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28화
엘은 자신의 약함에 고개를 저으며 힐끗 아이넨스를 바라보았다·
지크릴과 대치하고 있는 그는 처음 봤을 때 모습과 전혀 다른 절대 검사로서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도와줘서 다행이야·’
만약 아이넨스가 그때 오지 않았다면··· 이라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지는 엘이었다·
아이넨스가 그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크릴의 제안에 승낙했을 테니까·
‘일단은 적들을 최대한 빨리 제압하자· 그리고 아이넨스님을 돕는 거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엘은 지금 최대의 방해가 되는 히드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골든 나이트에게 명령을 내렸다·
“타나! 저 마수를 처리한다· 일단 마수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보다 회복에 집중해·”
엘의 명령에 골든 나이트가 푸른 안광을 뿜어내며 히드라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엘의 명령 때문인지 섣불리 접근하지 않고 차분히 기회를 엿보는 듯했다·
“···좋아·”
골든 나이트와 트롤 킹이라면 능히 히드라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흑마법사들을 상대해야겠지·”
엘은 한쪽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들을 보고는 그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실피르 일행은 무척 고전을 하고 있었다·
흑탑의 부탑주인 게로마네가 히드라를 소환하여 트롤 킹이 빠지는 바람에 전력의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다른 흑탑의 부탑주인 갈로윈은 독을 사용하는 포이즌 마법의 대가였다·
보랏빛 독이 넓은 범위에 퍼져 있어 함부로 접근은 못함은 물론, 공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골렘들이 독에 영향을 받지 않아 앞장 서 싸운 덕분에 아슬아슬한 호각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흑마법사들이 연달이 마수를 소환함으로써 금탑 측이 점점 밀리고 있었다·
이럴 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실피르의 매직 스틱이었다·
콰광!
6클래스 마법과 비슷한 파괴력을 지닌 마력탄의 위력에 흑마법사들은 분분히 흩어졌다·
매직 스톤으로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마력탄은 흑탑의 흑마법사들을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쳇! 번거롭군·”
마력탄에 의해 자신의 독이 흩어지자 갈로윈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독으로 저쪽이 함부로 공격해 오지 못하는 건 분명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성질이지만 반대로 저쪽의 마력탄 때문에 이쪽도 섣불리 공격을 못하고 있었다·
흑마법사들이 마수 등을 소환하여 상황이 점차 유리해지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독을 사용하는 갈로윈에게 독이 통하지 않는 저 골렘들은 귀찮기 짝이 없는 상대였다·
독이 통하지 않을 뿐더러 그 힘은 마스터 급에 준했기에 갈로윈은 게로마네에게 도움을 청했다·
“게로마네, 힘을 합쳐서 저 골렘들을 제거하지·”
게로마네도 늘어지는 듯한 전황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좋다· 그렇게 하지·”
합의를 본 두 사람이 골렘에게 공격을 퍼부으려 할 때, 뒤에서 마나의 파동이 일어났다·
“피해!”
갈로윈의 외침과 함께 두 사람은 양쪽으로 나뉘어 마법을 피했다·
쾅!
그들의 중앙을 꿰뚫고 나간 마법이 지면에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다·
“····”
그 마법의 파괴력이 최소 5클래스였기에 갈로윈과 게로마네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들의 눈에 금색 로브를 걸친 금발의 청년, 엘이 눈에 들어왔다·
엘이 그들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흑탑의 탑주는 다른 분이 상대해 주기로 해서 말이지·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가 상대해 주겠어·”
오만한 말이다· 혼자서 자신들 둘을 상대하겠다니!
게다가 흑마법의 위력은 보통 마법을 뛰어넘기에 그들의 실질적인 힘은 7클래스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한다·
자신들의 경지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엘의 말에 인상을 구겼다·
게로마네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아무리 게이런즈를 이겼다고 해도 우리는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엘이 피식 웃었다·
“과연 그럴지 안 그럴지··· 말만 앞세우지 말고 덤벼·”
지크릴에게 된통 당한 엘로서는 제대로 싸움을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8클래스 마법사 지크릴에게는 자신의 힘이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7클래스 마법사에게는 자신의 힘이 통하기 때문이다·
엘의 말에 기분이 나빠진 갈로윈이 욕설을 내뱉었다·
“어린놈이 오만하구나·”
그러면서 갈로윈이 양손을 뻗었다·
피비빙!
