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는 방법 (4)
큰 덩치. 두툼한 손. 다소 험한 인상.
세이비어 공략대의 대장장이 미켈이었다.
“미켈!”
나는 미켈을 보자마자 환한 안색으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나를 본 미켈이 내게 인사했다.
“오 오랜만이다. 무기에 문제라도 생겼나?”
“아뇨 무기는 멀쩡해요!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무슨 일이지?”
“그게····”
나는 미켈에게 이그드라실이 폭주한 이야기를 냅다 일러바쳤다.
심각한 얼굴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미켈이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 녀석은 확실히 인간을 볼 때 재능과 능력만을 중점적으로 보곤 하지. 대개 도움이 되는 성향이지만 이럴 때는 꽤 골치가 아프구나.”
“네. 그 그래서 좀 말려주실 수 있으실까 해서요.”
“흠····”
눈을 차분하게 감은 미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이야기해보마.”
“감사합니다!”
나는 흔쾌히 허락해준 미켈에게 이그드라실이 고아원을 방문하는 날을 알려준 뒤 자리를 떴다.
마침내 다가온 그날.
아침부터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먼저 도착한 것은 미켈이었다.
나는 미켈을 끌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도 내게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말씀하시며 미켈과 자연스럽게 안부를 나누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그드라실의 당당한 모습이 고아원 입구에 나타났다.
“내가 왔다!”
우렁찬 소리를 듣자마자 밖으로 쪼르르 달려나가는 강유를 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여간····
우리와 미켈 또한 발걸음을 옮겨 이그드라실을 맞이했다.
“음? 미켈?”
“그래. 나다. 오랜만이다.”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지?”
“네 제자가 너를 좀 말려달래서 말이지.”
“흐음····”
눈을 가늘게 뜬 이그드라실이 나를 흘겨봤다.
나는 이그드라실의 눈초리를 피하며 모두를 응접실이라는 이름의 선생님의 방으로 안내했다. 푹 꺼진 소파는 다섯이 나눠 앉자 가득 찼다.
소파에 털석 앉은 이그드라실이 선생님을 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선생님 전에 전화로 말씀드렸듯이 강유는 재능이 있습니다. 그 뛰어난 재능을 저는 빠르게 개화시키고 싶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을 그대로 일반 학교에서 사는 건 강유에게 큰 손해입니다. 모든 비용과 훈련과정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아카데미 편입 시험을 준비하게 해 주십시오.”
“음····”
“월반하고 싶어요. 선생님 누나! 알잖아요. 저 공부는 중학교 과정까진 다 떼었다는 거! 몸도 이젠 건강해요! 저는 하고 싶어요!”
선생님은 이그드라실과 강유의 강력한 주장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는 우리 강유가 머리가 좋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공부가 문제라면 그거에라도 매달려 볼 텐데!
“하지만 강유는 너무 어려요!”
“어리지만 재능이 뛰어난 학생이 사용하라고 있는 게 월반 제도다. 또한 미숙한 점은 내가 제대로 케어할 테니 맡겨다오.”
“강유의 의사는 확고한 것 같네요····”
“응!”
“으음···”
한참을 침묵하며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보던 미켈이 팔짱을 끼었다.
“그 월반과 편입시험은 정식 제도라 했지?”
“네!”
드디어 입을 여는 건가? 나는 기대감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켈이 말을 건 쪽은 이그드라실이 아니라 내 쪽이었다.
미켈이 차분하게 나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는 네 동생이 너무 어리다고 반대하는 거고.”
“네!”
“정확히 어떤 면에서 걱정을 하는 거냐?”
그 말에 나는 멈칫했다. 어떤 면에서 걱정하는 거냐니···?
“그야 아카데미의 실습은 너무 험하고 강유는 아직 몬스터를 해치는 경험을 하기엔 어리니까요····”
“그렇군. 그렇다면 이그드라실의 훈련은 왜 걱정이 되는 거지?”
“···너무 험하지 않나요? 거칠어요.”
“실습은 실전에 가까우니 그렇게 판단할 수 있겠군. 하지만 이그드라실의 훈련에 대해서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알지 않는가. 그녀의 철저함을.”
“그건···!”
