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맥을 관리하는 방법 (12)
그렇게 시끌벅적한 하루가 지나갔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나유리와 함께 밥을 먹던 중 갑자기 튀어나온 최수정이 뻔뻔하게 우리 옆자리를 차지해 버렸던 점심시간도 지났다.
오후에는 이론 수업이 진행되었다.
F반 아이들은 오전 수업이 고단했는지 대부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광경이다.
소설 전개상 앞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고난이 닥쳐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카데미의 F급 지휘관>은 기본적으로 세계 멸망을 막는 이야기다.
게임 속의 악역 엑스트라에 빙의한 사기꾼이 본인이 지닌 방대한 게임 지식을 활용해서 곧 일어날 세계 멸망 이벤트 이른바 ‘재앙의 범람’을 막아 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닌다.
그러니 소설 전개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재앙의 범람’이라는 그 멸망 이벤트가 필수적으로 일어난다고 봐야겠지.
나는 원래 초반에만 사기꾼의 곁에 붙어 있다가 떨어져서 따로 재앙의 범람을 준비하려 했지만 메타 시스템이 등장하고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메타 시스템을 이용하면 나의 쓸모를 높여서 주인공의 곁에 꽤 오래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최대한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를 이용해 먹는 게 더 유리할 테니 스토리의 중반까지 함께하기로 했다. 그러니 당분간 단독 행동은 보류하기로 했다.
하지만 어떤 방향을 택하든 반드시 만나야 할 캐릭터가 하나 있다.
‘오라클’.
오라클은 소설 초중반쯤에 처음 등장하는 캐릭터다. 그는 자신이 사기꾼이 플레이한 게임을 만든 창조자라고 주장한다.
또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계에서 사기꾼의 혼을 데려온 장본인이기도 했다.
아마 나 또한 오라클이 데려온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자세한 건 만나 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오라클은 소설에서 사기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여러모로 도와주는 중요한 후원자였다는 점이다. 사기꾼이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일종의 안내자라고 해야 할까?
워낙 수상한 느낌이 폴폴 나다 보니 ‘이 녀석 뒤통수치는 거 아니냐’는 독자들이 꽤 있었지만 일단 내가 읽은 분량까지는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신비한 존재일 따름이었다.
그러니 중반까지는 괜찮을 거다.
안 괜찮다면? 그럼··· 내가 먼저 팽하지 뭐.
아무튼 오라클은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기꾼 그리고 사기꾼의 주변 인물들을 통제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내가 주목한 점은 이것이다.
나 또한 이제 사기꾼의 계약자가 되었으니 언젠가 오라클이 내게도 접근해 올 것이다. 그러면 오라클이 흡족할 만큼 통제당해 주고 원하는 보상을 얻어 내려고 한다.
어차피 오라클 쪽은 소설에서 ‘배틀 토너먼트’ 이벤트 즈음에 사기꾼에게 접근했으니 만일 내게 접근할 의사가 있다면 그때 겸사겸사 접근할 거다.
“으음····”
이건 둘째 치고 당장 대비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소설 전개상 다음 이벤트는 중간고사 때 일어나는 실전 테스트 습격 사건이다.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돌출형 게이트는 ‘탑’ 근처에서만 열린다. 그런데 다가올 중간고사 때 그 돌출형 게이트가 왜인지 실기 테스트를 보는 장소에서 오픈된다. 당연히 실기 시험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
하지만 이것도 닥쳐올 시기를 기다리며 대비하는 수밖에는 없다. 당분간 수련이나 열심히 해 둬야지.
메타 시스템이나 확인해 두자.
그런데 별생각 없이 메타 시스템을 연 나는 멈칫했다.
메타포인트가 줄어 있었다.
어젯밤에 확인한 바로 메타포인트는 총 130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레벨 업 할 때 시스템의 랜덤 분배 기능이 운 좋게도 내가 원하는 스탯에 적용되어서 포인트를 많이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포인트는 120포인트. 적은 양이지만 분명 10포인트가 깎였다.
