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험에 대비하는 방법 (2)
* * *
충격과 공포의 원작 파괴 면접이 끝나고 ‘게이트 보물 탐사부’는 인원을 초과 달성하며 무사히 동아리를 오픈할 수 있게 되었다.
며칠 뒤 드디어 첫 동아리 활동일이 다가왔다.
부원들은 모두 무사히 제시간에 부실 안으로 모였다.
“냐하하~ 안녕!”
“···안녕.”
최수정은 예상대로 이하나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 둘의 사이를 생각하면 예상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일단 이하나는 최수정의 유일한 친구이자 절친이니까. 원작에서도 둘이 같이 엮인 사건이 꽤 많았지.
나와 사기꾼이야 부원들 얼굴을 다 한 번씩 봤지만 각 부원들은 이런 멤버로 모인 게 처음이기에 약간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사기꾼이 짝 소리를 내 부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 오늘 우리 부의 활동 목표는 게이트 탐사입니다!”
“잠깐 게이트 탐사라뇨? 우리는 아직 탑 주변 게이트에 접근할 권한이 없어요!”
“하하 다 생각이 있지. 그 전에 다들 이걸 작성해 주면 좋겠는데.”
나유한이 부원들에게 나눠 준 것은 다름 아닌 내게 건네주었던 바로 그 계약서였다.
다만 내가 기존에 체결했던 계약서와 내용이 달랐다.
사기꾼은 내가 작성한 이전 버전 계약서를 꺼내더니 찢으며 말했다.
“나현이 너도 새 계약으로 갱신하자. 이전 건 여러모로 허술했잖아.”
“아 응!”
원작 속 계약서는 나에게도 다시 적용되리라 예상했다.
제 파티의 파티원이 될 사람들에게는 동등하게 자원을 분배하려는 경향이 있으니까 이 녀석은.
그래서 새로이 갱신된 항목은 이랬다.
첫째 게이트 보물 탐사부 활동의 일환으로 함께 정지형 게이트 공략에 갈 경우 게이트 보물 탐사부의 부원 외에는 해당 게이트에 간다는 것을 발설하지 말 것.
둘째 게이트 보물 탐사부 활동을 통해 얻은 부산물은 반드시 부장을 통해 분배받고 정산받을 것.
셋째 게이트 보물 탐사부의 분배 전 부산물 보관은 반드시 모두 부장에게 맡길 것.
도중에 나유리와 사기꾼이 잠깐 투닥거리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부원들은 모두 황금색으로 빛나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사기꾼은 그제야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갈 곳은 숨겨져 있는 정지형 게이트야.”
“그런 곳을 안다고요?”
“뭐 이제 와서 놀랄 일도 아니지마안 너 비밀이 너무 많은 거 아냐~?”
“어허 잡담 금지. 일단 그 게이트는··· 그래 일단 ‘얼음 동굴’이라 할까. 좀 특이한 덴데”
그 말에 내내 묵묵히 있던 이하나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얼음 동굴.”
“그래요. 얼음으로 된 던전입니다. 아무튼 거기에서는 레벨 업이 불가능하지만 빙 속성 아이템이나 코어가 많이 드랍돼.”
레벨 업이 가능한 경험치를 주지 않는 대신 아이템이 많이 드랍되는 ‘아이템 던전’.
누가 봐도 노린 듯한 던전 선정이었다. 사실을 알고 보면 이하나에게 점수를 따기 위한 사기꾼의 눈물의 어필 쇼라는 게 보였다.
“좋겠다! 그치 하나야~.”
“응.”
사기꾼이 이하나에게 목을 매는 이유는 별것 없다.
이하나는 정말로 강하니까.
사정이 있어서 유급을 했기에 지금 1학년 수석 차석은 다른 사람이 맡았지만 강한 순서로 따지자면 이 학교 학생들을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강한 유급생이라는 특징은 최수정도 동일하지만 최수정의 힘의 근원은 높은 레벨이다. 그녀는 예전에 이종족 혼혈로서의 특이성을 악용당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레벨이 갑자기 높아졌다.
그래서 최대로 성장했을 때의 가능성만 따지면 이하나가 압도적이다.
“던전에 직접 들어가면 조금 위험한 점도 있을 텐데 준비할 건 따로 없어?”
“준비물은 내가 다 챙겨 뒀으니 걱정 마!”
“응 유한이는 준비를 잘해! 저번에도 장난 아니었어!”
“그렇다면 괜찮지만····”
덤덤이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기꾼이 장비를 모두 준비해 둔 것도 시간 로스를 줄이기 위해서겠지.
그의 이런 준비성만은 싫지 않다.
저번 던전 공략 때 준 포션들도 그렇지만 한번 준 건 다시 돌려 달라고 안 하니까 사실상 부수입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인벤토리에 남아 있는 마나 포션들과 기타 상태 이상 포션들을 생각하자 마음이 푸근해지는 걸 느꼈다.
이런 점은 좋다니까 사기꾼 녀석.
사기꾼의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난 후 우리는 동아리 활동 허가서를 내고 중간 지대에 있는 한 야산으로 향했다.
“우와~ 진짜잖아아?”
등산로를 지나 험한 산길을 벗어난 끝 바위로 가려진 절묘한 구석에 어긋난 퍼즐처럼 푸른 동굴이 비치는 게이트가 존재했다.
