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문제아에서 탈출하는 방법 (12)
어이없게도 원장의 부패가 드러나자 정부는 여기서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유지 여부를 고민하는 듯했다.
그들은 프로젝트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었지 혼혈 고아들의 복지에 관심이 있던 게 아니어서 결과적으로 보조금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게이트 확장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몬스터 게이트가 이 마을 근처에 발생할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여우가 물었다.
“있잖아 왜 우리만 이런 걸 알게 되는 걸까?”
“글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원장실 문에 나란히 등을 기댔다. 안에서는 선생님이 누군가와 통화하며 거친 목소리를 토하고 있었다.
“네? 이주가 안 된다고요? 예산 부족이라뇨!”
선생님은 드물게 흥분해서는 전화 너머의 상대와 격렬히 싸웠다.
“프로젝트 중단 예정이라뇨! 끝까지 책임지셔야죠! 뭐 나현이만 신경 쓰라고요? 제정신이세요?”
나는 먼 산을 바라보는 여우의 볼을 콕콕 찔렀다. 여우가 입술을 비죽이더니 꼬리로 내 팔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러더니 내게 물었다.
“돈 있어?”
“있겠냐?”
“하지만 너 유명한 헌터랑도 아는 사이인 거 같던데.”
“응. 그래서 그쪽에 좀 뭐라 해 보려고.”
나는 아직도 날 찾아오지 않은 최가람에게 안 찾아올 거면 돈이라도 내놓으라 할 작정이었다.
“대충 귀찮게 굴면 뭐든 주겠지. 돈은 많은데 바쁜 사람이거든.”
그럼 애들은 다 다른 곳으로 이주 가능하겠지.
“돈이 있으면 시민증도 살 수 있을까?”
내 말에 여우가 고개를 저었다.
“시민증을 사는 건 안 돼. 걸리면 쫓겨나. 시민권을 부여받아야 해.”
그러더니 중얼거렸다.
“시민권 받으려고 여기서 버티고 있었던 건데.”
“그럼 돈이 있어도 이동할 수 있는 곳은 결국 불법 거주지 안···이구나.”
“그렇겠지.”
“어떻게든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높은 사람한테 뇌물을 바치고 거래하기?”
“아 무리구나. 알았어.”
우리는 문에 기대 전화 내용을 듣다가 전화가 마무리될 즈음이 되자 함께 침실로 돌아왔다. 여우는 다시 심경이 복잡해진 듯했다.
나는 여우에게 물었다.
“떠날 거야?”
여우가 답했다.
“아니. 여기가 좋아졌어.”
“그렇구나. 나도 그래.”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긴 밤이었다.
다음 날. 나는 원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들어갈게요.”
“나현이구나! 들어와!”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원장실은 전과는 다르게 약간 휑했다.
선생님은 다급히 몸으로 뭔 종이들을 숨겼다.
나는 원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고아원 돈 없죠?”
“그 그건 어디서 들었니!”
“대충 눈치로 알았어요.”
내 말에 선생님은 횡설수설하며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아냐 아냐! 여긴 정부에서 지원도 해 주고 기부해 주는 사람도 있고····”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고 있자 선생님은 내가 납득했다 여겼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응? 돈? 그런 건 걱정 마.”
아까 몸으로 숨겼지만 삐져나온 포스터를 손으로 밀어 자신의 등 뒤로 넣으면서.
“선생님이 어떻게든 할게.”
나는 선생님이 뭐라 하든 방금 본 포스터에 있던 글자를 보고 경악했다.
<장기 매매>
미친 거 아냐?
미친 거 아냐??
미친 거 아냐???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제가 아는 사람에게 말하면 돈은 마련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최가람이라는 사람 말이니?”
“네.”
“그 사람은 네가 아는 사람일 뿐이지 고아원의 기부자가 아니야. 그리고··· 무엇보다 너를 이곳에 방치해 둔 사람이잖니.”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내 속은 터져 나갔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 최가람이 고아원에 기부할 확률도 높아지겠지!
날 방치한 건 그야 나도 용납하진 못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않은가! 왜 이렇게 나를 이용할 생각을 못 하는 거지?
내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나현아.”
선생님은 그 다정한 갈색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멈칫했다. 선생님은 나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네 보호자라 주장하는 그 최가람이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어. 네가 원하면 만나게 할 거야. 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만나는 걸 막을 생각이야.”
그건 단호하고도 다정한 미소였다.
“돈을 줄 테니 너를 만나게 해 달라 해도 난 그러지 않을 거야.”
나는 그제야 왜 그녀가 그런 발언을 한 것인지 이해했다.
“선생님은 어른이란다. 그 사람의 힘 없이도 이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있어.”
그녀는 날 보호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압박받지 않도록. 돈에 다른 조건에 압박받아 억지로 최가람을 만나지 않도록.
“그러니까 선생님은 나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어.”
그 허세에 날카로운 말이 목까지 차오른다.
그럴 능력 없잖아요. 허세 부리긴.
그러다가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단어들은 가슴께 어딘가에 퍼지는 따뜻함에 녹아 사라진다.
결국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나현이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
아뇨. 사실 날 이런 곳에 버려둔 사람 따윈 꼴도 보기 싫다.
이곳에 와서야 난 내가 외로웠다는 걸 알았다.
날 외롭게 한 그 사람이 싫다. 하지만 좋아했다.
복잡한 감정이 실타래처럼 얽힌다. 이 감정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다.
“네.”
