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새학기를 맞이하는 방법 (10)
“그건····”
“방금 뭐 한 거야? 왜 누나 왼손약지에반지를끼워제정신인가죽고싶어?”
나유한이 뭐라 반박하기 전 강유가 스르륵 다가왔다. 고개를 기묘하게 꺾은 그가 온기없는 목소리로 랩하듯 속사포를 쏟아냈다.
“왼손 약지···? ···아!”
그제야 나유한은 자기가 반지를 내 어디다가 끼웠는지 깨달은 눈치였다.
별 생각 없이 한 건데 너무 과민반응이다 강유야.
“아니 이건 그런 의도가 아니라···!”
그가 당황한 듯 붉어진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주워섬겼다.
“그런 의도가 아닌데 했다···자연스럽게 했다···바람둥이다···? 바람둥이가누나에게손을 댄다···?죽고싶어?”
그리고 강유는 가차 없었다.
“진정해.”
박시우는 급발진하는 강유 덕에 침착해진 듯 그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다.
“유한이는 바람둥이가 맞지만 이번에는 그런 생각으로 한 건 아니야. 그냥 무의식적으로 한 거야.”
아니었다.
기름을 부었다.
강유의 목이 더 기묘한 각도로 꺾였다.
살기등등한 그 눈에 나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빌어먹을 빙의 전 나유한! 네놈은 왜 바람둥이여서!
“자 자! 강유야! 왼속 약지에 끼는 게 불만인 거지? 그럼 오른손 약지에 낄게!”
“아예 손에 끼지 마!!!”
“저격수잖아. 반지를 끼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겠어?”
“으응··· 그럼····”
나는 힐끔 나유한 쪽을 봤다. 그는 상당히 시무룩해 보였다.
기가 팍 죽은 그 모습을 보니 반지 말고 다른 아이템으로 바꿔달라 말하기도 좀 그랬다.
쓸데없이 신경 쓰이게 하고 난리야!
“끈에 매달아서 목걸이처럼 착용해요!”
그때 어느샌가 나타난 나유리가 불타는 눈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왼손 약지에 착용한다니 말도 안 되죠!”
“그 그래···”
나유리도 뭔가 만만치 않게 불만인 듯했다····
강유는 여전히 입을 삐죽이고 있었지만 어쨌든 이제 수긍했다.
“냐하~ 둘이 커플링이네~”
“···커플링····”
“선배 쉿!”
“···역시 버려!!!”
“강유랑도 커플 목걸이네! 와 커플 목걸이!”
결국 그날은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에야 해산할 수 있었다.
나유한은 커플링이라는 단어에 꽂혔는지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아니 나쁘지 않을지도···’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보냐고.
* * *
다음 날 아침.
아카데미에 발생한 고정형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 사실이 이미 소문이 쫙 퍼졌는지 강유와 내가 등교했을 즈음에는 아이들이 우리를 보며 열심히 수군대고 있었다.
다만 전에 고정형 게이트를 클리어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설마’라는 감정이었다면 이번에는 ‘역시’라는 감정이었다는 거다.
“또 저 애들이구나··· 대단하다”
“거기서 나온 소재들 생각하면 돈 많이 벌었겠네! 부럽다!”
“에이 어차피 우리는 발견했어도 클리어도 못 했을걸?”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려 나는 괜히 손등으로 얼굴을 식혔다.
옆에 앉은 강유는 즐거운 듯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귀여웠다.
자세한 상황이 궁금했던 아이들이 강유 주변에 몰려들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즐거운 목소리로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여간 붙임성이 좋다.
나는 저쪽에서 꺄르르 웃으며 자신의 활약을 떠드는 강유를 보고 같이 웃었다.
“좋은 아침.”
“아 시우구나. 좋은 아침!”
그리하여 생긴 빈자리에 박시우가 자연스럽게 앉았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 빨리 등교한 모양이었다.
원래 이 시간쯤 등교하는 나유한은 던전 뒷처리 때문에 바쁜지 보이지 않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박시우가 음료수 캔을 불쑥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젤리가 씹히는 음료였다.
강유 책상에는 강유가 좋아하는 알로에 주스도 하나 놓아두는 걸 보니 친구들을 위해 사 온 듯했다.
“고마워.”
“별거 아냐.”
박시우는 무덤덤하게 답하며 자신의 몫으로 보이는 이온 음료 캔을 땄다. 아무래도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나도 내가 받은 캔을 따며 그를 바라봤다.
“왜?”
“아니. 그냥··· 브로치 착용 안 하나 싶어서.”
찔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보란 듯이 브로치를 착용하고 있는 박시우와 다르게 나는 브로치를 항상 가지고 다니긴 하지만 착용하지는 않았던 탓이다.
“그··· 너도 알겠지만 내 능력 때문에···”
“그렇구나.”
“미안····”
“괜찮아. 네가 항상 가지고 있어 준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좋아.”
박시우는 그 말을 하다가 잠시 내가 목걸이로 만들어 착용하고 있는 반지로 시선을 향했다.
