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12화
“으음····”
칼리오 대신관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지금 결단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저 매직 스틱의 희생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물러서라고· 안 그러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칼리오 대신관의 입장에서 성녀님을 모셔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기사들의 안위도 중요하다· 성기사들이야 말로 성국을 대표하는 자랑이자 근간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쿠웅!
그때 어마어마한 폭음이 들려왔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리는 폭음이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옮겨졌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8클래스 마법사 게이런즈에 의해 사정없이 당하고 있는 금탑주의 모습을· 확연한 실력 차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게이런즈는 압도적인 힘으로 금탑주를 몰아치고 있었다·
“커헉!”
당하기가 무섭게 금탑주가 게이런즈의 마법에 적중되어 쓰러졌다·
그런 금탑주의 모습을 즐기듯 바라보던 게이런즈가 마법을 전개하려 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가 흐르던 실피르가 초조한 안색으로 외쳤다·
“안 돼! 엘리!”
카이나 또한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자세로 외쳤다·
“안 돼요! 이대로 쓰러지면!”
그녀들의 외침에 게이런즈와 금탑주의 시선이 잠시 이곳으로 향한다·
금탑주는 애써 자신이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게이런즈에게 맞서 가는 그의 모습은 당장 쓰러질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칼리오 대신관은 성국을 진동케 했던 금탑주를 게이런즈가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것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과연··· 대륙을 대표하는 8클래스 마법사 중 한 사람이란 말인가·’
막연히 강하다는 말만 들었는데 저것은 인간의 강함이 아니었다·
괴팍한 외모 속에 저런 힘이라니·
하기야, 그 정도로 강하기에 성국의 수호신 다이어드 공작과 동급의 초인으로 대우받는 게 아닌가·
칼리오 대신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보아하니 승부는 게이런즈의 승리로 끝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굳이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다·
어차피 금탑의 중심은 금탑주일 터, 굳이 불필요한 희생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불안감어린 실피르를 향해 말했다·
“과연, 실피르 양의 말이 맞는 것 같소· 그러니 우리는 잠시 휴전을 하는 것이 어떻소?”
“····”
칼리오 대신관의 말에 실피르는 매직 스틱을 치켜들었다·
그러더니 칼리오 대신관을 보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해주지 않네요· 저는 한시라도 빨리 당신들을 쓰러뜨리고 엘리를 도우러 가야겠어요·”
상황을 보고 마음이 바뀐 실피르의 반응에 칼리오 대신관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럼 어쩔 수 없구려, 피를 보는 수밖에·”
그의 양손에 새하얀 신성력이 충만하게 맺히기 시작했다·
실피르가 저렇게 반응한 이상, 확실하게 상대해 주기 위함이다·
그런 칼리오 대신관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다른 두 대신관도 신성력을 응집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트롤 킹!
다크 오러로 이루어진 저 마물을 상대하려는 것이다· 그들만큼 마물을 제압하는 데 있어 탁월한 실력자는 없다·
이윽고 주문을 마친 칼리오 대신관이 양손을 힘차게 뻗었다·
그는 양손을 십자로 교차하며 전개어를 외쳤다·
“그랜드 크로스!”
뒤이어 두 대신관도 그랜드 크로스를 전개했다·
파앗!
순백의 십자가가 뻗어 나간다· 그것은 거침없이 트롤 킹에게 향했다·
“크르르!”
트롤 킹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다크 오러가 충만하게 맺힌 방망이는 순백의 십자가를 단숨에 갈라 버릴 듯 요동쳤다·
순백의 기운과 칠흑의 기운·
두 기운이 서로 부딪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신성력을 가볍게 튕겨 내던 다크 오러가 그랜드 크로스에 의해 흩어지는 것이었다·
그랜드 크로스!
다크 오러를 제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 신성 마법은 다른 말로 어둠의 사냥꾼이라 불린다·
일부 대신관만이 펼칠 수 있는 그랜드 크로스가 그 믿음이 유난히 깊은 가이아 대신관에게 펼쳐지자 훨씬 강한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랜드 크로스는 다크 오러를 제압한 뒤 곧장 트롤 킹에게 적중했다·
새하얀 십자가가 트롤 킹에게 박혀들며 그대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크아아아아!”
