다는 뜻· 그러나 수만에 달하는 숫자를 동원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옆에 인접한 테란델 후작뿐이다·
하지만 그가 골든 벨리에 군대를 침입시키는 미친 짓을 할 리가 없다·
결론은 다른 이가 들어왔다는 뜻·
그렇다면 그 상대가 누구인지 살펴봐야 했다·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골든 벨리에 들어 왔느냐를 파악해야 올바른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상대를 살펴보기 위해 엘은 텔레포트 마법을 캐스팅하였다· 이윽고 캐스팅이 끝나자 전개어를 외쳤다·
“텔레포트!”
스팟!
새하얀 빛이 엘을 휘감으며 그대로 사라졌다·
텔레포트롤 전개한 엘은 골든 벨리 초입 부분에 나타났다·
그리고 침입자의 반응이 느껴졌던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엘은 볼 수 있었다·
대지를 까맣게 메우며 빠르게 다가오는 회색 물체들을· 그것을 본 엘이 신음을 흘렸다·
“으음!”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근육과 거대한 체구는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릴 정도로 주눅을 들게끔 하였다·
그렇다!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레베탄 고원에서 내려온 그레이 오크였던 것이다·
“어째서 오크들이 이곳에····”
오크들을 보며 안색이 창백하게 굳은 엘·
그도 그럴 것이 오크들의 숫자가 얼추 헤아려도 최소 5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겉모습을 보니 오크 포레스트에 살고 있는 오크들이 아니다· 그보다 조금, 아니, 휠씬 더 강해 보이는 회색빛 오크였다·
회색빛 오크가 사는 곳은 대륙에서 한 곳뿐이다·
다름 아닌 레베탄 고원! 다른 말로 몬스터 랜드라 불리는 그곳에서만 살고 있는 게 바로 그레이 오크다·
몬스터의 제왕이라 불리는 오우거마저 사냥하는 그레이 오크들이 무려 오만 마리나 쳐들어오다니· 제아무리 엘이라고 해도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오는 방향을 보면 이곳으로 오는 게 분명해·”
그레이 오크들이 왜 이곳을 향해 쳐들어오는지 모른다· 하지만 엘은 그들이 쳐들어오는 이유보다 그들을 우선 막아야 함을 느꼈다·
저 그레이 오크들이 골든 벨리에 난입한다면 골든 벨리는 멸망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종내 모든 오크들을 죽이겠지만 그 전에 골든 벨리가 먼저 멸망당할 것이다·
“막아야 해· 이건 위기야··· 응?”
몸을 돌리던 엘이 돌연 움찔하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잘못 느꼈나?”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엘은 골든 벨리 입구를 향해 날아갔다· 골든 벨리 입구가 비좁아 그곳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엘은 그곳에서 골든 나이트롤 소환하고 자신이 뒤에서 서포트하여 최대한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호오····”
엘이 사라지자 조금 떨어진 곳에 지크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조금 전 사라진 엘의 모습을 쫓으며 중얼거렸다·
“7클래스 마법사라더니 이미 7클래스 마스터에 이르렀군· 게다가 감각이 출중해· 8클래스 마법사인 나의 기척을 한순간이지만 느꼈으니 말이야·”
그러면서 지크릴은 잠시 골든 벨리 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쉽군· 직접 나선다면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엘을 사로잡고 싶지만 이곳에는 보이지 않는 대륙 각지의 눈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자신이 지금 달려가 금탑주를 제압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대륙에 흑탑의 존재를 노출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대륙은 흑탑이라는 공통된 적 아래 뭉칠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된다면 흑탑은 또다시 오랫동안 살아오던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을 향해 떠나야 된다·
흩어져 있을 때는 누구보다 약하지만 뭉치면 그 무엇보다 강한 게 대륙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크릴로서는 대륙 각지의 눈이 집중되어 있는 이곳에서 함부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나머지는 그레이 오크들에게 맡기는 게 좋겠지· 어차피 이번 공격은 금탑의 힘을 실험하기 위해서니 말이야·”
지크릴의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몸을 숨기고 조용히 금탑의 힘을 견식할 생각인 것이다·
그사이 그레이 오크들은 쿠리언의 지휘 아래 빠르게 골든 벨리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크륵! 게··· 으름은 용··· 서하지 않는다! 크르 륵! 어서 달려··· 라!”