“···아니. 미안. 역시 좀··· 질투 나.”
“질투···?”
“가끔 네가 얻어야 하는게 ‘그’의 호감이 아닌 나의 호감이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버려. 네가 곤란해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석을 종종 찔러버리는 건 그것 때문일지도 몰라.”
“그 그게 무슨···아 혹시 종종 하던 질투 작전?”
나는 박시우가 종종 하곤 했던 나유한을 자극하는 행동들을 떠올렸다.
나유리처럼 박시우도 내가 나유한을 너무 신경 쓰는 건 질투 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긴 친구를 뺏기는 기분이라 싫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딱히 선택지가 없는걸.
“글쎄.”
박시우는 애매모호하게 말을 흘리며 캔 안에 있던 음료를 대번에 마셔버렸다.
“나는 생각보다 인내심이 없는 편이더라고.”
“응···?”
“참으려 애쓰고 있지만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진 모르겠어.”
그렇게나 질투가 심한 편인 건가···!
나는 의외로 박시우가 친구를 향한 소유욕이 강한 편이라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나름 그를 응원했다.
“화 파이팅···!”
“···그래. 노력해볼게. 그러니까 그 브로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라도 항상 가지고 다녀줘. 알았지?”
“응!”
망설임 없는 내 대답에 그가 작게 미소지었다.
그 후로 우리는 다른 아이들이 올 때까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교실에 도착한 후 나유한이 오기 전.
박시우는 아이들에게 ‘유한이에게 받은 아이템은 귀한 물건이니 보이지 않는 곳에 착용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모두 동의하고 각자 알아서 판단해 아이템을 계속 착용하거나 인벤토리에 넣거나 했다.
나는 그냥··· 옷 안쪽에 보이지 않게 착용하기로 했다.
나유한에게 의심받을까 해서 예전에 산 해주의 팔찌는 그냥 인벤토리에 넣어 뒀는데 이번에 받은 반지라면 팔찌 대용 역할도 해줄 수 있을 테니까.
어쩐지 나중에 등교해 내 목 부근을 기웃거리던 나유한은 조금 시무룩해 했지만.
“수업이다 꼬맹이들아!”
그리고 또다시 실기 수업이 있었다.
나는 무언가 찝찝하던 오늘 아침 일에 대해 생각해보려 했지만 그것도-
“집중을 안 해? 집중을 안 하다니? 나도 참 물러졌군. 딴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롭게 해주다니····”
“아뇨 그게 이그드라실 님. 그게 아니라”
“알겠다. 다 내 탓이다. 더 격렬하게 가마!”
“아아악-!”
이그드라실의 격한 훈련에 휩쓸려 사라졌다.
몸이 힘들면 잡념이고 나발이고 사라지는 법이다····
* * *
오전 내내 아무 생각도 못하고 굴려진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었을 즈음에야 너덜너덜해진 채로 슬슬 행운의 편지를 가진 사람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이 누나랑 이 형이 가지고 있었대!”
“어? 왜? 편지에 문제라도 있었어?”
“그게 사실 행운의 편지가 아니라 저주의 편지였거든.”
“뭐?! 말도 안 돼!”
우리 똑똑하고 붙임성 있는 귀여운 강유가 조례 시간에 미리 조사해둔 덕에 물꼬를 트는 건 편했다.
그 둘을 시작으로 A반에 있는 학생들 중 몇 명한테 편지가 돌았는지 확인했다.
A반에서 편지를 받은 사람은 강유를 포함해 총 넷.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처음엔 믿지 않는 애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혹시라도 저주가 발동한다면 누구든 우리에게 바로 편지를 가져다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뭐 문제가 생긴 편지를 처리해준다고 하니 그 정도 약속은 해주기 쉽지.
마침 그들 중 편지를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흔적이 남아있을 것 같기에 박율아가 전에 만든 마력 탐지기도 사용해보았다.
나유한의 말을 들어보니 편지가 가진 마력이 점점 저주가 발동되기 직전의 마력의 패턴으로 변하고 있다 했다.
서둘러야 했다.
그렇게 A반에서의 조사를 끝마치고 B반으로 이동하면서 강유가 말했다.
“편지를 가져가는 대신 뭔가 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없었어서 다행이야!”
“대가요?”
“응! 우리가 먼저 부탁한 일이니까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민재윤은 나유한의 말에 영 좋지 못한 기억을 떠올린 듯 어두운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으응 친근하게 굴면서 중요할 때 배신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나쁜 놈들은 언젠가 반드시 벌 받을 거야.”
신바란이 투덜대듯 말했다.
안타깝게도 세상만사가 반드시 신바란의 말대로 되지는 않지만···
민재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준 ‘그 자식’은 민재윤이 스스로 마주하면서 떨쳐낼 거다.
···왜냐하면 곧 그 자식이 유명세가 있는 우리 그룹에 합류하려고 온갖 짓을 저지를 거거든.
얼마 뒤 행운의 편지 뒤를 쫓던 우리는 ‘그 자식’ 그리고 어떤 낯익은 사람 하나와 마주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