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새학기를 맞이하는 방법 (4)
“거대로봇은 소녀의 로망이랍니다!”
“건X 멋지잖습니까!”
“으하하학! 그래서 이런 짓을 벌인 거냐?”
현재 발명 콤비는 너덜너덜해졌지만 어찌저찌 멀쩡히 구조되어 선생들 앞에 선 상태였다.
선생님들은 발명 콤비를 혼내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이그드라실이 그들 앞에서 서서 유쾌하게 웃으며 그들의 말을 듣고 있기에 그것 또한 용의치 않아 보였다.
“아 그런데 이그드라실 님! 저희가 인공 코어를 만들었는데 이게 일반적인 기존 자연산 코어와 다르게 주인이 아닌 타 몬스터 및 이종족에게 이식할 경우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성분인 안티 팩터가 존재하지 않는 코어예요. 그래서 그런데 혹시 이걸 실험해봐도 될지-”
“되겠냐!”
“몬스터에게 코어 이식을 한다고?”
“몬스터 가지고 실험하는 팀도 몇 있지 않습니까! 하게 해주십쇼!”
“걔넨 정식 절차를 거쳐 허가 받았고! 약한 몬스터만 가지고 실험하고 있고!”
“너네가 오늘 친 사고를 봐라!”
혼구멍이 나는 와중에도 발명 콤비는 몬스터 관련 실험을 허가해달라 요청하다가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마치 개그 프로라도 보는 것마냥 그 꼴을 보며 낄낄 웃던 이그드라실은 이내 손뼉을 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만! 상황은 잘 알았다. 너희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바보 같은지도 말이지!”
질책을 하면서도 묘하게 호의를 담고 있는 이그드라실의 말에 다른 선생님들이 불길함을 감지하고 움찔했다.
“어차피 말려봤자 몰래 진행할 테니 허가해주마!”
“이그드라실 님?”
“아무리 이그드라실 님이라도 이건!”
“시끄럽다! 교사들이 감시만 잘 하면 될 것 아니냐. 따져 보자면 애초에 저런 거대한 물건이 학교 지하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도 감지조차 못한 교사진의 실책이지!”
이그드라실은 선생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외쳤다.
“모두들 오늘 밤에 수련장에 집합해라! 오랜만에 내가 직접 훈련시켜 주지!”
그 말에 선생님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역시 선생님들이라도 이그드라실의 훈련은 힘든가 보구나.
“자 잠깐만요-”
“이그드라실 님···?”
“저희가 졸업한 지가 얼마인데!”
“알 바냐? 약한 건 약한 거다!”
화제는 어느새 이그드라실의 훈련 피하기로 돌아가버렸다.
나는 그 상황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강유가 내 손을 꼬옥 잡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끝난 거야?”
“그런 것 같아. 돌아갈까?”
“응!”
사건의 참고인으로서 잠시 교무실로 왔던 강유와 나는 선생님들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수업 중이라 그런지 텅 빈 복도에 타박타박 걷는 우리의 걸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교실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졌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뛰쳐나와서 나와 강유를 에워쌌다.
“선생님들도 해치우지 못한 로봇을 해치웠다며?”
“가슴이 웅장해지는 싸움이 벌어졌다던데?”
“아까 보이던 엄청난 물의 마력은 누가 쓴 거야? 편입생?”
“나! 내가 썼어! 쓰러트린 건 스승님이고 나는 폭발을 막은 거야!”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 강유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금세 아이들 틈에 섞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밝고 활달하지만 아직 어린 티가 나는 강유를 제법 귀여워하는 듯했다.
그래. 내 동생 귀엽지?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어느샌가 내 옆까지 다가온 최수정이 어깨동무를 했다. 함께 다가온 이하나가 자신의 필기 노트를 내밀었다.
“후배님~ 고생했어!”
“여기 필기 노트. 놓친 수업 참고해.”
“앗 선배들!”
두 선배 외에도 동아리 친구들이 모두 다가와서 자연스럽게 나를 둘러쌌다.
힐끗 교실 저쪽을 살펴보니 강유는 다른 학생들과 잘 섞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안심하고 내 친구들에게 신경을 돌렸다.
“가족끼리 사이가 좋은 것 같아···! 부럽다 나도 형제자매 갖고 싶었는데.”
“맞아요! 하지만 재윤 씨 형제자매가 모두 나현 씨와 강유 씨처럼 잘 지내진 않아요.”
“뭐 그건 그렇지····”
나유리의 말에 나는 조용히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한 말이라 더 설득력이 넘쳤다.
나는 슬쩍 딴청을 피우는 나유한을 보고 미소지었다.
“누나 뭐해?”
어느새 다른 아이들과 대화를 마친 강유가 근처로 와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런 강유에게 박시우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너랑 네 누나가 무척 사이좋다는 이야기.”
“맞아! 우리 엄청 친해! 누나는 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할걸?”
강유는 자랑스러운 사실을 말하듯 가슴을 쭉 내밀었다.
“강유야····”
너무 노골적인 그 어필에 나는 살짝 부끄러워졌다.
흐응- 하고 콧소리를 내며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던 최수정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장난스레 웃으며 물었다.