“내가 생각하기에 너는 지금 강유를 너무 걱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 현재 이그드라실의 막무가내인 모습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긴 하겠다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되었다.
···그랬었지. 나는 우리를 꼼꼼히 케어하며 훈련시키던 이그드라실을 떠올렸다.
강유가 나를 진득히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애의 손이 내 손을 겹쳐 잡았다.
그제야 나는 이성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이 나갔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 아이가 너무 소중해서 그저 싸고돌려고만 했다.
“미안 강유야.”
“으응. 아냐.”
“···그래도 아카데미에서의 본격적인 실습은 아직 강유에게 이르다고 생각해요. 그건 해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켈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이그드라실을 보며 침묵했다.
이그드라실은 끄응 하며 고민하는 소리를 내더니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입을 쉽게 열지 못했다.
같이 침묵하던 선생님은 생각 끝에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그드라실님이 실시하시는 훈련의 강도는 어떻게 되나요?”
“당사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절대로 몸을 크게 해치는 일은 만들지 않아.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강유가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일반적인 학생들과 같은 커리큘럼을 진행하게 되는 건가요?”
“대체로 그렇다.”
“몬스터 사냥 등의 실습도요?”
“그래. 하지만 실습의 경우···”
이그드라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다시 마주친 그녀의 눈에서 광기는 조금 사라져 있었다.
“···어쩌면 바로 실전에 돌입하는 건 너무 빠를 수 있으니 각성자 가문이 중학생 나이대의 갓 각성한 각성자에게 적용하는 학습 커리큘럼을 적용한 뒤에 돌입시키도록 하마.”
“···!”
이그드라실의 눈동자가 아래를 향하고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역시 실력을 늘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전임을 염두에 둬줬으면 하는구나.”
“쯧. 이그드라실. 지금은 탑이 열려 있는 시대가 아니야. 왜 그렇게 급하게 구는 거지? 최근에는 그나마 차분하졌다 들었다만.”
그 말에 이그드라실은 힐끔 우리를 보더니 제 앞에 놓여진 녹차를 한 번에 들이켰다.
탁! 텅 빈 그녀의 찻잔이 거칠게 테이블 위에 놓였다.
“봉인이 흐트러지고 있으니까.”
“···뭐···?”
“봉인···이요?”
“아니 별 거 아니다.”
이그드라실은 선생님의 질문에 고개를 젓더니 말을 이었다.
“위험한 이상 사태가 늘어나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예민해졌던 모양이구나. 미안하다.”
나는 진심으로 이상 사태에 대해 걱정하는 듯한 음색의 이그드라실을 보며 침묵했다.
지금까지 나는 그리고 나유한은 이그드라실을 믿음직한 인물이라 생각하면서도 이그드라실에게 ‘재앙의 범람’이 일어날 거라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우리 편이 되면 분명 큰 전력이 될 것임이 분명했음에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좋은 선생이었음에도 그녀에게 온전한 마음을 주지 못해서였다.
‘게임에서 재앙의 범람을 일으킨 건 이그드라실이었다.’
어렴풋하게 떠오른 <아카데미의 F급 지휘관>의 한 문구가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는 현실이 되어 버린 소설에서 재앙의 범람을 막아내야만 한다. 그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신중해야 하는 입장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혹시··· 이그드라실이 지금 걱정하는 모습은 그저 연기에 불과한 걸까. 마치 나처럼 말이다.
혼란스러움이 마음을 잠시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때 이그드라실이 외쳤다.
“어쨌든! 이런 조건이면 괜찮겠느냐?”
“네?! 네!”
“좋다! 그러면 보호자인 선생 그대는 어떤가?”
“좋아요.”
“강유!”
“네!”
빠르게 우리 셋 모두의 승낙을 받아낸 이그드라실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음! 그럼 이제 문제없겠군! 당장 오늘부터 훈련을 시작하지! 강유! 나와라! 강나현! 너도!”
“저도요?!”
“이렇게 된 이상 함께 수련시켜주마!”
하는 수 없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몇 주 뒤에 약속이 있는데 그쯤에는 놓아주세요.”
“좋다!”
