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4
당난아의 기대는 초장부터 와장창이었다·
꼬리 아래의 두툼한 지방을 손질해 구워내면 대창과는 다른 식감의 쫄깃파삭한 농후한 기름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이는 큰 오리를 잡아도 나오는 것이 몇 점 안되기에 상석을 향해 금그릇에 담아 내어놓는 진미였다·
그러나 당가에서는 서열 일 위가 따로 존재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주인이 따로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당난아가 젓가락을 뻗는 순간에 식탁이 빙글 돌아가니 둘째가 금그릇을 번쩍 들어 청의 앞에 내려놓았다·
“소저 이것 좀 드셔 보시겠소? 본래 오리 한 마리를 구워 가장 맛있는 부위가 바로 이 꼬리 아래 지방이라오·”
“정말요? 와 뭐야· 대박·”
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왜 맛있지?
치사한 중원 놈들이 지네들만 이런 걸 먹고 있었단 말인가·
지켜보던 첫째 부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미도 입 있다 이 새끼야·
아들놈 키워봐야 부질없다 하더니만·
그때 셋째는 또 제 특기를 발휘하고 있었다·
쌍젓가락 들고 휘두르며 오리 목뼈에 붙은 살을 정확하고 빠르게 발라내는 것이 바로 셋째의 전문 영역이었던 것·
조류의 목살의 맛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당난아가 늘 그래왔듯 자신의 앞으로 도착할 셋째 오빠의 자상한 결과물을 기대했지만·
그 접시가 자연스럽게 청에게 향했다·
“꼬리도 좋지만 역시 목을 빼놓을 수 없지· 이것도 좀 드셔 보시겠소·”
“오잉? 그냥 제가 뜯어먹어도 되는데? 여튼 고마워요· 오· 맛있다· 맛있어·”
청의 입가가 사르르 풀렸다·
청이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는 인물이다·
행복한 미인의 얼굴이 자체 발광했다·
둘째 부인은 그냥 체념했다·
본래 딸년에게 가던 접시가 손님에게 향했다·
차라리 저게 낫다 싶어서·
언니 아들놈 키워봐야 부질없기는요·
딸년이라고 뭐 달랐는 줄 아나·
그놈이 그년이야·
두 부인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러니 부인들이 자매처럼 의가 좋을 수밖에·
“서문 소저 이건 검남춘이라 하는 사천 최고의 명주라오· 혹시 백주를 즐기신다면·”
“와 검남춘!”
“서문 소저 그런데···”
“서문 소저···”
“서문···”
여인을 두고 형제들끼리 기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중원에서 이와 같은 모습은 절대 추한 꼴이 아니었다·
중원의 연애란 본디 사내가 여인에게 아양을 떨고 눈치를 보며 꽉 잡혀 지내는 상태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연애에 있어서는 사내보다 여인에게 십 할의 주도권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내는 아내를 여럿 두기 때문에·
혼인 이후에는 이 관계가 완벽하게 역전되니 부인과 첩들 사이에서 더 사랑받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며 부군을 떠받들어야 했다·
그러니 혼인 전에는 여인이 절대갑이다·
혼인 후에는 뒤바뀌어 사내가 어중간한 갑과 을 사이쯤 된다·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본래 세상에 공평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한 중원의 연애관에서 제일 맛있는 부위 냉큼 뺏어다 가져다 바치고 뼈에서 살코기를 발라주는 정도는 그냥 기본이었다·
달콤한 축에도 못 드는 기본적인 수발이다·
그냥 평범한 중원의 남성들인 것이다·
다만 청이 당하기엔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싶으니 부담 백배 아니 천배 만배였다·
뭔데· 왜 사람 밥 먹는 걸 이리 쳐다봐?
나도 손 있는데 왜 다들 발라주고 덜어주고 식혀주고 이 난리를 쳐?
아주 먹여달래도 먹여줄 기센데· (맞다)
이래서 할아범이 면사 쓰라고 난리를 쳤구나·
어른 말 들어서 손해 볼 게 없는 거였는데·
청이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이제사 무어·
얼굴 다 까고 나서 가려봐야 무용이었다·
물론 그래서 청이 덜 먹었냐면 그럴 리가·
대륙이 넓어서 그런지 오리의 크기부터 무슨 아기 돼지만 한데 사천의 비법으로 매콤하게 튀기듯 쪄낸 그 육질이 부드럽고 기름졌다·
그렇게 청이 자동으로 차오르는 요술 접시 위의 오리고기를 흡입하고 요술 술잔의 명주를 꼴딱꼴딱 잘만 삼켰다·
사람이 또 간사해서 몇 번 씹지도 않고 처먹는 꼴이지만 그래도 미인이 하면 복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그저 당난아만 혼자 눈깔을 떴다·
저게 사람이야 돼지년이야·
아예 그릇 들고 처마시지 볼따구에 아주 두꺼비처럼 우겨넣고는·
그리고 오빠 새끼들 다 뒤졌다·
어른들한테 다 이를거야·
그렇게 해어독화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 때였다·
연회장의 문을 열고 당가 무사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당가주 당투중에게 공손히 다가가서 귓속말을 건네더니 뒤이어 식탁을 향해 포권을 올린 후에 말했다·
“현재 덕현친왕부에 흑기가 올랐습니다·”
“뭐라? 누가 누가 상을 당했단 말인가?”
자유가 급히 물음을 던졌다·
“그것이 덕현친왕께서 훙서하셨다고····”
훙서 뒈졌다는 뜻이다·
당가 무사가 침통함을 가장하며 대답했다·
무조건 침통하게 해야 하는 대사였으니까·
신나게 하면 반역이다·
“···?”