열 개의 다크 볼트가 엘에게 빠르게 쏘아졌다·
2클래스 흑마법이지만 파괴력만 따지면 능히 4클래스 마법에 비견된다·
엘은 그 마법을 비스듬히 몸을 눕혀 피한 다음, 마법을 전개했다·
“헤이스트(Haste), 리터레이트(Reiterate)!”
파앗!
엘의 몸이 흐릿해지며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그 속도는 마치 섬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헛!”
엘의 빠른 접근 속도에 갈로윈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엘이 접근해 오지 못하게 다크 볼트를 전개했다·
쾅! 콰과광!
중첩된 헤이스트 마법으로 가볍게 다크 볼트들을 피해 내며 갈로윈에게 다가갔다·
“큭!”
엘의 재빠른 접근에 갈로윈이 신음을 흘렸다· 다크 볼트를 너무 쉽게 피해 내 견제의 의미를 잃었던 것이다·
그 사이 엘은 갈로윈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손에 버닝 핸드를 전개하여 그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피하는 건 갈로윈이 한발 빨랐다· 위기를 느낀 순간 재빨리 블링크 마법을 전개한 것이다·
화르륵!
엘의 버닝 핸드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칫!”
다잡은 물고기를 놓쳐 버리자 엘이 혀를 차며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크 플레어가 들이닥쳤다·
쾅!
5클래스에 속한 다크 플레어지만 그 위력은 강렬했다· 만약 엘이 휘말리면 단번에 목숨을 잃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엘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곧장 게로마네에게 달려들었다·
“제기랄!”
엘이 빠르게 다가오자 게로마네는 욕설을 내뱉으며 갈로윈과 비슷하게 수많은 다크 볼트를 전개하였다·
그 숫자가 워낙 많아 엘은 모두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양팔에 실드 마법을 전개했다·
땅! 따당! 땅!
양손에 실드를 전개한 채 다크 볼트를 튕겨내며 다가오자 게로마네는 재빨리 블링크를 전개했다·
그리고 뒤에서 갈로윈이 공격해 들어왔다·
피하기가 뭐했기에 엘도 맞받아 마법을 전개했다·
두 마법이 중앙에서 충돌했다·
콰과광!
요란한 폭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갈로윈은 기회라 여겼는지 연신 마법을 전개하여 엘을 공격했다·
엘 또한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기에 수십 개의 마법을 캐스팅하여 정면 대결을 벌였다·
두 대마법사가 정면으로 마법 대결을 벌이자 주변 일대가 삽시간에 불길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역시 마법적 위력으로는 내가 밀려·’
엘은 갈로윈과 연신 마법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이 마법 위력에는 뒤쳐진다는 걸 인정했다·
단전호흡으로 마나 호응도가 극도로 높아 훨씬 강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지만 흑마법의 위력을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이대로는····’
엘은 힐끗 시선을 위로 옮겼다· 그곳에는 게로마네가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캐스팅이 길어지는 걸 보아하니 7클래스 마법을 캐스팅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엘의 뇌리에 경고음이 스쳐 지나갔다·
‘위험하다!’
지금 엘은 갈로윈에게 발목을 잡힌 상태다·
이 상태에서 게로마네에게 일격을 맞는다면 분명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어려운 상황이군·’
게로마네를 공격하려고 해도 갈로윈이 막아 설 것이 분명했다·
‘분명 예전의 나라면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상황이 다르다·’
엘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의 생각대로 예전이라면 위기에 처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엘은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당분간 갈로윈의 마법을 막아 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방어 마법을·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여 캐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노리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하트 브레이크!”
게이런즈를 이길 때 썼던 원거리 캐스팅 마법이었다!
그때처럼 급박하게 사용한 것이 아닌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전개한 것이기에 캐스팅 시간이 훨씬 빨랐다·
“···!”
마법을 캐스팅하던 게로마네는 뭐라 웅얼거리려 하더니 이내 입에서 폭포수 같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공중에 떠 있던 그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엘의 마법으로 인해 심장이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 내부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는 것이 정답이다·
“이럴 수가!”
게로마네가 허망하게 당해 버리자 갈로윈이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게로마네는 7클래스에 이른 흑마법사다·
그런 마법사가 원인도 모르는 공격에 의해 삽시간에 당해 버리니 갈로윈으로서는 등골이 오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