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맥을 관리하는 방법 (14)
뭐지?
예상치 못한 덤덤이의 요청에 나는 놀랐지만 태연하게 웃으며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나는 대화를 거절할 만한 캐릭터가 아니니까.
덤덤이는 이야기를 하자고 먼저 요청한 것치고는 벤치를 찾아 앉을 때까지 그리고 벤치에 앉아서도 말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결국 기다리다 못한 내가 먼저 묻자 덤덤이는 입을 뻐끔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미안 잠시 말을 고르고 있었어.”
“괜찮아! 시우는 신중하구나!”
방긋 웃어 주자 덤덤이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뭐지?
그리고 마침내 덤덤이가 입을 열었다.
“혹시 무슨 일 있었어?”
“응? 무슨 일이라니?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묻는 거야? 요즘은 좋은 일뿐이야! 친구들에게 인정도 받고 마력도 늘었고!”
이 자식 뭔갈 눈치챈 건가?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 나가려 했다.
“게다가 이건 비밀인데 사실 돈도 많이 벌었다?”
“···그게 아니라”
묵묵히 나를 보며 내 말을 듣던 덤덤이가 반문하려다 멈칫했다.
“아냐. 말하기 싫다면 굳이 묻진 않을게.”
그는 들고 있던 캔을 따서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대신 너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줄게. 내가 잘 아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말해 주고 싶어.”
갑자기? 나는 의아했지만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몰락한 용사의 이야기야.”
나는 무심코 덤덤이가 항상 등에 메고 있는 낡은 검을 봤다가 시선을 다시 앞으로 향했다.
···설마 그 이야기인가?
“그 사람은 뛰어난 리더였어. 그래서 사람들은 그 용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맡겼지.”
알고 있다.
이건 사람들이 탑을 공략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국제 공략대 ‘세이비어’의 대장. ‘박시연’의 이야기.
“용사는 임무를 완수했어. 실수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 하지만 용사는 노력했고 사람들은 그 노력을 기리며 용사에게 존경을 바쳤어.”
찬란한 영광이 부스러지고 죄책감에 몸부림치던 어떤 망가져 버린 사람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날 세상이 뒤집어질 만한 사실이 밝혀졌어.”
탑이 보물이 아닌 흉물로 전락해 생명을 잡아먹는 전장이 되자 국제 공략대 세이비어는 사람들의 비난에 직면한다.
“용사가 해 왔던 중요한 일은 사실 함께하는 동료를 그리고 세상을 해치는 일이었던 거야.”
“사람들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서 용사 일행을 탓했어. 용사는 자책했어. 그리고 평생 죄책감에 괴로워했어.”
흔한 일이다.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중의 분노가 향할 제물이 늘 필요하니까.
“그래도 그 사람은 항상 손자의 얼굴을 볼 때면 웃는 모습만 보여 줬어.”
덤덤이가 무언가를 추억하듯 깊게 가라앉은 눈을 했다.
“하지만 손자는 알고 있었어. 할머니는 언제나 깊은 슬픔을 숨기고 있다는 걸.”
한번 숨을 들이켜고 눈을 꾹 감은 그가 말했다.
“···그 사람은 내 할머니야.”
푸른 눈이 나를 향했다.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하는 사람을 너무 오래 봐 왔어. 그래서 난 울음을 숨기려는 사람이 어떤 얼굴을 하는지 잘 알고 있어.”
푸르고 푸른 그러나 다정한 걱정을 품고 있는 그 눈에 모든 걸 토해 내 버릴 것 같아서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덤덤이의 시선이 다시 앞을 향했다.
“그런데 네가··· 할머니처럼 울음을 참고 웃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신경이 쓰였어.”
덤덤이는 말을 고르려는 듯 잠시 침묵하다가 신중하게 한마디 한마디 느릿하게 이어 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생기기 마련이야.”
그의 손에 있던 빈 캔은 어찌나 힘을 줬는지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치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말았으면 해.”
그리고 덤덤이는 앞을 향하던 시선을 나와 맞췄다.
“···가끔 친구들한테 도와 달라고 해도 좋고.”
금세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새빨갛게 달아오른 소년의 귀가 눈에 들어온다.
“···시우야.”
나는 말없이 시선을 돌려 눈앞에 떠 있는 메타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150포인트. 포인트는 그새 늘어 있었다.
그래. 고작 10포인트가 깎였을 뿐인데 너무 초조해했다.
나는 그제야 눈앞이 갠 듯 내 행동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내게 고아원은 언제나 최우선이다. 그래서 나는 고아원을 위한 돈을 지켜 냈다. 고작 10포인트를 대가로 고아원의 미래를 산 거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좀 더 편해지는 것 같았다.
뭐 그래. 이미 지난 일에 너무 매달리고 있었다. 앞으로 주의하면서 더 노력하면 되는 거다.
“고마워.”
덤덤이는 내 웃는 표정을 보고 본인도 살며시 미소 지었다. 제법 멋져 보였다.
역시 그 사기꾼 자식이랑은 차원이 다른 인성이다.
나는 두 주인공의 현격한 인성 차이에 한탄하며 다 마신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러곤 일부러 장난스레 말했다.
“뭐야 내가 걱정돼서 대화하자 한 거였어? 다정하다 우리 시우!”
내 말에 덤덤이의 귀가 약간 더 붉어졌다.
“그냥··· 별거 아냐.”
“빛나는 감성! 멋진 인성!”
“윽····”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한동안 덤덤이를 칭찬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고마워. 너도 고민 있으면 언제든 말해 줘. 친구잖아.”
내 말에 덤덤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갈까?”
“그래 애들 기다리고 있겠다!”
왜 늦었냐는 말을 할 남은 둘에게 할 변명을 둘이서 맞춰 가면서 우리는 다시 수련실로 향했다.
그리고 수련실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놀라운 손님이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수련실에 있었던 손님은 바로
“냐하하~ 안녀엉!”
최수정이었다.
지난번 던전 공략 때 이용당한 것 때문에 사기꾼에게 아주 질색하고 있을 텐데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그러나 사기꾼은 왜인지 엄청나게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진짜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하게 사기꾼 쪽을 보는 나를 나유리가 폭 끌어안았다.
“저런 쓰레기 같은 인간 나현 씨가 걱정해 줄 필요 없어요.”
“그래 좀 혼내 줬을 뿐이라구~.”
···아 맞다. 나는 그제야 ‘나유리와 함께 사기꾼을 혼내 주겠다’며 최수정에게 공수표를 날린 걸 떠올렸다.
진짜로 실행하러 온 거였냐고····
사기꾼이 우리를 향해 휘적휘적 손을 흔들었다. 살려 달라는 것 같았다.
나는 컨셉상 저 자식을 도와야만 한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한탄하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한편 최수정은 본인 성에 찰 만큼 사기꾼을 잘 두들겨 줬는지 엄청나게 상쾌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의 수련에 끼어들려 하기에 기꺼이 받아 줬다. 최수정처럼 중요하고 능력 있는 인물과의 친목질은 굉장히 유익하니까.
곤죽이 된 사기꾼은 수련에서 빠지려나 했는데 용케 일어서서 따라오더라. 귀한 포션까지 마시면서 말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갔다.
* * *
나는 기숙사로 돌아와 메타 시스템창을 열었다.
전에 자세히 보지 못한 등장 파트와 댓글 반응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혹시 나에 대한 비난이 있어도 이젠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무심코 미소 지었다.
나는 빠르게 등장 파트와 독자 반응을 훑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