하지만 난 내 감정만을 내세울 정도로 어린애는 아니었으므로
선생님이 스스로를 잘라 내는 모습도 아이들이 다치고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만나고 싶어요.”
최가람을 만나기로 했다.
* * *
내가 최가람과 아는 사이라고 헌터들에게 말한 뒤 상부에 어떤 식으로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고아원 주변에 갑자기 경비 인력이 배치되었다.
사실 그전에 경비 인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 건 천운에 가깝다.
아니면 혹시 고아원 불법 거주지의 주먹깨나 쓰는 무리와 야합한 원장 덕분이었든지.
“가요.”
나는 나를 데리러 온 사람들에게 이끌려 마을을 걸었다.
헌터들은 마을 바깥으로 간 후에야 빠르게 이동할 성싶었다.
마을을 걷는 건 처음이라 괜히 주변을 살폈다.
이 세계는 내가 읽던 소설 속이었지만 원작에 나오는 요소는 탑이나 게이트 외에는 딱히 직접적으로 대면해 보진 못했다.
나는 멍하니 발을 놀리면서 불법 거주지에는 혹시 원작 소설에 나오는 요소가 뭐가 있나 생각해 보았다.
불법 거주지에서는··· ‘검은 천칭’과 ‘제미니’가 등장했지.
검은 천칭은 무언가를 주면 비슷한 가치의 무언가를 내준다는 원칙을 가진 시스템적인 존재다.
소설의 주인공이 불법 거주지로 가 검은 천칭과 거래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 사건 부근에 복선이 많이 깔려 있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검은 천칭이 사는 곳에 새겨져 있는 문양의 묘사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분명 원 안에에 천칭이 있는···
그래. 주인공이 딱 저렇게 생긴 문양으로 들어갔던 것 같은데?
“어?”
나는 벽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커다란 원 안에 천칭을 기하학적으로 새겨 넣은 그 괴이한 모양은 소설에서 묘사된 그대로였다.
이게 왜 여기 있어?
낙서 아냐?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설마 여기가 정말 검은 천칭을 만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라고? 혼란스러웠다.
“왜 그러니?”
내가 걸음을 멈추자 같이 걷던 헌터가 물었다. 나는 그에게 확인차 질문 하나를 했다.
“저거··· 저 문양은 언제부터 있었어요?”
“응? 그 글쎄. 언제부터 저런 게 있었지?”
내 질문에 헌터는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만져 봐도 돼요?”
“그래라.”
나는 검은 천칭 문양 앞으로 걸어가 천천히 문양에 손을 댔다. 그러자 얼음장 같은 차가운 기운이 손끝을 시작으로 온몸을 감돌았다.
···이거 진짜다.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왜 그래? 몸을 떨고?”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젓곤 다시 태연한 척하며 머리를 굴렸다.
문득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벼락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든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높은 사람한테 뇌물을 바치고 거래하기?”
검은 천칭이라면 어쩌면····
···이건 일단 보류해 두어야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헌터를 지나쳐 앞으로 달려 나갔다.
* * *
“바빴죠? 이제야 온 걸 보니까.”
내 말에 최가람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녀를 비난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이것조차 시간 낭비다.
“다 미뤄 두고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나는 궁금했던 것들을 차례대로 묻기로 했다.
“전에 고아원에서 엄마가 만든 필터를 봤어요. 전에 실험할 때 만들었던 거요.”
“프로토타입?”
“네. 그게 왜 불법 거주지에 있었던 거예요?”
내 말에 최가람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느릿하게 답했다.
“아마 아현이가 뿌렸을 거야. 그때는 일반인의 실전 데이터가 필요했고 불법 거주지는 일반인과 몬스터의 충돌이 일어나곤 하는 곳이니까.”
우리 엄마 정말 물불을 안 가리셨군.
“그렇군요. 엄마는 정말 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거네요.”
설령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불안정한 프로토타입을 사용하다가 크게 상처 입어도 상관없었던 거다.
덕분에 살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나는 내 엄마에 대한 애정이 놀랄 정도로 식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게이트가 열려서 다행이라고 웃던 그날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힘없이 말했다.
“그 필터의 개발 작업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상용화하는 게 엄마의 꿈이었다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GAH 필터에 대한 일이라면 난 이제 지긋지긋했다.
“그 필터가 자랑스레 소개되는 꼴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네요.”
“····”
최가람은 본인의 모자를 눌러쓰며 침묵했다. 저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쓰는 모습이 멋져 보일 때가 있었는데.
나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 질문이에요. 부탁이기도 해요. 우리 고아원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시민권을 부여해 줄 수 있어요?”
그 말에 최가람은 단박에 대답했다.
“불가능해.”
시민권 부여는 불가능하다고.
“한두 명이라면 내가 보증하는 방식으로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많은 아이들에게 모두 시민권을 주는 건 힘들어.”
나는 가슴 한켠이 싸늘하게 식는 걸 느꼈다. 희망이 꺼지는 감각이었다.
최가람이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나현아. 나랑 가자.”
“····”
“너도 알다시피··· 내가 바빠서 너를 잘 챙겨 주지는 못할 거야. 그래도 지금의 환경보다는 더 나은 곳에서 지내게 해 줄게.”
나는 환하게 웃었다.
내 웃는 표정에 최가람의 얼굴이 약간 풀렸다.
“이모. 이모를 따라가면··· 난 외로울 거예요. 그러니까 싫어.”
그리고 다시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