트롤 킹이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언뜻 보면 별 타격이 없어 보이는 공격이지만 실제로 그 위력은 대단했던 것이다·
그에 대신관들이 재차 공격을 시도하였다·
다시 한 번 정통으로 공격을 받는다면 다크 오러로 이루어진 트롤 킹이 견딜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실피르가 외쳤다·
“안 돼!”
매직 스틱을 조준하며 마력탄이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정확히 대신관들이 있는 곳을 향하고 있어, 그들은 몸을 날려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타 매직 나이트들이 트롤 킹의 좌우에 포진했다·
그랜드 크로스가 사악한 기운을 멸하는 데 탁월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매직 나이트들에게는 그리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다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방어력이 탁월한 성기사들은 적절한 팀워크로 큰 타격을 입지 않은 채 싸움을 벌였고, 금탑 측 또한 트롤 킹과 골렘이 전면으로 나서면서 매직 나이트들의 적절한 견제, 그리고 실피르의 후방 지원으로 팽팽히 맞섰다·
좀처럼 깨지지 않는 국면은 점점 장기전으로 향하게끔 하였다·
그러자 서서히 금탑 측이 밀리기 시작하였다·
숫자가 훨씬 많은 성국은 지친 이들을 쉬게 하고, 체력이 남아 있는 이를 앞세우는 이른 바 차륜전을 택했기 때문이다·
매직 스틱을 사용하는 실피르가 간간히 마법으로 보조했지만 숫자의 차이를 매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지치지 않는 골렘들이 있었기에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매직 나이트도, 카이나도, 실피르도 인간인 이상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지칠 뿐이다·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싸우는 도중 헬 파이어의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되건 간에 그들은 최선을 다해 맞섰다·
어쩌면 최악의 결말을 떠올리기 싫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서서히 전세가 기울자 성기사들의 표정에 승리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칼리오 대신관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들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힘들군· 금탑의 인물들은 모두 이렇게 강한 건가·”
압도적인 전력을 지니고도 이 고생이다· 단순 전력 비율만으로도 2배에 해당하는데 벌써 몇 시간째 붙잡혀 고전 중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인 이상 정해진 체력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서서히 바닥나는 지금 전세는 기울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승리는 성국 측에게 기울 것이다·
“더욱 강하게 몰아쳐라· 승리가 멀지 않았다!”
형세가 자신들에게 기울고 있음을 느낀 코로네 백작이 한층 기세를 돋우며 외쳤다·
그런 그의 의지를 반영하듯 워 해머에 어린 신성력이 한층 더 강하게 뿜어지며 지쳐있는 마이더를 향해 휘둘렀다·
“큭!”
수십 명의 성기사를 상대로 싸운 마이더는 극도로 지친 상태였지만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여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정해진 법·
충분한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는 코로네 백작에 비해 마이더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던 것이다·
실력 면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데 체력에서도 달리니 이길 리가 만무했다·
따당!
무기의 충돌음과 함께 마이더의 창이 튕겨 나갔고, 그 또한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뒤를 바짝 쫓으며 코로네 백작이 워 해머를 휘둘렀다·
“무력화 정도는 시켜야겠지·”
코로네 백작의 워 해머가 마이더의 어깨를 향해 휘둘렀다·
둔기니 만큼 예기가 없어 베어 버리지는 못하지만, 완전히 뭉개 버려 무기를 못 쥐게 할 참이었던 것이다·
살벌한 기세를 품은 워 해머가 막 마이더의 어깨에 적중하려던 찰나!
돌연 코로네 백작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워 해머를 휘둘렀다·
쉬익!
금빛 물체가 보이는 순간, 그것은 워 해머와 부딪쳤다·
쩡!
엄청난 충격!
그것은 신성력을 충만하게 머금은 코로네 백작의 워 해머를 튕겨내고 그대로 그의 어깨에 박혀 들었다·
“으윽!”
충돌로 일어난 반탄력과 어깨의 고통으로 인해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어깨에 박힌 것을 향했을 때, 다시 한 번 표정이 급변했다·
어깨를 꿰뚫고 있는 화살, 그것은 다름 아닌 황금빛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화살을 쓰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
“····”
황금 화살을 목격한 성기사들의 표정 또한 모두 딱딱하게 굳었다·
어찌 이것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을 모두 악몽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거늘·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칼리오 대신관도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 어찌하여··· 게이런즈가 패했단 말인가····”
“운이 좋았죠·”
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금색 로브의 마법사·
상당히 지친 듯 보였지만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그다!
금탑주 엘리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