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23화
그저 한 도시에서 실력을 발휘하던 그들이 언제 각국의 귀족들에게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있던가·
보통 이런 이들은 금전적 이득보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 받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들은 3주마다 한 번 열리는 패션쇼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는 상당히 좋았다·
그들이 열심히 하는 만큼 귀족들의 반응도 더더욱 달라올랐던 것이다·
그렇게 두세 번 정도 패션쇼를 열자 라이엘은 명실상부한 패션 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돈을 부르기 마련이다·
대박이 터졌다·
* * *
“정말 고맙네, 금탑주·”
아스트로 국왕은 엘의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런 그의 말에 엘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것은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결과가 좋게 된 것뿐입니다· 그렇게 고마움을 표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말 말게· 그대는 그렇게 말할지 몰라도 내게 있어 그대는 은인이나 다름없네·”
아스트로 국왕의 반응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패션쇼로 인해 라이엘에 유동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귀족이니 만큼 그들이 라이엘에게 먹고 자고 하면서 소비하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그중 세금으로 걷어오는 금액이 엄청났던 것이다·
디벨은 그것이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도 계속 매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하니 어찌 기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골드 워 상단에게 나라를 빼앗기기 직전에 나타나 구원해준 엘은 아스트로 국왕에게 은인이고, 카르메인 왕국의 은인이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어렵사리 뿌리친 엘은 아스트로 국왕에게 말했다·
“국왕 전하의 호의는 정말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곳에 여러 가지 일로 온 터라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음! 마음 같아서는 계속 붙잡고 싶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겠지· 다음에 꼭 들러 주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스트로 국왕에게 인사를 건넨 엘이 대전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가 머물고 있는 여관에 도착해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 분명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너무 부담되게 한단 말이야·”
“누가 주인님을 곤란하게 하죠?”
엘의 중얼거림을 들은 세레나가 물었다·
그러자 엘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아스트로 국왕이 내게 너무 고마움을 표현해서· 그게 지나치니 조금 부담스럽더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고마움을 너무 뿌리치지 마세요· 주인님에게 있어 그렇게 큰 도움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한 줄기 희망이었을 거예요·”
세레나가 묘한 감흥이 어린 어조로 말했다·
과거 그녀도 그렇게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게 되어 그 입장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으니 묘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
세레나의 말에 엘 또한 생각에 잠겨들었고 그로 인해 잠시 침묵에 빠져 들었다·
그런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실피르였다·
그녀는 카이나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엘과 세레나를 한 번씩 보고는 입을 열었다·
“뭐 하고 있니?”
“예? 아, 그냥 이야기요·”
엘은 적당히 얼버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 여인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아스트로 국왕도 만나 보았으니 이제 여기서 적당히 놀다 가죠· 명색이 패션의 도시인데 옷을 안 사면 예의가 아니잖아요? 제가 살 테니 마음에 드는 옷 팍팍 골라 보세요·”
엘의 말에 실피르가 활짝 웃음을 지었다·
“호호! 그럼 나야 좋지·”
“저도요····”
카이나도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세레나는 1차례 미소를 지어 보임으로써 기분 좋음을 표현했다·
“그럼 가볼까····”
엘은 아리따운 미녀 셋과 함께 라이엘을 활보하며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5달 동안 골든 벨리가 완전히 복구되고 부상도 완전히 나았다· 모든 게 안정된 지금, 엘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위험은 아직 가시지 않았으니····
“일이 상당히 틀어졌어·”
지크릴은 드넓은 산맥을 굽어다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일이 틀어졌다· 애당초 그의 계획은 성국과 블리어드 제국을 이용하여 엘이라는 존재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엘이 지닌 저력은 놀라웠다·
우위를 점하던 성군과 블리어드 제국의 전력을 깨버리고, 마침내 성국의 의지를 꺾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 덕에 지크릴은 블리어드 제국이란 우군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되었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다른 국가들도 차례로 우군으로 만들어 금탑을 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간이 없다·
루이아스의 명령을 받은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은 즉, 루이아스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사라진 루이아스의 신뢰· 그것은 즉, 소멸을 뜻한다·
전설의 9클래스 마스터인 루이아스에게 지크릴이 당해 낼 리 만무했다·
지크릴의 현재 경지는 8클래스 익스퍼트· 흑마법 특유의 파괴력으로 8클래스 마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9클래스 마스터에게 덤비는 것은 그야말로 오크가 드래곤에게 덤비는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때문에 그는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임무를 직접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미 흑탑의 정체를 감추고 말고의 문제에서 벗어났다· 이대로 루이아스의 눈에 벗어나면 흑탑은 그야 말로 깨끗한 소멸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 때문에 지크릴은 직접 금탑으로 가서 엘을 사로잡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왔나·”
스스슷!