이거 줄어들 수도 있는 거였어?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10포인트쯤 줄었다고 타격을 입는 건 아니지만 벌어 둔 메타 포인트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나중에 다급히 포인트를 사용할 때 계산이 잘못될 수 있으니까.
뭐가 문제지? 분량? 아니 분량은 충분할 정도로 채웠다. 그쪽에 마이너스 요소가 있을 확률은 적다.
그렇다면 독자들의 반응이 문제인가?
나는 빠르게 어젯밤부터 오늘 회차까지의 댓글을 훑었다.
이전 화들까지의 일반적인 댓글들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우호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면서 메타 포인트를 많이 올려 주었다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이번 화 댓글이었다. 이번 화 댓글 중 몇몇에 변화가 보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시스템창에서 검은 오라를 풍기는 댓글들을 봤다.
친절하게도 이 시스템은 내게 이유를 알려 주려는 모양이다. 참 고마워라.
ㅇㅇ
장비 사라고 준 돈인데 갑분기부? 애가 착한 건 좋은데 고구마네;
ㅇㅇ
기부? 갑자기? 복선도 없었지 않음? 갑자기 왜? 눈물 줄줄 흘리는 것도 애가 감정과잉 같다;
ㅇㅇ
? 귀엽기만 한데?
ㅇㅇ
은혜를 입히는 건 좋은데 괜히 돈 주겠다 했다가 이상한데 날렸네 ㅋㅋㅋ 다음엔 장비 사다주는게 더 나을듯 얘한테 돈 주면 계속 고아원에다 퍼다줄 것 같아서.
ㅇㅇ
하차합니다. 작가님도 상하차나 하십쇼.
이거구나.
확신이 들었다.
‘내’가 소위 말하는 답답한 전개 ‘고구마’를 일으켜서 나라는 캐릭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발생한 거다.
여태까지 있던 댓글에 있던 부정적인 평은 코인이니 주식이니 하며 장난스럽게 혹은 어디까지나 독자들 서로 간의 공격 혹은 작가에게 향하는 전개를 향한 불만이었다.
이런 댓글들은 내게 영향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전히 ‘강나현’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했기에 내게 영향이 미친 거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선명할 정도로 잘 보이니까.
나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멍청했다.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했는데 감정에 휘둘려서 일을 그르쳤어.
고아원이 독자들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언급된 이상 고아원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만 하면 지속적으로 포인트가 깎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평가를 뒤집을 ‘이유’가 생기기 전까지는 고아원 그리고 선생님과 우리 아이들에 대한 소재는 전부 발설 금지라 봐도 되겠지.
객관적으로는 그게 맞는 판단이다.
하지만····
분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만큼 아니 받은 것보다 훨씬 적은 일부를 돌려준 정도의 행동이 그저 ‘고구마’라는 단어로 일축되는 현실이 분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나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비난받는다는 게 너무나 분했다.
문득 손바닥이 따끔거려서 주먹을 펴 보니 선명하게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쩔까?
남은 메타 포인트도 깎이기 전에 당장 다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한 치 앞밖에 보지 못하는 하수나 할 행동이다.
당장 모든 사람의 스테이터스를 볼 수 있는 ‘통찰안’을 가진 사기꾼이 늘 내 옆자리에 있다. 몬스터를 죽이지도 않았는데 스탯에 변화가 있다면 이상함을 느끼겠지.
또 한 번에 많은 포인트를 사용해서 ‘재능 있는 성장캐’로 자리매김하려는 계획에도 지장이 생긴다.
일단 포인트가 많이 깎이지는 않았다. 그러니 상황을 살펴보면서 중간고사 이전까지 최대한 분량과 평판을 좋게 유지하고 포인트를 버는 걸 목표로 해야지.
괜찮아.
나는 우리 고아원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사기꾼을 늘 우선시하는 고구마를 주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해 주자. 독자들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그렇게 스스로 타일렀지만 왠지 가슴 한편이 따끔거렸다.
손끝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애매하고 길고 잊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