“갈까!”
우리는 사기꾼이 준비해 둔 방한 장비를 착용하고 그 게이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음 동굴이란 이름답게 게이트 안 던전은 서늘한 공기로 가득했다.
내뱉은 숨이 하얗게 변하는 걸 보면서 우리는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조심조심 걸어갔다.
나는 이하나를 유심히 살폈다. 그녀는 긴장하면서도 이 동굴 안의 환경을 제법 편안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녀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그 저주 때문이겠지.
소설에 의하면 이하나는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불의 저주’를 몸에 담고서 고통받고 있었다.
그녀는 얼음 속성의 마력을 지니고 있기에 불 속성의 저주는 특히 치명적이다. 그렇기에 저주의 효력을 억눌러 주는 얼음 속성의 아이템은 그녀에게 매우 필요한 물품이었다.
그래서 사기꾼의 미끼를 덥석 문 거기도 하지. 하여간 저쪽도 참 고생이 많다.
나는 마력 때문에 고통받는 내 고아원 동생이 떠올라서 괜히 그녀가 제법 신경 쓰였다.
우리는 사전에 정해 놓은 포진대로 도열했다.
전방에는 근거리 딜러인 나유리와 박시우 중앙에는 지휘관인 사기꾼과 마법사인 최수정 그리고 후방에는 원거리 딜러인 나와 이번에는 원거리 딜러로서 진행하기로 한 이하나가 섰다.
얼마가 지났을까.
토톡 하고 돌과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사기꾼이 곧바로 외쳤다.
“전투 준비!”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드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다양한 크기의 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거대한 돌탑 같은 형상이 되었다.
“무빙 록 계열 그중에서도 아이스 무빙 록. 나유리! 박시우!”
“알고 있어요!”
“알았어.”
나유리가 재빨리 주먹에 불꽃을 감아 무빙 록에게 한 방 먹였다.
강렬한 주먹에 얼음이 녹고 깨지며 돌탑의 중심이 일부 무너졌다. 돌탑의 안쪽에 있는 코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박시우의 낡은 검이 코어를 단번에 베어 냈다.
돌탑 안에 있던 주먹만 한 푸른 코어가 두 동강 나자 애써 형태를 유지하던 돌탑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돌들이 이리저리 튀었다.
사기꾼이 머리를 가리며 외쳤다.
“최수정 바람으로 보호!”
“라저-.”
최수정이 거센 바람의 벽을 펼쳐 우리 쪽으로 날아오는 돌을 튕겨 냈다.
캉! 캉! 캉!
섬뜩한 소리가 얼마나 들려왔을까. 소리가 잦아들자 바람의 장벽도 곧 사라졌다.
“일단 몬스터 소체랑 코어를 회수하고 가겠습니다. 하나 선배 수거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응.”
이하나가 몬스터의 잔해로 손을 뻗자 마력을 담았던 몬스터의 돌과 몬스터의 코어가 자석에 빨려 들어가듯 이쪽으로 차곡차곡 모였다. 오 역시 얼음 능력자.
그리고 부산물들 사이에는 웬 팔찌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게 바로 아이템 드랍인가?
“감사합니다.”
사기꾼은 아이템과 몬스터 부산물을 챙겨 넣으며 말했다.
“전에 브리핑했듯 이 동굴 안은 잔챙이 몬스터가 없는 대신 이렇게 코어와 아이템을 주는 대형 몬스터가 많이 나타나니 주의해서 진행해야 해.”
“응!”
그래도 대형 몬스터들에서 나오는 소재들은 높은 가격에 팔릴 것이다. 돌출형 게이트의 경우 대형 레이드용 몬스터가 튀어나오기만 해도 헌터들이 환호한다지 않던가?
우리는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종종 아까와 같은 무빙 록이 몇 개체 출몰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이하나 덕에 수거에도 별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이하나는 수거를 하던 도중 냉기를 흡수했는지 안색이 동굴에 들어오기 전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다행이다. 아픈 사람을 보는 건 여러모로 고역이다.
길 도중에는 얼음에 박혀 있는 빙 속성 마정석들이 있었는데 사기꾼은 기다렸다는 듯 곡괭이를 꺼내 하나씩 나누어 줬다. 준비성 하나는 철저한 자식이다.
아무튼 그렇게 얼음 동굴의 모든 것을 털어 가면서 우리는 마지막 공동의 앞에 도착했다.
“전에 말한 작전은 다들 기억하지?”
“응!”
“당연하지이~.”
“걱정 마.”
“당신이나 까먹지 마시죠?”
“동생아 이 작전을 계획한 건 나거든?”
이하나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하나 선배.”
“응.”
곧 이하나의 서늘한 마력이 우리를 감쌌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이하나 나유리 박시우는 누워서 자고 있는 거대한 털 뭉치 즉 설인의 근방으로. 나머지는 후방으로.
나는 저격 포인트를 찾기 위해 적절히 앉아 있을 만한 높은 곳을 찾고 있었다.
그때 사기꾼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믿고 있어 강나현.”
“응. ···열심히 할게!”
그렇다. 이 작전의 메인은 다름 아닌 나였다.
원작대로라면 이하나를 메인으로 했을 거고 작전도 다른 작전을 썼을 텐데.
···지금의 사기꾼이 나를 그만큼 신뢰 중이라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