낮은 지크릴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뒤에 24명의 마법사가 나타났다·
그들은 다름 아닌 흑탑을 대표하는 24장로였다·
개개인 모두가 5클래스 이상의 경지를 이룩한 흑탑의 최고 정예였다·
지크릴은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금탑이다· 만만치 않은 적이니 만반의 준비를 취하라·”
24장로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 볼까· 금탑을 정리하러····”
지크릴의 주변이 새하얀 빛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인과 24장로가 모두 빛에 휩싸였을 때, 마법이 전개되었다·
다수의 사람을 이동시키는 매스 텔레포트였다·
스팟!
새하얀 빛이 폭사하면서 그들의 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 *
“드디어 지크릴이 마음을 먹은 건가?”
루이아스는 손톱을 만지작거리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9클래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그의 눈은 대륙 도처에 깔려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금탑도 그의 눈을 벗어날 수 없는 곳 중 하나이며, 지금 그곳에 강력한 기운을 지닌 이들이 등장한 것을 보고 사실을 짐작한 것이다·
“확실히 금탑주가 게이런즈를 처리한 건 대단한 일이야· 나조차도 예상을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크릴을 상대로는 불가능한 일이지· 같은 8클래스 마법사라고 해도 그 실력의 차이는 존재하는 법이니까· 뭐, 지크릴은 분명 권유할 거야· 우리와 함께 하자고· 그걸 받아들이길 바라겠어, 금탑주· 그 아까운 능력을 꺾어 버리기에는 그 재능이 너무나 아까우니까· 굳이 가담하지 않겠다고 하면 뭐,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말야· 그리고··· 신검의 주인 녀석이 금탑에 가고 있다고 했지? 잘하면 마주 칠 수도 있겠군· 재미있겠어, 아하하하!”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리는 루이아스· 하지만 그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더없이 차갑고 냉정한 그 눈은 본래 루이아스의 진면목이라는 걸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그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고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웃음을 거둔 그는 손톱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들어 중지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의 중지에는 검은색 투박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루이아스는 그 반지를 보물 만지듯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대계는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마검의 탈취로 시작될 것이야· 이 인과를 비트는 사멸의 반지로 말이지·”
파앗!
루이아스의 동공에서 짙은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 안광은 그 무엇보다도··· 어두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륙은 또다시 요동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9장 흑탑주의 힘
위잉! 위잉!
요란스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
하지만 그것은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소리였다·
계곡 곳곳에 설치한 알람 마법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골든 벨리로 침공해 오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은 언젠가 올 침입자에 대비하고 있었다·
알람이 울리기 무섭게 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엘의 몸이 공간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엘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계곡의 입구였다·
한눈에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검은색 로브를 걸친 20여 명의 흑마법사가 이곳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
그것을 보며 엘은 가슴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오고 있다· 그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자신에게 무력함을 느끼게 해 준 그 흑마법사가 지금 이곳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이다·
“준비를 해야겠어·”
얼핏 본 것뿐이지만 저들의 힘은 대단해 보였다·
선두에 있는 흑마법사는 분명 자신이 보았던 8클래스 흑마법사가 분명했고, 그 뒤를 바짝 따라오는 2명의 흑마법사는 7클래스의 경지에 든 듯했다· 게다가 뒤에 있는 나머지 마법사들도 최소 5클래스 이상에 든 듯했다·
즉, 엄청난 전력이 지금 이곳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순수하게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흑마법사들의 침공은 저번에 쳐들어온 성국의 침공군에 못지않은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일단 시간을 끌어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저들을 상대할 전력을 갖춰 놓아야 한다·
“다크 포그!”
엘은 골든 벨리 전역에 펼쳐져 있는 다크 포그를 전개했다·
소드 마스터조차 견뎌 내지 못하는 오감 삭제 마법이 걸린 다크 포그· 만약 이것에 당한다면 적들의 전력은 단번에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