우리의 대화가 마무리된 듯 보이자 미켈이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만 가 보지. 이그드라실을 설득하라고 불렀건만 정작 널 설득하게 된 것 같군. 미안하다. 네가 너무 조급해 보이더군.”
“아 감사했습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신세지게 되어 죄송했어요.
“무얼. 별 거 아니다. 네 걱정되는 마음도 이해하니까. 다음에 또 보지. 그리고 거기 꼬맹이 마이스터 무기가 필요하게 되면 날 찾아와라.”
“정말요?!”
“그래. 맘에 들었으니 하나쯤은 무료로 만들어주마.”
“잘됐다 강유야!”
나는 뜻밖의 횡재에 환하게 웃었다.
그런 우리의 화기애애함을 질투하듯 이그드라실이 우리의 팔을 잡아끌었다.
“뭐 하느냐 가자! 강유! 강나현!”
“네!”
“잠깐만요!”
그렇게 미켈과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강유와 나는 이그드라실의 지옥훈련으로 뛰어들었다.
* * *
몇 주가 쏜살같이 흘렀다.
“잘 다녀와!”
“다녀오고 나선 또 훈련이다!”
“네···!”
나는 두 명의 배웅을 받으며 훈련장소에서 멀어졌다.
“···죽는 줄 알았네.”
파자마 파티를 위해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유가 보고 있어서 약한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걸 아는지 이그드라실은 나까지 참으로 악랄하게 훈련시켰다····
아니 고통의 나날은 그만 생각하자.
오늘은 즐거운 파자마 파티날이니까!
나는 근육통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마침 내 앞에 도착한 버스를 탔다.
목적지는 당연히 나유리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우와····”
나는 창 밖 풍경을 보며 감탄했다.
그때 손 안에서 디바이스가 진동했다. 박시우에게 메시지가 온 것이었다.
박시우
사진
박시우
오랜만에 할머니네에 갔어. 넌 이그드라실 님과 훈련을 한다고 했지? 어때?
박시우가 보낸 사진에는 낡았지만 차분하고 잘 정돈된 친근한 분위기의 양옥집이 보였다.
죽는 줄 알았어!
너도 같이 했어야 했는데…! 같이 죽었어야…! ㅎㅎ농담이야.
장난스레 보낸 문자에 답이 금방 왔다.
박시우
너랑 같이 죽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박시우
나도 농담이야.
···얘는 무슨 농담을 이렇게 해?
나는 약간 달아오른 뺨을 손등으로 식히며 다시금 창밖을 봤다.
나유리의 집으로 가는 버스가 정거장을 지나칠수록 거리는 점점 깔끔해졌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차는 점차 비싼 차로 변했고 집들은 저택이라 부를 법한 비싸고 큰 사이즈의 것들이 존재했다.
역시 안전지대의 중심의 중심. 부자들만 사는구나.
언젠간 동생들이랑 선생님이랑 이런 곳에서 살고 싶네.
감탄하고 있자니 버스가 내가 내릴 정거장임을 알리는 방송을 내보냈다.
나는 캐리어를 들고 후다닥 버스에서 내렸다.
캐리어를 끌고 얼마나 걸었을까 꽤 한참을 걸은 후에야 나는 근처에 있는 다른 저택들과는 다른 스케일의 저택이 내 목적지임을 깨달았다.
머뭇거리며 그 커다란 저택으로 걸어가자니 입구에서 반짝이는 금발이 흔들리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나현 씨!”
나유리였다.
나유리는 입구에서부터 내내 기다리고 있었던 듯 나를 발견하자마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안녕 유리야!”
다른 아이들은 일정 때문에 조금 후 저녁에 오기로 해서 딱히 더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나유리와 나는 광대한 정원을 천천히 걸어 저택까지 향했다.
몇 주만에 만난 친구가 무척 반가웠는지 나유리는 신이 나서 나와 대화하다가 문득 디바이스를 들여다보았다. 메시지가 왔는지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왜 그래?”
“그 어머님께서 나현 씨와 한 번 단둘이 만나뵙고 싶다 하시네요. 평소에는 제 친구에게 관심이 없으신데 어째서일까요····”
나유리의 어머님이라면 나유한이 말했던 그 ‘기록자’를 말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