레베탄 고원에서 살아남은 그레이 오크이니 만큼 그 체력도 일반 오크보다 월등했다·
그레이 오크들은 선두에 선 쿠리언을 따라 점점 골든 벨리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쿠리언이 점점 인간 냄새가 진해지는 걸 느끼며 붉은 안광을 뿜어냈다·
저 안쪽에 마왕님의 의지에 반하는 인간들이 있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크륵! 마왕··· 님께 반하는 자! 모두··· 죽어··· 야 한다·”
쿠리언이 진한 살기를 내뿜었다·
한편 골든 벨리 안으로 들어선 엘은 곧장 실피르와 카이나, 매직 나이트롤 소집하였다· 모두 모이자 엘이 굳은 안색으로 말했다·
“지금 이곳으로 오만에 달하는 그레이 오크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엘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레이 오크? 설마 레베탄 고원에 사는 그레이 오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마이더의 물음에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레베탄 고원의 그레이 오크입니다·”
“어째서 그 오크들이 이곳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마이더· 그레이 오크는 그만큼 강력한 몬스터였다·
그레이 오크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듯한 마이더에게 엘이 물었다·
“그레이 오크와 겨뤄 본 겁니까?”
마이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레이 오크와 싸워 봤습니다·”
“어느 정도로 강합니까?”
“트롤보다 조금 약한 정도입니다· 제 생각으로 두 마리가 힘을 합치면 트롤 한 마리보다 강할 것입니다·”
너무 충격적인 말! 그레이 오크라 하여 막연히 오크보다 조금 강한 정도의 몬스터라 생각하던 그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런····”
엘은 그들이 전의를 잃지 않도록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일단 일차로 입구에서 저와 골든 나이트가 막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할 터· 그렇다면 다크 포그를 발동하여 이차로 그레이 오크들을 막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면,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엘이 매직 나이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익스퍼트에 이른 검 실력과 마법 아티팩트의 조화로 월등히 강한 힘을 보이는 매직 나이트의 힘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도 싸우고 싶어요, 주인님·”
카이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녀 또한 골든 벨리를 지키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엘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와 어머니는 함께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역할을 맡아· 이번 일로 일반 주민들도 위험할 수 있어· 그러니 효율적으로 대피시키려면 너와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해·”
그렇게까지 말하니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알겠어요·”
카이나가 풀 죽은 표정으로 순순히 납득했다· 자신도 싸우고 싶었지만 자신을 걱정하는 엘의 마음이 느껴졌기에 그녀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특히 주민들 대피는 신속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사석이 아닌 공석이었기에 어머니라 부르는 엘의 모습에 실피르는 새삼 엘이 다 컸다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골든 나이트와 제가 앞을 막을 테니 매직 나이트는 빠른 시간 내에 준비를 마쳐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탑주님·”
모스를 비롯한 매직 나이트들이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을 믿겠습니다·”
믿음직한 그들의 모습에 엘은 안심하고 나갈 수 있었다·
엘은 곧장 골든 벨리 입구를 향했다·
“크륵! 크륵!”
골든 벨리 입구·
그곳에는 이미 5만에 이르는 그레이 오크들이 바짝 접근한 상태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입구를 막지 못할 뻔했군·”
엘은 당초 예상보다 월등히 빠른 그레이 오크들의 접근 속도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골든 나이트에게 명령을 내렸다·
“타나! 입구를 지켜라! 단 한 마리의 그레이 오크도 통과하지 못하게 하라!”
파앗!
골든 나이트에게서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 주군의· 명령을· 이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