“그럼 네 누나한테 애인이 생기면 어떨 것 같아? 애인이 생기면 아무래도 그 사람이 누나의 최우선이 될 거 아냐!”
“누나한테?”
“···애인이요?”
갑작스럽게 왜 그런 질문을?
나는 그 질문을 쓸데없다 여겼지만 강유는 나름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으음··· 누나가 좋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멋진 사람이어야 해! 나보다 강해야 하고!”
“반드시 강해야 해?”
“응! 그래야 누나에게 짐이 되지 않을 테니까!”
“하긴 나도 언니가 웬 비실이를 데려오면 반대할 것 같아····”
이유를 물은 신바란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유의 답을 들은 최수정이 히죽 웃으며 나유한의 등을 팍 쳤다.
“음 음. 그렇구나~ 힘내야겠네 후배님! 응원할게!”
“뭐 뭘 응원해요?”
“모르겠어?”
최수정은 나와 나유한을 엮어서 놀려먹으려는 못된 장난기를 자주 발휘하곤 했다.
지금도 보라 사람을 놀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만만한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한가득 짓고 있지 않은가.
나유한은 이런 계통의 장난에는 통 내성이 생기지 않는지 그저 빨개진 얼굴로 굳어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유한 씨는 나현 씨에게 어울린다 생각하지 않는데요?”
그런 분위기를 나유리가 살포시 깨트렸다.
그녀가 나를 뺏길 수 없다는 듯 꽉 껴안았다.
“차라리 저랑 같이 살죠 나현 씨!”
“그럴까?”
나유리와 동거라. 나쁘지 않을지도.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대꾸했다.
그때 불쑥 익숙한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나는 어때?”
눈을 돌리자 사파이어색의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장난인 듯 아닌 듯 알 수 없게 무덤덤하게 질문을 툭 던진 박시우가 나를 보고 있었다.
박시우와 같이 산다라··· 나름 호흡도 잘 맞고 대화도 잘 통하고····
“나쁘지 않을지도?”
“그런가. 기쁘네.”
박시우가 작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별 말 아니었다는 것처럼 금세 화제를 돌렸다.
“강유 라고 했지. 우린 방과 후에 늘 함께 수련을 하거든. 너희 누나도 같이 하는데 너도 같이 할래?”
“응! 할래! 하게 해 줘!”
“그렇구나. 그렇다면 오늘은 몸풀이 겸 대련으로 진행하는 건 어때?”
“뭐 그래. 이그드라실 님에게 대련실을 쓰게 해달라고 부탁해보자.”
나유한이 동의 의사를 표했고 다른 아이들도 이견 없이 동의했다.
“서로 합동 공격이 가능한지 맞춰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하나가 강유를 보며 말했다.
물과 얼음 마력의 조합이니 둘이 합을 맞춘다면 확실히 더욱 강력한 공격이 되겠지. 이하나도 그 점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저런 케미를 놓칠 이드그라실이 아닌데. 두 사람의 험한 미래가 저절로 눈앞에 그려져서 눈물을 닦을 뻔했다.
“너와 대련해볼 수 있을까?”
“좋아!”
박시우가 강유에게 대련을 신청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쉬는 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다.
개학날이어서 오늘은 오전의 이론 수업만 하고 끝이 난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자 점심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함께 학교 근처 식당으로 가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유한 씨. 소스 좀 주세요.”
“아 응.”
나유리는 나유한에 대한 호칭을 완전히 새로이 정립한 듯했다.
그럭저럭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둘에 다른 이들은 의아한 듯했지만 전처럼 심각하게 충돌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여기는 듯했다.
그렇게 점심을 마친 우리는 이그드라실과 함께 수련장으로 가야 했으나····
이그드라실
용건이 생겼다! 나중에 갈 테니 먼저 가 있거라! 금방 가마!
이그드라실
아 소개해줄 만한 녀석이 있어서 말이다 곧 그 녀석을 보여주마!
이그드라실
대련실은 허가를 내려뒀으니 마음대로 쓰거라!
···이그드라실에게 일이 생긴 탓에 먼저 가있기로 했다.
과연 개학날부터 수련장을 쓸 생각이 있는 사람은 없는지 수련장은 텅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수련장 안에 있는 대련실을 예약하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민재윤과 신바란이 무기를 체크하며 말했다.
“방학 동안 다들 얼마나 강해졌는지 궁금하네···!”
“열심히 했어. 지지 않을 거야!”
확실히 다들 방학 동안 틈틈이 수련을 한 듯 느껴지는 기세가 달라져 있었다.
나유한은··· 나유한이니까 뭐.
“첫 대련은··· 강유와 박시우인가?”
나유한은 스탯상 다른 아이들과 직접 싸우기는 어려우니 심판을 맡기로 했다.
그가 뺀질하게 웃으며 말했다.
“강유야 힘내.”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강유가 묘하게 짜증을 냈다. 아까부터 나유한에게 유독 틱틱대는 것이 아무래도 최수정이 나와 나유한을 엮으며 놀린 것 때문에 경계하는 듯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여간 질투가 많다니까.
나는 종종 시스콤이라 놀림받는 강유의 행동의 내심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 그럼···”
나유한이 한쪽 팔을 높이 들고 이내 내리며 외쳤다.
“시작!”
그리고 두 남자가 곧장 거세게 맞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