졸지에 자신의 사망 소식을 들은 자유였다·
자유가 기가 막혀 입만 뻐끔거렸다·
—-
그 시각 마교의 임시 가설 뇌옥·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가놈과 서문희는 탈출에 실패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누구 때문인지 탓해봐야 일행끼리의 정만 상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설가놈은 서문희를 타박하는 대신에 냉철한 동네 최고의 지성답게 다시 탈출할 방도를 궁리했다·
소녀환희공을 익힌 서문희의 미모도 그간 물이 올랐으며 그걸 바탕으로 한 미인계를 둘이서 기획하던 와중이었다·
다행히 서문희에게는 미인계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환희궁의 방식이 미인계였으니까·
하지만 옥졸을 꼬셔서 탈출한다는 그 기획은 서문희가 애교 한 번 부려보기 전에 끝이 나고 말았다·
서문희의 애교를 본 설가놈이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었지만·
“그· 이만 나오시지 않으겠습니까?”
“무슨 수작이지?”
“높으신 분께서 정중히 모셔오라고 하셨기에· 식사야 옥중에 드릴 것이 그것뿐이고 그래도 저희가 달리 섭섭하게 대해드린 바는 없지 않겠습니까?”
“···?”
옥졸에게도 아주 천운이었다·
밤낮으로 격무에 바빠 죄수 가지고 놀 시간이 없었으니 그냥 건량이나 던져주고 말았으니까·
괜히 괴롭혔다가 큰일을 치를 뻔했으니·
설가놈이 서문희와 옥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신궁 소속의 무녀들이 우르르 몰려와 씻기고 때 빼고 영약으로 몸도 보하고 좋은 옷까지 딱 입혀주는 것이 아닌가·
설가놈이 한탄했다·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응? 왜요?”
“대접이 정중하니 꼭 높은 손님을 모시는 것과 같지 않소· 우리가 그럴 일이라면 서문 소저와 친분이 있다는 것 뿐이니 아마도 천마가 깨어나 서문 소저와 맺어진 것이 아니겠소·”
“앗 그럼 의매가 신교의 안주인이신거에요? 음 그럼 잘 된 거 아닌가?”
“그야 본인에게 달렸다마는· 제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본인이 달가워야 하는 바가 아니오·”
둘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방의 문이 열리며 지승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가놈이 지승주를 곧장 알아보았다·
“내 마뇌가 어린 소년이라 듣긴 했다만·”
“반갑습니다 설 대협· 그리고 서문 대협· 이리 뵙는 것은 처음이로군요· 모자라지만 비각을 책임지는 지승주라고 합니다·”
“대협이라니· 무슨 속셈이지?”
“뭐야? 나도 대협이야?”
“달리 속셈이라 할 것은 없습니다· 그저 두 분께서 이제 마땅히 신교의 대접을 받으셔야 할 위치에 계신지라·”
“뭐야 나 대접받는 거야? 오·”
“···서문 소저는 어찌 되었나?”
“우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현재 중원으로 나아가 계신 상태이시니·”
“내 알기로 그이가 중원에 나갔다면 마교가 이리 태평하지 않을 텐데?”
“뭐야 의매가 벌써 중원으로 나갔어?”
“본래 세상 일은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의뭉은 그만두고 본론부터 말해보시게·”
“···? 혹시 내 말이 안 들리나? 이상하다?”
두 지성이 서문희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분께서는 모든 신공을 이어받으시고 천마지존으로 강림하셨습니다· 떠나기 전에 신교의 문을 열고 이제는 좀 인간답게 살라는 명령을 내리셨지요· 중원 해방이라는 어리석은 숙원이 드디어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
설가놈이 벙찐 표정이 되었다·
“그· 다시 말해주겠나? 그 친구가 무어?”
“저도 일이 이리될지는 몰랐습니다만· 서문 소저께서 곧 신교의 천마지존이십니다·”
“뭐야 의매가 천마지존이시라고?”
“아니 잠깐· 이해가 안 되는데· 그 무슨·”
“뭐야뭐야? 그럼 난 뭐야? 천마 언니야?”
“거 좀 조용히 좀 해 보시오· 정신사납게·”
서문희가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었다·
설가놈이 청을 떠올렸다·
마교 놈들 한 방 먹이겠다며 천마혼 부수고 튀겠다던 친구였다·
난데없이 천마가 되었다니?
다만 어울리나 어울리지 않나 물어보면·
아주 딱 들어맞는 인물상이기는 하군·
아주 태생 천마야·
“물론 그분께선 신교에 관심이 전혀 없으신 상태입니다만 과연 중원인들도 그리 생각하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그러니 두 분께서 존귀하신 천마지존을 보좌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문 소저를 꼬드겨 마교로 돌려보내달라 그 말인가?”
그러자 지승주가 빙긋 웃었다·
지존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으니 더는 표정을 숨일 이유도 없기 때문이었다·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본 천마지존께선 언제고 신교로 돌아오실 분이신데·”
“···부정할 수가 없긴 하군·”
설가놈이 침통하게 동의했다·
매일 밤 피를 보고 돌아다니던 살성이 중원에 머물러 버텨봐야 얼마나 버티겠는가 하고·
“설 대협께서도 언제까지나 숨어서 사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천마지존께선 정이 넘치는 인물로 보이십니다만·”
“만약 거절하면 어찌할 텐가?”
그러자 지승주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가셔도 되고 이왕 중원으로 가실 바에야 천마지존을 모시겠노라고· 그렇게 약속만 해주신다면 교의 영약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분을 모시는 데에 조금이라도 무위가 높은 편이 도움이 될 터이니·”
설가놈이 금방 결론을 내렸다·
마교도 놈들이 저네 천마를 두고 장난질을 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공짜 영약을 마다할 이유도 없다·
친구 좋다는 게 다 무언가·
얼굴에 물 뿌려대던 값을 이렇게 돌려받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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